33.
오르간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모두 일어선다. 미사 집전을 위해 사제와 봉사자들이 들어서고 성가대가 반주자에 맞춰 시작을 알리는 찬송가를 합창한다. 일요일 교중미사는 가장 붐비는 때다.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차서 원치 않아도 옆 사람과 바싹 붙어 앉아야 한다. 아직은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어 더운 기운이 사람들 코밑 아래에 땀을 맺히게 한다. 얼굴 옆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간간이 보인다. 모두 자리에 착석하고 미사 집전신부가 설교를 시작하는 동안에도 연신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가운데를 기점으로 뒷줄 오른쪽 끄트머리 자리에 앉은 여자는 아래 위 검은색으로 통일한 복장을 했다. 단조로운 디자인에 별다른 장식이 없고 예의를 갖춰야 할 자리에 구색만 맞춘 형색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그마저도 최선을 다해 꾸몄다. 뭔가에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 지쳐 보인다. 그 옆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와 세 아이로 구성된 대가족이 조금 틈을 두고 같은 열에 앉았다.
아이들은 이미 시작된 미사에는 아랑곳없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며 서로 장난을 치다 조부모와 부모에게 엉겨 붙어 떼를 쓰기도 한다. 셋 중 가장 어려보이는 여자아이는 위의 두 오빠와 같이 칭얼대다가 관심을 돌려 가져온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부모는 난감한 얼굴로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최대한 자제시키려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그들 부모를 안쓰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검은 옷의 여자는 다른 사람보다 꽤 많은 양의 땀을 흘리고 있다. 유독 더위를 타서 그런지 꼭 뜨거운 뭔가에 가까이 앉아있는 사람 같다. 손에 든 주보로 열을 식히기 위해 반복해서 부채질을 하지만 흘러내리는 땀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하얀 도화지 위에 열심히 색칠을 하던 아이는 잠깐 눈을 들어 옆자리 여자를 지나 그 건너편을 바라본다. 마치 누군가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도화지 위로 집중한다. 설교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아이의 아버지가 그림 위로 눈길을 주더니 아이에게 묻는다.
“여기 노랗게 칠한 건 뭐야?”
“응, 불이야 불. 저거, 저거.”
아버지는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 다시 아이의 움직이는 손으로 향한다.
“저거라니?”
“어? 저기 아까 있었어.”
아이는 자신이 봤던 것을 찾아보려 하지만 찾을 수 없는지 고개만 이리저리로 빼며 흔든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다들 일어서서 주기도문을 외우려 하자 그에 맞춰서 일어선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 기도하듯이 하는 사람도 있고 개중에는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손바닥이 하늘을 보도록 하는 자세를 갖추기도 한다. 검은 옷의 여자도 양팔을 들어 올려 손을 펴고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본인이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이들을 어르고 있던 어머니였다. 검은 옷의 여자가 들어 올린 왼손 주위에서 시작된 불길은 파릇한 색을 띠며 얕게 시작해서 서서히 위로 솟아오른다. 밑둥은 노란색이고 그 위로 올라갈수록 붉게 바뀐다. 앞과 뒤에 있던 사람들은 그 열기를 느끼고 돌아본다. 당사자인 여자도 그제야 기도를 하느라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자신의 손 위로 피어오르는 불길을 확인한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다. 그 와중에 입을 열어 소리를 지른 사람은 얼마간 떨어진 자리에서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다 그 불꽃을 발견한 한 젊은 여자다.
“아아악!”
천장이 높은 성당 건물의 특성으로 인해 비명은 사방으로 쩌렁하게 울리면서 퍼져나간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던 사람들은 갑작스레 울리는 소리에 다들 놀라며 그 근원지가 어디인지 찾느라 웅성거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집전신부는 술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적이 당황한다. 갑자기 울려 퍼진 비명의 원인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성당 안 전체를 뒤덮는다.
불길을 보았던 사람들은 여자가 놀라서 손을 내리는 동시에 그 불이 사라져버렸음에도 자신이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자를 향해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 당혹과 놀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겹쳐서 짓눌러온다. 여자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 주변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고 그에 따라 술렁이는 공기에 몸을 움츠린다.
황급히 옆에 놓아두었던 손가방을 들더니 어깨에 메고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입구를 향한다. 걸음은 계속 빨라지더니 입구가 가까워지자 거의 뛰는 듯한 속도다. 굽이 있는 신발을 신어서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굽소리가 따라온다. 처음에는 딱, 딱, 딱 일정한 조로 따라붙더니 이어 걸음에 속력이 붙자 따각, 따각, 따각하는 분열음이 생기고 뛰는 듯한 걸음에는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흡사 말발굽이 내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린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고 있지만 여자는 뒤로 눈도 주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내달린다. 마치 자신을 따라오는 시선에 붙잡히지 않으려는 듯이 사력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