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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완벽하게 해피엔딩
작가 : 달콤슈크림
작품등록일 : 2020.9.6

결혼 프로포즈까지 한 재하의 배신으로 10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은 윤서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살았다. 폐인처럼 살던 어느 날, 윤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기로 다짐한다.

무작정 떠돌며 살던 윤서는 우연히 정민의 쉐어하우스에서 살게 되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는 듯 하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던 재하를 우연히 다시 만나고 재하와의 이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은정도 함께 만나게 된다. 윤서가 이 곳에 정착한 이후부터 윤서를 신경쓰던 정민은 평소답지 않은 윤서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재하를 경계한다.

그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인 줄 알았던 윤서의 변화에는 태도에 정민과 쉐어하우스 메이트들은 몰랐던 윤서의 과거에 대해서 알게 된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였던 윤서와 재하화의 과거를 알게 될수록 정민은 윤서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첫 만남부터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재하 역시 정민과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부탁하지 마세요. 이제 윤서에 대해 부탁할 자격도, 의미도 없지도 없지 않나요.'

 
23화. 예쁜 말 한 마디.
작성일 : 20-10-07 01:18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9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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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서와 재하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있다. 둘은 말이 없다. 한참 후에 재하가 먼저 어렵게 말을 시작한다.

 “밥 잘 챙겨 먹고. 귀찮다고 자꾸 끼니 거르고 그러면 안 돼.”

 

 재하가 눈물을 삼킨다. 윤서는 무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컵만 바라보고 있다.

 “날씨 예보 잘 보고 비올 것 같다 싶을 때는 미리 우산 챙기고. 비상약은 미리미리 사다놓고. 문단속 잘하고.”

 

 윤서가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떼다가 다시 굳게 다문다. 재하가 짧게 한 숨을 쉰다.

 “아프지 마. 윤서야.”

 

 둘은 다시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

 “가.”

 “윤서야.”

 “할 말 다했으면 가.”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윤서의 앞에 무릎 꿇는다.

 “미안해....”

 

 윤서는 말이 없다.

 “이렇게 돼 버려서.... 미안해. 나도 정말 노력 많이 해봤는데...”

 

 윤서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알아.”

 “나 좀 봐.”

 

 윤서가 생기를 잃은 눈으로 재하를 본다.

 “윤서야.”

 

 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재하가 윤서의 눈물을 닦으려 손을 뻗는데 윤서가 먼저 자기 눈물을 닦는다.

 “가.”

 

 재하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진다,

 “윤서야.....”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 담아두지도 말고 미안해하지도 마. 가.”

 “우리.... 정말 어떻게 안 될까? 나.... 너 없이....”

 

 윤서가 재하의 말을 가로 막는다.

 “네가 버린 거야. 결국 그 여자를 택한 거잖아. 이제 와서 미안한 척, 돌아오고 싶어 하는 척 하지 마.”

 

 재하가 윤서를 쳐다보지 못한다. 윤서가 눈물을 닦고 피식 웃는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너 다시 만날 일 없어. 이렇게 너를 놓치는 걸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을 해주었고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마주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혹시나 정말 혹시나 우리가 지나가다 만나더라도 모른 척 하자. 그냥, 넌 너 마음가는대로, 네 행복만 생각해.”

 

 윤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가 현관문을 연다. 재하가 윤서를 바라보다 재하의 짐들이 들어있는 캐리어를 끌고 나온다. 재하가 나오자 윤서가 현관문을 닫는다. 재하는 한참을 닫힌 문 앞에 서있다.

 

 

 ****

 

 

 창밖을 바라보던 윤서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정민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윤서는 재하와의 마지막 만남이 떠오른다.

 

 ‘재하를 마지막으로 만날 때쯤에는 이미 흘릴 눈물을 다 흘린 상태였다. 생일 날, 재하와 은정을 만나고 한 달을 지옥같이 살았다. 재하는 나를 놓지 못하고 은정은 재하를 놓지 못했다. 재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지쳤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의 오랜 연애 끝에 남은 것은 익숙함과 권태감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은정은 새로운 자극이었고 신선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재하가 찾아와 미안하다고 빌고 어떤 날은 은정이 찾아와 재하를 놔달라고 빌었다.’

 

 윤서가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처음엔 화만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감정은 사라지고 사실만이 남았다. 나는 다시 버려진 것이다. 사실이 명확해지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하에게 이별을 고했다. 재하는 한참을 울었다. 나도 알고 있다. 재하는 나 없이는 안 된다. 내가 재하가 없으면 안 되는 것만큼 재하도 나 없이 안 된다. 서로가 일상이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였던 우리였지만, 결국 마지막에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말자는 다짐뿐이다.’

 

 윤서가 소파에서 일어나 침대로 걸어가 잠이 든 정민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렇게 생살을 도려내듯 재하를 보내며 다시는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드라마의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서로에게 자꾸 눈이 가고 서로를 신경 쓰고 마음을 숨기려고 해도 결국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보며 가끔 또 기대를 하곤 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다시 저런 사랑이 다시 오지 않을까.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내가 웃는 것을 보며 행복해할 사람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예전에 마치 재하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다시 할 수 있겠죠, 그쵸, 오빠?”

 

 윤서가 잠든 정민을 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한다.

 

 

 ****

 

 

 정민이 뒤척인다. 눈을 떴는데 옆에 윤서가 없자 정민이 벌떡 일어난다.

 “깼어요?”

 

 윤서의 목소리에 정민이 짧게 한 숨 쉰다.

 “언제 일어났어?”

 “좀 전에. 왜 갑자기 그렇게 벌떡 일어나요? 무서운 꿈꿨어요?”

 

 정민이 다시 침대에 눕는다.

 “아냐. 배 안고파?”

 “조금?”

 

 정민이 옆으로 돌아누우며 소파에 앉아있는 윤서를 본다.

 “잘 잤어?”

 “네. 잘 잤어? 라고 묻고 배 안고파가 순서가 맞지 않아요?”

 

 정민이 웃는다.

 “그러네. 그게 맞네. 일찍 일어난 걸 보니 왠지 배가 고파서 일찍 일어난 것 같아서.”

 “하하하하. 맞아요. 배고파서 일찍 눈이 떴어요!”

 “조식 먹고 씻고 체크아웃 준비 하자.”

 “아 맞다! 조식 먹어야지!”

 “몇 시야?”

 “아직 7시 안됐어요.”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소파에 앉아있는 윤서와 눈을 마주친다.

 “재밌게 놀았어?”

 

 윤서가 미소 짓는다.

 “네.”

 “다행이다.”

 “덕분에 진짜 재밌게 놀았어요! 다음에는 애들이랑 다 같이 와요!”

 “그러자. 우리가 같이 살다보니 너무 집에만 있었지. 이렇게 놀다보니 다 같이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요. 일어나요! 밥 먹으러 가자!!!!”

 

 

 ****

 

 

 윤서와 정민이 택시에서 내린다. 윤서가 반가운 듯 소리친다.

 “집이다!!!”

 “그러게. 집이다!!!”

 

 둘은 정원으로 들어간다.

 “일주일도 안됐는데 잔디가 많이 자란 것 같은데.”

 “그러게. 정원은 애들 오면 다 같이 정리하자.”

 “그래요!”

 

 정민과 윤서가 집으로 들어간다. 윤서가 거실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린다.

 “애들한테 집에 왔다고 얘기했어요.”

 “잘했네! 짐부터 풀자.”

 “네.”

 

 윤서와 정민이 2층으로 올라와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윤서가 방에 들어가자 옷장 문이 열려있고 옷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윤서는 떨어져있는 옷들을 주워 다시 정리한다.

 “급했네. 정윤서.”

 

 정민이 윤서의 방문을 노크한다.

 “장보러 가야 할 것 같은데 청소는 다녀와서 하자.”

 “네. 옷만 갈아입고 내려갈게요!”

 

 윤서가 캐리어를 옷장 옆에 두고 옷을 갈아입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응~ 희주야.”

 “집이야?”

 “응. 좀 전에 도착했어.”

 “집은 어때?”

 “잘 있어. 잔디도 많이 자라있고. 이제 오빠랑 장 보러 가려고.”

 “오늘은 집에서 쉬지.”

 “가서 내내 쉬었는데 뭐! 너랑 준우는 오늘은 뭐해?”

 “준우가 아쿠아리움 가자해서 갔다가 저녁 먹고 들어오려고.”

 “아쿠아리움?”

 “응. 본 적 없는 생선들을 보고 싶대!”

 

 윤서가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하하하. 생선이라니! 물고기겠지.”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그러게. 사진 많이 찍어와! 준우가 너 찍어 준 사진들 너무 예쁘더라.”

 “그러니까. 기특한 녀석이 사진을 잘 찍어.”

 “재밌게 놀고 와~”

 “응!”

 

 윤서가 전화를 끊고 1층으로 내려간다. 정민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성훈이가 집밥 먹고 싶대.”

 

 윤서가 정민의 옆에 앉는다.

 “그럴 때 되긴 했죠. 그래도 미국에도 한인타운 가면 맛집 많을 텐데.”

 “워낙 까다롭잖아. 애들 올 때 맞춰서 상 좀 차려놔야겠다.”

 “그래야겠네. 희주랑 준우는 아쿠아리움 간대요.”

 “아쿠아리움?”

 “준우가 생선들을 보고 싶대요.”

 “생선? 물고기가 아니고?”

 

 윤서가 킥킥대며 웃는다.

 “가끔 준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생선이랑 물고기의 차이를 모르는 거 아닐까. 걔가 어렸을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서 어떨 때보면 진짜 똑똑한데 대부분 시간을 게임 속에 살아서 아마 똑똑한 모습을 자주 보진 못할 거야.”

 “하하하하하. 맞아요.”

 

 정민이 웃는 윤서의 손을 잡는다.

 “왜요?”

 “그냥. 여행도, 호텔도 좋았지만 역시 난 집에서 이렇게 너랑 마주보고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게 제일 좋다.”

 “가만 보면 오빠는 참 다정해요.”

 “내가?”

 “응. 말을 다정하게 해요.”

 

 정민이 피식 웃는다.

 “노력하는 거지.”

 “부모님이 잘 표현하시는 분들이신가봐요. 보통 이런 건 부모님한테 배운다고 했는데.”

 “엄마가 표현을 잘 했어. 말도 예쁘게 하시고. 아버지도 표현을 숨기는 편은 아니시고. 아버지는 직설적이지만.”

 “그래서 오빠는 직설적으로 말을 예쁘게 하나보다.”

 

 정민이 미소 짓는다.

 “작가라 그런가. 가만 보면 윤서도 말을 참 잘해.”

 “당연하죠. 작가가 말도 못하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그런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엄마랑 아버지도 만나자.”

 

 윤서가 어색하게 웃는다. 정민이 윤서의 손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윤서는 언제 부모님이랑 이별했어?”

 

 윤서가 잠시 기억을 떠올린다.

 “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해에 돌아가셨어요. 원래 몸이 약하셨는데 저 낳고 나서도 계속 아프셨어요. 엄마랑 자주 병원 다녔는데 어렸을 때라 그냥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게 좋았어요. 병원 다녀오는 길에 엄마랑 항상 외식했거든요. 아빠는 중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떠나고 아빠도 외로웠나봐요.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지만 당신은 챙기지 않으셨어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는지 금방 보러 가버리셨어요. 어렸을 때라 기억이 미화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같이 있진 못했어도 있는 동안에는 행복했어요.”

 

 정민이 윤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을 더 꼭 잡는다.

 “엄마, 아빠가 보시면 좋아하시겠다. 이렇게 예쁘게 커서 일도 잘하고. 마음도 착하고.”

 “그랬으면 해서 나름 참 열심히 살았는데, 속상할 일도 많았을 거예요.”

 “이제는 걱정 안하실 거야. 속상해하지도 않으실 거고.”

 “왜요?”

 “내가 있고 애들이 있고, 이 집이 있으니까.”

 

 윤서는 말없이 정민과 눈을 마주친다.

 “진짜 본 받을게요. 예쁘게 말 하는 거.”

 “갑자기?”

 “응. 진심으로 예쁘게 하는 말 한마디가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놓는 위로보다 훨씬 힘이 되네요.”

 “그럼 됐네.”

 

 윤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장보러 가요! 살 게 많아요!”

 

 

 ****

 

 

 재하와 은정은 말없이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은정이 보면서 웃고 있다. 재하는 텔레비전을 보다 생각에 빠진다.

 

 

 ****

 

 

 윤서가 혼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재하가 방에서 자다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윤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실소를 터트리며 보고 있다. 재하는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윤서를 바라본다.

 “재밌어?”

 “응?”

 “뭘 보는데 혼자 그렇게 웃고 있어.”

 “저 사람들 먹는 거 너무 웃겨. 어떻게 먹는 모습으로 웃길 수가 있지. 크크크크.”

 

 재하는 윤서 옆에 앉는다. 텔레비전에는 먹방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저 사람이 저걸 한 입에 다 먹어. 봐! 우와!! 장난 아니야!!”

 

 재하는 웃고 있는 윤서를 보다 윤서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윤서는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재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계속 텔레비전을 본다.

 “키키키키키.”

 

 재하는 눈을 감고 윤서의 웃음소리를 듣다가 따라 미소를 짓는다.

 “크크크크. 완전 대박... 우오! 오!!.”

 

 재하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우리 꼬맹이는 웃기도 잘 웃고 울기도 잘 울고.”

 “응? 뭐?”

 “아냐.”

 

 재하는 누운 채로 한 손으로 윤서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윤서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윤서는 남은 한 손으로 재하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다. 재하가 눈을 감은 채로 묻는다.

 “배 안고파?”

 “조금? 아직은 괜찮아.”

 “몇 시야?”

 “7시 5분 전.”

 “저녁 먹을 시간이네. 오늘은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윤서가 잠시 고민을 한다.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까?”

 “그래. 그러지 뭐.”

 “넌 뭐 먹고 싶어?”

 “그닥 생각나는 건 없네.”

 “그럼 치킨 먹자!!!”

 “그래.”

 

 윤서는 휴대폰을 들고 치킨을 주문한다. 재하는 휴대폰을 내려놓은 윤서의 손을 잡아다 자신의 머리에 놓는다.

 “계속 머리 쓰다듬어 줘.”

 “치킨 시켰어. 자면 안 돼.”

 “안 자. 안 졸려.”

 “그런데 왜 머리 쓰다듬어 달라고 해.”

 “그냥. 좋아서.”

 

 윤서는 말없이 재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준다. 다시 텔레비전에 집중하게 된 윤서는 웃기 시작한다. 재하는 눈을 감은 채로 윤서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윤서야.”

 “크크크크크. 응?”

 

 재하가 대답이 없다가 다시 윤서를 부른다.

 “윤서야.”

 

 윤서가 웃다가 대답한다.

 “왜?”

 “뽀뽀 해줘.”

 

 윤서가 재하를 내려다본다.

 “응?”

 

 재하가 윤서를 올려다본다.

 “뽀뽀 해줘.”

 

 윤서는 피식 웃더니 허리를 숙여 재하의 입술에 뽀뽀한다.

 “또.”

 

 윤서는 다시 뽀뽀 해준다.

 “갑자기 왜?”

 “너 웃는 소리 들으니까 뽀뽀 하고 싶어서.”

 “싱겁기는.”

 

 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윤서에게 키스하기 시작한다. 윤서는 순간 놀라지만 이내 받아 준다. 한참을 키스하다 재하가 입술을 뗀다. 윤서와 재하는 서로를 바라보다 윤서가 재하의 무릎에 앉아 재하의 목에 팔을 감는다. 재하는 윤서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갑자기 왜 이래?”

 “너 웃는 거 보니까 예뻐서.”

 “뭐야. 새삼스럽기는.”

 “그리고 내가 내 여자한테 뽀뽀하고 키스하는데 이유가 필요해?”

 “음.... 아니?”

 

 재하는 한 손으로 윤서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다정하게 바라보다 다시 키스한다.

 

 

 ****

 

 

 갑자기 재하는 윤서가 떠올랐다. 재하는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 은정을 바라보다 은정의 손을 잡으려다 만다.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자러 가게?”

 “응. 졸리네.”

 “먼저 자. 나 이것만 보고 잘게!”

 “응. 너무 늦게까지 보지 말고.”

 “응! 잘 자. 하하하하하.”

 

 재하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기대앉는다.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재하가 가디건을 챙겨 나온다.

 “안 자?”

 “잠깐 편의점 다녀올게.”

 “같이 갈까?”

 “아냐. 금방 다녀올게. 뭐 사다 줄까?”

 “음.... 아이스크림!”

 “알았어.”

 

 

 ****

 

 

 재하가 집을 나선다. 시원해진 밤공기가 재하의 뺨을 스치자 재하는 깊이 숨을 한 번 쉰다. 편의점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걷다가 휴대폰을 꺼내 윤서에게 전화를 건다. 한참을 휴대폰을 잡고 있었지만 윤서는 받지 않는다. 재하도 윤서가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평소 윤서는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아니라고 말할 때는 정말 아닌 사람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윤서를 만나고 싶다. 윤서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제 와서 또 후회해 봐야 소용없지만,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윤서를 다시 만났을 때 재하는 깨달았다. 그때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놓치면 정말 다시는 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재하가 휴대폰을 보며 한숨을 쉰다.

 

 “윤서야..... 어떻게 해야 하지....”

 

 

 ****

 

 

 정민이 거실 가운데 있는 소파에 앉아있다. 정민의 집보다 더 큰 통유리창문으로 햇살을 들어오고 곳곳에 미술작품들이 걸려있는 거실이다.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정민이 허공을 보고 있다. 서재에서 깔끔한 외모에 날카로운 인상의 노신사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전화로 하지 뭐 집까지 불러요.”

 “이러면서 얼굴 한 번 보는 거지, 뭘 궁시렁대.”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 어디 아파요?”

 

 정민의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하하. 왜?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이냐?”

 “아니. 생일 아니면 전화도 안하시면서 갑자기 직접 전화를 하셔서 회사도 아니고 집으로까지 오라고 하니까.”

 “하하하하하. 그래서 놀래서 달려온거구만.”

 “안하던 행동을 하시니까 놀라잖아요.”

 

 정민의 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을 든다.

 “준우 놈은 올해 대학원 졸업이지?”

 “네. 준우 안부가 궁금하면 준우를 불러요.”

 “니놈이고 준우 놈이고 똑같아.”

 “그러니까 같이 살죠.”

 “회사는 어때?”

 

 정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보다 잘 되고 있어요.”

 “뛰쳐나가서 니 회사 차린다 그랬을 때는 진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 주저앉히려고 했는데. 참길 잘했네.”

 

 정민이 피식 웃는다.

 “저도 아버지가 완전 다 때려 부술 줄 알았는데 아무 말씀 없으셔서 좀 놀라긴 했죠.”

 “혼자서 고생했다.”

 

 정민이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다.

 “아니, 그러니까 왜 오라고 하신 건데요. 이렇게 앉아서 수다 떨려고 부르신 거면 말씀을 하시죠. 재무제표라도 들고 와서 투자라도 좀 해달라고 준비 해왔죠.”

 “돈 필요하냐?”

 “사업하는 놈이 돈이 안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정민의 아버지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뗀다.

 “박 대표한테서 전화 왔어.”

 

 

 정민의 표정이 굳는다.

 “박 대표가 하도 많아서. 어디 박 대표요?”

 “누구겠어.”

 “그럼 박 대표님이 전화한 게 아니라 규리가 전화 걸라고 한 거겠죠.”

 “박 대표도 네가 마음에 든다고 하던데, 너는 어때?”

 “제가 박 대표님을 마음에 들어 하냐고요?”

 

 아버지가 인상을 쓴다.

 “이 자식이! 말장난하고 있어.”

 “저 그 집 따님한테 관심 없어요.”

 “그럼?”

 “뭐가 그럼이에요?”

 “만날 그렇게 게임이나 만들고 살래.”

 

 정민은 잠시 말없이 찻잔만 바라본다.

 “저 좋아하는 여자 있어요.”

 “그래? 사귀는 거야?”

 “같이 살아요.”

 

 정민의 아버지가 뜨끔 놀란다.

 “뭐? 같이 살아?”

 “네. 애들이랑 다 같이.”

 “아..... 맞아. 성훈이랑 석훈이도 같이 산다고 했지.”

 “희주도 들어온 지 좀 됐어요.”

 “뭐? 희주도? 아니 넌 도대체 몇 명이나 데리고 사는 거야. 그런데 그 집에 네가 좋아한다는 그 여자도 같이 산다고?”

 “그 여자 아니고 윤서예요, 정윤서.”

 

 정민의 아버지가 한동안 말없이 정민을 쳐다본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래?”

 “뭐가요?”

 “같이 살기는 하는데 사귀는 게 아니구만.”

 

 정민이 말없이 끄덕인다.

 “누군지 모르지만 어째뜬 대단한 여자인가보구만. 내 아들이 좋아하는데 사귀는 단계로 넘어가지를 않는다니.”

 

 정민이 피식 웃는다.

 “그러게요. 대단한 여자에요."

 "이름까지 알려주는 거 보니 장난은 아닌 것 같고."

 "제가 언제 아버지한테 여자 얘기하는 거 보셨어요? 아니 근데 아버지, 진짜 제가 뭐하고 다니는지 몰라요?”

 

 정민의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한다.

 “밖에 나가서 사는 놈이 뭐하고 다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드라마 같은데 보면 회장님이 자기 아들이랑 주변 사람들 뒷조사도 하고 사람도 붙이고 하던데.”

 “돈 아깝게 뭐 하러 그래. 불러다 앉히면 되는데.”

 

 정민이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러네요."

 “그래서, 그 윤서라는 아이 때문에 박 대표네 딸은 아니라는 거지?”

 “윤서 아니어도 규리는 아니에요.”

 “윤서라는 아이는 집에 데려올 수 있고?”

 

 정민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윤서 이름 들은 지 5분도 안됐거든요. 회장님들은 다들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해요?”

 “마음에 들면 빨리빨리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거지, 사내놈이 되가지고 이렇게 추진력이 없어서 사업은 어떻게 해?”

 “나중에요. 지금은 안 돼요.”

 “왜?”

 “윤서가 시간이 좀 필요해요.”

 “왜? 남자관계가 복잡한 아이냐?”

 

 정민이 피식 웃는다.

 “아무렴 아버지만 할라고.”

 “애비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일평생을 니놈 기다리며 살아. 고등학교 때 안하던 싸움박질 하고 다닐 때도, 경영대 잘 다니다 갑자기 컴퓨터 공학과 간다고 했을 때도, 회사 일 안 배우고 그 게임한다고 나갔을 때도, 다 이유가 있을 거니까.”

 

 정민이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본다.

 “너 알아서 잘 할 거 알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그리고 나 살기도 바빠.”

 “이젠 좀 쉬엄쉬엄 하세요. 사모님은 어디 가셨어요?”

 “오늘 모임 가는 날 이여서 나갔어. 언제 엄마라고 부를래.”

 “우리 엄마는 미국에 있고.”

 “니 그 고집은 니 엄마랑 진짜 똑같아.”

 “아닐걸요. 이건 아버지랑 똑같은 거 일걸요.”

 

 아버지가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 박 대표한테는 내가 얘기 하마.”

 

 정민이 미간을 찌푸린다.

 “아녜요. 제가 이야기 할게요. 사실 이미 당사자한테는 여러 번 이야기 했는데 좋게 이야기 했더니 안 듣네요.”

 “니들은 니들끼리 얘기해.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야기 할 테니. 있다가 밥 먹고 가라.”

 “회사 들어가 봐야 돼요. 회의하다말고 왔어요. 다음에 좀 여유 내서 올게요.”

 “그래 그럼.”

 “나중에 집으로 초대 할게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시잖아요.”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니 알아 해.”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약 잘 챙겨 드시고 운동도 하세요.”

 “내가 너보다 건강할거다. 가라.”

 

 정민이 인사하고 천천히 걸어 나오다 뒤를 돈다.

 “아버지.”

 “왜?”

 “윤서,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데리고 올게요.”

 “마음대로 해.”

 

 정민이 피식 웃더니 집을 나선다.

 

 

 ****

 

 

 운전하는 차 안에서 정민은 순간순간 생각에 잠긴다. 결국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댄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정민이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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