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무서워요?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민호와 은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다. 해가 거의 저물어가는 시간, 찌는 듯했던 한낮을 지나자 선선한 기운을 지닌 바람이 분다.
“무섭냐구요?”
민호는 은지의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되받는다. 둘은 시선을 강에 두고 서로의 말을 귀로 받아들인다.
“나는요, ……, 가끔씩 무섭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가 바란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되니까 화가 나고 억울한 느낌이 들고 그러네요.”
민호는 살짝 은지를 곁눈질했다 앞을 본다. 머리를 훑으려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온다.
“전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나요. 이게 진짜인가 싶고.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겁이 나든 화가 치밀든 할 텐데 지금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되네요.”
점점 어둡게 짙어지는 강의 물살이 끊임없이 출렁이고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꼭 최면에 걸릴 듯하다. 은지가 뭐라고 입을 열려다 민호가 먼저 말을 꺼내자 기다린다.
“그저 허락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은지가 고개를 돌려 민호를 바라본다.
“뭔데요, 그게?”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어요. 누가 어떻게 하라고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게요.”
은지의 눈동자가 살짝 대각선 위쪽으로 올라갔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깊은 숨이 흘러나오고 필요한 말을 찾는 듯 천천히 하나씩 단어를 내뱉으며 문장을 만들어간다.
“답이 쉽지 않은데, 꼭 필요한 질문이긴 하네요. 민호 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에 부딪히거나 힘들 때마다 하게 되는 질문이잖아요.”
민호가 고개를 돌리자 은지도 같이 마주본다. 떠오른 생각이 서너 가지는 될 듯 복잡한 표정이 각자 얼굴에 새겨져 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답을 찾나요?”
은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매달린다.
“각자 답을 찾는 방법은 다르긴 한데 주로 비슷한 결론을 내리던데요.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 마음에 귀 기울이면 하늘에서 신호를 준대요. 그 신호를 따라가면 그게 최선이라고 다들 그래요.”
민호는 은지의 말을 따라한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민호의 시선을 받던 은지는 겸연쩍게 소리 없는 작은 미소를 흘린다.
“그런데, 은지 씨. 신호를 따라갔는데 잘못되면요?”
대답하는 은지의 목소리에는 웃음의 잔상이 남아있다.
“저는 최선이라고 했지 정답이라고는 안 했는걸요. 잘못된 답을 찾는 것도 나중에 보면 인생에서 최선의 길이 될 수 있어요. 잘못된 선택에서 배우고 또 다시 나아가고 그러면서.”
민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거의 자신의 다리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인다.
“은지 씨 얘기 너무 어려워요!”
은지는 갑자기 터져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운지 목에서부터 울리는 커다란 소리로 한껏 터뜨린다. 이제는 캄캄해진 강물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쳤던 해가 남아있는 붉은색을 모두 뱉어내고 그 속으로 쑥 들어간다. 어둠이 순식간에 두 사람과 강물 주변을 가득 채운다. 그 속에서 은지의 웃음소리만 잔상을 퍼뜨리고 있다. 어둠 속이라 더욱 울림이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