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24.어둡고 바람 부는 밤이었다
작성일 : 16-10-27 16:49     조회 : 743     추천 : 0     분량 : 1091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둡고 춥고 흔들린다.

 

  둔탁한 대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도는 망원경을 통해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러 척의 전열함이 강강술래 하듯이 서로 빙글빙글 돌며 함포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포가 튕겨내는 배의 파편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망원경을 옆으로 움직이자 혼자 떨어져있는 독립파 깃발을 단 배 한 척이 보였다. 찾았다. 이도는 망원경을 내렸다. 짠 바닷바람이 어느 때보다 코를 자극한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오늘은 까마귀처럼 보인다.

 

  이도의 머리, 콧잔등, 발등 위로 빗줄기가 톡톡 떨어졌다. 그러더니 신이 물장난 치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이도는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겹겹이 쌓은 서류더미처럼 빈틈 하나 없다. 젖어버린 이도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얼굴에 착 달라붙었다.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 이도가 오는 걸 반기지 않는 듯 파도가 급격히 말썽꾸러기처럼 되어버렸다.

 

  아리아의 배는 해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크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도는 키를 잡고 주위를 신중하게 살피는 아리아에게 말했다.

  “다행이야. 지금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

  “아냐.”

 

  아리아는 눈을 번뜩였다.

 

  “지금 제국측이 불리해. 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무조건 협상을 성사시켜야해.”

 

  갑자기 큰 파도가 아리아의 배를 얼싸안았다. 배의 앞부분이 위로 솟아올랐다. 중력이 한 순간 반전된 느낌이다. 이도는 난간을 붙잡고 아리아는 키에 매달렸다. 선원들도 각자 무언가를 잡아 버텼다. 돛이 요동쳤고 포구에 느슨하게 고정된 대포는 끼이이익 거리며 미끄러졌다. 상자 안에 든 총, 칼, 통 등등 여러 잡동사니가 비에 젖은 바닥을 타고 데굴데굴 굴렀다. 이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다행히 배의 앞부분은 밑으로 내려앉았다. 선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땀과 비는 하나 되어 떨어져 배를 타고 흐르다가 심연을 품은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돌연 번개가 쾅 하고 바다 위에 쑤셔 박혔다. 한 순간 빛이 퍼져나가 사물과 인간이 만든 음영을 삭제했다. 구름 위에서 늑대가 크르르르 성대를 떠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도는 손을 꽉 쥐고 악의 심장부가 된 듯한 바다를 노려봤다.

  심장이 진동한다.

 

 

 

 

  그 때, 리나는 한 로열 프리깃을 지휘하며 전방을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의 고함 소리, 화승총을 격발하는 소리, 대포가 포탄을 쏘아 올리는 소리들이 덩굴처럼 얽히고 얽혀 들려왔다. 보따리가 터져 금화가 후두둑 떨어지는 것 마냥 빗줄기가 선상을 공격했다. 병사들의 옷은 전부 흠뻑 젖어 몸에 들러붙어왔고 머리카락은 미역줄기처럼 흘러내렸다. 시체로부터 흘러나오는 피의 흐름은 비에 섞여 흔적도 없어졌다. 바다가 흥청망청 뛰어다니는 주정뱅이처럼 출렁일 때마다 배 위의 선원, 대포, 밧줄, 통, 검, 총, 시체들이 쓰러지고 넘어지며 엎어졌다.

 

  “젠장, 그 놈들 한 번 끈질기네!”

 

  리나는 화승총을 조준해 적함 위에서 대포를 쏘는 놈 한 명을 쏘아 죽였다. 꺼지지 않는 등불은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떼돈을 벌었으리라. 근데 문제는 제국 놈들도 마법의 등불을 가지고 있단 것이다. 어떻게?

 

  “소니아, 빌어먹을, 안 봐도 그 년이지.”

  리나가 장전을 하고 있을 때, 한 관측병이 달려왔다.

 

  “선장님! 저 멀리 우현에 알 수 없는 배가 있습니다!”

  “깃발은!”

 

  “백기를 들었습니다!”

  리나는 관측병의 망원경을 빼앗고 배의 오른쪽으로 갔다. 망원경으로 우현의 바다를 살펴봤다. 진짜 백기를 든 함선이 있다.

 

  “저건.”

  리나는 한 눈에 그것이 아리아의 배임을 알아봤다. 모를 리가 없다. 그 배에서 굴욕적인 패퇴를 했는데. 리나는 눈을 번뜩이며 입이 쭉 찢어지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그 때와 조건이 다르다. 아리아의 배는 갤리온 급이지만 지금 리나의 배는 로열 프리깃이다. 격이 다르다. 물론 지금 전투를 겪고 있어서 좀 손상을 입었지만 말이다.

 

  리나는 키로 뛰어갔다. 그녀는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전원 전투 중지! 재정비해! 우리는 우측의 불청객을 잡으러 간다!”

  리사는 입술을 핥으며 허리 뒤춤의 쌍 단검을 매만졌다.

 

 

 

  그 시각, 엘리자는 대장선의 집무실 안에서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전황은 유리하다. 드레이크 총독은 착오했다. 식민지 무역협회가 밀수를 통해 쌓아놓은 군수품의 질과 양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독립파가 스스로 제대로 된 군함을 만들어낼 기술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기는. 물론 독립파는 그런 기술이 없다. 하지만 밀항해온 도림의 선박기술자는 있다. 그리고 도림의 해군은 제국의 해군보다 우수하다.

 

  “달콤하네, 이 홍차.”

  엘리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슥 닦았다. 갑자기 한 선원이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엘리자는 미소 지었다.

  “뒤지고 싶구나?”

 

  선원은 선장의 폭언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단 말했다.

 

  “선장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이상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리나 선장의 배가 전선을 이탈하여 우측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엘리자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나가 미친 걸까, 아니면 그곳에 보물이라도 있는 걸까?”

 

  “그, 백기를 든 갤리온 급 한 척을 향해 가고 있는 걸로 생각 됩니다!”

 

  “백기를 들었다고?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야? 알아들게 설명 못해?”

  “죄송합니다만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배는 유명한 밀수업자 아리아의 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엘리자는 손가락을 핥았다.

 

  “아리아가? 흐음. 까다로운걸. 지금 와서 전선을 바꿀 수도 없고. 리사는 안 돌아올 테고. 백기를 들었는데 복수하려는 건가? 쓸데없는 짓을. 명령불복종으로 처벌해주겠어. 뭐 그건 됐고. 나한테 온다고 해서 섣불리 아리아를 공격할 수도 없고. 내가 당할 수도 있어. 근데 대체 왜지? 이곳에 용건이라도 있는 걸까? 의심스러운걸.”

 

  엘리자는 그 선원에게 말했다.

 

  “일단 선원들에게 경계태세를 취하라고 해. 하지만 적의를 드러내지는 마.”

  선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엘리자는 손으로 깍지를 낀 채 허공을 응시했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미친 조물주가 사선으로 빗질하는 것 마냥 비가 내린다. 로열 프리깃은 비를 헤치며 아리아의 갤리온을 향해 오고 있다. 샛노랗게 칠한 선체와 빨강 파랑 장식 문양의 조화는 미친 광대처럼 보였다. 양 옆으로 툭 튀어나온 수많은 대포들은 뒤로 확 젖힌 갈비뼈 같았다. 방심하면, 아이언메이든처럼 먹잇감을 콱 붙잡아 먹어치우리라.

 

  아리아의 관측병이 외쳤다.

 

  “누님! 독립파의 배 한 척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아리아는 키를 잡은 채 풍파를 맞으며 온 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잘못 본 거 아냐!”

 

  “확실합니다! 프리깃입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이도는 긴장이 담긴 숨을 내쉬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러나 금방 내려왔다. 쉽게 길을 내어주지는 않는 건가. 백기까지 들고 있는데. 어떤 괴짜지?

  이도는 아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아리아, 대장선까지 앞으로 얼마나 걸리지?”

 

  “조금만 더 가면 돼. 하지만 변수 때문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포알들이 휙휙 배 위를 지나갔다. 다행히 마스트가 당하지는 않았지만 돛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선원들은 모두 몸을 움츠렸다. 번개가 꽝 쳤다. 그 빛에 비추어진 선원들의 모습은 마치 젖은 대포알 같았다.

 

  아리아는 이빨을 까드득 물며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당장 대응해!”

 

  선원들의 고함을 내질렀다. 사수들은 대포로, 전투원들은 안전한 곳에 대피하고, 보급원은 탄약들을 젖지 않게 조심조심 날랐다. 또 대포알이 날아왔다. 대부분 바다에 박히긴 했지만 몇 개는 선체를 스쳐지나갔다. 배가 살짝 기우뚱했다. 사수들도 지지 않고 대포를 발사했다. 저번에 입수한 등불 덕에 수월했다. 그들이 쏜 대포는 전열함 전면에 퍽퍽 박혀 들어갔다.

 

  그렇게 대포알을 주고받았는데도 적 로열 프리깃이 멀쩡하게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이제는 서로 옆을 마주보고 빙글빙글 돌 시간이다. 아리아는 전열함을 관찰했다. 노란 선체에 3층까지 길게 쭉 늘어선 네모난 포구들. 일전을 치룬 덕에 부서진 곳도 많았다. 하지만 총 48구의 측면 대포가 이곳을 바라보는 광경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게다가 각 대포 위에는 포구 덮개가 있어 비를 막는 역할도 해 준다.

 

  “젠장. 코앞이었는데.”

  아리아는 그다지 멀지 않은 대장선을 바라봤다. 저기까지만 가면 됐었는데.

 

  적 로열 프리깃이 일제히 포화를 쏟아냈다. 수많은 포알이 선체를 가격했다. 대장장이가 벌건 쇠를 가격하는 듯한 깡깡 소리가 들려온다. 선체가 옆으로 크게 요동쳤다. 역시 로열 프리깃이다. 하지만 아리아의 사수들도 지지 않고 대포를 쏘아댔다. 하나도 벗어나지 않고 로열 프리깃 구석구석을 파고들어갔다. 하지만 로열 프리깃은 흔들림 없이 육중하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모두들 백병전을 준비해!”

 

  아리아는 선체를 돌렸다. 그리고 정면이 적 로열 프리깃의 측면을 바라보게 했다. 최대한 피탄 면적을 줄인 것이다. 적의 전열함도 왼쪽으로 틀었다. 아리아의 배가 적 전열함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속도는 이쪽이 더 빠르다. 아리아는 선원들에게 최대한의 속도를 내도록 주문했다.

 

  아리아의 배는 빠르게 전열함의 측면으로 바짝 붙었다. 이 정도로 가까우면 적도 쉽게 포를 쏠 수 없다. 아리아는 칼을 뽑아들며 외쳤다.

  “사슬을 쏴! 고정시켜!”

 

  선원들은 사슬을 통해 전열함과 자신들의 배를 단단히 고정했다. 아리아는 적 전열함의 선원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오래 전부터 싸워댔던 게 분명하다. 좋아, 이거라면 할 수 있어.

  “전원, 돌격!”

 

  선원들은 해적 특유의 기묘한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했다. 밧줄을 타고 적의 선체 위로 날아오르거나, 난간에서 뛰어오르거나, 사다리를 걸고 뛰어가거나, 제각기 방법은 다양했다. 칼의 가면무도회가 벌어졌다. 레드 카펫은 필요 없다. 피가 있으니. 로열 프리깃 선상 백병전의 주인공은 돌격대장, 슈리, 루카였다. 초대장 대신 칼을 들고.

 

  이도는 아리아에게 말했다.

  “나도 싸울까?”

 

  “아냐. 우린 지금 널 지키는 거야. 근데 네가 나서면 안 돼지.”

  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놈들은 대체 뭐지? 백기를 들었는데 왜 공격하는 거야?”

  “나도 몰라.”

 

  뒤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도의 팔에 소름이 쭉 돋았다.

 

  “이유를 알고 싶냐?”

 

  이도와 아리아는 동시에 몸을 돌렸다. 배 후미 난관 위에 리나가 고양이처럼 네 발로 올라서있다. 오른손을 귀엽게 얼굴 옆에서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이도는 손을 덜덜 떨었다.

 

  대체 어떻게?

 

  리나는 표독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저번의 복수!”

 

  리사는 쌍 단검을 뽑으며 단숨에 달려왔다. 이도는 두 개의 검 중 하나를 뽑아서 맞섰다. 두 날붙이가 끼기기긱 거리며 서로를 막아냈다. 이도는 뒤로 물러서며 앞으로 찔렀다. 하지만 리나는 몸을 옆으로 휘릭, 돌려 간단히 피하고 이도의 뒤로 돌아 공격했다. 이도는 옆으로 스텝을 밞으며 검을 놀려 막아냈다. 검과 단검이 신묘하게 막고 공격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두 명의 발도 오른쪽 왼쪽 앞뒤로 휙휙 움직였다.

  “이도!”

 

  아리아도 칼을 뽑아들며 가세했다. 리나는 오른쪽 단검으로 아리아의 내려치기를 막았다.

  “쳇. 비겁하게.”

 

  리나는 동시에 두 명을 상대했다. 왼쪽은 이도, 오른쪽은 아리아, 정신이 없을 텐데도 리나는 물러섬이 없다. 틈! 리나는 발로 아리아의 복부를 쳐올렸다. 아리아는 헛구역질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리아!”

 

  이도는 한 눈을 팔아버렸다.

 

  “바보냥!”

  리나는 온 몸의 무게를 실어 일격을 가했다. 이도는 가까스로 막았지만 등 뒤가 2층 난간에 걸려버려, 몸이 뒤로 훅 넘어갔다. 어어, 하더니 이도는 1층 선체 위로 추락했다. 이도는 밧줄과 통이 뒤엉킨 곳에 떨어졌다. 다행히 상처는 없다. 이도는 빗발을 이겨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2층 난간에 리나가 앉아 있었다. 이도를 향해 떨어졌다.

 

  “큭!”

  이도는 몸을 옆으로 돌려 공격을 피했다. 리나는 단검이 바닥에 박혀서 낑낑대고 있다. 이도는 단박에 일어서서 공격했다. 하지만 리나는 귀신같이 막아냈다. 이 놈한테 빈틈이란 정녕 있는 걸까? 계단으로 내려온 아리아도 거들었지만 전투는 전혀 우세해지질 않았다. 오히려 리나가 그들을 갖고 노는 듯했다.

  “빌어먹을.”

 

  아리아는 물러서서 적 전열함 위의 전투 상황을 살펴봤다. 여전히 아리아 쪽이 우세하다. 지금 도움을 위해 불러서 좋은 전황을 망칠 순 없다. 젠장, 버티면 돼. 조금만 버티자. 근데 조금만 버틸 수 있을까?

 

  그 때, 리나는 이도를 맹공격했다. 순간 발을 헛디딘 이도는 팔꿈치를 베이고 말았다. 이도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신음하며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깊지 않다. 이도가 당하자 아리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리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리나가 허벅지 옆을 발로 차는 바람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악!”

 

  리나는 아리아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아리아는 가까스로 막았지만, 궤도가 옆으로 틀어져 단검이 아리아의 어깻죽지를 관통했다.

  “아아아악!”

 

  아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피가 철철 흘러내려 왼 팔이 완전히 더러워져버렸다. 아리아는 거친 호흡을 하며 리나를 바라봤다. 리나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낄낄댔다.

 

  “완전 형편없네. 이게 그 명성 높으신 아리아란 말이냥? 갈매기가 웃겠네.”

  “고양이! 선물이 있어.”

  이도가 말했다. 리나는 몸을 뒤로 돌렸다.

 

  “뭐야?”

  이도는 지금까지 들고 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검을 뽑아들었다. 검은 진흙으로 감싸진 듯한 검이었다. 이도는 등불을 이용해 그 검에 불을 붙였다. 검이 불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도가 한 번 털자 불이 사라졌다. 그리고 검에는 검보라색의 음침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쉭, 쉭. 살모사의 혀 놀림처럼. 쉬익, 쉭.

 

  소니아의 선물.

  리나는 클클 웃었다.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잖냥?”

 

  “장난일지 시험해 볼까?”

  이도는 마법 검을 휘둘렀다. 리나는 단검을 이용해 막았다. 아니! 리나는 경악했다. 생각도 못 했던 힘에 두 팔이 뒤로 튕겼다. 낌새가 이상하다. 리나는 자신의 쌍 단검을 내려다봤다. 단검이 퍼슥퍼슥 거리더니 재처럼 변해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장난이지?”

 

  이도는 그 기회를 잡아 리나를 몰아붙였다. 리나는 이리저리 피하며 버텼다.

  “누님!”

 

  적 선상에서 싸우다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낀 돌격대장이 로열 프리깃 선상의 백병전은 슈리와 루카에게 맡기고 돌아왔다. 그는 아리아가 부상을 당해 앉아있는 걸 보고 단숨에 달려갔다. 우선 아리아의 상처를 살펴봤다. 상당히 깊다. 그리고 피가 너무 많이 흐른다. 대장은 일단 주머니에서 붕대를 꺼내 상처를 감싸며 묶었다. 아리아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고마워.”

 

  “이 정도야 당연하죠! 누님은 여기 앉아서 가만히 있으세요, 제가 대신 싸울 테니.”

  “조심해. 저거, 보통이 아냐. 지금은 잘 모르겠네. 이도가 마법을 써서.”

 

  돌격대장은 이도와 리나의 싸움을 보았다. 장관이었다. 위도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보랏빛 잔상이 남아 아련한 향기처럼 맴돌았다. 리나는 단검이 깨져서 그냥 피하기만 하고 있다. 하지만 리나는 씩 웃었다.

 

  “똑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진 않아.”

 

  리나는 숨겨두었던 쌍 단검을 꺼내들었다. 파란 점액질이 잔뜩 들러붙어있다.

  ‘저건!’

  이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도가 납치당한 날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마법 검이다.

 

  이도는 위기를 느끼고 공격을 거세게 퍼부었다. 하지만 리나는 뒤로 크게 물러난 뒤, 등불을 집어 단검에 불을 붙였다. 이도가 했던 것처럼 불을 한 번 털어내자 마법이 발동했다. 쌍 단검의 테두리가 보기만 해도 서늘한 파란색으로 빛났다. 그 주위에는 눈보라처럼 자그마한 하늘색 알갱이가 맴돌았다.

 

  “언제까지 버틸까?”

 

  리나는 기합을 넣으며 공격했다. 이도의 마검이 뿜어내던 강력한 힘이 단검을 맴도는 하늘색 알갱이에 상쇄되었다. 두 마검이 붙자, 검보랏빛 기운과 파란빛 기운이 서로를 침식하기 시작했다. 이도는 나쁜 낌새를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검을 보니 흠집이 꽤나 깊게 나 있다. 저 단검이 만든 것이다. 강화 마법에 이도의 검이 지닌 마법을 막을 정도의 강력한 코팅. 젠장. 빨리 결판을 내지 않으면 이도의 검이 먼저 바스라질 것이다.

 

  “신참! 겁먹지 말라고!”

 

  돌격대장이 리나의 뒤를 기습했다. 하지만 리나는 막아냈다. 쌍 단검의 파란 기운이 대장의 검을 감싸더니, 날 부분을 침식했다. 대장은 물러서서 검을 살폈다. 한 번 댔을 뿐인데 상당히 이가 빠져 버렸다. 하지만 대장은 물러서지 않고 기합을 내지르며 공격했다. 이도도 가세했다. 쨍, 쨍, 쨍.

 

  “대장! 저희도 있다고요!”

 

  선원들 몇 명도 아리아의 배로 넘어와 힘을 보탰다. 벌써 선상의 전투가 끝나가고 있던 것이다. 리나는 혀를 찼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젠장,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됐다.

  다 죽이면 되니까.

 

  리나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한 놈의 목을 땄다. 갈라진 틈 사이로 피가 푸슈슉 터져 나와 리나의 얼굴에 튀었다. 그는 두 손으로 목을 잡고는 꺽꺽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대장이 달려왔지만 이미 죽은 뒤였다. 리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차례차례 선원들의 발을 자르고, 팔을 베어 넘기고, 가슴을 찢어발겼다.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강을 이루어 선상 위를 흘러가다가 난간 아래로 주루룩 빠졌다. 비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 경광에 압도되어 선원들은 다가서길 주저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돌격대장은 바닥에 묻었다가 비에 씻겨나가는 피를 어루만졌다.

  이도는 입 속으로 들어간 땀을 맛보았다. 짜다.

 

  숨이 거칠다.

 

  ‘당해낼 수가 없어. 너무 강해.’

 

  그 순간, 돌격대장이 이도에게 달려와 마검을 빼앗았다. 대장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다. 대장은 마검을 머리 높이 들며 괴성을 질렀다.

  “우오오오오!”

 

  대장은 마검을 사납게 휘두르며 리나를 몰아붙였다. 대장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리사를 향해 저주를 토해냈다.

  “감히! 감히! 감히! 네 년이!”

 

  대장은 피 터지는 고함을 토해내며 리나를 공격했다. 리나가 밀렸다. 대장의 근력과 마검이 지닌 폭발하는 듯한 힘이 합쳐져 시너지를 냈다. 이도는 그저 볼 수밖에 없었다. 끼어들었다간 자신도 베일 것 같았기에.

 

  “죽어-.”

 

  대장은 마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마검이 쩍 갈라지더니 검은 알갱이로 변해버렸다. 코팅이 깨진 것이다. 리나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단숨에 대장의 복부를 갈라버렸다. 피와 내장이 터져 나왔다. 대장은 비명도 못 지른 채 쓰러지고 말았다. 아리아는 비명을 질렀다. 이도는 손을 덜덜 떨며 리나와 대장을 번갈아보았다. 대장은 아직 살아있지만, 긴박하다.

  피가, 피가......

 

  피. 불. 희아.

 

  더 나은 선택.

 

  예상치 못한 비극.

 

  “빌어먹을!”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이런 일은 없었을 수도 있었는데! 이도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리나를 향한 증오심에 눈이 번득였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왜? 어째서! 우리가 뭘 했다고? 이도는 검을 높이 들며 리나를 공격했다. 리나는 킥킥 웃으며 이도를 도발했다.

 

  “괴로워? 슬퍼? 화가 나냥? 아하하하!”

 

  리나는 이도를 맹렬히 공격했다. 이도는 막기만 하다가, 결국 검이 두 조각나고 말았다. 이도는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이제 다 끝이야.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도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다물었다.

 

  나는 바보였어.

 

  아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왔다.

  “안 돼! 이도! 이도만은!”

 

  한 선원이 아리아를 붙잡고 말렸다. 그리고 한 쪽을 가리켰다.

 

  리나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단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죽어.”

 

  리나가 단검을 휘두를 때, ‘그것’은 리사의 몸을 가격했다.

 

  ‘그것’은 대포였다. 선원들이 묶여있던 대포 하나를 몰래 풀고, 리나를 향해 굴러 던진 것이다. 바닥이 비 때문에 미끄러워 대포는 빨리 굴러갔다. 리나가 눈치 챌 틈도 없었다. 대포는 그대로 리나와 함께 집무실 옆 벽에 처박혔다. 리나는 끓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대포 때문에 흉곽이 완전히 으스러져버렸다. 리나는 피를 토하며 두 손으로 대포를 긁으며 발악했다. 핏 자국이 선명하다.

 

  이도는 리나가 떨어뜨린 단검을 들고 걸어갔다. 선원들이 돌격대장을 둘러싸고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바닥에 엎드린 채 어깻죽지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대장과 이도를 번갈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도는 살이 쓸릴 정도로 단검을 꽉 쥐었다.

 

  모두, 모두 없어도 될 일이었는데.

  “전부 네놈 때문이야.”

 

  이도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리나를 향해 단검을 겨누었다. 리나는 코, 입, 눈, 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다. 아직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리나는 옆을 바라봤다. 자신의 전열함을. 헛웃음이 나온다.

 

  “전부 다 죽었군. 저번처럼.”

 

  리나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이도를 바라봤다.

  “선원들의 복수도 못 한 채. 커헉!”

 

  리나는 기침하며 피를 토했다.

  이도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리나를 보았다.

 

  뭐라고? 복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건가? 난 그녀가 싸움에 미친 요상한 적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야. 그녀도 다를 바 없는 보통 선장이야. 선원들은 아끼는.

  예상치 못한...... 비극

 

  이도는 우두커니 서서 죽어가는 리나를 바라봤다. 리나는 그런 이도를 조롱했다.

 

  “뭐 해? 빨리 안 하고.”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이도의 단검을 빼앗았다. 아리아다. 아리아는 단검을 리나의 목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는 듯 마구 난자했다. 비명을 지르며. 원망하며. 리나의 목은 반이나 잘려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이도는 아리아의 두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리아! 그만해! 이미 죽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리아는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외쳤다.

 

  “모두 배로 돌아와!”

  선원들이 전부 탑승하자, 아리아는 키를 잡았다.

 

  아리아의 배는 다시 대장선으로 향했다. 짙은 안개처럼 침울한 분위기가 배를 짓눌렀다. 비는 사정없이 내려 시체들을 희롱했다. 슈리와 루카는 전에 본 적 없는 진지한 얼굴로 쓰러진 대장의 옆을 지켰다. 이도는 가슴 깊은 구석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또 괜한 짓을 한 건 아닌가. 하지만 이미 돌릴 순 없다.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강을 건너버렸으니.

 

  이미 선택을 내려버렸으니.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9 28."끝이 시작되고 있었다." (4) 2016 / 10 / 31 686 0 2362   
28 27.참으로 오래 걸린 2016 / 10 / 30 445 0 5375   
27 26.바다를 건너며 2016 / 10 / 29 802 0 12560   
26 25.신의 가호가 있기를 2016 / 10 / 28 597 0 12539   
25 24.어둡고 바람 부는 밤이었다 2016 / 10 / 27 744 0 10914   
24 23.결점과 결심 2016 / 10 / 26 507 0 8218   
23 22.왜 하필 지금 2016 / 10 / 25 702 0 9485   
22 21.아리아와 함께 춤을 2016 / 10 / 24 675 0 13792   
21 20.협상의 행방 2016 / 10 / 23 999 0 12721   
20 19.물놀이를 즐겨요 2016 / 10 / 22 568 0 19416   
19 18.제2 라니냐 항구 2016 / 10 / 22 472 0 8046   
18 17.엘리자의 회초리 2016 / 10 / 20 466 0 2376   
17 16.고양이 울음소리 2016 / 10 / 19 648 0 14015   
16 15.루비가 박힌 단검 2016 / 10 / 18 402 0 8352   
15 14.항구를 떠나다 2016 / 10 / 17 405 0 4106   
14 13.도처에 놓인 그물망 2016 / 10 / 16 704 0 8793   
13 12.소니아를 보다 2016 / 10 / 15 595 0 9697   
12 11.그 날 2016 / 10 / 14 831 0 12356   
11 10.루카를 위하여 2016 / 10 / 13 537 0 7296   
10 09.다시 찾아온 2016 / 10 / 12 1260 0 16436   
9 08.선화의 짖궂음 2016 / 10 / 11 521 0 6245   
8 07.선상의 파티 2016 / 10 / 11 613 0 5057   
7 06.가녀린 손 (1) 2016 / 10 / 10 699 1 7374   
6 05.헬라와 욕조 2016 / 10 / 9 538 0 6228   
5 04.선화와 황제의 문답 2016 / 10 / 8 460 1 9336   
4 03.이도의 펜던트 2016 / 10 / 8 686 1 5708   
3 02.납치선에서 (2) 2016 / 10 / 7 611 1 6595   
2 01.고장난 마차바퀴 2016 / 10 / 6 534 1 8418   
1 00.라벤더와 라즈베리 향 2016 / 10 / 6 710 2 141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드래곤 플래닛
에르노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