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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서사모아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20.9.22

1950년 7월 15일,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전쟁에서 패한 이들이 망명한 곳은 다름아닌 남태평양 환상의 섬, 서사모아 제도.
그곳에서 50년 전, 태평양 깊이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9화 - 섬
작성일 : 20-09-30 23:18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12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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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약자가 변경되었다.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라.”

 상부로부터 새로운 지침이 하달됐다. 원래 내가 알기론 외교관리국에서 출국심사를 담당했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정이 생겼는지 그 사람은 못 넘어오게 되었고 대신 다른 사람이 인계받아 넘어왔다고 한다. 목표에 대한 보고서를 보니 재미있게도 외과 의사다. 조선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같은 상류계급끼리 뭉쳐 다니는 것 같다. 다 뻥이란 소리지.

 아무튼, 나는 새로 들어온다는 손님을 맞이하러 준비해야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여기를 놀러 오는데 우리는 여기서 땀 흘리며 일 년 내내 일한다. 이런 수고, 하느님은 아시겠지.

 “택배를 실은 배는 내일 오후 7시경 마닐라에 도착할 예정이다.”

 목표를 확보하기 위한 임무에 정보가 추가 전달됐다. 나는 통신관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바로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마닐라로 가는 데 어렵지는 않지만, 넉넉하게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게 가장 좋다. 혹시라도 손님이 당황하거나 어리버리 하여 길을 잃거나, 강도를 만나게 되는 등 재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조선대사관에 연락이 들어가 강제 귀국하게 되면 안 되니까.

 만일을 대비한 물품들과 손님에게 줄 물품을 모두 챙기고 나서려다가 입구에서 수건을 개고 있던 점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잘 다녀와. 다녀오고 나서는 밀린 이불빨래부터 하고. 그리고 부사수 하나 오니까 교육해.”

 “예에~.”

 이불빨래 하기 싫어서라도 손님과 시간 좀 끌다가 와야겠다. 이상하게 지금 북반구의 국가들은 겨울이라 그런가, 겨울에 따스한 해변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런가 유독 여행객이 많아진 기분이다. 덕분에 우리는 주둔 중인 필리핀의 말라이 지방 보라카이 섬의 디니위드 해변 언덕에 세워진 프리덤 호스텔의 관리로 평소보다 더 바빠진다. 우리 본래의 업무를 하면서 호스텔 관리까지 해야 하니 참으로 바쁘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눈치챘겠지만,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대한광복군 보라카이 지부 1소대 대원이자 인사담당관이다. 계급은 하사로, 곧 중사 진급을 앞두고 있다. 평소에는 프리덤 호스텔의 객실 관리 및 빨래 담당이고, 조선공화국을 탈주하고자 하는 이른바 ‘자유화’를 하는 이들의 인도와 감시 및 보호를 담당한다.

 

 보통 조선공화국을 탈주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인데,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국경지대를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로 탈주하는 방법과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목숨 걸고 배를 띄워 일본의 대마도로 도망치는 방법, 그리고 필리핀으로 망명하는 방법이다. 위의 세 방법 중 가장 안전하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필리핀으로 밀항하는 것이다.

 필리핀으로 밀항하는 방법이 왜 가장 안전하고 확률이 높냐면, 우선 압록강과 두만강은 건너기는 쉬운데 중국과 러시아 현지에서 조선공화국 보안대 요원을 마주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 일본 대마도로 도망치는 건 사실상 인민해군에게 나 잡아가세요 하고 보여주는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인민해군이 부산항에 죽치고 있는 게 탈주자 잡아서 실적 올리려고 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3국 중에서도 필리핀 밀항이 가장 안전하고 확률이 높은 이유는, 바로 필리핀 보라카이섬에 우리 대한광복군 보라카이 지부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나 다른 나라에 잘못 가면 탈주자라는 약점을 잡혀 노예 생활을 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고 한다. 우린 필리핀 영토에 들어오자마자 우리가 인터셉트 해버리니, 조선 쪽에서 아주 작정하지 않고서야 위험할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조선공화국에서 무조건 탈주한다고 해서 우리가 돕지는 않는다. 무턱대고 도왔다간 자칫 인민군 보안대 녀석들에게 꼬리가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수 없으면 보안대 요원을 우리가 인도하는 불상사도 있을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린 사전에 조선공화국 내 자리 잡은 고정요원들, 우리 용어로 기생수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 정보에는 여러 심사기준이 있어 이에 합격한 대상을 우리 보라카이 지부에 인계하게 되고, 그렇게 인계된 정보를 통해 조선공화국에서 탈주시키기 위해 접근하게 된다.

 물론 보라카이 지부에서도 소대별로, 병사별로 임무가 달라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유도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그저 필리핀 밀항선을 타고 오면 보호하고 인계하는 것, 그리고 밀항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만 신경 쓴다.

 

 폐쇄된 국가인 조선공화국 현지에서 대상자들을 유도하고 탈출로 이끄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우린 보라카이 지부가 설치되고 나서 지금까지 약 30년간 매년 평균 50에서 70명의 조선공화국민을 자유화 시켰다. 그들은 서사모아로 가서 시민권을 딴 후, 우리처럼 광복군에 지원하기도 하고,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등 여기저기로 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며 행복하게 여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번에 마닐라로 들어오는 손님은 과연 어떤 재밌는 선물이 될지 매우 궁금하다. 나는 마닐라공항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며 이번에 데리고 올 손님을 위한 위조 여권을 꼼지락거렸다.

 

 손님을 받기로 한 날, 다행히 오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해가 떨어지자 제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도 때문에 배 안에 있는 손님에게는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손님을 안전하게 모셔야 하는 우리 시선에선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나는 시간 맞춰 배를 만나기로 한 마닐라 내 파시그 강 북쪽 항구에 들어섰다. 경비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신분증을 보여주고 바로 통과했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어두운 부두에 우비를 입은 채 걸어가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일까, 혹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일까.

 

 메시아 호. 조선공화국과 무역하는 몇 안 되는 필리핀의 상선. 표면으로는 전자제품이나 가구 등을 수입하지만, 사실 조선공화국 북쪽에서 생산되는 양귀비 등 마약과 세계최고의 효력을 발휘하기로 유명한 조선공화국산 시위진압용 최루가스를 밀수입하는 밀수꾼들의 배다. 덧붙여 조선공화국을 탈출해 자유화하려는 우리 손님들을 데리고 와 주는 훌륭한 밀항선이기도 한 메시아 호는 이름 그대로 구세주라고 볼 수 있다.

 부두에 정박한 후 메시아의 선원들이 다리를 대고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가자 선원들이 인사했다. 나도 밝게 웃어준 뒤, 배 안으로 진입했다.

 “할로~? 고생많네~.”

 파일을 들고 무언가 바삐 지시하는 메시아 호의 선장 페드로 로브레도씨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그도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부하 선원에게 무언가 이것저것 시킨 후 페드로 씨는 나보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역시 밀항은 비가 오는 날이 제맛이지.”

 손님이 있는 컨테이더 박스로 나를 인도하며 페드로 씨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페드로 씨와 나는 동시에 껄껄 웃었다.

 컨테이너 박스에 도착하여 자물쇠를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예상한 대로 오물과 토사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페드로 씨는 손전등을 켜 안쪽을 비추었다.

 “저기요, 살아 있죠? 죽은 거 아니죠?”

 페드로 씨가 말하자 상자 안쪽 틈에서 좀비처럼 무언가 일어났다. 이번 손님은 바로 저 사람인 듯하다. 계속된 구토로 인해 탈진이라도 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페드로 씨는 하핫 하고 웃으며 바닥의 똥과 오물을 피해 다가갔다.

 “필리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페드로 씨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에 손님도 힘겹게 웃으며 감사하다며 힘겹게 일어났다. 그러자마자 손님은 또 바로 구토를 시작했다. 나는 페드로 씨 뒤에 다가가 물었다.

 “밥 줬어?”

 내가 질문하자 페드로 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냥 소보로 빵 세 개와 물 하나 줬을 뿐인데. 솔직히 버틸 줄 알았어.”

 “토하고 염병하니 물 말고 아무것도 주지 말라니까 그러네.”

 “아냐. 일부러 토하라고 준 거야. 좀 토하고 똥도 싸야 마약견의 추적을 피하기가 쉬워.”

 페드로 씨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손님이 타고 온 컨테이너 박스는 말린 양귀비가 담긴 마약 밀수입 컨테이너다. 필리핀은 지금 정부 주도로 마약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조선공화국 같은 음지의 거대생산공장과 페드로 씨 같은 밀수꾼이 있기에 도통 쉽지 않다. 항구마다 마약견을 배치하며 단속하고 있지만 이렇게 용의주도한 페드로 씨 덕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럴 시간 있어? 슬슬 세관 올 시간이야.”

 페드로 씨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바로 손님을 일으켜 세우고 준비해 온 비타민 음료 하나를 억지로 먹인 후 여벌 우비를 손님에게 입혔다. 그리고 똑바로 못 서는 걸 이용하기 위해 왼쪽 발목을 강하게 걷어찼다. 손님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세 번 더 걷어차고 두 번 짓밟아 손님의 발목이 삐도록 만들었다. 손님은 고통스러워하며 왜 이러시냐고 물었지만, 나는 이래야 단속을 피하기 쉽다고 대답하고 살고 싶으면 내가 하는 대로 잠자코 따르라고 했다.

 그렇게 손님은 왼쪽 발목을 제대로 못 써 절뚝거리며 내 부축을 받게 됐다. 나는 페드로 씨에게 준비한 편지봉투를 넘겼다.

 “늘 고마워. 또 이용해 줘!”

 페드로 씨가 편지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뒤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 냄새나는 손님을 부축한 채 배를 떠났다.

 “선원이 미끄러져 다쳤어요. 병원으로 갈 겁니다.”

 항구 입구에 다다라 만난 필리핀 세관에게 내가 말했다. 세관은 손님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작은 편지 하나를 몰래 건넸다. 세관은 편지를 급하게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매우 미끄럽죠. 조심하세요.”

 필리핀 세관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에라이 뇌물에 죽고 뇌물에 사는 정신 나간 놈들. 나중에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세워지게 되면 공무원 뇌물 비리를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총통께 꼭 전언하리라.

 그렇게 손님은 내 부축에 이끌려 필리핀의 최고 관광명소, 보라카이로 이동했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301호 방문을 열고 손님에게 줄 아침 식사인 주먹밥 두 개와 오렌지 주스를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손님은 내가 방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잠들었다가 내가 말을 하니까 서서히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 감사합니다, 동무.”

 “동무 소리 빼십시오. 나는 그 말 싫어합니다.”

 “아 동무, 미안합니다. 이게 반 육십 년 살며 축적된 버릇이라.”

 “당장 고치세요. 조선으로 돌려보내기 전에.”

 내가 말하자 손님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나를 쳐다봤다. 제발 그러지는 마세요라는 표정인 듯했다. 나는 내가 좀 험한 농담을 했나 싶어 사과했다.

 손님을 마닐라 항구에서 인계받은 후, 보라카이에 안전하게 데려온 지 이틀이 지났다. 또 배를 탄다니까 기겁을 하며 거절하려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이번에는 화물칸에 넣어 온 게 아니고 선실에 같이 타고 와서 그런지 안심하는 눈치였다.

 보라카이에 도착하고 나서는 바로 모든 소지품과 짐을 빼앗아 2소대에 넘겼다. 정보확인과 수집은 2소대의 역할이니까. 그리고 우리 프리덤 호스텔로 데리고 와 301호실에 감금 아닌 감금을 하고 관찰하며 보는 중이다.

 물론 지금은 밥 넣어주고 나가면 금세 잠들고 언젠가 일어나 꾸역꾸역 먹은 뒤 또 잠들고를 반복하기 때문에 관찰할 것도 없다. 그래서 소대장님 말씀대로 밀린 빨래부터 했다.

 

 “동무는, 아니 당신은 광복군인가요?”

 밀항 때 많이 피곤했는지 이틀을 내리 잠만 자던 손님이 이제 기운을 차린 듯, 점심식사를 주러 들어가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창문을 활짝 열고 디니위드 해변을 내려다보며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기에 나는 이제 체력을 회복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내가 점심식사로 가져온 토스트를 하나 집어 입에 물었다. 처음 봤을 때 구토 흔적과 며칠 씻지 못해 퀭하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인상이, 체력을 회복하고 나서 스스로 욕실에서 씻고 면도도 하니 꽤 지적이고 미남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광복군은 무얼 하는 단체인가요?”

 “조선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세우려는 단체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광복군으로써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이런 풍경 좋은 곳에서.”

 그가 주먹밥을 씹어 삼키며 말했다. 나는 바닷바람으로 인해 휘날리는 커튼을 정리하고 그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난 당신을 보호하는 역할입니다. 당신이 없을 적엔 평범한 객실 관리원이고.”

 “멋진 일을 하는군요. 마치 보안대 사복 요원 동무들 같습니다.”

 괜한 트집 잡아 자국민 고문해 때려죽이고 겁줘서 아가리 닥치게 하고 남자 성기에 철사를 집어넣고 여자 성기에는 유리병 집어넣어 불임 만드는 쓰레기들이랑 나를 동급으로 보지 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자는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만뒀다.

 “여긴 뭐라고 부릅니까?”

 “필리핀의 최고 관광명소, 보라카이의 디니위드 해변.”

 “과연 최고라 불릴 만 하군요. 바닷물이 이런 색인 건 처음 봅니다. 디니위드 해변...”

 손님은 객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디니위드 해변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저도 내려가서 발 담가도 됩니까?”

 그가 질문하자 내가 안될 거 뭐 있냐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소대장님께 말씀드리고 그를 해변으로 인도했다.

 그는 디니위드 해변을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나는 그의 걸음걸이와 행동을 보고 확실히 고등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고등 교육을 못 받은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운 사람은 행동과 걸음걸이에서 티가 난다.

 그는 해변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해수욕을 즐기는 어린이들을 보며 미소짓기도 하고, 여러 가지 군것질거리를 판매하는 상인들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 중 숯불로 구운 닭꼬치에 관심이 쏠린 그는 이게 무슨 고기냐고 상인에게 물었다. 물론 조선어로. 상인은 그가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어로 말하라고 계속하는 병맛 넘치는 장면이 계속되자 내가 다가가 중재했다. 상인에게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서사모아에서 온 내 친구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그에겐 이건 닭고기라고 알려줬다. 그는 숯불에 닭고기를 구워 소스를 발라 파는 걸 너무 신기해했다. 군침 삼키면서 구경하는 그를 위해 하나 사 줬다.

 “맛이 제법 알싸하군요. 맛있습니다. 마치 마라탕 국물을 부어 만든 닭요리 갔네요.”

 바다를 향해 둘이서 앉아 닭꼬치를 먹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만 사주긴 내 돈이 아까워서 나도 하나 사 먹었다.

 “맛있습니까?”

 “엄청 맛있습니다. 이런 뗀고기는 공화국에서 먹기 어렵지요.”

 “그건 맛있는 축도 아니에요. 그냥 간식이지.”

 “이 섬에는 고기가 넘치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가 보죠?”

 “여기는, 아니 사실 거기 조선만 빼고 맛있는 음식은 차고 넘칩니다. 조선만 먹을 게 있고 나머진 미제가 다 수탈했다는 건 거짓 세뇌 선동이에요. 돈만 있으면, 아니 조금만 일해도 맛있는 음식 배 터지도록 먹을 수 있소.”

 내가 말하자 그는 아무런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닭꼬치를 입에 넣었다. 이에 나도 딱히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았다. 이내 마지막 고기를 먹고 나자 그는 빈 꼬치를 바라보며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내 돈 아깝게 더 사줄 용의는 없다. 그걸 느낀 것인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꼬치를 쓰레기통에 버린 그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발부터 천천히 물에 담갔다. 행동하는 게 마치 바다에 난생처음 들어가는 듯한 사람 같았다. 그는 손으로 바닷물을 떠서 마셨다. 그리곤 짜다며 토해내고 입을 퉤퉤 거렸다.

 “투명해서 그냥 물인 줄 알았는데 바닷물은 같은 바닷물이군요.”

 그가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배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조선에서는 저런 기초적인 상식도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이내 바다에 뛰어들어 머리까지 온몸을 담갔다. 나는 순간 그가 입을 옷도 새로 준비하고 입었던 옷을 빨아야겠구나 하는 추가 업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핑계삼아 농땡이나 부리려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개헤엄을 치며 물장구를 쳤다.

 “수영할 줄 압니까?”

 내가 물어보자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확실히 모양새를 보니 그냥 개울가에서 어릴 때 물장구치는 수준이다. 그는 신난 듯, 계속해서 잠수했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도 시원하게 몸을 바다에 담갔다.

 

 그는 거의 소금에 몸이 절여질 때까지 바다에서 물장구를 쳤다. 나는 조금 지쳐 바다에서 나와 공용파라솔 아래서 쉬었는데, 그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물장구를 쳤다.

 그러다 그는 문득 옆에서 수영하는 젊은 외국인 커플과 마주쳤는데,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물장구 칠 기분이 아닌지 바다에서 나와 내가 앉아있는 파라솔로 와 앉았다.

 나는 그가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하는 거 같아 말없이 그냥 뒀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을 떠 바다 저 멀리 바라보았다. 나는 아까와는 달리 신나지 않고 우울한 표정의 그를 전환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조선에 있을 때 바다에 간 적이 없나요?”

 내가 질문하자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잠시 쉬었다가 내 말에 대답했다.

 “어릴 적 인천 앞바다를 지나친 적은 있죠. 이렇게 바다에 들어온 것은 난생처음입니다. 게다가 한강 물처럼 투명한 바닷물이라니. 너무 신기합니다.”

 “조선에는 해수욕장이 없나요?”

 “있죠. 하지만 해수욕장은 로동법에 근거하여 휴가계획서를 결재받은 로동자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그냥 들어와서 즐길 수는 없죠. 하지만 결재받았다고 해서 인민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는 인민은 없습니다. 바닷물이 너무 더러워 피부병에 걸리고 설사를 하는 이가 많아 이용하지 않습니다. 한강이 더 깨끗해서 한강에서 수영하는 게 나아요.”

 참 기가 막힌 나라다. 바다에 뭔 짓거리를 했으면 바닷물이 더러워 피부병에 걸리고 설사를 하는 이가 생길 지경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조선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세우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총통께서 과로사로 쓰러져 죽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혼자 생각하며 바닷물에 떠 있을 때, 그가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두고, 굳이 한반도에 나라를 세우려는 이유가 뭔가요? 저는 봄마다 황사가 하늘을 덮고, 바다는 온통 쓰레기와 오물 천지인 곳보단 하늘도 푸르고 물도 푸른 데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깨끗한 바닷물에서 수영할 수 있는 여기가 좋은데요.”

 “조선에서 자유화해서 온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내가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나를 응시했다.

 “나라 없는 서러움이 너무나 커서 그런 더러운 시궁창에서라도 나라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당신은 조선어를 쓰고, 그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도에 있어요. 하지만 당신과 비슷한 말을 하는 나의 국가는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가진 사모아 독립국 국적과 필리핀 국적은 그저 일하기 위한 국적입니다. 나와 같은 말을 쓰는 나의 조국이 아니에요. 이 서러움을 이제 끝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이군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점점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만든 나라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정보확인 결과 나왔다. 너도 봐.”

 그저께 비가 온 터라 최근 배치된 신입 인사담당관 교육 겸, 같이 복도 걸레질을 할 때 소대장님이 다가와 말했다. 그리곤 서류봉투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대로 신입 인사담당관을 데리고 직원휴게실- 우리가 내무실로 쓰는 곳으로 갔다.

 신입 인사담당관에게 자유화된 조선공화국 사람을 통제하는 절차에 대해 짧게 설명하며 서류봉투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서류를 모두 꺼냈다. 이 문서들은 우리 보라카이 지부 2소대의 역할인 ‘자유민 정보조사’의 결과 보고이다.

 2소대는 우리 1소대가 보호 및 감시 중인 자유화된 조선공화국 사람을 면담 및 심문한 뒤, 조선공화국 현지에 있는 기생수 요원들을 통해 얻은 해당 사람의 정보를 대조한다. 그리고 그의 증언과 그가 가져온 인민증이나 여권, 소지품들을 살펴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여 하나라도 틀린 정보가 있거나 모순된 정보가 있다면 받아들이지 않고 돌려보내거나 보안대 요원일 시에는 살해한 후 시체를 적절한 방법을 통해 없애버린다.

 다행히 301호에서 묵고 있는 손님은 정확히 일치하는 본인이다. 서대문인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공화국에서 의료계 2위라는 서울인민병원에 외과의로 일한 경력도 일치, 그가 가져온 외과 의학 논문도 실제 조선공화국에서 발표된 논문과 정확히 일치, 만삭인 아내가 병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사망한 것도 일치, 사건 직전에 친해진 외교국 출국심사관으로부터 우리 쪽에서 작성한 가이드 문서를 받은 것도 일치, 문서는 우리가 만든 문서임이 확인됐다.

 그가 가져온 20만 페소에 대해서는 딱히 문제 될 게 없어 그에게 되돌려줬다. 가지고 온 휴대폰은 실제로 돈 주고도 안 쓸 꾸진 조선산 피쳐폰임이 확인, 가지고 온 비디오테이프는 그의 증언에 따르면 굉장히 중요한 증거자료라고 하여 계속해서 진위여부를 확인중이라고 한다. 2소대는 그것을 디지털화하여 따로 복사했다. 내용을 보니 어떤 인민군 정치장교가 날씬한 여자 간호사를 세 번이나 강간하였으며, 강간이 끝난 후에는 담배로 인한 폭발로 인해 끝나는 영상이다. 나는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AV는 이런 장르인가 하고 혀를 끌끌 찼다.

 

 복도청소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카이 지부 3소대 대원들이 도착했다. 나는 신입 인사담당관을 데리고 3소대를 인솔해 301호 손님에게 갔다.

 보라카이 지부 3소대의 역할은 바로 재사회화이다. 죽만 먹다가 고기를 먹으면 배탈이 나듯, 폐쇄되고 억압된 사회의 조선공화국에서 벗어나 바로 자유를 만끽하면 탈이 난다. 그렇기에 하나부터 차근차근 자유시장과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하고, 기본적인 일상영어부터 시작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하나에서 열까지 교육한다고 하여 우리는 그곳을 하나원이라고 부른다. 물론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모른다. 보라카이 어딘가겠지.

 

 301호 손님과 3소대 대원들과의 면담은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우선 301호 손님은 엄연한 외과의 의사이므로 다른 자유화된 사람과는 다르다. 러시아말은 유창하고, 어느 정도 영어는 할 줄 알며, 무엇보다 현역 의사이므로 그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이에 3소대와는 본인의 거취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깊은 면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시간이 매우 귀찮고 따분해 신입 인사담당관을 두고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농땡이 부리고 있었다. 내 역할은 301호 손님과 같은 이들의 보호 및 감시지 그들의 장래희망을 듣고 조율 및 설계해주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지나서 면담은 종료됐다. 무슨 조율하고 설계할 일이 그리 많은지, 평균보다 4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단 하나원 들어간 뒤에 생각해보고 설계하지 벌써 김칫국을 그리 마시나 모르겠다.

 “그럼, 현 시간으로 저희가 인계받겠습니다.”

 3소대 행정관이 나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나는 인계서 동의란에 서명했다. 그리고 우리 1소대장님께 드려 소대장님 동의란에 서명할 수 있도록 했다. 서명을 모두 받은 3소대 행정관은 대원들과 함께 301호 손님을 데리고 밖의 차량에 탑승했다. 301호 손님은 출발하기 직전 차 창문을 열어 나에게 작은 봉투를 줬다.

 “고마웠소. 이건 지난번 뗀고기 값이요. 또 봅시다.”

 나는 봉투를 받아들고 나도 즐거웠다며 악수를 했다. 곧바로 차는 출발했고, 길에는 나와 신입 인사담당관만이 있었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무려 1천 페소가 들어있었다. 닭꼬치 그거 하나에 30페소밖에 안 하는데, 완전 땡 잡았다. 옆에 서 있던 신입 인사담당관이 맛있는 거 사 달라고 할 까봐 난 재빠르게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신입 인사담당관은 내 봉투에는 관심이 없었다. 멀어져가는 차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부르자 놀랜 것처럼 화들짝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얼굴이 살짝 빨개진 것이 보였다.

 “너 저 손님 좋아하냐?”

 내가 물어보자 신입 인사담당관은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잡아뗐다. 이거 똑똑하고 냉정하다고 사령부 작전관에게 들었는데 이제 보니 완전 사춘기 소녀다.

 “인사담당관 첫 번째 원칙. 절대 손님이랑 사랑에 빠지지 마라. 그러면 본질을 보지 못한다.”

 “아,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그래?”

 “의사라고 하셔서, 그냥 멋지다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그래, 멋지다고만 생각해라. 네가 젊은 남자 의사라고 푹 빠져서 서류를 제대로 못 본 모양인데, 저 양반 유부남이다.”

 내가 말하고 돌아서서 먼저 프리덤 호스텔로 향하자, 신입 인사담당관은 얼굴이 더 빨개져서는 따라오면서 중얼거렸다.

 “유, 유부남이면 멋지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까?”

 “응. 넌 멋지다고 생각한 수준이 아닐 테니까.”

 “선배님이 뭘 아신다고.”

 내가 돌아서서 신입 인사담당관을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힘 잔뜩 줬지만, 그저 귀엽기만 한 동그란 눈망울 옆에 난 솜털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네 표정만 봐도 다 압니다. 신병교육대 다시 가셔서 사춘기 떼고 오세요.”

 “무, 무슨 사춘기! 선배님 질투하시는 거죠?”

 “질투 같은 소리, 맞을래? 헛소리 말고 가서 바비큐장 청소나 해.”

 아무튼, 그렇게 우리 대한광복군 보라카이 지부 1소대의 업무는 다시 프리덤 호스텔 관리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301호 손님 그 양반은 사모아 독립국 국적을 따자마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서 대한광복군 군의관이 되어 적십자와 공동작전을 수행하는, 국경 없는 의사가 되었다. 군의관이 된 후 첫 진료로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선공화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밀항선 선장 페드로 로브레도의 여동생을 무상으로 진료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
 

 필리핀 보라카이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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