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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꿈결별리
작가 : 화산호
작품등록일 : 2020.9.13

신데렐라 보단 제인에어가 꿈이었던 흙수저 여대생.
기적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호텔 체인을 가진 자산가의 눈에 들어 결혼에 골인?
인줄 알았는데
아빠 결혼 절대 반대를 외치는 약혼자의 초딩 딸이 내린 저주로
다른 시공간으로 강제추방 당하다!
눈을 떠보니 사로국 공주 별리가 된 여대생.
공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잠시.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공주는 개뿔!
풍전등화 위험천만 볼모 생활 시작이었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재벌 사모님인데!
공주라 쓰고 볼모라 읽는 이 저주에서 무조건 벗어나야만 해!

 
7. 편지
작성일 : 20-09-30 22:28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7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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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님! 공주님!”

 뭐지? 누가 애니메이션 틀어놨어?

 별리는 아침부터 들리는 공주타령이 귀에 거슬렸다.

 “별리님! 일어나십시오. 이젠 늦잠까지 주무시는 겁니까?”

 을단의 목소리였다.

 별리는 벼락을 맞은 듯 벌떡 일어났다. 답답한 비단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대로 잠들었던 모양이다. 별리는 몇 시인가 싶어 습관적으로 벽을 둘러보다가 곧바로 멈추었다.

 시계라니. 지금 시계 찾았던 거야?

 애니메이션도 아니었고, 꿈도 아니었다.

 나는 별리가 되었지!

 기나긴 꿈같았던 어제 하루를 떠올리자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자기연민에 빠질 사치가 별리에게 허락 될 리 없었다.

 “얼른 일어나십시오. 언제까지 그리 흉한 몰골로 뭉그적거릴 생각이십니까?”

 시작됐다.

 별리는 을단을 올려다봤다.

 막말을 할 거면 존대를 말든지. 막말과 존대의 콜라보라니.

 “어디 불편 하십니까?”

 을단의 물음에 별리는 그대가 불편하고 불쾌하다 하면 어찌 될지 잠깐 상상해 보다 말았다.

 “아니.”

 “그럼 어서 준비하십시오. 해가 중천입니다. 오늘 자우공을 뵙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어디 씻고 다듬고 단장하는 건 싹 바로 되는 건줄 아십니까? 왜요? 또 깔끔하고 자연스러우면 충분하다는 허무맹랑한 말씀 하시려고요? 그런 높은 자신감은 칭찬 드리고 싶지만 현실을 아셔야 합니다.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지 말입니다. 공주님도 예외는 아니시고 말입니다.”

 뭐래?

 속사포 같이 쏟아내는 을단의 알아듣기 힘든 비난질을 별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늘도 목련꽃처럼 뽀얀 얼굴의 홍지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별리의 발에 신발을 신겨주었다.

 “고마워, 홍지야. 그런데 이제부터 신발은 내가 신을게.”

 다른 시중은 거의 다 괜찮지만 매번 신발을 신겨준다고 제 발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별리는 싫었다.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공주님?”

 별리의 말에 홍지의 하얀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항상 생글거려 늘 보이던 양 볼의 보조개가 사라졌다. 홍지는 별리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아담한 키에 약간 통통한 모습 때문에 나이보다 훨씬 어리고 귀여워보였다. 그런 홍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이 뭔가 큰 괴롭힘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별리는 빨리 설명을 했다.

 “그게 아니라, 음. 홍지는 내 손만 잡아주면 돼. 그러면 내가 요렇게 신발을 삭삭 빨리 신을 수 있잖아. 홍지가 허리를 숙였다 펴는 동안 내 손을 놓으니까 내가 불안해서.”

 “아! 죄송합니다. 공주님! 그래도 그것이.”

 홍지의 보조개는 여전히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옆에선 을단의 눈치만 살폈다.

 이런 것도 이 남자의 허락이 필요한 거야?

 별리도 을단을 봤다.

 반대하겠지?

 “공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거라.”

 우와! 웬일?

 홍지보다 별리가 더 놀랐다.

 예법이 블라블라, 기품이 블라블라 할 줄 알았더니.

 일장 연설 시작인줄 알았는데 의외의 짧은 허락이었다.

 “네,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을단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홍지의 보조개 다시 나타났다.

 “공주님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목욕물을 준비했습니다.”

 을단은 별리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못 본 척 하고 방에서 조용히 나갔다.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홍지! 나 궁금하게 있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기분이 좋아진 별리가 홍지에게 말했다.

 “뭐든 말씀하세요!”

 홍지는 별리의 머리를 감겨주며 말했다.

 “털팔이가 뭐야?”

 별리는 지난 밤 내내 가장 궁금했던 것을 홍지에게 물어보았다.

 

 기분 나빠!

 홍지의 설명을 들은 별리는 당장 실성공 그 인간에게 달려가 니가 날 아냐고 따지고 싶었다.

 털팔이는 별리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털 달린 파리가 아니라 덜렁이였다.

 살면서 침착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꼼꼼하고 차분하다는 칭찬만 들으며 자랐다고!

 못 생겼다는 말은 참아도 머리 나쁘단 말은 못 참는다. 그런데 이건 아예 사람을 얕잡아 보고 있단 뜻이었다.

 내친김에 별리는 홍지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이며 별리의 상황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홍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별리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뭐야! 마립간의 사생아? 이름뿐인 공주?

 홍지는 별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돌려서 표현했지만 별리의 귀엔 결국 다 똑같이 들렸다.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공주는 무슨.

 한 번 말문이 트이자 홍지는 묻지 않아도 혼자서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마립간께서 공주님을 로화 무녀님의 딸이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 전 정말 놀랐어요. 마립간께서 젊은 시절 로화 무녀님을 사랑하셨단 소문은 들었지만 진짜일 줄은 몰랐거든요.”

 홍지는 눈까지 반짝이며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제가 궁에 막 들어온 요만한 꼬맹이였을 때 천관에 심부름 갔다가 멀리서 딱 한 번 로화 무녀님을 본 적 있었어요. 흑단 같은 머리카락과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이 별리님과 진짜 비슷했어요. 특히 그 분위기요. 온화하고 상냥한 점이 똑같으세요.”

 별리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것인지 홍지는 로화라는 사람을 추켜세웠다.

 “마립간께서 비 마마와 혼인하시고 1년도 안 되서 로화 무녀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는 사로국 전체가 물에 잠길 정도로 비가 많이 왔었어요. 사로국 제일 무녀의 죽음에 하늘도 슬퍼하는 거라고 사람들이 그랬었던 기억이 나요.”

 아름다운 무녀와 마립간의 사랑이 홍지는 퍽 아름답고 애달픈 듯 했다. 하지만 별리에겐 그저 원래 세상에서 흔히 보던 막장 드라마의 뻔한 소재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진짜 별리라는 여자도 사연 많은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언뜻 들은 게 이정도면 실제 견적은 장난 아니겠는데?

 숨겨진 사생아로 산다는 것이 절대 만만치 않았을 테니 말이다.

 별리는 짧은 한숨을 쉬며 씁쓸한 기분을 삭였다. 이어지는 홍지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랬다.

 그러니까 사로국은 매우 작고 약한 나라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왜구의 침략이 심해져서 나라가 엉망이 되었던 모양이다. 마립간은 고구려 태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태왕은 무슨 꿍꿍이인지 군대를 보내 왜구를 물리쳐준 모양이었다.

 “태왕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왜구들 손에 다 죽었을 거예요.”

 홍지는 쇠뇌당한 듯 말했다.

 사로국은 고구려와의 관계를 튼튼히 해야만 했나 보다.

 마립간은 갑자기 이찬의 양녀 별리를 마립간의 친딸이라 선포하고 급히 공주로 봉하였다. 그리곤 고구려에 보낼 사신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마립간이 자신의 딸을 사신단에 넣었으니 다른 왕족과 귀족들도 자식들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말만 사신이지 누가 봐도 고구려에 보내질 볼모였지만 마립간과 귀족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약소한 나라의 안위를 위해 태왕에게 확실한 뭔가를 보여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고구려가 아니라 후연에 있는 거지? 뭐가 이렇게 복잡해?

 목욕을 마치고 혼자 남은 별리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관두자!

 진짜 별리의 출신과 관련된 사연도 맘에 걸렸고, 을단, 소달, 하간왕까지 그 등살을 견디는 것도 만만찮을 것 같았다.

 남의 인생이라고 쉽게 봤다가 아주 큰 일 날 뻔했어. 이 정도면 공주체험으로 차고 넘친다.

 오늘밤 실행하자!

 

 “별리가 뭘 물어 봤다고?”

 소달은 마시던 차가 목에 걸려 기침이 나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

 “홍지에게 털팔이가 뭔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털팔이?”

 을단의 말에 의아해 하던 건무는 얼른 소달을 쳐다봤다.

 소달은 모른 척 다시 차를 홀짝였다.

 “그래서 홍지가 뭐라고 했데?”

 건무가 소달 대신 물었다.

 “뭐라고 하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고 하죠.”

 “별리는? 별리는 뭐랬데?”

 “다행이라고. 털 달린 파리인 줄 알았다고 하셨답니다. 열병을 앓으신 이후 공주님의 말투도 이상해지시고 이상한 질문도 많아지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됐고!”

 소달은 태연한 척 말을 돌렸다.

 “목의 상처는 어떻던가?”

 “붓지는 않으셨지만 살짝 멍이 드셨습니다. 분칠을 하면 티가 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파하진 않더냐고 묻고 싶었다. 그냥 물으면 되는데 소달은 뭔가 어색했다.

 “아프진 않데?”

 건무가 대신 물어봐 주었다.

 “그건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뭐?”

 을단의 대답에 건무가 되물었다.

 “아프시겠죠. 목이 졸린 흔적이었습니다. 그럼 아픕니다. 당연한 것이기에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소달은 자기가 별리의 목을 조른 것도 아닌데 을단의 말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 여인을 데려오고 계속 그랬다. 뭐든 다 자신의 잘못 같았다. 그래서 신경이 바짝 날카로워지고 여인을 보면 초조하고 그리고 화가 났다. 그래서 오늘은 별리를 보러 가지 않았는데 안 보니깐 안절부절 하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 물을 먹다가 체한 것처럼 명치가 답답하고 호흡이 힘겨웠다.

 천벌을 받았나 보군.

 소달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사실 드리고자 했던 이야기는 털팔이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을단은 비단보자기로 싼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이게 뭔가?”

 건무가 상자를 들어보았다.

 “하간왕께서 별리님께 보내신 겁니다.”

 “무엇인데?”

 하간왕이란 말에 소달의 인상이 구겨졌다.

 을단은 상자를 풀어 소달과 건무에게 보였다. 약이 든 상자와 비단에 장신구가 가득했다. 여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어찌 할까요?”

 “어쩌긴 별리에게 주고 결정하게 해. 별리에게 온 것이니.”

 소달이 차갑게 대답했다.

 선물을 받은 여인은 웃을까?

 “그 봉투는 뭐야?”

 건무가 약이 든 상자 위에 놓인 하얀 봉투를 가리켰다.

 “연서겠지요.”

 “봤어?”

 건무의 물음에 을단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남의 서신을 훔쳐보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그런가?”

 건무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저의 책무를 생각하면 봐야만 했습니다.”

 을단의 말에 소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급하게 편지의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 보고나서 마지막으로 별리의 손에 하간왕의 선물이 도착했다.

 별리는 장신구와 비단을 구경했다. 국립 박물관 특별전 느낌이 물씬 나는 장신구들이었다. 직접 착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닌 전시하는 용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운 색상의 비단을 보니 결혼식 때 입을 예복을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골랐던 옷감들이 생각났다.

 결혼식. 별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폭 나왔다.

 가봉한 드레스가 잘 나왔는지 입어보러 가는 날이 오늘쯤 일 것 같았다.

 아깝다. 그 드레스 예뻤는데.

 또다시 한 숨.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돌려보낼까요?”

 어두워진 표정으로 연거푸 한 숨을 쉬는 별리를 보며 을단이 물었다.

 “아니. 맘에 들어. 하간왕께 감사의 말씀 전해 주세요. 그리고 이 장신구와 비단은 을단이 알아서 잘 보관해 줘요.”

 별리의 말에 을단은 홍지에게 상자를 치우게 했다.

 “아! 그 약 상자는 두고 가줘.”

 하간왕이 보낸 이 많은 선물들 중 그나마 별리에게 쓸모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낸 상처에 자기가 약을 줬다. 특이한 사람이다. 이곳은 정상적인 남자가 몇 안 되나 보다. 외모는 모두 정상보다 뛰어난데 그에 비례해 성격도 정상인 수준을 웃돌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서신도 있습니다.”

 을단이 조금 구겨진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편지?

 별리는 하간왕의 편지를 을단 앞에서 읽는 것이 괜히 불안해서 배시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 나중에 읽어 볼게요. 약 상자랑 같이 둬요.”

 그러자 을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우공께서 오늘은 태자궁에 가셨다 늦게 오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식사는 내일로 미루자고 하셨으니 편히 쉬십시오.”

 오예!

 별리는 을단이 나가자 하간왕이 보낸 선물 중 약 상자와 금반지 하나를 챙겼다. 이 정도는 자신이 가져가도 저들에게 큰 피해를 주진 않을 것 같았다. 떠나려고 마음먹자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다. 홍지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하나도 남김없이 싹 먹어치우고 조용히 어둠이 내려앉기만을 기다렸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별리는 살짝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낮 동안 봐둔 저택의 꼬불꼬불한 길들을 소리 죽여 걸어갔다. 여종들이 다니는 뒷문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공기도 맑고 바람도 시원했다. 도망가기 딱 좋은 날이란 생각에 별리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때 별리 앞에 날렵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건무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가 별리에게 다가왔다. 건무와 비슷한 검은색 옷차림이었지만 긴 칼을 두 개나 차고 있는 것이 달랐다.

 “공주, 또 밤 산책을 나온 것이오?”

 별리는 남자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남자는 별리를 아는 것 같았다.

 망했다. 야반도주 실패야?

 별리는 어깨에 메고 있던 작은 보따리가 눈에 띠지 않았길 빌며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내 집이 안전하다곤 하나 너무 늦은 시간에 공주 혼자 다니는 것은 좋지 않소.”

 오! 집 주인이시구나! 그 태자의 양자라던, 자우공!

 별리는 답답함이 풀려 환하게 웃었다.

 “보시오. 이렇게 환하게 웃으면 위험하단 말이오!”

 자우공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다정해 보였다.

 “갑시다. 공주의 아리따운 미소에 대한 답례로 방까지 호위하겠소.”

 뭐지? 별리 이 여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라는 건물주와도 썸 타고 있었나?

 그러다 별리는 하간왕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양다리를 시도하기엔 그 남자가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별리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내며 앞서 걷는 자우공의 뒤를 쫓아갔다.

 듬직한 어깨와 자상한 말투. 자우공에게서는 연상의 남자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졌다. 이 이상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고 나서 줄곧 차갑고 무례한 소달이나 을단, 하간왕에게 시달리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어른스러운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별리는 자우공을 보며 약혼자 선우를 떠올렸다.

 선우 씨, 보고 싶다. 갑자기 신부가 사라져서 난리 났겠지?

 날 찾고 있을까? 내가 도망간 줄 알까?

 별리는 답답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때 자우공이 조용히 별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하얀 뭔가를 품에서 꺼내 별리의 작은 손에 쥐어주었다.

 응?

 손수건인가 했는데 감촉이 종이였다.

 뭐지? 편지? 오늘 편지 받는 날인가?

 별리의 손에 작은 서찰 하나를 쥐어준 자우공은 별리의 곁을 지나며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태왕께서 보내셨소. 보고 태우시오.”

 태왕?

 별리는 홍지가 말했던 고구려 태왕이란 말이 생각나 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리고 공주, 신중히 생각하시오.”

 자우공은 별리가 뒤에 숨겨 들고 있던 보따리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며칠 전엔 열병 치료라는 핑계로 그냥 넘어갔지만 내 집 담을 이리 계속 벗어나려 한다면 나로서는 손님 접대 방법을 달리 할 수밖에 없소.”

 아까의 사람 좋아 보이던 집 주인 아저씨는 사라져 버리고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이는 칼을 찬 남자만 별리 앞에 서 있었다.

 “아! 이건 홍지에게 줄 빨랫감이에요! 산책삼아 가져다주려고 나왔다가 제가 그만 실수로 저택을 헤매게 돼서.”

 혀를 깨물고 싶은 만큼 멍청한 변명이었지만 별리는 최대한 순진한 척 생긋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자우공은 묵직한 경고만 남겼다.

 “공주. 태왕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겠다고 한 이상! 실수는 한 번도 많은 법이오.”

 태왕의 눈과 귀? 손과 발?

 별리는 어색하게 굳어지는 표정을 숨기며 그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얼른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자우공이 뒤쫓아 들어와 당장이라도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은 느낌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별리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어보았다. 다행히 편지는 별리가 아는 한자들로 적혀있었다.

 <유감. 친밀 관계 유지. 명령 대기.>

 뭐야? 뭐가 유감인데? 누구랑 친밀하게 지내란 말이냐고?

 제길! 별리 이 여자! 볼모 주제에 첩자 노릇까지 하고 있었던 거야?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속이 울렁거렸다.

 별리는 진짜 별리가 어째서 사라져 버렸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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