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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진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작가 : 화산호
작품등록일 : 2020.9.11

“나랑 사귀자!”
진심 1도 없는 고백이란 걸 알지만
커플이 되어 살아남아 우승해야만 끝이 나는 유튜브 인기 방송,
<리얼 청춘 낭만 서바이벌 쇼: 하이틴 스캔들>에 출연하게 된 12명의 고등학생들.
서로의 정체를 살피며 아슬아슬한 연애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한다.

뭔가 유치한 프로그램에 쭈뼛쭈뼛 참가하게 된 권재하!
최대한 존재감 없이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첫 번째 탈락자가 되는 것이 원래 목표였다.
그런데!
왜 나보고 웃어 자꾸!
왜 삼겹살 그거 내 밥에 올려주고 난리야!
분명히 날 좋아하는 게 아니란 걸 아는데
이러면 탈락하기 싫어지잖아.
점점 살아남고 싶어진다고!
다음 라운드에서도 너를 계속 보려면
다른 애한테 고백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진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 애에게 그러면 나는 완전 양아치잖아.

 
20. 카드에 하트는 단 하나였다.
작성일 : 20-09-30 22:11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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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 오후 4시 35분.

 재하는 텅 빈 교실에 앉아 스마트워치를 찼다.

 하이틴 스캔들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재하의 손에는 카드 한 장과 붉은 매듭팔찌가 있었다.

 화요일 오후5시 47분. 후관 5층 뮤지컬 동아리방 앞 복도.

 복잡할 것이 없었다. 그냥 카드에 적힌 시간과 장소에 가서 나타나는 사람한테 팔찌를 주면 끝이다.

 하지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오후 5시에 여기 장미정원에 있을 거야.’

 김산.

 김산의 이름이 떠오르자 재하의 손은 저절로 이마로 올라갔다.

 재하는 스스로의 행동에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내렸다.

 어제 이후 계속 이런 행동을 반복했더니 김산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화끈화끈했다.

 으악! 입술이라니!

 재하는 그 단어를 생각했단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혼자 부르르 떨었다.

 부드럽고 따뜻했었다.

 안 돼! 리플레이 하지 마!

 재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시로 머릿속엔 심장이 멎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평소와는 다르게 빛났던 김산의 눈빛과 재하의 얼굴에 닿았던 그 숨결이 너무 생생했다.

 그 순간이 떠오를 때 마다 심장이 둥둥둥 울리며 존재감을 뽐냈다.

 미치겠네.

 재하는 5시에 장미정원에 가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무서웠다.

 사귀는 건가?

 말도 안 돼!

 나랑 김산이?

 아니면 혹시 방송인거야? 송PD가 시킨 거야?

 만약에 송PD의 계획으로 재하 몰래 진행 된 촬영의 일부라면 보는 사람들은 재밌을 것 같긴 했다. 재하의 정신은 산산조각 나겠지만 말이다.

 재하는 점점 머리가 도는 것 같았다.

 진심인지 아닌지,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할수록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고 이상하기만 했다.

 재하는 자기가 그렇게 느끼고 싶고, 보고 싶으니까 김산의 말과 행동이 전부 핑크빛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다 우서진은 왜?

 ‘오후 5시 30분. 야외음악당!’

 무섭게 으르렁 거리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재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서진이 날 좋아한다고?

 헐!

 김산이랑 우서진 둘 다 나를?

 재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방송을 위한 대본이 아니고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히든 미션인가?

 엄청난 유혹을 던져주고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원래의 미션을 제대로 해내는지 확인하는 뭐 그런 건가 싶었다.

 재하는 손에 쥔 카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에이스 오브 하트.

 재하의 카드에 하트는 단 하나였다.

 오후 4시 45분.

 재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장미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산은 어제 앉았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꽤 눈부셨다. 눈을 꼭 감아도 햇빛 때문에 눈 안이 주황색으로 가득 찼다.

 초조한 기분에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오후 4시 50분.

 이상하게 아무리 깊이 숨을 들이마셔도 계속 숨이 차는 느낌이 들었다.

 김산은 주먹으로 가슴 한복판을 툭툭 쳐보았다. 무대에 들어가기 직전의 기분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자 김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긴장이라니.

 스스로가 재밌고 신기했다.

 

 타박타박타박.

 

 멀리서 급하게 걸어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김산은 어깨가 찌릿찌릿했다.

 “재하야!”

 김산은 벌떡 일어났다.

 동그랗게 말아 올린 까만 머리가 보였다.

 동그란 안경도 보였다.

 하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새로웠다. 헐렁한 크림색 반팔 블라우스에 걸을 때마다 무릎 위에서 살랑거리는 붉은색 체크무늬 치마가 시원해 보였다.

 자신을 향해 총총총 다가오는 재하를 뛰어가서 덥썩 안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김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약간 숨이 찬지 재하는 숨을 몰아쉬었다.

 천천히 재하의 얼굴을 살펴보던 김산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재하의 하얀 이마에 딱 그 부분만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재하는 김산이 이마를 보자 반사적으로 손을 올리려다 멈칫했다.

 갈 곳을 잃은 재하의 손을 김산이 슬쩍 잡으며 말했다.

 “왔네?”

 재하는 미소 가득한 김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응! 혹시 기다릴까봐.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아서.”

 김산은 두 눈에 힘을 꽉 주고 말을 하는 재하가 귀여웠다.

 이마도 눈도 오만가지 생각을 한 흔적이 보였다. 최소한 재하의 마음을 흔들기는 했다는 생각에 김산은 빙긋 웃었다.

 “계속 기다렸을 거야!”

 김산의 말에 재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은 듯 얼른 다른 말을 했다.

 “너는 여기가 미션 장소야?”

 “미션?”

 “카드에 적힌 거 말야.”

 재하의 말을 알아들은 김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카드에 적힌 거 말하면 안 되잖아. 룰은 지켜야지.”

 “아!”

 재하가 당황하는 눈치를 보이자 김산은 방송과는 상관없이 만나고 싶었다고 제대로 이야기하려고 입을 열었다.

 “재하야, 내가 오늘 여기 있겠다고 한 건.”

 “어! 산아!”

 김산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자기를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하도 김산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엄청 예쁜 여학생이 김산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선배!”

 김산이 여학생을 알아보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재하는 선배라는 여학생을 알아보기 무섭게 얼른 자신의 손을 놓아버린 김산을 살짝 올려다보며 두 손을 등 뒤로 숨겼다.

 “너무한 거 아냐? 내가 연락 안하면 그냥 그걸로 끝?”

 서운한 표정의 여자 선배는 재하를 흘긋 보며 말했다.

 “얘 때문이야?”

 재하는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게 아니라 시험 때문에 바빴어요. 그리고 그거 시작 했어요.”

 김산이 차분하게 설명하자 여자 선배는 뭔가 기억난 듯 얼굴이 밝아졌다.

 “맞다! 너 하이틴 스캔들 출연한다고 했지?”

 “지원 선배!”

 김산이 이름을 부르자 여자 선배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 미안! 비밀! 알고 있어. 어차피 까먹고 있었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며 지원 선배는 김산의 팔에 살짝 매달렸다.

 김산은 괜찮다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럼 김산! 난 가볼게. 약속이 있어.”

 재하는 슬그머니 또 한 걸음 멀어지며 말했다.

 “아니야! 산이랑 얘기 하고 있었잖아. 나 때문에 그냥 가지마.”

 김산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지원 선배가 먼저 활짝 웃으며 재하를 붙잡았다.

 “아니에요. 정말 약속이 있어요.”

 재하도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오고 나서 그렇게 가버리면 그 말을 누가 믿니? 나만 곤란하잖아.”

 “아!”

 “권재하!”

 큰 목소리.

 “쟤 우서진 아니야? 쟤도 거기 나오는 거야?”

 지원 선배가 김산에게 호들갑을 떨자 재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우서진을 봤다.

 “다행이다! 늦은 줄 알고 엄청 뛰어 왔어. 정은성 그 자식 따돌린다고.”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괜찮아. 나도 지금 가려는 길이었어.”

 재하는 진짜 약속이 있으니 가보겠다는 얼굴로 지원 선배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김산에게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산은 우서진을 보았다.

 우서진은 성큼성큼 걸어와서 재하 옆에 서더니 재하와 나란히 걸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짜증나네.”

 평소완 다른 김산의 낯설 말투에 놀란 지원 선배는 김산의 얼굴을 보고 더 놀라고 말았다. 늘 봐왔던 김산의 미소가 지금은 너무나 차갑고 무서워보였기 때문이다.

 

 야외음악당까지 걸어가며 재하는 계속 이마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우서진이 재하의 왼손을 탁 잡았다.

 “니 이마가 까지든지 아니면 니 팔이 빠지든지 하기 전에 일단 내가 어지러워 죽겠어!”

 재하가 놀란 눈으로 우서진을 올려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우서진의 손에서 손을 빼려고 하자 우서진이 놓아주지 않았다.

 “안 돼! 놓으면 또 그럴려고? 보는 사람 어지러워 죽는다고!”

 “안 그럴게. 정말이야.”

 재하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우서진은 못 이기는 척 손을 놓았다.

 “아까 김산이랑 있던 선배는 누구야?”

 “선밴지 어떻게 알았어?”

 재하가 신기한 듯 묻자 우서진이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명찰! 하얀색이던데?”

 “아!”

 재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답했다.

 “여친 아닐까?”

 “뭐? 3학년이랑? 확실해?”

 우서진이 지나치게 놀라워하자 재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카드에 적힌 거 말하면 안 되잖아. 룰은 지켜야지.’

 미션 하나도 말 안하면서 그 선배한테는 하이틴 스캔들 촬영까지 이야기 한 걸 보면 여자 친구가 맞는 것 같았다.

 “뭐, 예쁘긴 하더라. 잘 어울리고.”

 너무 격한 반응을 한 것이 민망했는지 우서진이 이번엔 웅얼거리며 말했다.

 재하는 우서진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 예뻤다. 살짝 헝클어뜨린 긴 갈색 머리가 이상하게 세련돼 보였다. 고양이 같은 눈과 날렵한 콧날, 뭔가 뾰로통해 보이는 도톰한 입술까지 화려하고 당당해 보였다.

 김희윤과도 잘 어울렸지만 그 선배와도 잘 어울렸다.

 “응! 엄청! 그 정도는 돼야 옆에 섰을 때 그림이 되나 봐.”

 재하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우서진은 재하를 지그시 쳐다봤다.

 “왜?”

 재하는 좀 민망해서 어색하게 눈길을 피했다.

 “근데 난 그 선배 별로던데.”

 갑자기?

 “뭔 소리야? 예쁘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무슨 별로?”

 재하가 장난을 쳐도 우서진은 웃지 않았다.

 “나는 니가 더 낫던데?”

 “위로야? 이제 화 풀렸나 보네?”

 재하가 웃어넘기려 하자 우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는 안 풀렸어. 풀릴 화는 아니야.”

 우서진의 말에 재하의 표정이 단숨에 흐려졌다.

 “근데 너한테 화내고 싶지는 않아.”

 우서진은 재하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든 일단은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웃게 하려고.”

 그리고 우서진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빨간색 팔찌를 꺼내서 재하에게 끼워주었다.

 “니 이마에 계속 여드름 나게 할 거 같으니까 지금 미리 사과할게!”

 우서진이 민망한듯 말하며 재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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