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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23.결점과 결심
작성일 : 16-10-26 18:46     조회 : 507     추천 : 0     분량 : 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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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요새 밖으로 나와 큰 바위 위에 걸터앉은 이도는 바다 멀리 제국의 전열함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국이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독립파 쪽에 붙은 식민지의 13개 주가 독립을 천명했다. 대부분 남부의 주였다. 제국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건 렐리아나 항구가 속한 주마저 넘어갔다는 것이다. 렐리아나 항구는 당국의 앞마당이자 식민지 남부와 북부 간 교역의 중간거점이다. 당연히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제국은 전력을 다해 렐리아나 항구를 차지할 계획이다. 독립파는 순순히 내어주지 않을테고. 아마 해상전이 벌어질 것이다.

 

  “또 전쟁.”

 

  이도는 한숨을 쉬며 작은 돌 하나를 바다 위로 던졌다. 퐁당 하고 떨어졌다. 전쟁, 또 전쟁. 지긋지긋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중 얼마나 불타서 죽을까?

  희아.

 

  이도는 눈을 찡그렸다. 비릿한 담즙이 새어나왔다.

  “대장?”

 

  이도는 항구요새가 자리한 곶 아래쪽 바닷가에 서 있는 돌격대장을 봤다. 뭐 하고 있는지 잘 안 보인다. 저곳은 바위가 삐죽삐죽 나온 곳이라 위험할 텐데.

 

  이도는 뒤를 돌아봤다. 제국병 몇 명이 그를 감시하고 있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보호이다. 드레이크 총독은 이도가 아예 항구요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철통감시(이크, 보호다)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도가 생각하기엔, 총독이 자기가 돌발행동을 못 하도록 막는 것 같았다.

 

  “잠시 내려가 봐도 되겠습니까?”

 

  답이 없다. 이도는 어깨를 으쓱하고 돌격대장이 있는 곳을 향해 내려갔다. 제국병들은 알아서 따라왔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건 물론이다. 이도는 바다벌레가 살랑살랑 기어 다니는 바위를 손으로 잡으며 나아갔다. 어느 정도 평평한 곳이 나오자 돌격대장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대장의 얼굴을 본 이도는 놀랐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우수 어린 표정이다. 쓸쓸한 눈빛. 이도는 그 모습에 압도되어 잠시 멈춰 섰다.

  “대장, 뭐 하고 계세요?”

 

  이도는 그의 옆으로 갔다. 대장은 함을 하나 들고 있었다. 대장은 함 안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집었다. 회색 가루였다. 대장은 그것을 바다에 뿌리고 있었다.

  “그거, 혹시 죽은 선원들을 화장하고 남은 건가요?”

 

  이제야 이도를 알아본 대장은 씩 웃었다. 얼굴의 상처가 일그러졌다.

  “그래. 화장해서 나온 유골가루야.”

  “양이 엄청나네요.”

 

  “이미 예전에 죽은 놈들, 최근에 죽은 놈들을 뭍에 있을 때 한 번에 화장하고 이렇게 뿌려주거든.”

  이도는 바다 위에 뿌려진 유골가루가 스며들어가는 걸 바라보았다.

  “항상 대장이 이렇게 뿌려주나요?”

  “그래.”

 

  “힘들겠어요.”

  “그냥 밀가루 뿌린다고 생각하면 편해.”

  대장은 한숨을 쉬며 마지막 유골가루를 뿌렸다.

  “항상 저 요새에 갇혀있냐?”

 

  “총독은 절 아끼죠.”

  “눈물 나는 사랑이로구만.”

  “뭐라도 하고 싶은데, 이래서야 뭘 할 수가 없네요.”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네.”

  “그럼 왜 안 하지?”

  이도는 눈짓으로 이도의 뒤를 따라온 제국병을 가리켰다.

 

  대장은 피식 웃었다.

  “저건 아무것도 아냐. 감시? 우리가 도울 수 있어. 넌 할 수 없는 게 아냐. 진짜 문제는 뭐지, 신참?”

  진짜 문제. 이도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건-.”

  “대자님!”

 

  제국병이 이도 옆으로 왔다.

  “밖으로 나오시면 위험하십니다. 들어가시죠. 총독님의 명령입니다.”

  “잠시 바람 좀 쐬는 것도 안 됩니까?”

 

  “위험하십니다.”

  아리아의 목소리.

  “그거 참 충성스럽군.”

 

  갑자기 뒤에서 아리아가 나타났다.

  “어차피 중요할 때 술 마시고 나자빠지는 것들이 뭔 도움이 되겠어? 차라리 내 선원들이 더 좋지. 그리고 내 선원들은 항상 이도를 지키고 있어.”

 

  아리아는 뒤를 가리켰다. 언덕 위에서 아리아의 선원들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리아는 제국병을 향해 윙크했다.

  “너는 그 날 취해서 쓰러졌던 거야? 아니면 꾀병?”

 

 경비병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갔다.

  “잠시만입니다.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제국병들은 물러났다. 이제 그곳에는 이도, 아리아, 돌격대장만이 남아있다.

 

  이도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 아리아.”

  “뭘. 나도 안에만 있기 답답했거든.”

  아리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이도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구나?”

  이도는 딴 소리를 했다.

 

  “총독이 정보원을 통해 얻은 정보를 알려줬어. 독립파 총사령관은 나가리 당했나봐. 지금은 아예 그 무역협회장이 독립파 총사령관을 겸하고 있다더라고. 그래서 오늘 일어날 렐리아나 부근 해상전투에서 협회장이 대장선을 타고 나올 거라 예상하더라.”

  “그래서? 너는 뭘 꾸미는 건데?”

 

  이도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해봤자, 어차피 더 나빠지기만 할 뿐이야.”

 

  “에이, 그러지 말고.”

  “지금까지 쭉 그랬어. 난 무능하고, 세상은 항상 내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가지. 봐봐. 또 전쟁이야.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난 돌아갈 수도 없고. 이러다가 지기라도 하면 끝장이지.”

  이도는 한숨을 쉬었다.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인가.

 

  어쩌면 아예 선택하지 않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이제야 인정하게 됐어. 난 영웅자격도 없다는 걸.”

  “자신을 가져봐.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도 안 돼.”

  “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너는 이미......”

 

  더 말하려다가 이도는 멈췄다.

  “아리아, 너도 소니아한테 들었을 거야. 저놈들은 내가 죽는 걸 원해. 웃기지 않아? 내가 왜 그딴 이유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

  “아니, 확실해. 그런 느낌이 들어.”

  이도는 쓸쓸한 눈빛을 했다. 아리아는 마음이 아팠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대장은 둘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도는 혀를 찼다.

 

  “애초에 내가 설 자리 따위는 없었던 거야.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애송이는.”

 

  “이도.”

  아리아는 이도의 손을 꽉 쥐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은 뭔가 묘책을 생각해낸 거지? 이 전쟁을 끝날 만한 비장의 한 수를. 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지금까지 일이 잘 안 풀려서 안 좋은 예감만 드는 거야. 이도. 그냥 말해버려. 무슨 꿍꿍이인데?”

 

  이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아리아는 끈질기게 재촉했다. 아리아는 이도가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결국 이도는 아리아의 공세에 항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둔 아이디어를 말했다.

  다 듣고 나서 아리아는 손바닥을 짝 쳤다.

 

  “뭐야, 완전 괜찮은데! 그때 이걸 말하지 그랬어?”

  “그 때는 생각이 안 났어. 바보 같게도.”

 

  “그래도 난 정말 생각도 못했어. 그럼 당장 이걸 활용해야지, 왜 꾸물대는 거야?”

  이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려면 협회장과 협상 자리를 다시 가져야해. 하지만 지금 총독이 날 철통같이 지키고 있지. 절대 허락해주지 않을 거야. 아무리 내가 대자라고 해도 여기선 그가 왕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네가 말한 그걸로 전쟁을 끝낼 수 있어. 무익하게 싸울 필요가 없다고. 그럼 총독도 좋아하지 않겠어? 총독한테 말해 봐봐.”

  “총독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는 공적에 집착해. 그런데 내가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낸다? 그가 반길 리가 없어. 그러면 공적은 전부 내 것이 되고 말텐데? 차라리 스스로 전쟁에서 이기고 말지. 안 그래?”

  아리아는 머리를 긁었다.

 

  “그러면 총독이 네 아이디어를 이용해 대신 협상하면 되잖아?”

  “그는 의심이 많아. 내가 황제에게 그 아이디어가 내 것이라고 말하면? 그러면 또 공적은 내 것이 되겠지. 설령 내가 총독에게 공적을 돌리겠다고 말해도, 그가 믿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총독은 이제 털끝만큼도 적을 믿지 않아. 협상 자리를 만들면 무조건 나를 암살할 거라고 생각할 게 분명해. 대자가 암살당하면 총독의 목도 황제에 의해 날아갈 수 있지. 결국 그에게 있어 최선의 방책은 날 이 요새에 묶어두는 거야.”

 

  이도는 침을 삼키며 잠시 쉬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도 두려워. 협상 자리에서 죽을까봐. 놈들은 무조건적으로 내 죽음을 원하고 있어. 그러면 협상이든 뭐든 다 무슨 소용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솔직히 저번 협상 자리에서 내가 살았던 것도 기적이지. 물론 그 쪽은 내가 오는지도 몰랐고, 다들 대비를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젠장! 난 아직 놈들의 진짜 목적도 몰라.”

 

  아리아는 말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이도는 또 한숨을 쉬었다.

 

  “난 이제 지쳤어.”

  아리아는 그 말을 듣고 움찔하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바다 위에서는 악천후를 만날 때가 많아. 난 아직도 그 때가 기억나. 내가 해적 밀수꾼 노릇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악천후를 만났거든. 말 그대로 바다가 위로 솟아오르고 하늘이 밑으로 떨어지는 듯했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뭘 해야 할지 몰랐어. 포기하고 싶었지. 나도 모르게 울면서 이제 끝났나 보다 했어. 그런데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 선원이 내 뺨을 때리고는 이렇게 외쳤어. 당장 키를 잡고 배를 이끌라고. 그러나 나는 방법도 모르고 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왔지. 그래서 못 하겠다고 했어. 그러자 이렇게 말하더라고. 악천후를 돌파해나가지 않으면, 악천후가 널 부숴버릴 뿐이라고.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 악천후가 날 부숴버리기 전에 돌파해야 한다. 그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키를 잡고 그때그때의 감에 따라 배를 조종해나갔지. 그러다보니까 어느새 돌파했어. 해보니까 이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아리아는 이도를 보며 씩 웃었다.

  “개자식, 별 것도 아닌 게.”

 

  이도는 멍하니 있다가 풉, 하고 웃었다.

 

  아리아는 말을 이었다.

  “이도. 네가 살던 곳은 어떤 세상인지 나는 몰라. 하지만 너와 내가 지금 속한 이 세상은 거짓되고 잔혹한 세상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이 세상을 돌파해 나가야돼. 안 그러면 이 세상이 널 찢어발길 뿐이야.”

 

  이도는 아리아를 바라봤다. 확신에 찬 눈이다. 나도 저런 눈을 할 수 있을까. 이번 난관을 돌파하면 내가 바뀔 수 있을까. 나를 이 세상에 증명할 수 있을까. 돌파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가 걸려 내가 앞으로 못 나가게 막는다.

 

  희아. 불. 더 나은 선택.

  꿈속에서 희아가 했던 말.

  ‘태자님은 대학살도 저지를 수 있어요. 왜냐하면 대자님은 상냥하니까.’

 

  난 그런 놈이 아니야!

  아리아는 계속 말했다.

 

  “이도, 그리고 그 얘기 말이야. 놈들이 널 죽이려 한다는 거. 네가 신에 의해 선택받았다고? 그럼 반대로 생각해봐! 네가 정말로 신에 의해 선택받았다면 이정도 위기에 네가 죽을 리가 있겠어? 제국의 신은 실제로 제국을 위기에서 구해냈어. 그리고 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제국을 흔드는 위기에서 구해낼 재목으로 네가 선택받은 거야. 그런 중요한 자를 신이 죽게 내버려 두겠어?”

 

  일리 있는 말이다. 비록 이도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신이라면 실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권능을 직접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내가 협상을 하고자 한다 해도, 문제는 그 다음이야. 협상 자리를 어떻게 가질 건데? 총독이 날 도와줄 리는 없으니, 혼자서 해야 돼. 그리고 혼자선 할 수가 없지.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왜 네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게냐? 애송이.”

  갑자기 뒤에서 소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소니아가 팔짱을 끼고 음흉한 미소룰 짓고 있다.

  “그림 좋아서 몰래 듣고 있었건만, 사랑 얘기는 없고 심각한 얘기뿐이네? 이런 되먹지 못한 것들! 푸하하!”

 

  소니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메이도 슈리도 루카도 있었다. 돌격대장은 이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인마, 신참! 그렇게 입 꼬리 죽 늘어뜨리고 다니면 있는 복도 다 떨어진다!”

  “아야야. 그만해요!”

 

  아리아는 쿡쿡 웃었다.

  “이제 알겠지? 이도. 너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 모두 네 편이야. 우린 널 돕겠어.”

  이도는 살짝 감동받았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왜?

  “왜? 나는, 난 아무것도 아닌데......”

 

  “이도, 잘 들어. 너는 특별해.”

 

  “특별하다고? 내가?”

  “그래. 네가 왕족이라서도 아니고, 황제의 대자라서도 아니야. 너는 너 스스로 지니는 특별한 느낌이 있어. 네 말을 듣고 있으면 어떤지 알아? 신뢰가 느껴져. 알 순 없지만 네가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봐봐. 네가 납치선에 붙잡혀 있었을 때, 내 배와 처음 조우했을 때부터 네 모습을 떠올려봐. 돌격대장이 너를 신참이라고 착각했지. 나도 그렇고. 근데 생각해보면 차 이상해. 의심이 분명히 드는데, 네가 하는 말에서 묘한 신뢰가 느껴졌어. 그 이후로도 계속 그랬어. 너의 말은 특별해. 언니, 어떻게 생각해?”

 

  소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그 뒤로 돌격대장도, 심지어 메이도 수긍했다. 이도는 어안이 벙벙했다.

  루카는 즐겁게 외쳤다.

 

  “이도가 날 구했쪄! 상어한테 때찌 했쪄! 난 이도를 무조건 믿어!”

  슈리는 쿡쿡 웃었다.

  “엄청나게 신분 높은 사람인데도 뭔가 막 대해도 될 것 같은 친근감도 있고.”

  아리아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생각해봐. 너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네가 스스로를 도림의 태자이고 제국의 대자라고 하면 모두 믿었어.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물론 네 특별한 외모도 있고, 펜던트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게다가 이쪽 사람들은 의심이 많은데도 널 모두 믿었어. 생각해봐! 그 무역협회장, 엘리자. 그 독한 여자도 네가 스스로를 이도라고 하니까 별 의심 없이 믿었잖아. 이건 범상치 않은 능력이야, 이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어. 메이, 말해 봐봐. 이도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 또 이도가 자기 자신을 태자와 대자라고 말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메이는 미소 지었다.

  “음.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꼈어요. 어,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이상한데. 태자와 대자라고 소개하는 게, 이상하게도 전혀 의심이 안 들었어요.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아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봤지?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놈이야.”

  이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자신감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자신감. 그 단어를 떠올리니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하다. 어쩌면 난 더 잘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난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전쟁을 막아야 해. 이 명분 없는 전쟁을.

 

  희아같은 불운의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아리아는 이도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도, 너는 황위계승권을 가진 대자야. 넌 제국의 황제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먼 옛날의 다섯 대자도 대단했지만 왕에 그쳤지. 하지만 여섯 번째 대자인 너는 황제가 될 수 있어. 그리고 지금의 문제는 황제에 이르는 길의 첫 관문일 뿐이야. 너는 해낼 수 있어. 필요한 건 오직 하나.”

  아리아는 이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야.”

  이도는 아리아의 고운 손을 바라보았다. 내가 여섯 번째 대자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는 영웅적인 다섯 대자의 계보를 잇는 여섯 번째 대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당당히 돌렸던 자들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 더는 가만히 있어선 안 돼. 그들이 날 보고 있어.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줄 순 없는 거야. 이도는 아리아의 손을 잡고 단번에 일어섰다.

  “아리아, 네 도움이 필요해.”

 

  “말만해.”

  “내가 몰래 이 요새를 빠져나가는 걸 도와줘. 그리고 네 배에 올라 탈거야. 선원들은 절반 정도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 싸우려는 게 아니니까. 메이와 소니아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배 위에는 백기를 걸어. 그리고 오늘 치러질 렐리아나 해상전이 벌어지는 장소로 갈 거야. 백기를 들고 있으니 의도적인 공격은 안 당하겠지. 대장선은 아마 후방에 있을 테고, 우리는 그 무역협회장이 있을 대장선에 접근할 거야. 저번에 우리가 겪은 해상전에서도 대장선은 후방에 혼자 떨어져있었어. 아마 독립파 진영의 공통된 전략인 것 같아. 여하튼 그 대장선에 접근한다면, 내가 협회장을 잘 꼬드겨서 협상을 성사시키겠어.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거야.”

 

  말을 마친 이도는 숨을 골랐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어차피 방법이 그거밖에 없잖아? 자, 가자. 영웅으로의 길 첫 발자국을 마저 떼러.”

 

  “으, 닭살 돋아라.”

  이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바다를 쳐다보았다. 그의 앙 다문 입과 곧은 눈썹에는 자신감이 스며들어있었다. 아리아는 그런 이도를 한 편으로는 기특하단 표정으로,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쓸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이도의 모습과 옛날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리아가 노예주인을 향해 반기를 들었던 그 날. 불길이 피어오르고 피는 흩뿌려졌다.

 

  그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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