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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오늘만 백만번째
작가 : 박재경양
작품등록일 : 2016.8.22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고, 회사에서 만난 남자친구라는 놈은 등쳐먹고 사기나 치고 다니고. 하는 일 하나없는 여자 나이 서른. 진서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렇게 된 바에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하면서 엄마옆에 있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웬걸, 차주혁,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라고 불리는 뮤지컬 배우가 제주도에 찾아왔다. 그것도 진서의 집에! 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가 왜 우리 집에 있는거지?

 
아무래도 안되겠다
작성일 : 16-10-26 16:21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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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주혁은 진서를 보았다.

 진서는 놀란 눈으로 주혁과 기자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 보았다.

 기자는 그러든지 말든지 재빨리 카메라를 들었다.

 연예인에게 인권? 그딴건 없었다.

 ‘큰일났다.’

 콜걸이니 뭐니 그런 말을 하는데도 가만히 뒀다가는 ‘할리우드 스타 차주혁, 콜걸과 제주도에서?’ 뭐 이런 제목의 말도 안되는 기사를 쓸 게 뻔했다.

 헤일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콜걸보다는 여자친구 쪽이 나았다.

 주혁은 진서에게 외쳤다.

 “얼굴 가려요.”

 “네?”

 아직 진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진서가 알 리가 없었다.

 ‘아, 진짜 번거로운 여자 같으니라고…’

 주혁은 빛의 속도로 진서에게 달려가, 진서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한 손에 진서의 얼굴이 모두 가려졌다.

 진서가 속눈썹을 깜박일 때마다 주혁의 손바닥에 닿아 간지러웠다.

 ‘이 여자 속눈썹까지 붙이고 왔나 보네.’

 주혁은 몸을 기울여 진서의 귀에 속삭였다.

 진서의 귓가에서 은은한 향이 났다.

 “나 지금 진짜 큰 일 저지른 거거든요? 제 팬들을 모두 안티로 돌리고 싶지 않으면 얼굴 가려요. 그리고… 데이빗 형이랑 여길 빠져나가요.”

 “네?”

 “너, 진짜… 무슨 짓을 한거야?”

 “무슨 짓이긴. 기자가 진서씨보고 콜걸이래잖아.”

 데이빗 형은 재빨리 웃옷을 벗어서 진서의 몸 전체를 덮어 버렸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다정하게 커플 사진 한장 찍어드릴게요.”

 기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주혁과 진서에게 다가왔다.

 데이빗 형은 필사적으로 기자를 막았다.

 ‘아… 망할… 세상에서 사진 찍히는게 제일 싫어.’

 주혁은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며 정중히 말했다.

 여기에서 잘못 보였다가는 건방진 배우로 낙인이 찍혀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 있었다.

 여태 큰 스캔들 없이 좋은 이미지를 쌓아 왔는데, 이제와서 그걸 무너뜨릴 순 없었다.

 “제 여자친구는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니…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게 되면 기자님께 제일 먼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주혁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환하고 밝은 미소였지만, 이를 꽉 다물고 있었다.

 한 손은 진서를 자신의 몸 뒤로 가리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자의 카메라 렌즈를 꽉 잡았다.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이제 카메라 렌즈 좀 놓아 주세요. 회사 물건이라 고장나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허허.”

 기자의 부드러운 말에도 주혁은 카메라 렌즈를 놓지 않았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고, 마음을 열어서도 안되는 이 바닥.

 주혁은 진서가 사라질 때까지 절대 카메라 렌즈를 놓을 수 없었다.

 스타들이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면 벌떼처럼 파파라치가 달려들었다.

 파파라치들이 하도 스쿠터를 타고 사진을 찍으러 다녀서 주혁은 스쿠터 엔진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그것 때문에 헤일리가 연애를 비밀로 하자고 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주혁의 사진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침 운동을 할 때도, 커피를 사러 갈 때에도 무엇을 입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그것만 아니면 배우라는 직업은 만족스러웠다.

 “카메라를 치우셔야 제가 놓지 않겠어요?”

 “아니 주혁씨가 렌즈에 손을 놓으셔야 제가 카메라를 치우죠.”

 둘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 사이 데이빗 형은 진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주혁은 카메라 렌즈를 놓았다.

 “나중에 꼭 먼저 연락드린다니깐요. 이제 인터뷰 시작 하시죠?”

 

 *

 

 민현우는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둘이 거의 엉겨 붙어 있는 사진을 찍고, 욕정이 가득한 눈으로 주혁을 보다가도 카메라가 사라지면 곧장 눈을 돌렸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는건가?

 스캔들이 터지고 곧장 서울을 떠버렸던 주혁과 달리 민현우는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것은 주혁이었지 민현우가 아니었다.

 ‘내가 더 주목받아서 자존심이 상한건가.’

 주혁은 왠지 민현우가 신경 쓰였다.

 말도 안되는 인터뷰가 끝나고는 다시 사진을 촬영했다.

 무슨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찍는지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네 두 분 단추 하나 더 풀어주시고요. 바지는 네네… 좀 더 내려주시고…”

 야동을 찍는건지, 사진을 찍는 건지 알 수 없는 사진 작가의 주문을 모두 들어주고 나서야 촬영은 끝났다.

 “휴우.”

 주혁은 한숨을 길게 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차주혁씨, 의상 갈아입으시고 메이크업 지우시고요.”

 “오분만요.”

 아침부터 너무 정신이 없었다.

 진서부터 진서 엄마, 데이빗 형의 방문, 진서의 구남친, 민현우에 촬영까지…

 체력이 바닥나지 않는게 더 이상했다.

 ‘진짜 힘들다 힘들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집이라고 하면서 주혁은 미국에 있는 집이 아니라, 제주도에 있는 진서의 집을 떠올렸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곳에 있는 것이 더 편안했다.

 ‘집으로 가서… 씻고… 그리고 마당에 누워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

 

 “잘 잤어?”

 주혁은 다정한 남자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잠결에 늘 듣던 데이빗 형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

 그 사이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침대 사이로 보이는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민현우가 보였다.

 민현우는 주혁의 옆에 누워서 주혁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옆에 누가 있는 것은 늘 좋은 경험이었지만, 스캔들이 났던 여자가 아닌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은 좀… 섬뜩했다.

 “이 방은 내일 아침에 체크 아웃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 메이크업 지우고 쉬려고 들어와 봤더니, 네가 아직 자고 있었던 것 뿐이야. 잠든 사이에 이상한 일 저지른 건 아니니까 걱정하진 말고.”

 민현우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했다.

 그래 스캔들 때문에 힘든 건 주혁 뿐이 아닐 거였다.

 민현우도 못지 않게 힘들었겠지.

 그리고 민현우와 술을 한잔 기울이던 시간은 즐거웠다.

 편안했고, 대화도 잘 통했다.

 그 시간마저 부정할 이유도, 불쾌해 할 이유도 없었다.

 “미안해.”

 민현우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가?”

 “괜히 나때문에 이상한 일에만 휘말리고…”

 ‘응?’

 의외로 예의바른 태도에 깜짝 놀랐다.

 스캔들에 휘말리고 상대방이 사과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만 고생했니. 너도 고생했지. 난 괜찮…”

 주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민현우는 주혁의 품에 들어왔다.

 “미안해. 진짜 미안한데… 난 네가 이상하게 너무 마음에 들어…”

 ‘응?’

 주혁은 깜짝 놀랐다.

 “저… 미안한데. 난 남자보다 여자 쪽에 더 끌리는 취향이라. 미안하지만 난 널…”

 “알아. 아는데, 오늘은 좀… 좀만 이렇게 있어주라.”

 민현우는 간절하게 온 마음을 다해 주혁의 품에 파고들었다.

 “오분만. 오분만 이렇게 있을게.”

 주혁의 품 안에서 민현우는 말했다.

 ‘그래, 뭐 오분 쯤이야.’

 

 오분도 지나지 않아 호텔 문이 벌컥 열렸다.

 “주혁씨… 아무래도 안되겠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진서였다.

 옆에는 데이빗 형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노크도 안하는 매너는 뭐야?”

 민현우는 짜증을 내면서, 주혁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진서는 다짜고짜 주혁에게 다가왔다.

 “뭔데요? 무슨 일이에요?”

 “안돼요. 진짜 그러면 안돼요.”

 “아니 앞뒤 말을 딱 자르…”

 진서는 주혁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돌진해왔다.

 주혁의 입술에 진서의 입술이 포개졌다.

 ‘뭐야, 왜 갑자기 또 키스야.’

 주혁은 깜짝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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