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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2] 그림자 섬 (13: 마리의 과거편)
작성일 : 20-09-29 20:12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8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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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이슈타인의 말에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이용한 실험’으로,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아직 어떤 것이든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정다루미가 종이를 고르기 전에 박홍석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예측했다.

 

 그가 분명 아비 된 자로서, 숫자 3보다는 1이나 2의 숫자가 적힌 종이를 뽑을 것이다. 그가 3이라는 숫자를 뽑는다는 것, 그것이 박홍석에게는 의외의 결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루미는 홍석과의 게임에서 정확한 결과를 예측했다. 그가 숫자 1이 적힌 종이가 있는 비서의 오른손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운이든 아니면 실력이든 박홍석은 그의 결과를 존중해 주었다.

 

 어차피 그가 숫자 1이 적힌 종이를 고른다고 해도, 홍석이 그린 미래는 바뀌지 않을 터였다. 그랬기에 중년의 사내는 지금 도망가는 사내에게 아무런 화가 나지 않았다. 이마저도 그의 여흥거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홍석의 눈에는 자신의 차로 달려가는 다루미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히려 몇 명의 수행원들이 쌍둥이들을 다시 데려와야 하는 건지 박홍석의 눈치를 살핀다.

 

 “응? 아... 아니야, 아직은... 아직은 그러지마.”

 

 중년의 사내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입을 반쯤 벌리고 다루미가 남긴 흔적만 눈에 담았다.

 

 “어떻게 다시 찾았는데... 어르신? 저자를 저렇게 쉽게 보내실 겁니까?”

 

 명문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답답했다. 어차피 수행원들이야 홍석의 명령에만 따르는 이들...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저리는거지?

 

 자신의 심정을 텁텁한 숨과 같이 토해내보지만, 홍석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나 그 결과는 홍석의 예측대로 나올 터, 사내는 이제 ‘그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하지만 원래 인간의 인과율은 불확실한 것이 아닌가?

 

 홍석은 주사위를 평평한 면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것은 흔들리는 탁자 위였다. 그리고 누군가 그 탁자를 스치면서 주사위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여기 하이젠베르크라는 이론 물리학자가 있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의 생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슈뢰딩거처럼, 그 역시 인간의 예측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연 그 자체가 그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옛날, 복희(伏羲)가 인간의 문명을 위해 자연계와 인간계의 본질을 나누어 팔괘에 넣은 후, 그 둘의 성질은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인과율에는 영향을 주었다.

 

 “똑딱... 똑딱... 똑딱...”

 

 자연의 본질이 지금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은 다시 윤회를 시작한 '한 여인'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었다.

 

 정다루미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차를 향해 갔다. 아이 둘을 뒤쪽 카시트에다 앉힌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잘 여민 후 최대한 쌍둥이들을 흔들리지 않게 했다.

 

 아이들이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울지도 않고 상황을 이해하는 듯한 그들의 표정,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최대한 담으려 한다.

 

 사내는 이런 쌍둥이들이 너무나 대견해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을 잘 키울 거야. 걱정 마렴. 우리 공주마마들.”

 

 하지만 아직 이 지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맘을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수동 기어를 올리고 서둘러 차 엑셀을 밟았다.

 

 ‘이 짐승 같은 자들이... 그래도 약속은 지킨 건가?’

 

 차를 타고 좁은 길을 차분히 빠져 나온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자 조금은 안심이 되는 명문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늘 일에 대해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이제 사내는 다른 것들도 생각할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자신의 오른쪽 손등에 난 상처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길대... 길대, 그녀를 생각하니 다시 맘이 짠해온다.

 

 좁은 논길과 돌길을 지나서 차량은 산길로 들어선다. 한낮에도 어두워 보일만큼 나무들이 짙게 우거져 있었다. 산길을 따라 스치는 바람에 나무들이 한 쪽을 떨구고 있었다.

 

 사내는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기로 한다. 아무래도 상처를 잠시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자! 우리 공주님들, 여기서 잠깐만 쉬었다 가...!”

 

 뒤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하던 다루미는 차에 갑작스러운 이상을 느낀다.

 

 “펑!”

 

 그때였다. 차 오른쪽 바퀴에서 나는 타이어 터지는 소리, 차량 핸들은 오른쪽으로 심하게 쏠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급하게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지나가는 길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결국, 구렁에 오른쪽 바퀴가 걸린 후, 그대로 차체가 옆으로 넘어졌다.

 

 차량 보닛에선 희미하게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정다루미는 왼쪽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그는 재빨리 앞전등과 시동을 끈다. 그리고 뒷좌석의 아이들 안전부터 살펴보았다.

 

 쌍둥이들의 얼굴에는 이제 울음이 가득 차 있었다. 소리를 참으려는지 인상만 붉히고 있다. 다행히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사고가 난 덕분에, 겉으로는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였다.

 

 다루미는 자신의 안전벨트부터 풀었다. 몸을 뒤척일 때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크기를 더해간다. 그리고 이제 그의 눈에는 차량 가까이에 있는 젊은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그가 달라고 할 때 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어조와 말투, 읊조리면서 천천히 말을 뱉어내는 습관 등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처음 그 사내를 본 다루미의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긴장감을 주는 건, 이 공간에 가득 찬 그의 박력이 아니라 저 무표정한 얼굴이라니... ‘희 노 애 락’을 읽을 수 없는 저자에게서 계속되는 깊은 상실감과 허무함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왔다. 아무런 감정 없이 차문을 연다. 그리고 뒤의 다루미의 자식들을 꺼내려고 하였다.

 

 행여나 불이 날까 앞의 라이트를 껐던 다루미다. 하지만 차량 보닛 사이로 검은 연기가 조금씩 공기 중으로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연료 탱크에서 유출된 연료에 불이 붙으면 안 된다. 사내의 불안함은 서서히 연기와 함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내 눈앞의 젊은 사내. 다루미는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 잡으려 애썼다.

 

 “너... 너 이 자식, 누구야? 이 애들은 건들지 마! 야... 아니 형님, 부탁드려요. 아... 야 임마! 제발... 제발 그냥 두라고. 어떻게 다시 찾은 아이들인데...”

 

 젊은 남성은 다루미의 소리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잠시 놔두고 앞문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그를 들어 올린다.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내의 덩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근력은 뛰어났던 모양이다. 땅에서 무가 뽑히듯이, 다루미는 쑥하고 쉽게 올려졌다. 그리고 그대로 차량 반대편 산길 땅바닥에 내쳐졌다.

 

 그의 손은 다시 뒷좌석의 아이들에게 향했다. 왼쪽에 있던 아이를 먼저 끌어 올린다. 그리고 오른쪽에 앉은 아이의 옷으로 향했다.

 

 “......”

 

 사내는 자신의 동작을 잠시 멈춘다. 그는 오른쪽 눈썹 끝이 무의식적으로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한 불확실한 사내의 움직임이 박홍석의 주사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26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그동안 참았던 것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라도 하듯, 오른쪽에 앉아 있었던 아이의 울음은 그 끝을 두지 않았다.

 

 “지잉!”

 

 그와 동시에 공간을 가득 울리는 금속 소리가 들렸다. 공기 중의 울렁임이 파동처럼 아이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관통하는 기분 나쁜 울렁임에 사내는 한발 물러선다. 고개만 갸우뚱 할 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듯 다시 목적물로 사내의 손은 향했다.

 

 그때였다.

 

 울렁임 안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연기는 이윽고 한 인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였다.

 

 검지 손가락만한 그녀는 연꽃을 타고 있었다. 땋은 머리를 복숭아 나뭇가지로 고정했다. 작은 여인은 흰색과 빨간색이 교차 된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무당 옷 같이 보였다.

 

 이제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차가 넘어진 탓에 겨우 자세를 잡고 불편하게 누워있었다. 그런 그녀 위를 작은 여인은 큰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아이는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대상을 만지려고 애썼다.

 

 연꽃위의 작은 무당소녀는 소매 안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냈다. 뭐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막대기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내에게 뻗었다.

 

 그 막대기는 빠르게 길어졌다. 그리고 그 공격은 남성의 가슴팍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으윽...”

 

 작은 막대기였지만 주는 통증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거니와 내장 깊숙이 느껴지는 충격에, 사내는 뒤로 밀려나 차에서 떨어졌다.

 

 ‘방금... 저건 무엇이었지?’

 

 강한 호기심이 젊은 사내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홍석의 명령이 사내에게는 우선 순위였다. 서두르자. 두 아이를 서둘러 그에게 데리고 가야한다.

 

 찰나의 순간, 한 여자 아이를 중심으로 시작된 울렁임은 이제 차 전체를 가득 덮었다.

 

 아마도 그 작은 소녀무당의 능력인 듯싶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차로 뛰어 올랐다. 하지만 공기의 울렁임에 튕겨져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루미는 이들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무엇이며, 저 사내는 왜 저러는 것일까. 그와 동시에 남자는 아까부터 차에서 느꼈던 불길함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량에서 부터 흘러 나오는 연료기름... 그것은 먼 곳까지 흘러나오다 이제 불이 붙으려는 듯,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 안 돼!”

 

 다루미는 젊은 사내를 지나쳐 차로 달려들었다. 아이를 구해야 한다. 공기의 울렁임이 가득한 그곳, 남자는 다행히 튕겨 나오지 않고 그대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정다루미 역시 차량의 뒷좌석에서 연꽃 위의 작은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작은 무당소녀는 이제 연꽃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사내에게 나가지 말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손짓도 섞는다.

 

 차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기계음을 냈다.

 

 ‘저 작은 보살이 무엇이라 말하는지는 알겠으나,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다루미는 아이의 안전벨트를 벗긴 후, 그녀를 들어 올리려고 시도했다.

 

 차량 밖에서는 낯선 사내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눈을 감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행동에 대해 스스로 타당성을 갖기로 했다. 자신의 검지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박자를 만든다. 그것은 나름 사내의 생각의 흐름에 도움을 주었다.

 

 이제 눈을 뜬다.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이 상황에서... 더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네... 그냥 이대로 둘 다 사고사로... 처리하는 수밖에.”

 

 사내는 고개를 잠시 까닥거렸다. 그의 다음 행동이 이어졌다. 커다란 돌을 들어 차량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공기의 울렁임에 막혀 차에 돌이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던져진 돌의 자극은, 차량을 덮고 있던 울렁임에 작은 진동을 더하고 있었다.

 

 돌은 울렁임을 자극했고 자극은 이제 부싯돌이 되었다. 차 보닛과 주변에 연이어 충격을 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순간, 밖에서 이어진 연료기름과 함께 차량은 불길에 휩싸였다.

 

 연료탱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길은 더 빠르게 주변을 자리 잡았다.

 

 “이제 끝난 건가... 큰불이라 둘 다 살아남기... 힘들겠지. 그래도 한명이라도 데리고... 가면 어르신도 이해할거야.”

 

 그는 자신이 안고 있던 아이의 눈을 쳐다본다. 그리고 불길에 휩싸여 있는 차량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간단하게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차량을 향해서 불교식 합장 인사를 드렸다.

 

 “내 이름은... 백종우요. 남만주 전략합동본부... 2소대, 직급은 상사요. 죽어서... 혼이 되어 나를 찾는다면... 그쪽으로 오시오. 엄한사람들 잡지 마시고.”

 

 백종우 손안에 있는 아이는 울지 않는다. 사내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종우의 표정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왼손에 들고 있는 아이의 위치만 오른손으로 바꾼 뒤 자리를 떠났다.

 

 불길은 한동안 공기의 울렁임과 함께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백종우가 떠나고 한참 뒤에서야, 빗소리와 함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차를 덮고 있던 공기의 울렁임 또한 그제야 사라졌다. 불길이 가리고 있던 시야 뒤에는 또 다른 공기의 울렁임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다루미가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아이가 혹여나 불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봐 품에 꼭 안았다.

 

 연꽃 위의 작은 무당소녀는 주변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막대기로 사내를 찔렀다. 상황을 파악하라는 신호다.

 

 다루미는 주변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살아있다는 생각에 차에서 뛰쳐나오기에 바빴다. 그는 그곳에서 뛰쳐나오자 말자, 모든 힘을 소진한 듯 땅에 주저앉았다.

 

 사내는 쌍둥이 중 한명밖에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런 다루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꽃의 소녀가 다시 자신의 옆구리를 막대기로 찔렀다. 자신을 보라는 듯 했다.

 

 작은 무당소녀는 막대기를 다시 길게 늘였다. 그리고 땅바닥에 글자 하나를 쓰기 시작했다.

 

 鉢(바리때, 발)

 

 그녀가 막대기를 휘둘렀다. 한자어는 살아 있는 것 처럼, 자신의 몸을 땅에서 부터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투명한 몸을 공중에 띄우기 위해 나풀거렸다. 그리고 하늘하늘 날아서 아이에게 안겼다. 곧 글씨는 아이의 가슴에서 아스라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 광경이 신기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웃는다. 또 다시 이길대가 자신에게 남긴 쪽지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나는 다루미였다.

 

 “순간은 이해를 필요하지 않는다. 귀인은 오른쪽에 앉는다.”

 

 그렇다. 그 말은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아까 박홍석과의 내기 상황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오른쪽을 선택해야 된다.(X)

 *우연한 선택에서 오른쪽에 앉아 있던 아이.(O)

 

 즉 귀인은 말 그대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한 이 아이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다루미는 그와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올렸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그들이 데려간 아이와, 남은 이 아이를 위해 할 일.

 

 ‘그들에게는 분명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야 할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설립했던 새상주교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 생각에 이르니 한 가지 확실해진다.

 

 ‘먼저 이 아이만이라도 확실하게 그들의 시선에서 보호해야 한다.’

 

 다루미는 곧장 가까운 마을로 이동했다. 다행히 이곳의 위치는 길림성에서 가까웠다. 숲길을 벗어나자 도시로 향하는 차량을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사내는 그들의 차를 얻어 타고 길림성으로 향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들이 혹시나 차를 다시 확인하러 온다면 금방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길림성 주변에는 아직 일제의 탄압이 미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그 말인 즉슨, 독립 운동가들의 기지가 이곳에 존재 한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그중 주변의 추천이 많은 한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들에게 상당량의 돈을 지원하고 자신의 아이를 부탁하였다.

 

 “아이를 이곳에서 3년만 데리고 있다가, 좋은 분이 생기면 입양을 해주시오.”

 

 어린 아이를 보살펴 달라니... 그들은 위험하다고 처음에는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사내의 사정을 듣고는 마음이 바뀐 듯 보인다.

 

 정다루미는 어쩌면 마지막 모습이 될 아이를 안았다.

 

 “네가 태어날 때 지장보살(地藏菩薩)님이 꿈에 나왔단다. 내게 자신이 쓰던 것이라며, 바리때를 주고 가셨지.”

 

 사내는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크게 걱정했단다. 너의 엄마도 힘들게 신들을 거부하고 살고 있었는데, 너에게는 더 큰 신이 내려와서 접신을 원하시니... 그러던 와중에 우리는 아이가 한 명만 태어날 것이라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희 쌍둥이가 태어났어.”

 

 사내는 이제 천천히 아이를 솜 보자기에 올려놓는다. 아이의 눈은 차분히 다루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보통 한 명만 신 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지. 다른 한 쪽은 자신의 모든 신기를 신 내림을 받은 자에게 빼앗기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단다. 지금껏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신 아이가 누군지 궁금했었는데, 그 아이가 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어. 아마 네가 커서, 신을 모시는 삶을 살았다면 유명한 무당 되었을 것이야. 대신에 너의 동생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겠지. 하지만 네 엄마나 나나, 너희 모두 평범한 삶을 살길 원했단다.”

 

 사내는 마지막으로 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목소리의 끝은 최대한 참고 있지만 울먹임이 가득하다. 정다루미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너의 인간으로써의 자아가 지장 보살님의 보호 아래 얼마나 갈지 모르겠구나. 너의 평범한 삶을 위해, 나도 이제 너에게서 이제 멀어져야 해.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너의 동생을 찾아서 다시 너에게 데려올게. 아! 너희 둘의 이름은 지장 보살님이 지어주셨어. 기억하렴. 동생의 이름은 ‘사희’ 그리고 너의 이름은 ‘바리’란다. 나와 네 엄마는 이제 어쩔 수 없지만... 자매인 너희 둘은 함께여야 해. 영원히 사랑한다. 내 딸 바리야.”

 
작가의 말
 

 1. 아인슈타인의 말: 1927년 5차 솔베이 회의에서 보어와 논쟁중에 한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반박하기 위해 한 말이다.

 2. 슈뢰딩거: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그의 고양이 이론은 아이슈타인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1935년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3. 하이젠베르크: 자연 그 자체가 상황을 통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는 불 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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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 20-09-29 20:12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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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7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92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21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7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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