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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오늘만 백만번째
작가 : 박재경양
작품등록일 : 2016.8.22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고, 회사에서 만난 남자친구라는 놈은 등쳐먹고 사기나 치고 다니고. 하는 일 하나없는 여자 나이 서른. 진서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렇게 된 바에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하면서 엄마옆에 있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웬걸, 차주혁,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라고 불리는 뮤지컬 배우가 제주도에 찾아왔다. 그것도 진서의 집에! 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가 왜 우리 집에 있는거지?

 
절대 짐승이 아니에요, 인간이라고요
작성일 : 16-10-26 15:58     조회 : 417     추천 : 0     분량 : 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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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는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힐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래, 진서가 태풍소년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다.

 태풍소년의 정식 팬클럽에 가입도 했을 정도이니 할 말 다했다.

 ‘어머나 세상에 민현우가 내 앞에 서 있어…’

 하지만 민현우는 진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민현우와의 만남을 수천번도 상상해 보았지만,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길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민현우는 늘 생글생글 웃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민현우의 싸늘함에 놀랐지만, 진서는 금방 이해했다.

 민현우와 차주혁의 스캔들.

 게다가 민현우가 여자보다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커밍아웃을 안했다 뿐이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 인형같은 외모의 남자는 안티팬도 하나 없었다.

 민현우의 여성 팬들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무슨 짓을 하든지 두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진서는 당장이라도 민현우에게 주혁과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혁이 더 곤란해 질 것 같았다.

 게다가 진서가 주혁의 여자친구라면 기분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어느 여자가 남자친구가 남자랑 사귄다는 스캔들이 났는데 좋아할 리가 있을까.

 ‘내가 옆에 있어야, 스캔들이 좀 잠잠해 지겠구나.’

 이럴 때는 여자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진서는 민현우의 눈총을 꿋꿋하게 참아가며 주혁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민현우가 나타난 뒤로 구남친 정태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베짱에, 그 오징어 같이 생긴 얼굴로 민현우와 차주혁 사이에 서 있기에는 민망하긴 할 거였다.

 ‘정태진 같은 자식은 그냥 잘근잘근 씹어서 쓰레기통에 버려도 시원찮지.’

 진서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지 스텝들이 오가고 주위는 부산스러웠다.

 주혁은 진서의 팔을 세차게 잡아 끌었다.

 “왜요, 뭐래요?”

 “촬영이라네 젠장. 옆에 딱 붙어 있어요. 알았죠?”

 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가득 심술이 나 있는 주혁의 옆 얼굴.

 종이라도 단칼에 베어 버릴 듯 날렵한 콧날과 턱선…

 아니 어떻게 심술이 나 있는 것도 저렇게 섹시할 수가 있지?

 어제의 술도 아직 덜 깬 데다가, 구남친 정태진이랑 와인도 마신 상태여서 얼떨떨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주혁의 얼굴에 입술을 파묻고 부비적거릴 것 같은 상황이었다.

 ‘진서야 안돼… 넌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야… 안돼. 알았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소용은 없었다.

 천천히 욕정이 가득 담긴 손이 주혁의 얼굴로 향하고 있었다.

 주혁은 거칠게 씩씩거리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진서와 주혁, 단 둘 뿐이었다.

 ‘진서야… 안된다. 넌 짐승이 아니라고… 어…!’

 당장이라도 입술 박치기를 해버릴듯한 몸을 다잡느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검사님… 아아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저 남자가 저렇게 섹시한 걸 어떡하냔 말이에요. 아아. 저는 죄가 없어요!’

 “쾅.”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음날 신문 1면에 났을지도 몰랐다.

 ‘휴우…’

 진서는 검은 마음으로 가득찬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낯선 남자가 이렇게 고마운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 각이 진 뿔테를 끼고, 수첩 하나, 핸드폰을 두 손에 들고 있는 남자였다.

 아까 하도 주의깊에 진서를 쳐다보는 것이 이상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매니저인가?’

 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야, 같이 가.”

 “장난해?”

 주혁은 대뜸 화를 내었다.

 “뭐가.”

 “무슨 촬영을 이렇게 잡아. 말이 되요? 일하기 싫어서 도망쳤더니. 내가 화보 촬영 이런 거 진짜 싫어하는 거 알지? 스타일리스트는? 옷은?”

 “기다려. 형이 누구니. 다 알아서 할테니까.”

 ‘진짜 매니저인가 보구나.’

 이 촬영도, 할리우드 스타의 매니저도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이런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영화가 3D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진서를 보았다.

 “지금 묵고 있는 집주인 딸. 그리고 오늘 내 일일 여자친구.”

 “아… 안녕하세요? 주혁이 매니저 데이빗이라고 합니다.”

 그제야 남자 아니 데이빗은 긴장을 풀고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진서는 무의식적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뻔 했다.

 ‘절 감옥에 가지 않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엉엉.’

 하지만 진서는 시크한 듯, 인사를 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정상인처럼 보여야 하니까.

 “악수 하는 건 좋은데, 냄새나는 힐은 좀 신죠?”

 “어머!”

 그래… 그때까지 진서는 구남친 정태진의 어깨를 찍어내렸던 킬힐을 두 손에 들고 있었다.

 “참 빨리도 말해주시네요 진짜…”

 “내가 그런 것까지 챙겨야 합니까? 누구 때문에 일을 하게 생겼는데!”

 주혁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네네, 알겠습니다. 알겠다고요. 아 진짜.”

 진서는 툴툴거리며 힐을 다시 장착했다.

 데이빗은 이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미리 룸을 잡아 놓은 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진서는 주혁이 시키는대로 데이빗과 나란히 앉았다.

 이 방 안에서 할일이 없는 건 진서 하나 뿐이었다.

 데이빗은 전화를 받고 메모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명을 설치하랴, 카메라를 설치하랴, 조명판을 들고 있으랴, 주혁과 민현우의 메이크업을 하랴, 머리를 만지느랴 부산히 움직였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진서는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는 엄청나게 섹시한 주혁이 서 있었다.

 하늘하늘 거리는 저 셔츠, 게다가 풀어헤친 가슴팍 사이로 보이는 저 근육…

 당장이라도 저 옷을 찢고 얼굴을 들이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안돼, 진서야. 안돼… 오늘 쇠고랑차고 싶니? 안된다. 안된다…’

 진서는 다시 욕망으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마 데이빗이 아니었다면 또다시 한번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주혁에게 달려 들어버릴지도 몰랐다.

 “저… 혹시 걱정돼서 그러는데 말입니다.”

 데이빗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주혁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진서는 갑자기 어리둥절했다.

 밑도끝도 없이 어디까지라니.

 “네?”

 “진짜… 주혁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건 걱정 마세요.”

 데이빗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입니다. 전 또… 혹시나 해서.”

 “주혁씨보다는 민현우의 팬이기도 하고. 주혁씨한테 빚진것도 해서 호호.”

 “아, 이런 죄송합니다. 워낙 주혁의 여자친구입니 하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걱정했습니다. 하하.”

 그제야 데이빗은 경계를 풀었다.

 저 부드러운 미소, 주혁의 옆에 서 있어서 티가 안나는 거였지 데이빗도 꽤 훈남이었다.

 뿔테 안에 보이는 눈은 깊고 맑았고, 동양인이라고는 했지만 서양인의 피가 섞여 있는지 피부는 보통 사람보다 하얬고, 잡티 하나 없었다.

 ‘역시 대스타의 매니저라 다르구나.’

 진서는 속으로 혼자 감탄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풀메이크업을 한 주혁의 뽀얀 피부…

 진서가 다시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할 때 즈음, 기자와 진서의 눈이 자꾸 마주쳤다.

 ‘뭐지…?’

 불편한 기자의 시선에 진서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왜 자꾸 날 보는거지?’

 진서는 궁금했지만 먼저 물어보진 못했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콜걸입니까?”

 기자는 인터뷰 중에 턱으로 진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딴에는 속삭이듯 말했다고 착각하고 있겠지만, 그 말은 너무나 정확히 진서의 귀에 들렸다.

 ‘뭐? 내가 짐승같은 마음을 가졌다고는 해도 그렇지…’

 진서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어딜봐서 콜걸이라고…

 아니, 콜걸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부르지?

 기자는 진서가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네가 함부로 연예인이나 따라다니는 여자니 그런 취급은 당해도 싸다는 듯한 태도였다.

 당장이라도 기자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주혁의 체면이 있지 그럴 수는 없었다.

 데이빗은 그 말을 못 들었나?

 수첩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사람한테 왜 저렇게 건방지게 말해.’

 진서는 주혁이 뭐라고 할지 기다렸지만,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제 여자친굽니다.”

 “네? 정말이요? 민현우씨와 열애설이 났는데, 게이는 아니시나 보네요. 허허.”

 “네. 안타깝게도 게이가 아니네요.”

 “허허.”

 “사과하세요.”

 “무엇을요?”

 기자는 뻔뻔했다.

 “제 여자친구한테 콜걸이라고 한거.”

 “어이쿠야. 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네요.”

 기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미안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치켜 들었다.

 “사진 찍으려고 하시는거죠? 찍지 마세요. 여자친구는 일반인이지 않습니까.”

 주혁은 기사의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고는 진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 가려요.”

 “네?”

 “어서!”

 그것도 성이 안 찼는지, 진서에게 직접 다가왔다.

 그리고는 큰 손으로 진서의 얼굴을 가렸다.

 주혁의 손이 진서의 이마에, 눈에, 코에, 입술에 닿았다.

 두근두근.

 주책없이 심장이 뛰어 버렸다.

 주혁은 진서의 귀에 속삭였다.

 “나 지금 진짜 큰 일 저지른 거거든요? 제 팬들을 모두 안티로 돌리고 싶지 않으면 얼굴 가려요. 그리고… 데이빗 형이랑 여길 빠져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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