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2화. 주유소 입성기.
작성일 : 20-09-29 13:12     조회 : 106     추천 : 3     분량 : 942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 주유소 입성기.

 

  며칠이나 지났을까? 작심삼일인가? 그림을 정말 열심히 그려보고 싶었지만 무엇을 그려야할지?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다. 무엇인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려면 강력한 동력이 필요했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다 보니 뭔가 멍해져있었다. 용돈도 다 떨어져갔다. 월급을 받으면 엄마한테 다 주고 하루 용돈을 받던 나는 마지막월급이라도 내가 쓰고 싶어 엄마를 주지 않았던 터에 용돈을 달라고 하기에 민망한 상황이었다.

  “ 엄마. 나 용돈 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 다 큰 놈이 네가 벌어 쓸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용돈 타 쓸 거야?”

  아 그래도 계속 월급을 드렸었는데... 그냥 좀 주시지.

  ‘ 담배는 피워야겠는데...’

  뭔가 모르게 서글퍼졌다. 나이 스물을 넘긴 청년. 기개 넘치는 청년의 모습은 어디가고 이렇게 처량하단 말인가? 그때 전화가 울린다.

  세종이었다.

  “ 야 주민아. 너 알바 할 생각 없냐? 너 학원에서 잘렸다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소문 참 빠르다.

  “ 소문 들었구먼. 안 그래도 담배 값도 없다.”

  처량해질 대로 처량한 내 처지를 모면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 돈도 필요하고 뭐라도 해야지. 우리 동네 주유소에서 세차 알바 구하던데. 같이 가볼래?”

  세종이 녀석도 용돈이 필요했나? 나보다 먼저 생활 정보지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세차? 나 한번도 안 해 봤는데.”

  세차는커녕 우리 집은 자가용도 없었다. 월남에서 한쪽 고막을 잃은 아버지는 극도로 운전을 하는 것을 꺼려하셨다.

  “ 내가 아빠 따라 다니면서 조금 해봤거든 이 형님만 믿어라.”

  IMF의 영향으로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신 세종이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에서 세차를 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 배우면서 하면 되겠지?”

  “ 당연하지. 뭐 대단한 것 도 아니고.”

  “ 일단, 우리 집으로 와. 내가 한명 더 데리고 간다고 말 해 놓을게.”

  “ 그래. 조금 있다가 출발 한다.”

  ‘ 정액권에 얼마나 남았더라? 알바 한다고 하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역전으로 향한다. 정액권을 넣어보니 아직 만 오 천 원이 남아 있다. 일주일은 거뜬하겠군.

  전철을 기다린다. 앞으로 출,퇴근길이 될지도 모르는 길에 첫 발을 뗀다.

  덜컹 덜컹 더디 가는 듯 나아가는 전철은 한 동안 학교를 다니느라 많이 익숙해졌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명절 때만 타곤 했던 전철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제사 때나 명절에만 가는 큰집. 큰 아버지 이하 식구들. 매년 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들. 나에게는 일련의 기억과 전철이 늘 오버랩 돼있었다. 그래서 전철만 타면 제사 지내러 가던 그 기분이 든다.

  ‘ 어? 다 왔네. 내려야지.’

  한참을 걸어 세종이네 집에 도착했다.

  “ 나와. 집 앞이다.”

  “ 잠깐. 나 똥 싸고 있어.”

  “ 아이 사람 불러 놓고 똥 싸고 지랄이야.”

  “ 잠깐만 기다려.”

  “ 집 앞에 있을게.”

 “ 괜히 집 앞에서 담배피우다가 우리 아빠 눈에 띄지 말고 다른데서 잠깐만 기다려.”

  세종이 아버지는 우리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걸리면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 할 것이 뻔했다.

  “ 그래. 알았다.”

  ‘ 20분은 걸리겠군.’

  이상한 녀석이다. 똥은 무조건 집에서만 싸는 녀석. 그러고 나서 꼭 샤워를 하는 녀석이다. 그리하여 20분은 족히 넘게 걸린다는 계산 또한 쉽게 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녀석이다.

  ‘ 그냥 맘 내려놓고 동네나 산책해야겠다. 이 동네도 오랜만이네. 앞에 생긴 신도시 때문에 아주 작게 보이는 동네다.’

  큰 길 가를 두고 신도시와 구도심이 마주보고 있는 동네다. 그래서 신도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빌라와 단독주택들로 오밀 조밀하게 늘어서 있는 동네. 하릴없이 걷다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나오는 길에 엄마한테 알바 구하러 간다니까 잘하고 오라며 용돈을 주셨다. 담배 맛이 쓰다. 긴장을 해서 그런가? 연거푸 피워댄 탓인가? 그때 세종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이쪽으로 와.”

  “ 응. 안 그래도 집 쪽으로 가고 있다.”

  20분이 지났나보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주유소로 향했다. 면접 같지 않은 면접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무었을 잘못 들었나 했다.

  “ 학생들은 세차 기계 돌려주고 세차하는 손님들한테 내부세차 영업해서 그거 벌어 가면 돼.”

  “ 아니. 시급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당황한 나는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 그래. 시급은 없어. 식사는 제공이 될 거구. 이 근처에서 내부세차 하는데 없으니까 잘해보면 짭짤할 수도 있어. 열심히 해봐.”

  뭐가 그렇게 당당하신지 모르겠다.

  “ 야. 이거 말이 다르잖아. 세상에 시급이 없는 알바가 어딨냐?”

  “ 아 몰라. 교차로에는 그렇게 안 쓰여 있었어.”

  “ 아무리 그래도 시급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마. 학생들 아니여도 할 사람들 줄 섰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학을 맞이하여 너도 나도 알바를 구하는 통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지 않는다면 생활 정보지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혼자 하기는 겁도 나도 친구랑 같이하는 거니까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기로 한다. 오늘은 세차 기계 돌리는 것만 배우고 내일 내부세차 용품을 사가지고 출근하기로 했다. 스무 살. 학원일 말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다.

  ‘ 잘해서 인정받아서 나갈 때 내 바짓가랑이를 잡게 만들어 주마.’

 

 “ 너 오늘부터 알바 한다고 하지 않았냐. 일가야 하는 거 아냐?”

 뭐지? 무의식 속에서 들리는 작은 누나 목소리.

 ‘ 앗. 지각이다.’

  아니 첫날부터 지각이라니. 부랴부랴 역전으로 향한다.

  ‘ 세종이는 도착 했을까?’

  전화를 걸어본다.

 “ 도착 했냐?”

 “ 아니 나 지금 나왔어.”

 ’ 아 맞다. 이 녀석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지.’

 “ 나는 좆 됐어. 이제 전철 탔다. 사장님한테 말 좀 잘 해줘.”

  어제 취업됐다고 좋다고 퍼마신 술이 문제였다. 속도 안 좋고 왠지 오늘 일진이 사나울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

  어떻게 도착은 했다. 시급이 없어서 그런가? 뭐 별로 나무라지는 않으셨다. 괜히 쫄았나? 싶었다. 업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세차기를 돌라는 일은 뭐 어렵지 않았다. 지저분한 차체랑 바퀴에 고압분사기를 쏘는 물총은 짜릿한 게 좋았다. 뭔가 차한테 선물을 주는 거 같은 기분.

  우리가 세차를 하는 동안 차가 기계 밖으로 빠져 나가면 반대편에서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애들이 차에서 미쳐 떨궈지지 않은 물기를 닦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차가 들어가기 전에 영업도 잊지 않았다.

  “ 내부세차도 합니다. 단돈 오 천 원에 모시겠습니다. 그 어디서도 하지 않는 서비스 한양 주유소가 앞서 갑니다.”

  첫 날은 5만 2천원을 벌었다. 이렇게 돈이 벌린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 어라 왜 2천원이지?’

 5천원 단위로 떨어져야 하는데...

  아. 맞다. 아까 세종이가 예쁜 여성분 3천원을 깎아 준 탓이다. 뭐 장사라는 게 에누리도 있는 거니까. 출발이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성적은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했다.

  ‘내일부터 진짜 시작이다.’

  라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녹음이 푸르다. 멀리 보이는 산도 오늘은 조금 더 가까이 보이는 것은 순전히 기분 탓은 아니리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두 번째 출근을 하는 길이다. 따뜻한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좋을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주유소에 도착해보니 세종이가 먼저 와서 세차장 내부를 청소하고 있었다.

  “ 나 왔다.”

  “ 빨리 빨리 다녀. 이 형님이 먼저 와서 청소하고 있어야겠냐.”

  뭔지 모르게 녀석은 들떠 보였다. 이 녀석도 유세를 떠는 걸보니 오늘 기분이 좋은가 보다.

  “ 지랄하지 말고, 장사 준비 다 됐으면 커피나 한 잔 하자.”

  주유소 사무실 안쪽에 보면 냉온수기와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세종이와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 같은 것이 있었다. 행동 양식이 바뀔 때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그것이다. 미술학원에 도착해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커피와 담배를 같이 즐기고, 상담 할 일이 생기거나 학생을 여럿 봐주고 강평을 할 때나 중간 중간에 다른 행동을 해야 할 때 꼭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10잔을 마신 날도 있었다. 그건 아니지 싶다.

  아주 작은 탕비실 같은 냉온수기와 가까워지는데 어제 봤던 여자애들이 대화를 나누며 그 앞에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데 한 녀석은 한 것 꾸몄고, 한 녀석은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모습이었다. 가까이 가자 할 일을 마쳤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뜬다.

  ‘ 계속 마주쳐야 하는데 인사라도 해야겠다.’

  “ 저기...”

  돌아서는 순간 이미 나간 상태였다.

  커피를 타가지고 세종에게로 갔다.

  “ 세종아 나가서 한 대 피우고 오자.”

  “ 한대 빨고 시작해야 시작하는 거지.”

  “ 야. 근대 저 여자 애들하고 인사는 하고 지내야 되는 거 아닐까? 어색해서 영.”

  “ 그치. 나도 그래야 될 거 같아. 우리 또래 같은데.”

  “ 기회 봐서 말 걸어 보자고.”

  “ 세차 들어가요.”

  주유원이 큰 소리로 외친다. 피우던 담배를 잽싸게 끄고 원래 있어야할 위치로 빠르게 이동한다. 수신호를 보내며 들어오는 차량을 유도한다.

  “ 오라이. 오라이. 왼 쪽으로 왼 쪽으로 살짝 오케이. 기아중립. 안테나 내려주세요. 오늘내부 세차 하시면 특별히 20프로 깎아 드립니다.”

  “ 그래요? 내부 세차? 처음 들어 보는데. 그럼 얼마에요?”

  “ 5천원인데 4천원에 해 드릴 게요.”

  “ 네. 그럼 한 번 해볼까요?”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더니 첫 손님부터 성공이다.

  “ 네 그럼 외부세차 마치고 차 돌려서 이쪽으로 오세요.”

  “ 네.”

  “ 사이드 미러 접어주시고 창문 닫아주세요. 기어는 중립입니다.”

  시원하게 고압 분사기로 타이어와 뒤 유리창을 쏴 준다. 묵은 먼지가 떨어져 나가며 튕겨지는 물방을 사이로 무지갯빛이 아리하게 생겼다 사라진다.

  세종이가 기계를 돌린다. 레일에 바퀴가 끼워져 제동장치가 해제된 차를 끌고 들어간다. 세정제와 왁스가 떨어지는 거 뒤에서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마치 차가 무스를 바르는 느낌이 랄까? 이내 세찬 물줄기가 각도를 달리하며 뿌려지고 융이 돌아가면서 차를 때리 듯 닦는다. 열심히 달렸으니 오늘은 마사지 좀 받으시라.

  반대편을 보니 차가 나오는 쪽으로 여자애들이 마른 걸레를 들고 서있었다. 샤워를 마친 차의 물 끼를 닦기 위해서 일터이다. 내부 세차도 한다고 했으니 가서 나도 닦기를 도와야겠다. 그러면서 통 성명도 하고.

  “ 가자 세종아 우리도가서 닦는 걸 도와주자.”

  “ 뭐 하러 그렇게 까지 해.”

  “ 아니 왠지 타이밍이 좋은 거 같아서. 저 손님 내부세차도 하신다니까 우리가 유도해서 데리고 와야 하고.”

  “ 그래 그럼 가자.”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차는 거의 기계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어제부터 봤었는데 어색해서 빨리 통 성명이라도 하고 지내자고 이렇게 말을 걸고 있네요. 20살 미대생 유주민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저도 20살 기타 치는 미대자퇴생 오세종이라고 합니다.”

  “ 어머. 우리도 그림 하는 사람들이에요. 신기하다 그치 주현아.”

  “ 안녕하세요. 저는 서양화하는 사람이에요. 유화 좋아해요.”

  라고 하며 내 눈을 쳐다 보는데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출하는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똑바로 쳐다보는 눈빛이 강렬하다.

  “ 아. 유화 좋아하시는 구나. 저는 아직 1학년이라 유화 많이 못 다뤄 봤어요. 그럼 작품도 하시겠네요?”

  “ 작품 이랄 것 까진 아니고 에스키스 많이 하는 편이에요.”

  ‘ 아... 에스키스는 뭐지?’

  처음 듣는 단어였다. 이런 상황. 나의 무지가 드러나는 이 상황. 지식이 짧은 것은 언제나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 뭔가 전문가의 숨결 같은 게 느껴지네요. 같이 그림 하는 사이니까 대화도 많이 나누고 친하게 지내봐요.”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른다. 같은 그림을 그리지만 뭔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난 거 같은 느낌이 랄까? 또래들과는 다른 눈빛과 말투 그리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그녀의 무슨 아이덴티티 같이 느껴졌다. 아무튼 한 살 누나라고 하니까 오히려 다행이다.

  ‘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겠어.’

  친 누나가 둘이나 있는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편했다.

  “ 내부 세차 어디로 가요?”

  창문을 열고 손님이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넨다. 물끼를 다 닦은 차가 유난히 반짝거리며 연신 빛을 튕겨낸다.

  “ 네. 차 돌리셔서 기계랑 나란히 대시면 됩니다.”

  이내 짧은 통성명과 인사의 시간은 끝났다.

  내부세차는 계속하다 보면서 느낀 건데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한 사람이 발판을 빼서 기계로 빠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진공 청소기로 이곳저곳을 청소한다. 대체로 차량 내부에 있는 쓰레기는 모레나 흙 같은 발바닥에서 떨어진 것들이 대부분.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두 사람이 광택성능이 있는 세제를 무친 융으로 차량내부에 광을 내준다. 물론 쓰레기들도 다 처리해주고. 10분 남짓 움직이다 보면 쾌적하고 말끔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내 방 청소도 안하던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이야.

 “ 다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방향제는 서비스.

 “ 여기 10000원이요. 거스름돈은 됐고 더운데 음료수 사드세요.”

 ‘첫 손님부터 팁이라니 오늘 왠지 일진이 좋을 거 같았다니까.’

 “ 넵. 감사합니다. 손님.”

 “ 좋은 하루되세요.”

 “ 네. 수고 하세요.”

  손을 흔들어 주시며 주유소를 빠져 나간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해서 손님들이 많았다. 하긴 날씨도 계속 우중충해서 누가 세차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날씨도 맑고 주말 아닌가? 자동차에 기름도 채우고 세차도 하고 어디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으로 들로 나들이가기 너무 좋은 날이다. 그래 그렇다. 이렇게 좋은 날 나는 일하고 있구나. 자각하고 있을 무렵,

  “ 야. 동갑인줄 알았는데. 한 살 누나네. 근데 둘이 친구 아닌 거 같아.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라.”

  “ 그치. 키 큰 누나는 약간 노시는 분 같고 키 작은 누나는 화장도 안 하고 눈썹도 아직 밀지 않은 게 순진해 보이고.”

  “ 야. 아까 서양화하는 사람이에요. 할 때 눈에서 레이져 나오더라. 순진 한 게 아니라 독한 걸 수도 있어.”

  사람에 따라 관점은 다른가 보다. 나는 그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음. 뭔가 특별 한 게 있을 거 같아. 내 생각에는.”

  “ 세차 들어갑니다!”

  벤츠가 들어오고 있었다.

  ‘ 뭐지 이 싸한 느낌은. 원래 벤츠같이 비싼 차는 손 세차 맡기는 거 아닌가?’

 “ 오라이 .오라이. 오른쪽. 오른쪽. 약간 왼쪽 오라이. 기어 중립. 사이드 미러 접어주세요.”

 “ 세차 끝나고 내부세차도 해줘요.”

  영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부 세차를 해달라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 아 뭐지? 이사람. 하나님 왜 저를 시험에 들게 만드십니까?’

  “ 내... 내부 세차요.”

  갑작스러운 반응에 말까지 더듬는다.

  “ 오늘하시면 20프로 할인해 드립니다.”

  세종이 녀석은 아주 신이 났다.

  “ 알아. 저기 쓰여 진거 보고 말하는 거야.”

  아. 이 쓸데없이 부지런한 세종이 녀석이 광고판을 직접 써와서 붙혀놓은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서양화과를 다니는 학생이었지만 입시를 준비 할 때는 디자인도 공부했었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고등학생 시절. 평면 구성이 너무 하기 싫었던 나였다. 매번 같은 도안을 그리고 맨날 쓰는 색채로 채색을 하며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야 하는 무한 반복의 시간은 나를 괴롭혔다. 하루는 너무 하기 싫어 잠깐 나간다고 하고 소주 한 병과 콜라 한 병 사가지고 학원 앞 체육공원에서 마시고 학원 옥상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 싫다고 구성하기 싫다고!!!!”

 한 십분 소리를 질렀더니 속이 후련해졌었다. 마음을 다 잡고 구성실로 들어 가는데 원장실에서 원장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소리 지르는 거 다 들었다고.

  하아.

  ‘ 내가 소리를 크게 지르긴 질렀구나.’

  아차 싶었는데 원장선생님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 주민아. 평면구성 하 기 싫은 거야. 디자인이 하 기 싫은 거야?”

  “ 지금 같아선 둘 다 하 기 싫은 거 같아요. 단순하게 무한 반복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 우리 학원이 디자인 전문학원이잖아. 주민아.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다. 우리 학원이 디자인 전문 학원이다. 그렇다보니 전공 실기 중 디자인 말고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반도 없었다. 그저 공통 실기인 소묘반이 있을 따름이었다.

  “ 원장선생님. 저 그냥 소묘만 할게요. 소묘 하나로 갈 수 있는 대학도 많잖아요. 학과는 차차 고민해 볼게요.”

  당시에는 소묘만 해도 갈수 있는 학교가 많았다.

  “ 그래. 고민해보자.”

  ‘ 그렇게 잊고 있던 학원에서 디자인하던 시절을 세종이가 상기시켜주는 구나.’

 ‘ 상 남자 벤츠 손님 덕에 벤츠 내부를 다 구경해보는 구나.’

  역시 독일 사람들이 제조업하나는 일등이지. 시트부터 데크 까지. 기어 봉 하나 까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내부였다. 내가 발판을 빨아 오는 동안 진공 청소기로 내부를 청소하던 세종이는 연신 감탄을 하고 있었다.

  “ 야 살살해. 기스라도 나면 큰일이야.”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 나도 알아. 세차하면서 살 떨리는 일이 있을 줄이야.”

  “ 야 근데. 좋아 보이긴 진짜 좋아 보인다.”

  “ 그러니 옛날부터 아빠들이 ‘벤스. 벤스.’ 했잖아.”

  우리가 대화하는 내용이 재밌었는지 대화에 끼어 드셨다.

  “ 대학생들이지?”

  “ 네. 미대생들입니다!”

  “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는 말들 들어봤지? 열심히 사는 모습 보니까 보기 좋구먼.”

  “ 아닙니다. 그저 용돈 벌이 하는 건데요. 뭘.”

  “ 그 마음이 기특한 거지. 자 이거 줄 테니까 밥이라도 사 먹어. 자식 같아서 그래.”

  “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야이. 그냥 받아. 바보야. 어른이 주시는데.”

  연신 손 사레를 치던 나와 다르게 세종이는 아저씨가 주시는 돈을 받아 들었다.

  “ 고맙습니다. 맛있는 거 사먹겠습니다!”

  “ 허허허. 그래 이왕 사 먹는 거 고기 사먹어.”

  라고 말씀하시며 만원을 더해 이만 오천 원을 주셨다. 세상에 이런 분도 계시구나 싶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아버지한테 용돈을 받아 본적이 없다. 건설 현장에서 목수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지갑은 돈이 들어가면 나오는 법이 없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엄마는 미용실을 하셨다. 엄마는 현금을 매일 매일 만지다 보니 용돈을 주는 일은 엄마의 역할이 되었던 것일까?

  내가 상급학교로 진학 할수록 엄마는 조금씩 용돈을 올려 주셨다. 대학생인 지금의 용돈은 하루에 5000원. 차비와 담뱃값, 그리고 학생식당에서 식사 한 끼. 자판기 커피 한 두 잔 마시면 다 소진되는 정도의 돈이였다.

  이날의 장사는 성공적 이였다. 아저씨의 말대로 고기에 소주를 나누어 마시고 자축을 하며 좋아했고 그러고도 삼 만원 남짓 나누어 가졌다. 알바 시급이 2000원이던 시절. 9시간을 일해도 2만원도 안되는데 고기에 술을 먹고, 3만원을 나누어 가졌으니 뭔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내일은 더 잘해보자. 세종아.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아득했던 하루를 뒤로 하고 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안녕하세요.독자님들. 2021 / 9 / 14 447 0 -
공지 감사합니다. 2020 / 10 / 29 611 1 -
66 66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 / 9 / 29 374 2 6189   
65 65화. 캐리커쳐. 2020 / 9 / 29 307 2 6357   
64 64화. 다시 그림. 2020 / 9 / 29 312 2 10415   
63 63화. 장인어른의 죽음. 2020 / 9 / 29 301 2 7079   
62 62화. 영업이란? 2020 / 9 / 29 298 2 5162   
61 61화. 장인어른. 2020 / 9 / 29 289 2 5105   
60 60화. 영업. 2020 / 9 / 29 306 2 6513   
59 59화. 매일우유. 2020 / 9 / 29 299 2 12048   
58 58화. 결혼과 추락. 2020 / 9 / 29 306 2 6725   
57 57화. 밤샘촬영. 2020 / 9 / 29 306 2 8110   
56 56화. 세트장 촬영. 2020 / 9 / 29 299 2 13331   
55 55화. 내 작업실. 2020 / 9 / 29 294 2 7651   
54 54화. 조명막내. 2020 / 9 / 29 289 2 9320   
53 53화. 벽화. 2020 / 9 / 29 300 2 13871   
52 52화. 안산으로. 2020 / 9 / 29 306 2 12180   
51 51화. 성수기. 2020 / 9 / 29 315 2 11036   
50 50화. 다시 안양으로. 2020 / 9 / 29 296 1 11929   
49 49화. 전속작가. 2020 / 9 / 29 300 1 8768   
48 48화. 아트페어. 2020 / 9 / 29 301 1 13354   
47 47화. 다시 물류. 2020 / 9 / 29 293 2 7504   
46 46화. 물류. 2020 / 9 / 29 306 2 13402   
45 45화. 굿바이. 경륜장. 2020 / 9 / 29 300 2 6926   
44 44화. 이사. 2020 / 9 / 29 295 2 9707   
43 43화. 졸업. 2020 / 9 / 29 295 2 5936   
42 42화. 4학년. 2020 / 9 / 29 315 2 13231   
41 41화. 중국집. 2020 / 9 / 29 309 1 7374   
40 40화. 반갑다. 은식아. 2020 / 9 / 29 300 2 5263   
39 39화. 경륜장 알바. 2020 / 9 / 29 325 2 8130   
38 38화. 또 다시. 작품을 하라. 2020 / 9 / 29 318 2 13604   
37 37화. 학교생활. 2020 / 9 / 29 307 2 3868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