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트럭

　새빨간 흙을 뒤집어쓰고 살아 돌아온 진화가 들려준 이야기는 참 기가 막혔다. 산에 끌려간 진화는 그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며 이발도 해주고, 음식도 만들어 주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할 줄 아는 것이 그것이니 해주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진화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음식솜씨 좋은 진화는 그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복권이는 틈을 봐 진화를 도망치게 해줄 생각이었지만 좀처럼 틈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일행은 산에서도 한 군데 머물지 못하고 계속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다녀야 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결국 흔적을 들키고 말았고, 어느 날 그들이 숨은 곳으로 경찰들과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복권이는 진화와 함께 도망쳤다. 그러나 쫓아오는 이들을 따돌릴 수가 없었다. 복권이는 흙더미가 무너져내려 생긴 움푹한 토굴을 발견하고는 진화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진화가 뭐라 말릴 틈도 없이 복권이는 마른 나뭇잎으로 그 입구를 막아버렸다. 마지막으로 진화의 얼굴을 덮으며

　“조용해질 때까지 나오지 마래이!”

　하고는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것이 복권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진화는 그 흙더미 속에 사흘이나 숨어있었다.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진화는 산에서 내려왔다. 인기척이 들리면 몸을 숨기고 오가는 사람이 없을 때만 움직였다. 그렇게 집에 닷새 만에 돌아왔다.

　살아 돌아온 진화는 그다음 날로 경찰서로 가 스스로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풀려났다.

　그리고 노미의 생일이 되었다. 자리에 누웠던 진화는 이제 좀 기력을 회복하고는 아내를 위해 찰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였다. 노미네 남자들은 자기 아내들의 생일에 반드시 찰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그래서 그날만은 아내들이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다른 집에서는 잘 없는 풍경이라 동네 사람들은 별나게 군다고 흉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진화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이런 집안 풍습을 석이도 따라 하고, 성재도 따라 했다. 후일 진화와 노미를 스승님이라 부르던 제자들도 따라 했다고 한다.

　말할 수 없이 귀한 생일상을 받은 노미는 울음을 겨우 삼키며 찰밥에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결코 잊을 수 없는 1946년 가을이 끝이 나고 겨울이 왔다. 겨울방학이었지만 병원 일 때문에 남화도 정화도 바로 고향에 오지 못했다. 이제 정화도 병원에서 하는 일이 많았다.

　해를 넘겨 1947년이 되었다. 이제 곧 설이었다. 설이면 가족들이 다 모일 생각에 노미는 설레었다. 이번에는 또 뭘 해서 먹이나 싶어 걱정도 되었지만 노미네 집에는 언제나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 그렇게 서로 나누어 먹을 것이 생기곤 했다.

　그때였다. 밖에서 낯선 엔진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집 앞에서 멈추었다. 노미는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보았다. 그리고는 노미네 싸리 울타리 밖에 참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진회색 트럭이 한 대 멈추어 선 것이 보였다. 노미는 순간 얼굴이 찌푸려졌다. 노미에게 트럭은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잡혀갈 뻔한 트럭이었고, 미순이를 잡아간 트럭이었고, 윤화를, 그리고 태화와 민화를 태우고 갔던 트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이 쓰던 트럭이 아닌 미군이 쓰던 트럭을 개조한 화물전용 트럭이었지만 노미는 트럭에서 나는 그 역겨운 기름 냄새도, 소음도 반갑지 않았다. 무엇보다 노미네 집 앞에 와서 선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트럭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누군가 노미를 불렀다.

　“형수님~!”

　노미는 깜짝 놀랐다. 석이였다.

　“오메! 이게 무슨 일인교?”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운전석에서 내린 이가 윤화였던 것이다. 노미는 더 놀라서

　“에구머니! 도련님이 와 거서 내립니꺼?”

　했다. 윤화는 아무 설명도 없이 그저 싱긋 웃었다. 그러자 석이가 트럭에서 내려와 노미를 향해 달려오더니

　“형수님~! 지랑 형이랑 트럭을 한 대 샀어라!”

　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노미는 반갑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장사에 재미를 붙이는구나 싶더니 이제 아예 트럭까지 몰고 다니며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트럭에서 내리는 이가 또 있었다.

　“형수님~!”

　하며 덮개가 덮여있는 트럭 화물칸에서 뛰어내려 달려오는 이는 정화였다. 정화는 늘 그렇듯 노미를 향해 달려와 노미를 와락 안아 들고는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는 노미의 볼에 자기 볼을 대고 비비더니 두 손으로 노미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환하게 웃었다. 반가운 마음을 전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형님~~!”

　하며 서현이가 트럭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노미를 불렀다. 서현이를 부축해 내리는 이는 남화였다. 서현이는 어느새 배가 많이 불러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노미는 한달음에 트럭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동서 오나? 배가 안 무겁나?”

　하는데 노미 또한 배가 제법 불룩했다.

　“형수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꺼? 형수님도 배가 무거우시지예?”

　하며 남화는 뭐가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는데, 그런 남화의 어깨를 노미가 말없이 두드려주었다. 노미는 오랜만에 보는 서현이를 얼싸안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트럭에서 민화가 뛰어내리더니 팔을 벌리며 노미에게 다가왔다.

　“지도예~”

　하며 민화는 노미에게 안겨 왔다. 그러자 노미는

　“아이고~! 도련님은 며칠 전에 경주 가놓고 벌써 옵니꺼.”

　하며 안 반가운 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화도 노미를 얼싸안고는 아기처럼 칭얼거렸다.

　“아이~! 형수는 내는 안 반갑습니꺼?”

　하는데 또 누가 얼굴을 쏙 내밀며

　“형수! 지들도예~!”

　하며 환하게 웃었다. 노미가 깜짝 놀라 바라보니 태화와 유림이다. 새신랑 새신부답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태화와 유림이까지 온 식구들이 모두 트럭을 타고 온 것이었다. 식구들을 잡아가기만 하던 트럭이 이제 노미에게 가족들을 데려다주었다. 노미는 좋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트럭을 돌며 살폈다. 볼수록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노미네 집에 트럭이, 자동차가 생겼다.

　석이는 해방 이후 광주에 있는 땅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꽤 넓은 땅을 물려받았으나 대부분 그 땅들을 소작인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지럽게 변하던 시절이라 땅 문제로 골치 아픈 일들이 심심치 않게 생기곤 했다. 그때 윤화가 광주에 있는 땅들을 소작인들에게 팔자는 의견을 내었다.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며 시끄럽기는 광주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젊은 지주를 곱지 않게 보는 이들도 많았다. 윤화는 이제 곧 토지개혁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 땅이라 할지라도 무슨 이유를 대어 빼앗길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윤화는 소작인들에게 매년 얼마씩 소출이 나는 것에서 일정 부분 땅값을 지불하는 식으로 장기 매매 계약을 하라고 석이에게 권했다.

　석이는 그렇게 물려받은 땅의 대부분을 소작인들에게 돌려주었다. 자기 땅을 갖게 된 소작인들은 모두 석이에게 고마워하며 반가워했고, 장기간 안정된 자금을 확보하게 된 석이 또한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자금으로 석이는 트럭을 샀다. 아직 길이 좋지 않아 오고 가는데 돈이 더 많이 들고, 한번 고장 나면 수리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물류와 운송의 중요성을 깨달은 석이와 윤화는 이제 발로하는 장사에서 좀 더 발전해 차를 이용한 운송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다지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차를 산 것은 아니었다. 광주에서 경주까지, 또 경주에서 구길까지 오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해서 식구들을 위해 이제 꼭 필요한 것이 차로구나 싶어 한 일이었다. 그저 우리 형수님이랑 아이들 배곯지 않게 하려고, 경주 사는 식구들 구길까지 오가게 할 때마다 남의 차 얻어 타느라 눈치 보는 것이 싫어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그저 한 일이 훗날 석이와 윤화가 운수업에서 나름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첫걸음이 될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진화는 커다란 트럭을 보고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만한 일을 이룬 동생들이 자랑스러워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만에 집안이 식구들로 꽉 찼다.

　 그간 있었던 일을 남화와 정화에게는 알리지 않았던 바람에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화와 정화는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정화는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지만 윤화는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달랬다. 정화는 진화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정화는 진화에게 그렇게 내내 동생이 아니라 제일 큰 아기였다.

　막내 할아버지를 처음 뵌 것이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였다. 우리 할아버지 정진화 님은 칠십 육세에 돌아가셨다. 평생 아내와 단둘이만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한 삼 년을 작은 아파트에서 두 분만 지내실 수 있었다.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몸져누우시더니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는 갈 때가 되어 가는 것이니 말리지 말라며 링거조차 맞지 않으시려 했다. 할머니에게는 애들 번거로우니 한 삼년 만 더 있다 쫓아오라고 하셨다고 했다. 평생을 할머니 손을 참 많이도 놓고 가셨었다. 그리고는 또 신기하게, 기가 막히게 또다시 돌아와 그 손을 잡아주셨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진화는 노미의 손을 다시 잡아주러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허락된 날이 다한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진화는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노미의 손을 잡아주었다.

　홀로 남으신 할머니는 크게 슬퍼하지 않으셨다. 그저 남은 이들을 위로하시며 참 곱게 앉아계셨다. 그런데 아파트 복도가 떠나가게 울며 달려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막내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가 내가 열여섯이었는데 나는 그때 막내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가족 행사 때 여러 어른들 사이에서 뵌 적이 있었지만 워낙 일가가 많아 일일이 다 인사도 못 했고, 또 내가 너무 어렸었다. 머리는 백발이 많이 섞여 있었지만, 키도 크시고, 눈도 크셨다. 우리 할아버지랑 참 많이 닮으셨는데 훨씬 젊고 미남이셨다.

　막내 할아버지는 구르듯이 거실로 들어오시더니 할아버지 영정사진 앞에서 고꾸라지시며 통곡을 하셨다. 많은 이들이 조문을 왔다 갔지만, 막내 할아버지처럼 오열하는 이는 처음이었다. 막내 할아버지는

　“형수! 와 형님 아프다는 얘기를 내한테 안했습니꺼?”

　하며 울부짖었다. 그러더니 할머니 볼을 두 손으로 잡고 자기 볼을 비비며 울었다. 할머니는 막내 할아버지 등을 쓸며

　“고마하이소.... 괘안습니더..... 형님이 얘기하지 말라했습니더....”

　하셨다. 막내 할아버지는 결국 할머니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저토록 슬퍼해 주시는 막내 할아버지가 참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심장을 내어준다는 것은 이렇게 위험하고 아픈 일이다. 하지만 심장을 내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파도 오늘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