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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78화 태화 장가가는 날
작성일 : 20-09-29 12:07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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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화 태화 장가가는 날

 

 벚꽃이 다 떨어져 내리고, 앵두꽃이 환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5월, 태화의 유림이의 혼롓날이 잡혔다. 유림이네 집 마당이 너무 좁아 혼례식을 노미네 친정에서 하기로 했다. 남화를 따라 서현이도 내려와 있었고, 다혜도 따라왔다. 도와줄 여인들이 많아 음식을 금방 다 만들어 냈다.

 

 전을 부치는데 전 위로 앵두꽃이 떨어져 내렸다. 노미가 시집가던 두메골 집에도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경주집에도 앵두나무가 있었다. 노미는 반가운 마음에

 

 “오메나!”

 

 하며 감탄했다. 노미는 그때처럼 앵두꽃 잎을 전 위에 올려 부쳐냈다.

 

 나비 족두리를 쓰고, 볼과 이마에 연지곤지를 찍고, 알록달록 색깔도 고운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유림이가 초례청을 향해 걸어 나오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아리따운 유림이 모습에 노미도, 노미 어머니도, 그리고 유림이 어머니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업어주던 동네 동생이 손아래 동서가 되었으니 이 또한 신기하고 감사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만감이 교차하기는 준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동무가 시집을 가니 준이는 좋아야 하는데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도 준이가 제일 좋아하는 태화 형이 신랑이니 준이는 섭섭하면서도 반갑게 눈으로 유림이에게 축하를 보내주었다.

 

 초례상 앞에 의젓하게 서서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던 새신랑 태화는 유림이가 다가오자 눈이 안 보이게 벙긋 웃었다. 신랑이 웃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장탄식을 했다. 노미와 진화 혼례식 때처럼 사람들은 잘생긴 신랑에게서 눈일 떼지 못하고 태화가 웃을 때마다 환호를 질렀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혼례식이 끝나고 신랑은 신부 측 어른들께 인사를 하느라 절을 수없이 하고, 잔을 수없이 받아야 했다. 그 잔을 다 받아 마셨다가는 첫날밤 떡실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신랑들은 대부분 그 술을 입만 대고 만다. 태화도 요령껏 주시는 술을 입만 대고 내려놓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거나하게 취한 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자! 새신랑 어딨노? 이대로 신방에 넣어줄 수는 없다!”

 

 하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우르르 태화를 향해 몰려왔다. 유림이 사촌 오빠들과 그 친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산적처럼 생긴 외사촌 오빠가 제일 우락부락했는데 팔을 걷어붙이고는 커다란 마른 북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북어가 아니라 커다란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야차 같았다. 태화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유림이 외사촌 오빠는 한달음에 마루 위로 올라와서는 태화를 어깨 위로 둘러맸다. 앗 할 틈도 없이 그에게 붙들려가면서 태화는 노미와 형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형들은 아무도 말려주지 않았다.

 

 태화는 다리가 묶인 채 마루 중앙에 매달렸다. 석이랑 남화 장가가던 날은 태화가 형들 발바닥을 때리며 신났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발바닥을 맞을 차례였다. 석이와 남화는 조금은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고, 정화는 재미있어 죽겠고, 진화는 그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민화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저러다 혹시라도 또 발작이 나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노미도 민화 표정을 읽고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니 어데라고 최씨 집안 딸을 넘보노? 으잉?”

 

 하며 외사촌 오빠가 태화의 발바닥을 북어 몽둥이로 철썩 때렸다. 태화는

 

 “아이고! 형님! 저가 넘본 것이 아닙니더!”

 

 하는데 산적 형은 또 한 대를 더 내리쳤다.

 

 “어대서 변명이고? 니 잘했나 몬했나?”

 

 하며 또 찰지게 발바닥을 내리쳤다. 다들 재미난 구경거리에 박장대소를 했다.

 

 “아야!! 아픕니더!! 제가 앞으로 잘 합니더. 용서해주이소!”

 

 하며 태화가 애처롭게 빌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와하하 하고 웃었다.

 

 “잘몬한 게 없는데 와 용서를 비노? 으잉?”

 

 하며 그는 또 태화 발바닥을 세게 내리치는데 이번에는 제법 아팠는지 태화 비명 소리가 ‘아야야!’ 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다들 그저 와하하 하고 웃을 뿐이다.

 

 그때였다. 많이 아팠는지 몸을 비틀던 태화가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민화 눈이 휘둥그레졌다. 걱정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처 태화가 발작이 난 것을 알지 못했다. 민화가 사람들을 헤치고 마루 위로 뛰어들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신방 문틈으로 안타깝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유림이가 튀어나왔다.

 

 “오라버니! 고마하이소!”

 

 유림이는 태화를 향해 와락 달려와 자기 무릎 위에 태화를 눕혔다. 그제야 사람들은 태화가 눈에 흰자만 보이는 채로 몸을 심하게 흔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유림이는 당황하지 않고 태화의 손을 잡고는 태화의 가슴을 자기 손으로 가만가만 토닥이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유림이는 노미에게 태화의 병에 대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발작이 나면 그렇게 가만히 자장가를 불러주면 된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멍멍개야 짖지 말고, 꼬꼬닭도 울지 마라,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봄이 되면 달래 먹고, 여름 되면 참외 먹고,

 가을 되면 홍시 먹고, 겨울 되면 알콩달콩,

 우리 아기 예쁜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왁자하던 마당은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어느새 유림이 자장가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화의 발작은 천천히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당황한 산적 형은 괜스레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곁에 같이 있던 예쁘장한 형 친구가 조용히 속삭였다.

 

 “둘도 없는 인연인갑다. 둘은…….”

 

 하며 빙그레 웃었다. 유림이 눈에 눈물이 맺혔는데 그 눈을 태화가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빙긋이 웃었다. 유림이도 태화가 웃자 그제야 안심이 되어 따라 웃었다. 예쁜 보조개가 볼우물을 만들며 쏙 들어갔다. 태화는 유림이 얼굴에 손을 뻗어 볼을 어루만졌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노미는 눈물을 훔쳤다. 민화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짧게 한숨을 쉬었다.

 

 “형수님, 이제 자가 진짜로 지 짝을 만났네예. 이제 진짜로 보내도 되겠네예.”

 

 하며 민화는 웃었다.

 

 

 혼례식을 치룬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유림이네 집으로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이 왔다. 소식을 알 수 없어 죽은 줄만 알았던 유림이 오빠 준환이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러나 유림이도 유림이 엄마도 한글을 읽을 줄 몰랐다. 태화가 자랑스럽게 준환이의 편지를 아내와 장모님께 읽어드렸다.

 

 내용은 이랬다. 일본군에 징병당한 준환이는 자살부대로 악명이 높은 ‘가미카제 특공대’가 되었다. 함께 끌려간 조선의 소년들이 한명 두명 비행기에 태워져 어딘가로 날아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준환이 차례도 머지않았다. 준환이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준환이는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했다. 그 밤을 뜬눈으로 보낸 준환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미군 군함을 향해 날아가 자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거부할 힘도 의지도 상실한 채 준환이는 비행기 엔진을 켰다. 그런데 프로펠러가 돌다 말았다. 엔진이 꺼져버린 것이다. 결국, 비행기 결함으로 준환이의 출정 일은 내일로 미루어졌다. 하루 더 늘어난 목숨이었지만 준환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다음 날, 갑자기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군의 폭격이 시작된 것이다. 쏟아지는 미사일 속에 천정이 무너져 내리고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 소년들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준환이는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준환이를 흔들어 깨웠다. 미군이었다.

 

 준환이는 그렇게 미군 포로가 되어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는 항공모함 안에서 준환이를 잘 본 한 미군 중령의 도움으로 미국에 적응하게 되었다. 명석한 준환이는 영어도 빨리 배웠고, 일본어도 잘해서 통역하는 일을 맡았다. 그 사이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준환이는 조선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국은 한국에서 너무 먼 나라였다. 편지를 몇 번인가 부쳤지만, 우편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아 준환이가 부친 편지가 모두 돌아왔다. 그러다 준환이는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제야 제대로 주소를 써서 보내게 된 것이다. 징병당한 지 3년 만이었다.

 

 유림이 어머니는 편지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셨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준환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준환이는 미군 신분으로 겨우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태화를 만난 준환이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켜준 매제에게 한없이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 시민이 되어 미국에 가족까지 생긴 준환이는 그렇게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말
 

 아픈 역사 속에 우리 가족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사할린으로, 하와이로, 미국으로 자의든 타의든 떠나야 했던 우리 동포들이 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 바다 건너 먼 나라에 가 있다면, 함께 있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보고 싶어 하는지 이야기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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