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달 그리고 우물
태화는 노미가 시킨대로 정말 벚나무 아래 그린 듯이 앉아 있었다. 노미는 태화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유림이와 유림이 어머니를 맞으러 대문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유림이 어머니는 노미 두 손을 맞잡고 반기셨다. 오늘따라 더 고운 유림이는 어머니 옆에서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얼굴로 달처럼 웃고 있었다.
노미는 얼른 마당 가운데 평상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와 앉았다. 그리고는
“우리 도련님 어디 계시나?”
하며 찾는 체했다. 도련님 이야기가 나오자 유림이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유림이 어머니가
“도련님? 도련님이 같이 계시나?”
하고 물었다.
“야, 지 여 데리고 온다고 같이 왔습니더. 워낙에 인물이 훌륭하셔가 온 길에 혼처를 좀 알아볼까 하는 중입니더. 어디 좋은 혼처 있으믄 중신 좀 서주이소.”
하며 노미는
“도련님, 도련님, 태화 도련님, 어디 계시는교?”
하다가
“오매, 저 계시네.”
하며 벚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유림이도 유림이 어머니도 벚나무 쪽을 보았다. 엷은 봄바람에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벚꽃들이 태화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리는데 그림을 그려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저리 아름다운 그림이 있을까 싶었다.
“에그머니!”
하며 태화를 발견한 유림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귀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유림이 어머니도 멀리 있는 태화를 보고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노미가 눈짓으로 태화를 불렀다. 태화는 안절부절못하며 일어서더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는데 유림이 어머니는 넋을 놓고 태화를 바라보았다.
“오메, 시상에! 우찌 저리 잘 생겼는교? 내 평생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봅니더.”
하며 유림이 어머니는 노미에게 속삭였다. 노미는 자랑스럽게
“우리 도련님은 얼굴보다 마음이 더 잘생긴 사람입니더. 진짜로 성품이 그림 같은 사람입니더.”
했다. 가까이 다가온 태화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신교? 정가 태화라합니더.”
하며 환하게 웃었다. 태화는 감히 유림이와 눈도 못 맞추고, 유림이도 감히 태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유림이는 태화를 옆으로 힐끗 한 번 보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아이 모습이 우스워서 유림이 어머니와 노미는 소리 안 나게 웃었다. 그러더니 태화는 다시 쪼르르 벚나무 아래로 달려가 아까처럼 앉아있었다. 노미는 아차 싶었다. 작전을 세울 때 오라는 얘기만 했지 그다음에 어찌할지를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전을 영 잘못 알아들은 태화는 다시 벚나무 아래로 가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노미는 우습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했다. 그때였다. 대문으로 불쑥 진화가 들어왔다.
“아이고, 홍이 아버지 오는교?”
하며 노미가 진화를 반겼다. 진화는 마루에 앉은 노미를 향해 웃으며 다가와 손에 쥔 종이봉투를 건넸다. 오다가 산 보리빵이었다. 진화는 노미와 같이 있는 낯선 여인들에게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유림이 어머니와 유림이가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서방님입니더.”
하며 노미가 진화를 소개하자, 인사를 받은 유림이 어머니는
“참말로, 내가 어제 꿈을 잘 꾸었다 싶더니 이래 잘생긴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내예.”
하며 혀를 내둘렀다. 진화는 그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눈으로 태화를 찾다가 감나무 아래 앉아있는 태화를 발견했다.
“자는 저서 모하노? 태화야!”
하고 불렀다. 그제야 형을 발견한 태화는 깜짝 놀라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큰형 왔습니꺼?”
하면서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쩔쩔맨다.
“그래, 우찌 있나 싶어가 일부러 왔다. 근데 니는 거서 모하노?”
태화는 어찌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아, 그기... 그러니까....”
노미는 우스운 걸 참느라 애를 먹고, 진화는 태화가 왜 이러나 싶어 어리둥절했다. 태화는 그 와중에도 자꾸 유림이 눈치가 보이고, 유림이는 어머니 뒤에 숨듯이 앉아서 계속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다 결국은 태화와 눈이 마주쳤다. 태화는 유림이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그제야 진화도 유림이를 보았다. 이제야 눈치를 좀 챈 진화는 노미를 바라보았다. 노미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날 밤, 노미는 진화와 태화와 유림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씨 집안은 경주에서도 알아주는 양반 집안이라 진화네 집안 어른들도 반대하실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유림이네 집안에서 아픈 태화를 좋다고 하실지가 걱정이었다. 노미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혹시라도 말만 오가고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태화 도련님 마음 상할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자는 참말로 참하던데.... 내도 보자마자 참 탐나는 처자구나 싶었데이.”
하며 진화도 유림이가 마음에 들었다.
“내 묻지는 않았지만, 유림이도 우리 도련님을 보고 맘에 들어라 하는 것 같던데예. 시상에, 우리 도련님을 보고 맘에 안 들어 할 처자가 어디 있겠는교?”
하며 노미는 평소와 달리 목소리를 높였다. 진화는 그런 노미가 좀 우습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니는 내보다 태화를 더 좋아하는 거 같데이. 태화가 그래 잘 생깄나?”
노미는 순간 당황했지만, 서방님이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것에 이미 익숙했다.
“말해 모하는교? 보는 사람마다 시상 저래 잘생긴 사람 첨 본다 안합니꺼.”
그러자 진화는 진심 좀 섭섭했다.
“내는, 내는 안 잘생깄나? 내도 잘생깄다는 얘기 귀가 아프게 듣는다.”
노미는 진화가 오랜만에 좀 아기 같았다.
“참말로! 서방님은 서방님 입으로 맨날 내가 젤로 잘생깄다 하는기고예. 태화도련님은 다른 사람들이 다 젤로 잘생깄다 안 합니꺼.”
하며 노미는 얄밉게 웃었다. 진화는 입이 삐죽 나왔다.
“치~, 맨날 애들만 잘 생깄다 하고, 니는 내한테 한 번도 잘 생깄다 안 하는거 아나?”
노미는 그런 진화가 우스웠다.
“서방님은예~, 맘이 젤로 잘생긴 사람 아인교? 내 눈에야 우리 서방님이 젤로 잘 생깄지만, 그기야 어디까지나 내 눈에 그렇다는 기고예. 참말로! 어무이가 생긴 거 가지고 잘났네 몬났네 하지 말라 하셨다 안했습니꺼?”
“치, 그래도 내 좀 섭섭하다!”
진화는 정말로 삐친 거 같았다.
“지가 언제 서방님 얼굴 보고 시집왔습니꺼? 서방님 마음 보고 왔지.”
하고는 골이 잔뜩 난 진화 얼굴을 한번 어루만져 주고는
“내 눈에만 이쁘시면 됩니더.”
하고는 찡긋 웃었다.
“목 마르지예? 내 자리끼 안 가지고 왔습니더. 물 떠가 올게예.”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화는 노미가 한번 어루만져 준 것으로 슬그머니 마음이 풀렸는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보면 참말로 아기가 따로 없었다.
“니 참말로 잘도 빠져나간데이~. 이젠 고수다. 고수!”
하며 진화는 킥킥 웃었다.
노미는 부엌에 가 물을 주전자에 담아 방으로 향했다. 휘영청 커다란 보름달이 둥실 떠 마당이 환한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런데 그 환한 보름달 밑에 아까 유림이가 앉았던 마당 평상에 태화가 앉아있었다.
“유림아! 허허! 내 이름 불러도 되나? 달이 참 밝다! 니처럼 참 환하다. 내는 니 보고 나서 잠이 안 온다. 니는 잠이 오나? 내는 이래 달을 보고 있는데, 니도 저 달을 보고 있나? 내는 니 생각 하는데, 니도 내 생각 하나? 달이 꼭 니를 닮았다.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보조개도 이쁘고~, 니는 모 먹고 그리 이쁘노~!”
하며 혼자 좋아 허허 웃고 있었다. 노미는 감히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노미는 속으로 큰일 났구나 싶었다. 총각이 처녀를 한번 보고는 홀딱 반해서 지금 달을 보고 시를 읊고 있는 것이었다. 총각이 처녀한테 반하면 저렇게 다 시인이 되는 모양이다.
노미는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진화는 집에 돌아가 집안 어른들께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노미는 일단 유림이 엄마와 이야기를 했다. 유림이 엄마는 태화가 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도 태화를 맘에 들어 하셨다. 태화도 태화지만 노미가 큰동서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하셨다. 유림이 엄마도 집안 어른들과 상의하셔야 했다. 그러나 유림이 엄마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셨다. 징병을 당해 전쟁터에 끌려간 유림이 오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직 소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해방된 지 석 달이 넘어가고 있는 때였다. 유림이 오빠인 준환이는 아직 학생인 열여덟 살에 학도병으로 영장이 나와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리고 ‘가미 가재’ 특공대라고 알려진 일본의 자살 공군부대에 소속되었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어린 소년들은 오로지 가는데 필요한 연료만을 채운 비행기를 몰고 미군 군함을 향해 돌진하도록 훈련받았다. 아직 어린 소년들은 정신적으로 세뇌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일본과 조선의 수많은 어린 소년들이 가미 가재 특공대로 훈련받고 그렇게 자살부대가 되어 미군 군함을 향해 날아가 자폭했다. 태평양 전쟁 역사 속에 남아있는 믿을 수 없는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 중 하나다. 거기에 유림이 오빠 준환이가 있었다. 온 집안이 자랑스러워하던 공부 잘하고, 성품 좋은 아들이었다.
유림이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마음을 정했다. 광복이 되었다고는 하나 백성들의 시름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북쪽은 러시아군이, 남쪽은 미군이 들어왔다. 함경도에서는 러시아 군인들이 한 마을 처녀들을 다 욕보였다는 소문이 돌았고, 장성한 딸이 있는 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딸들을 집 밖으로 못 나가도록 했다. 우물에 물 길으러 나가는 것조차 못하게 했다.
상황은 남쪽도 마찬가지여서 미군들이 어느 마을 처녀들을 겁탈했다는 소문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미군들은 처녀뿐만 아니라 밤에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와 결혼한 여자들도 심심치 않게 욕보였다. 그래서 딸 가진 부모들은 서둘러 딸들을 혼인시키려 했고, 근처에 미군 부대가 있는 동네에서는 남자들이 밤낮으로 경계를 섰다. 이것이 전쟁의 민낯이었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무고한 죽음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인이 이렇게 대책 없이 겁탈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세상 가장 귀한 것도 사람이고, 세상 가장 추한 것도 사람이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도 사람이고, 세상 가장 무서운 것도 사람이다.
진화는 내일 구길로 돌아가 집안 어른들과 태화 혼사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태화도 형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태화는 밤새 뒤척였다.
이른 아침 태화는 식구들 모르게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동네 우물로 갔다. 유림이가 물을 길으러 오는 곳이었다. 태화는 고향에 가기 전에 유림이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물가 대나무 숲 뒤에 몸을 숨기고는 유림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부지런한 아낙네들이 동이 채 뜨기도 전에 물동이를 머리 위에 이고 나타났다. 그렇게 몇 차례 여인네들이 우물을 다녀갔는데도 유림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화는 슬그머니 애가 탔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 하고 괜한 걱정도 들었다. 그렇게 슬슬 걱정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터지기 직전 멀리 자그마한 소녀가 자기 몸만 한 물동이를 이고 오는 것이 보였다. 유림이었다. 태화는 순간 숨이 멎었다.
물동이를 머리에서 내리고는 우물 옆에 걸린 두레박을 달아내려 물을 길어 올리는 손이 한없이 작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태화는 당장 달려가 물을 대신 길어 올려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유림이가 혼자 픽하고 웃었다. 예쁜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데, 그 모습에 태화는 또 숨이 턱 막혔다.
‘자는 우찌 저리 이쁘노~’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태화는 자기도 모르게 짦은 한숨을 토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좀 컸는지 유림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태화는 얼른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유림이는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다시 물을 길어 물동이를 채우더니 머리 위에 힘겹게 이었다. 태화는 자기도 모르게 또 ‘아이쿠!’하고 낮은 소리를 내었다. 유림이가 소리 난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대나무숲 뒤에 숨어있는 태화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유림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대로 집 쪽을 향해 걸어갔다. 태화는 이대로 유림이를 한참이나 못 보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유림이 앞에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유림이가 막 우물터를 나서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우물은 동네 동구 밖 대로변에 있었는데 그 길로 차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갔다. 유림이는 어쩔 수 없이 길옆으로 피했다. 미군 지프였다. 그렇게 길을 지나가던 지프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후진을 해서 유림이 쪽으로 다가왔다. 숨어서 보고 있던 태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그 지프에서 미군 두 명이 내렸다. 두 사람 다 젊은 백인 병사였는데 그들은 유림이를 향해 휘파람을 불며 다가왔다.
“Hey, baby~! So pretty! Look at her eyes! She is gorgeous!”
(안녕, 아가씨~! 이쁘군! 눈 좀 봐! 끝내주는데!)
일본이 물러간 후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들어왔다. 작은 나라 코리아의 소녀들은 또다시 위험에 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