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서현이
며칠 후, 남화는 이제 설을 쇠러 고향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었지만 날씨도 화창하고 겨울치고는 따듯한 날이었다.
서울역 근처로 온 남화는 자기도 모르게 그 국밥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는 길이 아니었는데도 남화는 일부러 그쪽으로 돌아서 간 것이다. 며칠 전 그 일이 있고 난 뒤 남화는 내내 그 소녀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열려진 대문으로 마당에 늘어놓은 평상 위에 이른 점심을 먹고 있는 손님들이 몇 보였다. 남화는 들어갈까 말까 하고 망설였다. 소녀가 못내 걱정되기도 했지만, 딱히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남화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집 아들 권이였다.
“선생님, 선생님 때문에 우리 누나 큰일 났어요. 어서 좀 와보세요.”
하며 아이는 큰 눈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화가 거절할 틈도 없이 권이는 남화를 끌고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국밥집에 들어서니 마루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서현이를 앞에 두고 뭔가 잔뜩 화가 난 주인 부부가 서현이를 막 몰아붙이고 있었다. 남화가 권이와 함께 국밥집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발견한 주인 남자가 주먹을 쥐고 흔들며 금방이라도 남화를 칠 듯이 달려왔다.
“선생! 마침 잘 왔소! 선생이 애한테 이상한 사상을 넣어준 바람에 저년이 저렇게 딱 버티고 앉아서 일을 안 하니, 선생이 책임지시오!”
남화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서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의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비쳤다. 그러나 서현이는 이내 독살스럽게 바라보는 안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남화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겪어보았지만 남화는 이들처럼 보기 싫고 대하기 싫은 이를 만난 적이 없었다. 잠시 겪었는데도 이렇게 이가 떨리는데 서현이는 과연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앉아 있던 안주인이 남화를 향해 돌아앉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흠! 얘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선생님 만나고 난 후로 일을 안 합니다. 일을 안 하겠답니다. 그럴 거면 나가라고 했더니 나가지도 않고 저러고 버티고 있습니다. 어디 돈 많은 홀아비한테라도 확 팔아버리든지 해야지. 원, 내가 아니꼬와서 정말~!”
그 말에 갑자기 주인 남자가 안주인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왜? 어디 알맞은 사람이 있어?”
한다.
“그런 사람이야 널렸으니 알아보면 되죠. 얼마 전 갈비집하는 김가네가 아들 장가들이면서 축의금을 엄청 땡겼다던데, 일단 어디 시집이라도 보내면 축의금은 받을 거 아녜요?”
돈 얘기가 나오자 주인 남자가 입맛을 다셨다.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하며 벌써 축의금으로 한 몫 땡긴 표정이다.
“늙은이한테 시집을 보내면 늙은 서방 죽은 다음에 부조금도 땡길 수 있지요. 축의금보다 그게 더 짭짤하다잖아요. 지난달 이씨네 아들이 죽었는데 그 집도 부조금이 제법 나왔지요, 아마? 그 집 아들이 장가 간지 얼마 안 돼서 죽은 거라 그 부조금을 며느리가 다 가져갔다고 얼마나 앵통해 하던지.”
하며 안주인은 혀를 끌끌찼다.
“그런 게 어딨어? 지 아들인데. 그거 부모가 다 가져야지 그걸 왜 며느리가 가져?”
“며느리 고게 보통내기가 아니라 돈을 보더니 돈 욕심이 났던지 세상에 자기 시부모한테 삼분지 일도 안 내주더래요. 요망한 것!”
그들은 마치 자기가 당한 일인 것처럼 원통해 했다. 남화는 그들의 대화를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사람을 앉혀놓고 그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입니까?”
그제야 그들은 자기들이 남화를 놓고 이야기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맞다! 내 정신 좀 봐. 그러니까, 선생! 얘 어쩔거요?”
“어쩌다니요?”
“선생 왕진 가방 들고 다니는 거 보니 의사 선생인 모양인데, 혼인은 했소? 안 했으면 얘 데리고 가시오. 선생이 책임지란 말이오!”
하며 주인 남자가 남화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남화도 놀라고, 서현이도 놀랐다. 그런데 이게 미리 서로 의논을 하고 한 말이 아니라 주인 남자가 즉흥적으로 생각한 말인 모양이었다. 안주인이 남편의 말을 막아섰다.
“아니, 여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얘를 왜 저 선생한테 줘요?”
하더니 자기 남편을 확 잡아끌어다 귀에 대고 이를 물고 속삭였다. 그런데도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다 들렸다.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얘를 왜 줘요? 돈도 없게 생겼구만~!”
하며 곁눈으로 남화를 째려보았다. 그제야 주인 남자는 아차 싶었는지
“뭐, 그건 됐고! 얘 책임질 생각 없으면 당장 가시오. 내 참 재수가 없으려니 원~”
하며 남화의 눈을 피했다. 서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남화는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이런 악을 본 적이 없었다. 수많은 악을 보고 수많은 탐욕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악을, 이런 탐욕을 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남화가 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었던 그 어떤 탐욕보다도 더럽고, 추하고 역겨운 것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점점 더 이런 사람들이, 이런 탐욕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들의 탐욕은 어찌 보면 순수할 만큼 단순했다. 돈, ‘돈 욕심’이었다.
세상을 더럽히는 수많은 욕심이 있다. 여자를 그저 육체적 대상으로만 보는 ‘색욕’에 빠진 인간들이 있고, 세상 모든 것이 자기 발아래 꿇어야 하는 ‘권력욕’에 빠진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 순수한 인간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욕심이 바로 이 ‘물욕’. 즉, ‘돈욕심’이다. 그들은 돈을 위해 무엇이든 판다. 친구, 가족은 물론이고, 사돈에 팔촌, 아는 모든 이들이 팔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자식도 예외일 수 었다. 그들에게 ‘아는 사람’이란 좋게 말해 가장 손쉬운 비즈니스대상이고, 돈 되는 사람들이란 뜻이기도 하다. 조선은, 한국은 오랫동안 ‘정’으로 이어지고, 유지된 나라였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빠르게 변하면서 그 ‘정’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나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으로 이어져 온 사람들이 정을 돈으로 바꾸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런 이들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 자식은 돈을 못 벌면 ‘평생을 병신처럼 사는 쓸모없는 병신 새끼’가 되고, 돈을 잘 벌면 ‘평생 부모에게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봉’이 된다. 그들에게는 10억도 100억도 모자라다. 동화가 아니다. 실화다. 낳으시고 기르신 빛나는 어버이 은혜는 동화, 어버이가 진 빚, 돈 잘 버는 잘 나가는 자식이 대신 갚으라 하고, 자식을 그저 노후에 돈 대주는 수단으로 보는 부모들이 제법 많다는 것은 실화다. 사람이 다 아름다울 수 없듯이, 부모가 다 좋은 사람들일 수는 없다.
남화는 이들과 더 말을 섞을 이유가 없었다. 서현이 남화를 애타는 눈으로, 그리고 한없이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애기씨, 저를 따라 오시겠습니까?”
남화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가라앉히며 낮게 단호하게 말했다. 서현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예?”
서현이는 듣고도 자기 귀를 의심했다.
“저를 따라오시겠느냐고요. 여기 계시면 안 되실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그것은 애기씨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저는 정가 남화라 합니다. 아직 공부중인 의대생입니다. 고향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작은 시골입니다. 지금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서현이는 잠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외삼촌과 숙모를 보았다. 그리고 한쪽에 서 있는 권이와 그 옆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더 어린 두 여동생들을 보았다. 서현이는 두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제 꾸려두었는지 한쪽에 놓여있던 보따리를 안아 들었다. 당장 나가라며 외숙모라는 여자가 싸놓은 것이었다. 서현이는 정신없이 자기 짚신을 구겨 신고는 남화 옆에 섰다. 막상 서현이 두말도 하지 않고 보따리를 들고 남화 옆에 와서 서자 남화도 좀 놀랐다. 서현은 입을 꼭 다물고 단호한 표정으로 남화를 바라보았다. 남화는 일단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러나 망설일 수 없었다. 남화는 그대로 서현이 손목을 잡았다. 손목이 잡히자 서현이 순간 숨이 멎었다. 하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남화는 그대로 서현이의 손목을 잡은 채로 서현이를 데리고 그 집을 나왔다. 주인 부부가 뭐라고 소리를 치며 따라 나왔다. 하지만 남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이놈아! 돈! 돈 내고 가!”
하며 주인 남자가 남화와 서현이 앞을 막아섰다.
“무슨 돈이요?”
“얘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아? 데리고 갈 거면 돈을 내!”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남화는 키가 한참이나 작은 남자를 눈 아래로 노려보았다.
“제가 이래 뵈도 높은데 아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어떻게, 경찰서 같이 가실까요? 아가씨는 아가씨 자유의사로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제 선배님들 중에 판사, 검사도 있고, 경찰서장도 있습니다.”
남화는 말하면서도 자기 입이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남화가 제일 싫어하는 인맥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떼어내려면 이보다 좋은 수가 없었다. 역시나 그 수가 통했다. 남자는 그만 입을 딱 닫아버렸다. 뒤쫓아 나오다 남화의 이야기를 들은 안주인 역시 억울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서현이는 잠시 남화의 얼굴을, 그리고 문가에 서 있는 권이와 어린 여동생들의 얼굴을 보았다. 서현이는 동생들에게 다가갔다. 권이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서현이를 바라보았다. 서현이는 권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권아, 누나가 꼭 다시 올게. 너 보러 올게. 그러니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야 해. 꼭 잘 살고 있어야 해.”
서현이는 마지막으로 권이를 끌어안았다. 권이는 울음을 꾹 참았다. 서현이는 어린 여동생들도 한 번씩 안아주었다. 하지만 어린 여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만한 나이가 아니라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서현이는 눈을 부라리고 서 있는 외삼촌과 숙모에게 큰절을 했다.
“그동안 거두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하신 행동들을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두 분 자식들이니 잘 돌봐주십시오. 이 아이들에게까지 죄를 지으시면 하늘이 용서치 않으실 것입니다.”
서현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이 눈을 똑바로 뜨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남화 옆에 와서 다시 남화의 팔을 잡았다. 남화는 깜짝 놀랐다. 여인이 자기의 팔을 잡은 것이 처음이었다.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남화는 그대로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당연히 남화 팔을 붙잡고 있는 서현이도 남화를 따라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