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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67화 폭우
작성일 : 20-09-29 11:11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8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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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7화 폭우

 

 그렇게 그날 죽은 이들이 셋이 더 있었다. 시신 수거를 맡은 동네 아재들이 들것을 들고 와 민화를 데리고 나갔다. 태화가 몸부림을 치며 민화를 데리고 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태화를 형들이 붙들고 있어야 했다.

 

 “개가 죽어도 이래는 안 한다! 내놔라! 애 내려놔라! 못 델꼬 가게 해라! 형! 큰형! 민이 몬 델꼬 가게 해라!!!”

 

 태화 울부짖는 소리에 모두 가슴이, 심장이 갈가리 찢겼다. 그런 태화를, 발버둥 치는 아이를 형들이 겨우 붙들고 있었다. 진화는 태화 얼굴을 가슴에 끌어안고 민화 나가는 것을 못 보게 했다. 하얗게 질린 채 돌멩이처럼 앉아있는 윤화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펑펑 울고 있는 석이를 품에 안았다. 정화는 부들부들 떨며 그 모든 광경을 보았다. 그런 정화의 어깨를 남화가 꽉 쥐고 있었다.

 

 

 결국, 민화가 들려나갔다. 들것에 실린 주검 위에 가마니를 덮었다. 태화 말대로 개가 죽어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듯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세상 가장 고운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 더 숨이 붙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저 가마니 하나를 덮어 동구 밖 나무 밑에 갖다 버린단다.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도 이보다는 덜 할 것이다.

 

 정화가 동구 밖 나무 밑까지 쫓아 뛰어갔다. 이미 죽은 사람들 사이에 민화를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새하얀 손이 들것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만지려고 다가가려는데 아재들이 말렸다. 금줄이 둘러쳐져 있는 동구밖 나무 밑으로는 이제 아무도 갈 수 없었다. 정화가 천둥 같은 소리로 고함을 치며 울부짖었다. 그때 하늘에서 정말 천둥이 쳤다. 그리고 비가 쏟아졌다.

 

 

 밤새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남화는 그 빗속을 뚫고 아픈 이들을 돌보고 다녔다. 속절없이 떠난 이도 있었지만, 해열제를 맞은 이들 중에 재성이는 열이 내리고 살았다.

 

 세상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있다. 그런 아픔을 만나거든 그냥 아프면 된다. 아픔도 사랑이다. 사랑하면 된다. 아프다고 죽으면 안 된다. 죽으면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과 함께 사랑도 사라질 것이다. 죽고 싶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모두 결국 죽는다. 서두를 필요 없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수많은 팬이 있는 스타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가 그렇다. 아무리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도 내가 사랑하는 이가 없으면 죽는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은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아픔도 끝나지만 사랑도 끝나기 때문이다.

 

 

 모두 태화가 또 쓰러질까 봐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태화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넋이 빠져나간 채로 멍하니 민화 누웠던 자리만 보고 있었다. 윤화는 그저 또 돌멩이처럼 바위처럼 앉아있었다. 석이는 계속 흐느끼다 지쳤다 다시 또 흐느꼈다. 정화는 태화를 끌어안고 누웠다. 혹시라도 태화가 잘못될까 봐 정화는 태화 곁을 떠나지 않았다. 태화마저 가버릴까 봐 정화는 그렇게 태화를 꽉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진화는 그런 두 동생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태화는 눈을 부릅뜬 채로 감지 않고 있었다.

 

 비에 홀딱 젖은 남화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진화는 얼른 수건을 가져다 남화를 마루에 앉혀놓고는 머리를 닦아주었다. 남화가 진화 어깨에 머리를 묻고 조용히 소리 나지 않게 울었다. 진화는 그런 남화 등을 두드렸다. ‘네 탓이 아니다.’ 하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노미는 그 와중에도 보채는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재우고 해야 했다. 홍이가 졸린지 자꾸 삼촌들을 돌아가며 들여다보았다. 홍이는 이제 일곱 살이었다. 건넛방으로 들어간 홍이는 앉아있는 윤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윤화가 빙그레 웃었다. 홍이는 누운 채로 울고 있는 석이를 보았다. 석이는 홍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홍이는 마루에 있다 방으로 들어오는 남화를 보았다. 남화가 홍이를 안으려 하자 홍이는 쓱 뒤로 몸을 뺀다. 그리고는

 

 “민이 삼촌~”

 

 했다. 홍이는 졸리면 민화를 찾았다. 찾던 사람이 없으니 홍이는 뿔이 나 얼굴이 씰룩거렸다. 진화가 홍이를 안아 들었다. 아빠 품에 안겨서도 홍이는

 

 “민이~”

 

 했다. 진화는 홍이를 안고 달랬다.

 

 “홍아, 오늘은 아빠랑 자자. 민이 삼촌은 지금 여 없다.”

 

 했다. 홍이는 결국 울음이 터졌다.

 

 “민이~~!”

 

 진화도 울었다. 울며 홍이를 달랬다.

 

 

 겨우 잠든 홍이를 벌써 잠든 원이 옆에 눕히고 진화는 벽에 기댄 채 눈만 감고 있는 노미 옆에 와서 앉았다. 진화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생들을 살피느라 참았던 울음이 노미 옆에 앉으니 터진 것이었다. 노미는 팔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는 진화를 바라보았다. 노미는 진화의 다른 팔을 붙들고는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진화의 울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가.... 꼭 살린다고.... 꼭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더....”

 

 노미는 조용히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진화는 노미를 바라보았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안 뺏긴다고... 아무도 내한테서 몬 가져가게 한다고.... 했습니더.....”

 

 노미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이다.”

 

 하고 진화가 말했다.

 

 “이래 말하면.... 자꾸 이래 말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더.”

 

 노미는 진화를 보며 흐느꼈다.

 

 “하늘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줄 알았습니더.”

 

 노미는 흑흑 흐느껴 울었다. 꺼이 꺼이하고 터진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진화는 그런 노미를 가슴에 안았다.

 

 “사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하늘이 아이다. 하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사람이다. 내보다 니가 하나님이랑 더 친하다 아이가. 근데 그것도 몰랐나?”

 

 노미는 진화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내내 울었다.

 

 “하느님이 지금 뭐라 하시노? 뭐라 하시는 거 같노? 니가 하느님이랑 더 친하니 좀 알아봐 도. 우짜면 좋을지, 우찌해야 하는지....”

 

 하며 진화도 노미를 안고 흐느껴 울었다.

 

 모두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있었다. 일곱 소년들은 그저 형제들이 아니었다. 어쩌다 그토록 강하게 서로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로 연결된 한 개의 영혼처럼 한순간도 서로 다른 무엇인 적이 없었다.

 

 노미는 그 사랑이 참 부러웠다. 참 보기 좋았다. 그렇게 노미도 그 사랑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자랑스러웠고, 뿌듯했고, 늘 대견했고, 소년들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빛나고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인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지켜낼 수 있다고 믿었고, 사랑을 준 만큼 담뿍 받은 사랑에 노미는 항상 행복했다. 항상 감사했다.

 

 그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밤새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 흐느끼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뿌우옇게 날이 밝고 있었다. 미순이를 데려갔을 때처럼, 윤화가 떠났을 때처럼, 태화랑 민화가 버선도 신지 못한 채 그 트럭에 끌려갔을 때처럼, 진화가 소식이 끊어진 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을 때처럼, 노미가 발가락이 부러져 원이를 안고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밤을 지내고 났을 때처럼, 그렇게 하늘은 또 밝아왔다. 비는 그쳤다.

 

 노미는 부엌으로 갔다. 민화가 내내 부지런히 만들어 놓은 무청 시래기가 있었다. 그걸로 된장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먹어야 했다. 노미는 식구들을 먹여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 하므로....

 

 물을 떴다. 버릇처럼 하얀 사발에 물을 떠 장독대로 갔다. 늘 그 자리에 물을 올리고 노미는 가슴에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그 아이를 내게,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아이와 사랑하며 살게 해주셔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귀한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 아이 있는 곳에 곧 갈테니. 가면 만날 테니. 다시 볼 테니. 그때까지 우리 모두 지켜주소서.’

 

 노미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도 한 솥 했다. 오랜만에 보리를 안 넣고 흰 쌀밥을 했다. 그런 노미를 윤화가 지켜보고 섰다. 노미와 눈이 마주치자 윤화는 힘없이 픽 웃었다. 그렇게 밥을 다 해놓고 노미는 원이 보채는 소리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밥 냄새와 된장국 냄새가 집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하늘이 아직은 어둑했다. 비는 어느 틈에 그쳤다. 온 천지에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둥구 밖 나무 밑, 여기저기 거적때기를 덮고 누워있는 시체들은 흉물스러웠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다. 모두 다 그렇게 이제는 숨이 멎은, 한 시절을 사람으로 살았던 가여운 영혼들이었다.

 

 밤새 무섭게 쏟아지던 비에 거적때기들이 모두 폭삭 젖어 있었다. 나무 밑에 놓인 민화의 거적때기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물방울은 뚝뚝 떨어져 거적때기 밖으로 비죽 나와 있는 민화의 하얀 손 위로 떨어졌다. 순간, 민화의 손이 움찔했다.

 

 어디선가 이른 아침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거적때기 위로 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리고 그 거적때기를 걷어내는 손. 민화가 눈을 떴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아침, 민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가벼웠다. 민화는 자기를 덮었던 거적때기를 걷어내고 자리에서 주춤하고 일어섰다. 맨발이었다. 민화는 집을 향해 걸었다.

 

 

 태화는 잠에서 깨어 마루 기둥에 머리를 대고 앉아있었다. 민화 없이 맞은 첫 아침이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민화와 태화는 한순간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원래 하나였다 둘이 된 듯 그렇게 내내 함께였다. 다툰 적도 있고, 미워한 적도 있었다. 싫은 적도 있었고, 귀찮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없었다. 태화가 언제 어떻게 발작이 와 뒤로 넘어갈지 모르니 민화는 그렇게 내내 태화 옆에 붙어 있었다. 싫었을 텐데, 힘들었을 텐데, 민화는 한 번도 태화를 혼자 두고 어디 멀리 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버렸다. 태화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제 좋나? 사생활이 생기가 이제 편하고 좋나?’

 

 태화는 하늘을 보았다. 거기 어디쯤 있으려나 싶었다. 밤새 비를 토해낸 구름이 가벼이 떠 있었다. 슬프지 않았다. 그런데 눈물은 흘렀다. 그저 저 구름이 보기 좋아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물안개가 마당까지 덮고 있었다. 구름이 내려와 앉은 듯했다.

 

 그런 태화 눈에, 물안개인지 구름인지 알 수 없는 희뿌연 기운이 가득한 마당을 보고 있는데, 태화 눈에 민화가 보였다. 싸리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하얗고 힘없는 그 형체는 태화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태화는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불렀다.

 

 “민화야~!”

 

 태화 부르는 소리에 그 형체는 이쪽을 본다. 어떤 사람이, 어떤 형체가 그토록 아름다울까. 태화는 민화가 아름다운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지금처럼 아름다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아마 죽어서 그런가 보다. 민화는 살아있을 때 보다 더 아름다웠다.

 

 “저승 가는 길에 내 보고시퍼 왔나?”

 

 태화가 빙그레 웃으며 그 형체에게 말을 걸었다. 그 형체는 천천히 태화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흩어지는 물안개를 가르며 그 형체는, 민화를 닮은 아름다운 형체는 그렇게 태화를 향해 다가왔다.

 

 “내... 죽었나?”

 

 그렇게 민화는 태화 앞에 와 앉았다. 가까이 보니 더 아름답다. 태화는 넋을 잃고 민화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꾸 눈물이 흘러 눈앞에 흐릿해졌다. 눈물을 훔치다 그 형체가 혹시 다시는 안 보일까 싶어 태화는 눈물도 훔치지 않은 채 앞에 앉은 민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이 이래 가볍나?”

 

 하고 민화가 말했다. 그러더니 코끝을 자극하는 밥 냄새와 된장국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부엌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근데, 와 배가 고프노?”

 

 하고 민화가 말하자

 

 “죽은 사람도 배가 고프다. 그래가 제사밥 해주는 거 아이가. 왜? 배고프나? 밥 주까?”

 

 하고 태화가 말했다. 민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형수님이 니 좋아하는 시레기 된장국 끓있다.”

 

 하며 태화는 부엌으로 가 그릇에 밥을 한가득 푸고, 된장국도 한 그릇 꽉 담아왔다. 그렇게 숟가락을 밥 위에 푹 꽂아서 가지고 와 민화 앞에 놓았다. 민화는 침을 한번 삼키더니 밥을 한술 뜨고, 국도 한술 떴다. 맛있다. 그리고는 밥을 국에 말아 또 한술 먹었다. 참 맛있다.

 

 “김치는 안 주나?”

 

 하고 민화가 말하자 태화는

 

 “알았다. 김치도 묵나?”

 

 하더니 김치를 가지고 나왔다. 민화는 김치도 먹었다. 참말로 맛있다. 태화는 민화가 맛있게 밥을 국을 김치를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민화 먹는 것을 보니 자기도 배가 고팠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민화는 정말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태화는 눈물이 쏟아졌다.

 

 “민화야, 맛있나?”

 

 하고 태화가 울먹였다. 민화는 볼이 빵빵하게 밥을 문 채로 대답했다.

 

 “엉...”

 

 태화가 큰 눈을 껌뻑이자 눈에 가득 찬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니 꼭 살아있는 거 같다. 죽은 사람 안 같다.”

 

 하며 흐느꼈다. 민화는 자기 얼굴을 만져보았다. 순간 민화는 으스스하고 몸서리를 쳤다. 밤새 비를 맞은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 있었다. 추웠다. 태화는 이제 얼굴을 다리 사이에 묻고 울었다. 차마 민화를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흐느끼고 있는 태화를 향해 민화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태화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화는 흠칫하고 놀랐다. 민화 손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태화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민화가 태화를 향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민....민아, 니 지금 내 만짔나?”

 

 민화는 태화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 좀 춥다. 옷 좀 도.”

 

 하며 민화는 태화를 향해 빙긋 웃었다. 민화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민화는 가만히 태화를 끌어안았다. 민화의 품에 안긴 태화는 넋이 나간 목소리로

 

 “민아, 내 니 만져진다....”

 

 하며 흐느껴 울었다. 그런 태화의 등을 민화가 가만히 두드리며

 

 “그래, 내도 니 만져진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태화는 아직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석이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몇 번이나 더 비볐다.

 

 “민화? 민화야??”

 

 석이가 제일 먼저 소리쳤다. 석이 소리에 우르르 뛰어나온 형제들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모두 자기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화가 가만히 용감하게 민화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볼을 어루만졌다. 만져진다. 눈을 까뒤집고, 코를 비틀어보고, 입술을 뒤집어 보았다. 귀도 비틀어보았다. 그리고 볼을 잡아당겼다. 민화가 짧게 ‘아야!’ 했다.

 

 “형아!!!”

 

 하며 정화가 민화를 부둥켜안았다. 안방에서 나온 진화와 노미도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남화가 달려와 민화의 맥을 짚었다. 이마도 짚었다. 남화 눈이 새빨개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민화는 살아있었다. 남화는 민화의 목 뒤 가슴까지 만져보았다. 남화가 자꾸 여기저기 만지니 민화는 간지럽고 부끄러웠다.

 

 “간지럽다. 만지지 마라.”

 

 하며 몸을 꼬더니 배시시 웃는다. 그제야 태화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정신이 들었다. 다들 민화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겨우 자리에 서 있던 윤화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이게 우찌 된 일이고? 남화야 니 말 쫌 해봐라!”

 

 하고 윤화가 남화를 다그쳤다. 기가 막히기는 남화도 마찬가지였다.

 

 “밤새 비가 오더니 그 비를 맞고 열이 내리믄서 숨이 돌아온 모양입니더. 내 숨 넘어갔다 살아난 콜레라 환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간혹 들었는데 이래 보기는 처음입니더.”

 

 남화는 의사로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셈이었다. 태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태화를 민화가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앉았다.

 

 “니는 내 안 반갑나?”

 

 한다. 모두 울음을 멈추고 태화를 바라보았다. 태화가 어찌하는지 모두 궁금했다. 태화가 손을 뻗었다. 민화 볼에 손을 대었다. 만져진다. 태화가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울컥 울음이 터지는데 꾹 참고 있다.

 

 “하도 다들 붙들고 흔들어가 내 볼이 막 아프다.”

 

 하며 민화가 괜스레 웃었다.

 

 “니 살았나? 살아 온 거 맞나?”

 

 하고 태화가 다시 묻는다.

 

 “암만해도 그런 거 같다. 사생활 물 건너갔다.”

 

 라고 민화가 말하자 태화가 귀청이 떨어지게 큰 소리로

 

 “민아!!!”

 

 하더니 민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볼을 비비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다시 볼을 비비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 그렇게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민화도 태화를 안고 가만히 울었다. 사생활은 물 건너갔지만, 민화는 다시 주신 생명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진화도 와서 민화를 안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야 옷부터 갈아입히라. 옷 젖었다.”

 

 그리고 진화는 맨발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바람에 새카맣게 된 민화 발을 보았다.

 

 “발도 씻자.”

 

 하며 한숨을 쉬었다. 민화가 부끄러운 듯 발을 숨기며 배시시 웃었다. 윤화는 볼수록 기가 막혔다.

 

 “니 지금 웃음이 나나?”

 

 민화는 고개를 돌려 노미를 보았다. 여전히 벌벌 떨며 서 있는 형수님과 눈이 마주치자 민화는 또 가만히 웃었다. 노미는 흐느끼며 다가와 민화를 끌어안았다. 노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민화 등을 쓸었다.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홍이가 깨서 나와 섰다. 그리고 민화를 보았다.

 

 “민이... 삼춘~~~”

 

 한다. 잠이 덜 깬 홍이가 민이 품에 안기려 하자

 

 “홍아, 삼촌 젖어가 안된다.”

 

 하는데도 홍이는 민이 품에 매달렸다. 민이는 할수 없이 홍이를 안아 들었다.

 

 

 말도 안 되는, 믿을 수도 없는 일을 모두 겪었다. 꿈인지 생신지 이게 뭔지 도대체 하늘은 왜 우리를 이다지도 괴롭히시고 놀리시는지 알 수 없지만, 늘 그렇듯 하늘 아래 우리는 살아있는 한, 숨이 붙어 있는 한, 그저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살을 비비며 사랑하며 좋아하며 이뻐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날 아침, 그렇게 민화가 죽었다 살아온 아침, 식구들은 오랜만에 배가 터지게 흰쌀밥에 시래기 된장국을 먹었다.

 

 

 늘 그렇듯 하늘 아래 우리는 살아있는 한, 숨이 붙어 있는 한, 그저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살을 비비며 사랑하며 좋아하며 이뻐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많이 많이 많이 아주 많이 서로 사랑해주세요. 서로 이뻐해 주세요. 서로 좋아해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답니다.

 

 

 
작가의 말
 

 늘 그렇듯 하늘 아래 우리는 살아있는 한, 숨이 붙어 있는 한, 그저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살을 비비며 사랑하며 좋아하며 이뻐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많이 많이 많이 아주 많이 서로 사랑해주세요. 서로 이뻐해 주세요. 서로 좋아해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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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제73화 남화의 옥가락지 2020 / 9 / 29 273 0 5116   
73 제72화 가족회의 2020 / 9 / 29 265 0 5668   
72 제71화 서울말 쓰는 애기씨 2020 / 9 / 29 288 0 6270   
71 제70화 서현이 2020 / 9 / 29 264 0 5120   
70 제69화 공주마마 2020 / 9 / 29 267 0 6747   
69 제68화 광복(光復) 빛이 돌아오다. 2020 / 9 / 29 282 0 5622   
68 제67화 폭우 2020 / 9 / 29 287 0 8760   
67 제67화 푸른곰팡이 2020 / 9 / 29 279 0 6241   
66 제65화 콜레라-2 2020 / 9 / 29 275 0 7402   
65 제64화 콜레라-1 2020 / 9 / 29 287 0 4328   
64 제63화 하얀 호랑이 2020 / 9 / 29 272 0 5325   
63 제62화 석이의 옥가락지 2020 / 9 / 29 287 0 7069   
62 제61화 내 사람 2020 / 9 / 29 291 0 6313   
61 제60화 다혜 2020 / 9 / 29 289 0 6227   
60 제59화 다시 핀 봉숭아꽃 2020 / 9 / 29 271 0 7108   
59 제58화 발가락 2020 / 9 / 29 291 0 6262   
58 제57화 살아남은 사람들 2020 / 9 / 29 295 0 6390   
57 제56화 저희가 영원히 슬플것이요. 2020 / 9 / 29 294 0 6299   
56 제55화 복이 있나니 2020 / 9 / 29 283 0 5003   
55 제54화 슬퍼하는 자는 2020 / 9 / 29 322 0 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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