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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62화 석이의 옥가락지
작성일 : 20-09-29 11:03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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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2화 석이의 옥가락지

 

 

 “집에 없어라?”

 

 “내 다 찾아봤당께. 보따리가 없는걸 본께.... 가버린거 같다아~!”

 

 하며 석이 어머니는 목을 놓아 우셨다. 석이는 짚신을 대충 구겨 신고는 동구 밖을 향해 뛰어갔다.

 

 마을 밖 큰길까지 달려나갔지만, 다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밤사이 길을 나섰다면 따라잡기 어려웠다. 길이 여러 갈래라 어디로 갔을지도 막막했다. 경주 쪽으로 가려면 험한 산을 넘어야 하고, 감포 쪽으로 가려면 바닷가를 따라갔을 것이다.

 

 “석아! 석호야!”

 

 하고 뒤에서 윤화가 불렀다. 언제 따라왔는지 윤화가 뒤에 와 서 있었다. 석이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워디로 갔을까요이.... 지가 어제 말을 너무 심하게 했어라....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닌디.... ”

 

 하며 석이가 울먹였다.

 

 “가면 가는 갑다, 오면 오는 갑다 하는게 인생이지 뭐 별거 있나.”

 

 윤화는 별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다름없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은 읍내 쪽으로 가보시오. 내는 산길 쪽으로다 가볼텐께.”

 

 “와? 찾아오게?”

 

 윤화는 어제와 달리 애달픈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쩔쩔매는 석이가 좀 우스웠다.

 

 “찾아와야 허지 않겄소. 갈 데도 없는 사람이 길에서 헤매다 무슨 변고를 당할 줄 알고요잉.”

 

 “니 사람도 아닌데 챙기가 뭐하게? 그렇지 않아도 귀찮았는데 잘 갔다 하믄 돼지.”

 

 윤화의 냉정한 말에 석이가 순간 울컥하고 섭섭했다.

 

 “형은 참 무슨 말을 그렇게 매정하게 한다요? 길 나서기 귀찮소? 그라믄 나 혼자라도 찾아 올텐께.”

 

 울컥한 석이를 달래줄 생각도 않고 윤화는 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찾아와가, 찾아와가 뭐하게?”

 

 윤화는 석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찾아.... 찾아와야지라이.... 지한테 온 사람인디.... 지한테.... 와 준..... ”

 

 석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맺혔다. 윤화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석이는 처음부터 다혜가 자기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을.....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다. 저 사람이 내 사람인줄 아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용설명서 같은 게 있지도 않다. 그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냥 우리는 어느 순간 저 사람이 내 사람인 줄 아는 순간이 있다. 설명도 안 되고, 설명서도 없고, 딱히 이거다 하는 법칙이 있지도 않다.

 

 “석아! 마음에 누가 들어오는 것은 감정이 아이다. 결정이다. 니가 그렇게 정하면 그렇게 되는 기다. 내도.... 그랬다.”

 

 석이는 어느새 흑흑 흐느끼며 서 있었다.

 

 “워디로 갔을까요이? 이대로 영영 몬찾으면 워쩐다요.”

 

 석이는 진심으로 무서워했다. 누구를 마음에 들이는 것이 무서웠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잃어버릴까봐. 또 잃어버릴까봐.

 

 그런 석이 어깨에 윤화가 가만히 손을 올렸다.

 

 “멀리 가서 찾지 마라. 멀리 안 가도 된다.”

 

 영문을 몰라 석이가 윤화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 있다. 형수랑 있다. 내가 새벽에 잡아다 놨다.”

 

 하며 빙긋 웃는다. 석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날 새벽, 동이 막 트려고 하는 시간이었다. 밤새 잘 못 잔 윤화는 날이 뿌옇게 밝자마자 물지게를 지고 나섰다. 동구 밖에 있는 우물에 가기 위해서였다.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미순이가 잡혀간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물은 거기뿐이라 어쩔 수 없이 윤화는 그리 가야 했다. 물지게를 막 내려놓고 물을 뜨려는데 어렴풋이 누군가 우물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다혜였다.

 

 “여서 뭐합니꺼?”

 

 하고 윤화가 물었다. 다혜는 깜짝 놀랐다. 얼굴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이 범벅이었다. 다혜는 그대로 일어나 달아나려 했다. 윤화가 달려가 다혜를 붙들었다.

 

 “어디 갑니꺼?”

 

 다혜는 윤화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가야 혀라. 놔주시오.”

 

 하며 사뭇 단호하게 말했다. 윤화는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이래 가믄, 어무이 병납니더.”

 

 어머니 말이 나오자 다혜는 흔들리는 눈치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아니여라. 지가 있으믄 안돼어라. 지 엄니도 지가 짐이 되믄 거 있으믄 안된다 하셨어라.”

 

 “짐은 누가 짐이 된다고 그랍니꺼. 어무이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면서 그랍니꺼.”

 

 다혜는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혜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무이 생각하믄 지도 맴이 아픈디요. 오라버니는.... 지를 안 좋아라항께...”

 

 다혜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멨다.

 

 “석이가 애기씨를 안 좋아서 그라는 게 아닙니더. 참, 여자들은 와 그렇게 남자 속을 모릅니꺼?”

 

 “야?”

 

 다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윤화도 딱히 이렇다 저렇다 하고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가시믄 안돼고요. 일단 우리집에 가입시다. 형수랑 쪼매 같이 계시소. 없어진 줄 알고 난리가 날텐데, 그래도 잠시만 가마이 계시소. 그다음은 내 알아서 할테니.”

 

 하고는 여전히 어리둥절해 있는 다혜를 데리고 집으로 와 사랑방에 숨겨두었다.

 

 

 윤화에게 끌려 석이가 주춤주춤 마당으로 들어섰다.

 

 집에 있던 사람들은 석이랑 윤화가 나가자마자 다혜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한동안 다혜를 붙들고 우시고, 다혜도 죄송하다며 울었다. 노미는 석이 어머니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는 집에 가 계시라며 등을 떠밀었다.그리고 난 후 윤화가 석이를 데리고 집으로 온 것이었다.

 

 윤화가 사랑방 앞에서 헛기침을 했다.

 

 “드가도 됩니꺼?”

 

 그러자 안에서 쥐방울만 한 목소리로 다혜가

 

 “예~.”

 

 라고 대답했다.

 

 “석이가 드릴 말씀이 있다니까 일단 들어보이소. 야 들여보내도 되지예?”

 

 했다. 석이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리 얘기가 안 된 것이었다. 다혜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시 더 작은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을 했다. 구경하는 이들은 흥미진진한데 석이는 난처에서 죽을 지경이다. 윤화가 억지로 석이를 사랑방으로 들여보냈다. 태화랑 민화랑 정화가 서로 몸을 배배 꼬고 난리가 났다.

 

 사랑방에 들어온 석이는 일단 다혜 앞에 앉았다. 갈 곳을 잃은 눈은 자꾸 천장만 바라보고, 손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방도 짚었다 뒤통수도 긁었다 했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았다. 오빠로서 할 말은 해야겠다 생각했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다 밤길을 나섰소이.”

 

 하고 석이는 꾸짖듯이 말했다.

 

 “지가... 있으믄 안될 거 같아서라.”

 

 “지난밤에 나 한 소리가 많이 섭했소이.”

 

 “틀린 말씀이 하나도 없었는디요.”

 

 하고 다혜가 대답했다.

 

 “거 애기씨가 섭하라고 한 소리가 아니어라. 엄니가 하도 거시기허게 헝께 내도 화가 나서 막 한 소리지 별 뜻이 있어서 한 소리가 아니어라.”

 

 “지도 알아라. 어른들 약속만 믿고 지가 너무 생각 없이 오라버니를 불편하게 했어라. 죄송스럽고, 또 죄송스러워라. 지한테 부담갖지 마시고 오라버니는 오라버니 마음 가는 데로 하셔라. 지는 괜찮응께....”

 

 하는데 다혜는 목이 메이고 만다.

 

 “지도 애기씨한테는 죄송헌디요.... 지가 지금 누구를 맘에 두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어라. 그렇다고 애기씨가 또 길로 헤매고 다니는 건 싫어라. 어무이가 그 짝을 맘에 많이 들어하싱께 일단은 우리랑 같이 지내시믄서....”

 

 하는데 석이는 자기를 말갛게 쳐다보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다혜와 눈이 마주쳤다. 석이는 순간 숨이 턱 막혀서 침을 꿀떡 삼켰다.

 

 “그랑께.... 그랑께....”

 

 하는데 그 다음 말이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후하고 쉬었다. 자신이 이처럼 못 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미순이처럼 생각하자, 여동생이라고 생각하자 하고 들어와 앉았는데 도대체 그렇게 생각이 되지를 않았다.

 

 “지는.... ”

 

 다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는.... 보고 바로 알아봤어라.”

 

 “야?”

 

 “지는 오라버니를 보고 바로 알아봤어라. 들어오시는데, 다른 도련님들 사이에 있는데도 지는 오라버니인 줄 알았어라.”

 

 “워떻게...?”

 

 “제일로다 안쓰러운 얼굴이었어라. 언니 말로는 젤로 밝고 잘 웃는 사람이라 하셨는데 지는.... 오라버니 얼굴이 안 그럴 것 같았어라. 그래서 바로 알았어라.”

 

 석이는 말문이 막혔다.

 

 “언니 이야기를 듣고는 왜 그런 얼굴인지 알았어라. 월매나 속이 아팠을까, 월매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싶었어라.”

 

 석이는 다혜를 그저 한동안 바라보았다. 다혜도 석이를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았다. 어른들끼리 정한 혼사였다. 그것도 아기 때 정하신 약속이었다. 실은 두 사람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그저 오누이처럼 지내는 것도 좋은 인연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혜는 이미 석이가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혜는 알 수 없었다.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다혜는 그렇게 마음에 정했다. 이 사람이라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그렇게 마음에 정하고 말았다.

 

 석이는 망설였다. 무엇이 석이를 망설이게 하는지 석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혜를 그저 새로 생긴 여동생으로만 볼 수도 없었다.

 

 사람이 사람 속에 들어와 버리는 일을 어떻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어느 순간 누군가 허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내 맘에 들어와 버리면 우리는 그때 참 난처하다. 그게 참 이상한 감정이라 어떤 이는 아프고, 어떤 이는 슬프고, 어떤 이는 화가 나기도 한다.

 

 가끔 남자들은 자기 사람을 만나면 돌멩이가 되기도 한다. 여자들은 남자가 갑자기 돌멩이가 되어버리면 섭섭하고 불안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날 싫어하나, 내가 싫어졌나 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그런 상태를 남자가 동굴에 들어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남자들은 갑작스럽게 동굴에 들어간다. 그리고 깊이 진지하게 고민한다. 실은 고민한다기 보다는 한동안 그렇게 돌멩이처럼 동굴에 처박혀 있다. 여자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남자는 정말 편한 사람 앞에서, 진짜 내 사람 앞에서 돌멩이가 되곤 한다. 고양이가 집사 근처에 누워서 세상 따분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실은 자기 주인을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근처에서 자기 주인을 지키고 앉아 있는 것처럼, 남자들은 자기 여자 앞에서 편하고 행복할 때 그렇게 세상 따분한 표정을 짓고 멍때리고 앉아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방해하지 말고 그저 책을 읽거나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청소를 하거나 하면서 자기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렇게 남자가 돌멩이가 되어 있을 때 여자는 편하고 행복하게 자기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 자기 옆얼굴을, 빛나는 목선을,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분홍빛 뺨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가만히 다가와 밥은 언제 먹냐고 할 것이다. 그러면 밥을 같이 먹으면 된다.

 

 뽀뽀 같은 걸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그렇게 뽀뽀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이놈의 인간들은, 남자라는 종족들은 여자에게 밥을 못 얻어먹어 환장을 하는지, 왜 그렇게 밥에 집착하는지, 왜 여자는 남자에게 밥을 해줘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통 터질 수도 있다. 뽀뽀도 안 해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을 사랑하지 않는가. 나한테 준 그 사람 내가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생각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함께 있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축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여자들, 남자들 밥해주자.

 

 돌멩이들에게 사랑의 집밥을!

 

 

 일단 석이는 다혜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아침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석이가 앞서 걷는데 한 발짝 뒤에 따라가는 다혜는 조금은 행복해 보였다. 동생들은 두 사람이 그렇게 자기 집으로, 자기들 집으로 가는 것을 보며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석이 형 좋겠다.”

 

 하고 민화가 말했다.

 

 “다음은 누굴꺼 같나?”

 

 하고 정화가 벙글벙글 웃으며 형들을 보았다.

 

 “일단 니는 아니니까, 저리 가 있어라. 우덜은 아직 멀었다.”

 

 하고 태화가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두어 달 후, 추석 명절에 맞춰서 석이와 다혜는 혼인을 했다. 온종일 벙글벙글 웃는 석이를 보면서 노미는 저 좋은 눈웃음을 다시 보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노미는 석이의 혼인 전날 석이에게 어머니가 주신 석이의 옥가락지를 주었다. 석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미는 이것을 참 오래 간직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반지 안쪽에 새겨져 있는 석이의 이름을 보면서 석이는 웃는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다혜가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왔다. 노미가 입었던 그 혼례복을, 미순이가 잠깐 입었던 그 혼례복을, 이제 다혜가 입었다. 소매에 두른 한삼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연지곤지를 찍고 족두리를 쓴 다혜는 참 고왔다.

 

 ‘二姓之合[이성지합] 萬福之原[만복지원]’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수많은 행복 중에 가장 큰 행복이다.’ 라는 글귀를 노미는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과연 그럴까 하며 혼자 웃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화도 오랜만에 다시 보는 노미의 혼례복에 감회가 새로웠다. 진화는 팔꿈치로 노미를 쿡 찌르며 빙긋 웃었다. 따라 웃는 아내를 보며 진화는 참 좋았다.

 

 신랑옷을 차려입은 석이는 영 어색해 했다. 그래도 내내 웃었다. 두 사람의 혼례식을 바라보는 윤화는 그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노미는 윤화의 옆얼굴을 살피며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친구 혼인하는 날이라 남화가 만주에서 그 먼길을 내려왔다. 남화가 동생들과 함께 석이를 거꾸로 매달았다. 신랑 발바닥 때리는 행사를 거하게 치렀다. 어찌나 엄살이 심한지 석이가 죽는다고 고함을 치니, 다혜는 정말인 줄 알고 엉엉 울며 뜯어말렸다. 다들 색시가 노래하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겁에 질린 색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 광경을 그저 웃으며 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문경세제는 왠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에는 희망도 많다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노다 가세 노다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진도 처녀의 제대로 된 ‘진도아리랑’이었다. 모두 숨도 못 쉬고 다혜의 창을 들었다. 어느새 슬그머니 내려앉은 석이까지 모두 그렇게 넋을 잃고 다혜의 진도아리랑을 들었다.

 

 웃음 많은 신랑과 울음 많은 색시가 만났다. 풍물을 하는 남편이 창을 하는 여인을 만났다. 사람을 데려가시는 하늘은 또 사람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작가의 말
 

 6월입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하늘이 보내주신 내 사람을, 내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진도에서는 ‘스리스리랑’이라 하지 않고, ‘서리서리랑’이라고 표기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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