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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57화 살아남은 사람들
작성일 : 20-09-29 10:57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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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7화 살아남은 사람들

 

 

 진화는 윤화를 아기 다루듯 했다. 거의 매일 물을 끓여 직접 목욕을 시켰다. 직접 매일 등에 고약을 발라주었다. 윤화는 부끄럽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해서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말렸는데도 진화는 그만두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윤화는 그저 형이 하자는 대로 했다. 나중에 보니 왼쪽 어금니도 두 개나 없었다. 왼쪽 고막도 상해 왼쪽으로는 잘 듣지 못했다. 그걸 보고 진화는 또 통곡을 하며 울었다.

 

 다리가 부러진 건 아닌데 다리가 자꾸 엉치에서 빠졌다. 그때마다 절룩거리고 통증이 심했다. 동생들이 붙어 앉아 열심히 주물렀다. 윤화는 내가 이게 무슨 호강인가 싶어 껄껄 웃었다. 윤화 다리가 아무래도 걱정이 된 진화는 윤화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 돌아올 때 아버지도 모시고 내려올 작정이었다.

 

 그렇게 윤화는 드디어 남화와 정화, 아버지를 만났다. 역까지 마중나와 있던 남화와 정화는 진화를 따라 기차에서 내려서는 윤화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학생복을 입고 서 있는 두 동생이 대견해서 윤화는 계속 웃는데, 남화는 너무 작아져 버린 형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정화는 부끄러운 것도 잊고 윤화를 안은 채로 엉엉 울었다. 윤화를 부둥켜안은 아버지도 목을 놓아 우셨다. 윤화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많이 닮아 아버지는 윤화를 특별히 더 이뻐하셨다. 새하얗던 아이가 새까맣게 된 것이 마음이 아프셨는지 아버지는 여자들 바르는 동동구리무(영양크림)를 사다 매일 윤화에게 바르게 하셨다.

 

 정화는 잠시도 윤화 옆을 떠나지 않았다. 잘 때도 윤화를 꼭 붙들고 잤다. 어느새 덩치가 산만 해져서 윤화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정화를 보며 윤화는 건이 생각이 났다. 건이를 볼 때는 정화 생각이 났었는데 정화를 보니 건이 생각이 났다. 윤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어서도 놓지 않는 정화를 윤화는 그렇게 가만히 안고 있었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막내는 막내다.

 

 남화는 윤화 다리보다 폐가 걱정이라고 했다.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탄광에서 삼 년을 지냈다. 폐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 진찰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윤화 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엉치뼈가 자꾸 빠지는 것은 엉덩이에 살이랑 근육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잘 먹고 살이 찌면 된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남화는 윤화에게 병원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먹어서 근육과 살이 붙는 것이라며 잘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집안에 의사가 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정화도 의사가 되겠다고 공부중이었다. 윤화는 두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진화와 윤화는 남화와 정화를 서울에 남겨두고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아버지는 윤화가 집을 떠날 때보다 더 작아지셨다. 그렇게 작아져 버린 아버지는 제일 덩치가 작은 아들인 윤화 품에 아기처럼 안기신 채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가족 중 제일 작은 사람이 가슴이 제일 큰 탓이었다. 그렇게 윤화는 작은 몸으로 큰 마음을 가진 바람에 평생 다른 이들을 많이 안아주며 살았다. 윤화는 그런 사람이었다.

 

 윤화는 서류상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그것을 고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아버지 아들로 국민증(당시 신분증)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호적이나 개인 신상이 잘 정리가 안 되던 시절이라 서류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만 몇 푼 쥐여 주면, 안되는 게 없었다. 내 나라가 아닌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 백성들은 당연한 듯이 그런 변칙에 능해야 했다. 그것이 나쁜 습관이 되어 해방된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오래도록 괴롭혔다. 나쁜 버릇은 참 고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진화는 내내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다. 윤화를 많이 아꼈기 때문에 비록 서류상이라고는 해도 호적에서 형제가 아니라 사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참 싫었다. 진화에게, 할아버지에게 동생들은 그런 존재였다. 자기 목숨만큼 귀했다. 아니, 자기 목숨보다 귀했다. 그런 동생들을 잡아가고, 때리고, 죽이고, 욕보였다. 늘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한 진화였지만, 진화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일상이 되어버린 공출이 있었고, 노미는 또 요강부터 숨겼다. 공출 때면 남자들은 다 산밭에 가서 지냈다. 달래랑 달래 새끼까지 데리고 갔다. 노미는 남자들 행방을 묻는 조장의 질문에

 

 “남편은?”

 

 “만주 가서 연락이 없습니더.”

 

 “둘째는?”

 

 “징용가가 죽었습니더.”

 

 “셋째는?”

 

 “서울에서 공부합니더.”

 

 “넷째는?”

 

 “결핵이라 경주 친척집에 병구안하러 갔습니더.”

 

 “다섯째는?”

 

 “간질이라 넷째랑 같이 경주 친척집에서 병구안합니더.”

 

 “여섯째는?”

 

 “서울에서 셋째 도련님이랑 공부하고 있습니더.”

 

 라고 대답했다. 조장의 눈에 불룩한 노미의 배가 보였다.

 

 “아는? 아는 언제 생깄소?”

 

 노미는 속으로 별걸 다 묻는다 싶었지만 묻는 말에 대답해야 했다.

 

 “아 아부지가 아만 만들어놓고 가뿟습니더.”

 

 했다. 조장은 진심으로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런 노미 옆에 윤화가 서 있었다.

 

 “저 자는 누꼬?”

 

 하고 물었다.

 

 “사촌 아제신데, 일 쪼매 봐주러 왔다갔다 하십니더.”

 

 했다. 윤화가 싱긋 웃었다. 조장은 공출한 쌀가마니랑 쇠붙이들을 대충 추려서 떠났다. 노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상이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겨울이 왔다. 한 해를 지나 노미는 둘째를 낳았다. 이번에는 길에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 석이 어머니가 아이를 받아주셨다. 홍이는 낳느라 그 고생을 했는데 홍이 동생은 아이가 작아 수월하게 나았다. 노미는 이것도 한번 해봤다고 쉽나 했더니 석이 어머니가 둘째가 많이 작다고 하셨다. 아들이었다. 원이라고 불렀다. 정식 이름은 익원이었다.

 

 아들들 이름을 지으신 것만 봐도 할아버지가 얼마나 홍익인간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호적에 올릴 때는 항렬을 따라 진화 아들들은 ‘연’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었지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인 아호(어린시절 부르는 이름)은 홍자를 붙여 지으셨다.

 

 그렇게 새 생명이 태어났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살아있다고 좋아할 수만은 없는 세상이었다. 1942년, 최악의 가뭄이 왔다.

 

 논이고 밭이고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경상도 지역이 가장 심했고, 이런 상황은 전국이 다 마찬가지였다. 도시는 거지로 넘쳐났고, 농촌은 빈집이 늘었다. 굶어 죽는 이들, 병들어 죽는 이들, 삶보다 죽음이 더 흔했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당연했다.

 

 다시 온 봄, 어머니 제사가 이틀 남은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기척도 없이 주무시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셨다. 날짜 상관없이 어머니 제사랑 본인 제사는 항상 같은 날 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더니 정말로 그렇게 날을 맞춘 듯이 떠나셨다. 정보영, 연일 정씨 포은공파 29대손이셨다.

 

 

 

 가뭄에, 굶주림에, 전염병까지 기승을 부렸다. 아이들은 부스럼병이 걸려 다들 허옇게 떠 있었고, 머리가 숭덩숭덩 빠졌다. 그나마 있던 배급도 끊겼다. 겨울을 지낸 산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 낮은 산들은 모두 민둥산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다 할까.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을 것이고, 상상만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봄보리 농사가 잘되기를, 감자가, 옥수수가 제 때에 나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무서운 보릿고개를 어떻게든 넘겨야 했다.

 

 

 노미와 진화는 마을에 퍼진 전염병을 피해 홍이랑 원이를 데리고 산밭으로 피신해 와 있었다. 태화와 민화는 논에 심은 것들을 돌보고, 가축들을 돌보며 집을 지키고 있었고, 윤화는 요즘 석이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장사를 했다. 서쪽에 나는 것을 사다 동쪽에 팔고, 북쪽에 나는 것을 사다 남쪽에 팔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수없이 보아야 했다.

 

 남화와 정화는 공부를 계속했다. 남화는 대학 3년 차였고, 정화는 내년이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진화는 정성을 다해 산밭을 돌보았다. 산밭에서 감자가 무사히 나주기만 하면 또 한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계곡물이 말라 바닥을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무섭다는 봄가뭄이었다. 진화는 무심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이 없었다.

 

 “하느님, 제발...”

 

 왜 이다지도 혹독하실까. 왜 이다지도 무심하실까.

 

 “홍이 아부지, 와서 좀 드셔예.”

 

 하고 노미가 멀건 송기죽을 끓여놓고 진화를 불렀다. 소나무 속살을 긁어 끓이는 송기죽은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때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돌아서면 배가 고픈 홍이는 그것으로는 배가 안 차 칭얼거렸다.

 

 노미와 진화는 송기죽 그릇을 앞에 두고 같이 앉았다. 원이는 아까부터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고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진화가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젖이 나나?”

 

 “나다 안 나다 하는데, 야는 물고 놓지를 않습니더.”

 

 했다. 노미도 진화도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해 퀭했다.

 

 “안 되겠다. 밥해라.”

 

 하고 진화가 말했다.

 

 “안 됩니더. 우찌 될 줄 알고예. 보리 날 때까지는 아껴야 합니더.”

 

 “하라면 해라! 아 굶길끼가?”

 

 노미는 깜짝 놀랐다. 요즘 진화는 이렇게 벌컥벌컥 화를 잘 냈다. 버들잎 같던 서방님이 자꾸 화를 내시니 노미는 마음을 알면서도 섭섭했다. 노미 눈시울이 빨개지자 진화도 놀랐다. 진화는 버럭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 미안했다.

 

 “미안하다. 밥해라. 일단 젖이 돌아야 할 거 아이가. 감자도 보리도 비가 와야 할낀데 지금 하늘이 우리를 다 죽일 작정을 하신 모양이다.”

 

 노미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쌀에 보리를 좀 섞어 밥을 했다. 오랜만에 구수한 밥 냄새를 맡으니 군침이 확 돌았다. 반찬도 없이 간장에 밥만 퍼먹는데도 밥이 꿀떡꿀떡 들어갔다. 진화는 자기 밥을 노미에게 더 덜어주었다. 노미가 사양하는데도 진화는 억지로 노미가 더 먹게 했다. 젖을 먹이는 엄마였다. 남들보다 두배 세배를 먹어도 배가 고플 때였다. 밥을 뚝딱 다 먹은 노미가 배를 두드리며 앉았다. 그러더니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젖이 돕니더.”

 

 아무리 남편 앞이지만 노미는 좀 부끄러웠다. 진화는 빙그레 웃으며 얼른 아기 젖부터 먹이라고 재촉했다. 노미는 돌아앉아 원이 젖을 먹였다. 아이가 젖먹는 소리가 꿀떡꿀떡했다. 노미는 너무 기뻤다. 노미가 진화를 보며 웃는데 진화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진화는 노미 눈을 피해 한숨을 쉬었다.

 

 

 결국, 감자도 보리도 모두 말라 죽었다. 진화는 지금까지 이렇게 심한 가뭄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역사적인 가뭄이었고, 이 가뭄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직 산업이 발달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로지 땅에 의지해 사는 농부가 대부분이었던 그 당시 사람들은 땅이 먹을 것을 내주지 않으면, 하늘이 땅에 비를 주지 않으시면 그저 굶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안 되겠다. 내 전라도에 다녀올게.”

 

 하고 진화가 말했다. 이렇게 가뭄이 심해도 전라도는 들이 넓은 곳이었다. 조선 천지에 가뭄이 들어 씨알 하나 나지 않아도 전라도에는 곡식이 있었다. 매번 곡식이 떨어질 때마다 석이가 가져다 준 쌀로 그 숱한 고비들을 넘겼다. 하지만 진화는 석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전라도라도 사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진화는 가봐야 했다.

 

 진화는 홍이를 데리고 산밭 초가를 나섰다. 동네에 전염병이 좀 사그라져 홍이는 태화랑 민화한테 맡기고 진화는 전라도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노미랑 원이만 산밭에 남겨두고 가는 것이 진화는 걱정되었지만, 젖먹이 원이에게 동네는 아직 위험했다.

 

 “내 금방 올테니, 밥 거르지 말고, 문단속 잘하고, 요즘 늑대들이 돌아다닌다니 집 밖으로 멀리 나서지 말고....”

 

 진화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태화랑 민화랑 올라와 있으라 할까?”

 

 아무래도 혼자 산속에 두고 가는 것이 진화는 내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됐습니더. 번거롭게.... 거도 일이 많은데.... 홍이 봐주는 것만도 고마분데...”

 

 했다. 엄마랑 안 떨어지려는 홍이를 겨우 달래서 진화가 안았다. 노미 코가 또 빨개졌다. 노미는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누군가를 보내는 것이 늘 어려웠다. 특히 진화를 보내는 것은 아무리 아무렇지 않으려 해도 힘겨웠다.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노미의 코를 진화가 톡 쳤다.

 

 “이래, 내만 좋아해가. 우야노?”

 

 노미는 웃어야 하는데 웃음이 안 났다.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진화는 결국 아내를 울려버렸구나 싶어 미안했다. 가만히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홍이도 운다. 큰일 났다. 진화도 울고 싶었다.

 

 “금방 온다. 쌀 가지고 온다. 쌀 가지고 오믄 우리 배가 터지게 한번 묵어보자. 알았제?”

 

 그렇게 진화는 노미와 원이를 남겨두고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홍이가 내내 엄마를 향해 손을 뻗으며 보채더니 결국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는 아버지 품에 폭 안겼다. 이렇게 보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오늘따라 노미는 가슴이 더 서늘했다.

 

 

 굶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할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 우리는 짐작도 할 수 없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IMF로 힘들다고 아우성칠 때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굶나? 안 굶는데 모가 걱정이고?”

 

 

 
작가의 말
 

 안 굶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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