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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불순한 교수
작가 : 퀸카대행진
작품등록일 : 2020.7.31

담임선생님과 풋풋한 첫사랑을 했던 여학생들은 다들 행복했을까?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은 완벽한 비밀 연애를 해야만 한다. 사회적 통념, 친구들의 시선, 부모님들의 반대는 어떻고? 여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선생님과 여제자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가 있다. 카카오톡ID: lov2lovely

 
16. 다시 이어진 인연
작성일 : 20-09-28 16:24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10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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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어떻게 할래?"

 

 

 손안에 든 핸드폰을 숨기듯 꽉 쥔 예화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따뜻하게 묻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데려다 주세요. 택시라도 타야 되나 했는데 잘됐다."

 

 

 그렇게 말한 후 예화는 금방 건우에게 -미안요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학교 주차장까지 걸어가 전에 한번 탄 적있는 그의 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능숙한 운전 실력으로 학교 밖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주소를 물었고 예화가 주소를 또박또박 불렀다. 그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금방 받아 적었다.

 

 

 "운전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집까지 가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기에 그녀가 대화의 운을 먼저 띄었다.

 

 

 "회사 다니고 부터?"

 

 "저번에 이 차 탈 때도 대게 능숙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교수님 차에 타면 왠지 안심이 되요. 우리 아버지가 다 완벽한데 운전하나는 미숙하시거든요."

 

 "맨날 병원에서 환자들 보시느라 그래. 열정이 가득하시거든. 수술 안 되는 병도 의학 논문 다 뒤져봐서 치료 하려고 하시고."

 

 "그런가? 우리아빠 근무시간 아닌데도 병원에 있어서 나랑 잘 안 놀아주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운전 실력이 그렇게 늘어요?"

 

 "내가 여행다니는거 좋아해서 이 차를 많이 끌고 다녔어. 봐봐 여기 킬로수 높은 거. 노력은 배신 안 해."

 

 

 그가 차의 미터기를 자신 있게 가리켰다.

 

 

 "교수님도 우리아빠 못지않게 카페에 앉아서 공부하시던데 대단한 것 같아요. 학생 때도 그렇게 공부하기 힘든데"

 

 "아는 것도 계속 배우고 익혀야 너희를 정확하게 가르치지. 뭐 또 다른 이유도 있어. 그렇게 해야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거든."

 

 "그 이유가 뭔데요?"

 

 

 예화가 에어컨에 달려있는 방향제를 괜히 만지작 거리며 물었다.

 

 

 "뇌종양 수술을 받고. 수술부위의 빈곳을 채우는 데는 일정 시간이 걸려 그나마 공부를 하면 뇌의 팽창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더라고."

 

 

 그가 부드럽게 차를 유턴을 하며 말했다. 예화가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학교 졸업하고 회사 다니게 되면 공부 안 할거에요."

 

 "어휴 이거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은 안하고. 너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왠지 쓸 때 없이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윤하가 소름돋게 빙긋 웃으며 물었다.

 

 

 "네! 전 공부 웬만하면 안할거에요."

 

 

 "너 같은 애들, 너보다 공부 잘하는 애들, 저 위로 날고 기었던 애들 다 모여 있는 집단이 회사인데 공부를 안한다고? 거기서는 1년 치 월급가지고 겨뤄 그해 년도 평가에 따라 월급이 완전히 달라지거든. 그저 학교 성적 가지고 겨루는 너희들과는 달리 생존 게임이라고 누가 돈을 더 많이 가져가고 누가 저 위로 먼저 올라가는지가 중요해. 그래서 치열해. 결론은 회사 가서도 너는 공부 빡시게 해야 된다는 말이야."

 

 "으악 진짜요?"

 

 

 그의 냉혹하고 현실적 말에 예화가 두 볼을 감싸듯 쥐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지겨운 공부를 취업해서까지 해야 된다니."

 

 "누누이 말하지만 부모님 용돈 받고 공부할 때가 즐거운 거다. 네가 회사 들어가서부터는 생존이야. 얼마 벌고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네가 다 알아서 판단해야해. 시간이 지나면 나이 드신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그렇구나."

 

 

 예화가 그의 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난 그냥 빨리 졸업해서 학교의 시험이란 제도를 내 인생에서 없애버리겠다 라는 생각밖엔 없었어요."

 

 "나 방금 진짜 선생님 같았지?"

 

 "네 많이요."

 

 "미안 나이 들면 깨달아지는 게 많아서 철없고 파릇파릇한 너희들 보면 충고가 자연스럽게 나와."

 

 

 그가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며 말했다. 얼굴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은데 대화하다 보면 그 와의 나이차이가 새삼 실감이 났다.

 

 

 "괜찮아요. 교수님은 하나도 나이 안 들어 보여요 꼭 잘생긴 대학생 오빠가 충고하는 것 같아요."

 

 "컥 흐음."

 

 

 그가 오빠라는 말에 당황하며 헛기침을 했다.

 

 

 "오빠란 말은 실례인가? 그래도 칭찬하는 거예요. 제가 며칠 전에 헌팅 비스 무리한걸 했는데 요 옆 학교에서도 교수님을 알더라고요."

 

 "나를 왜?"

 

 "교수님인데 학생보다 잘생겼다고."

 

 

 그 말을 들은 윤하의 얼굴이 제법 붉어 졌다. 처음 보는 윤하의 모습을 재밌다는듯 지켜보던 예화는 차안에서 장난치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근데 아까 그 말 제가 철없다는 말이에요?"

 

 

 그가 뭘 그런 당연한 예기를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교수님은 꼭 표정으로 예기를 많이 해요."

 

 

 예화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난 아무 말도 안했다."

 

 

 그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변명을 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푸르는 하늘과 내리쬐는 햇빛. 가로수 길의 나무,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는 차들이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차문 잠깐 열어도 되죠?"

 

 

 풍경에 반한 그녀가 창문을 열고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을 기분좋게 맞았다. 윤하는 아직 학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힘들 텐데도 그녀가 다시 밝게 예기할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에 대해 안심하며 창 밖을 보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철없어도 상큼하고 예뻤다.

 

 

 도로사정이 아직 퇴근시간이 아닌 탓에 그의 차가 그녀의 집 앞에 닿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아빠한테 인사라도 하고 가셔요. 집에 계실거에요."

 

 

 그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예화가 초인종을 눌렀다.

 

 

 "예화냐?"

 

 

 마침 인터폰을 받은 홍선호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 하나만 아니고 오늘은 둘이에요 강윤하 교수님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잉 강 교수가?"

 

 

 그의 방문 소식을 들은 선호가 금방 대문을 열고 나왔다.

 

 

 "잘 계셨죠?"

 

 

 윤하가 반가운 듯 선호의 주름진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예화가 좀 다쳐서 집까지 데리고 왔어요. 양호실에 가서 치료는 했는데 교수님이 한번 봐주셔야 될 것 같아요."

 

 "네가 애냐? 아직까지 넘어지게"

 

 

 선호가 속상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반창고가 크게 붙여져 있는 예화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우리 예화 자네가 이렇게 신경써주니 아주 내가 든든하구먼. 들어와 커피라도 마시고 가."

 

 "아닙니다. 이만 들어가 볼게요."

 

 "아니야, 자네한테 줄 것도 있고 얼른 들어와."

 

 

 선호가 대문까지 활짝 열어젖히고 옆으로 피해 그를 갈 수 없게 만들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선호와 예화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차 시동 켜놔서 차 먼저 대고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예의바르게 말한 후, 운전석에 다시 올랐다.

 

 

 

 

 

 "우리 그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차 주차를 마친 윤하가 거실로 들어서자 부엌일을 하던 영순이 웃으며 윤하에게 인사했다.

 

 

 "완치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내가 우리 예화 잘되길 기도하면서 윤하씨 기도도 많이 했어요. 내 남편이 아들처럼 아끼는 사람이라 들어서."

 

 

 "어휴 감사합니다. 홍교수님 덕분에 다 나아서 이제 건강합니다."

 

 

 영순이 선호가 말하지 않아도 냉장고를 열어 그에게 줄 반찬을 몇 가지 싸기 시작했다.

 

 

 "우리 강 교수 남자 혼자 살아서 밥은 잘 챙겨 먹겠어."

 

 

 같이 병상에서 지내는 동안 윤하의 사정을 알 만큼은 아는 그였다. 그의 부모님 모두 미국에 주거지와 직장이 있는 탓에 병상에서도 지금도 항상 혼자 있는 윤하가 늘 마음에 쓰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하의 두 손에는 더 이상 들 수도 없을 만큼 반찬통이 가득 쥐어져 있었다.

 

 

 "통은 우리 예화 통해서 보내면 되니까 안심하고 가져가. 다음에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면 더 좋고."

 

 

 선호가 예화와 윤하를 번갈아 바라보며 시커먼 흑심을 드러냈다. 그가 사위가 안 된다면 외동딸인 예화를 옆에서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오빠라도 되어줬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사람의 정이고 연분이고 하는 것들은 둘의 문제지 자신이 바란다고 해서 될게 아님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둘이 연이 되어 저렇게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보는 선호의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윤하야 이미 오랫동안 그의 옆에 있어 지켜 볼만큼 봤으니 이미 검증이 된 사내고, 딸애야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눈에는 그저 예쁘고 고우니 둘이 허물없이 잘 지냈으면 했다.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반찬은 정말 잘 먹을게요."

 

 

 "내일뵈요 교수님."

 

 

 끝으로 예화의 인사까지 받으며 그가 풍족한 한 가족의 마음을 안고 차를 탔다. 그가 떠난 후 홍교수는 방안에서 구급함을 단숨에 가져와 예화의 무릎 상처를 살펴보았다.

 

 

 "한동안 네가 안 깨지고 잘 들어오나 했다."

 

 

 어릴 적부터 천방지축이어서 잘 넘어지고 다쳐 들어오던 예화였다.

 

 

 "많이도 깨졌네."

 

 

 그가 반창고를 때어난 부위를 다시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다행이다 집안에 의사가 있어서."

 

 

 예화가 정성스럽게 약을 바르는 선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 아버지 멋있지?"

 

 "그럼! 그런 당연한 소리를. 근데 강윤하 교수님이 그리도 좋으세요. 아까 아빠얼굴 장난 아니었어 미소가 여기 코라인 까지 걸렸었다니까."

 

 "내가 그랬냐? 흐음."

 

 "오래 알고 지내서 그런가 윤하가 내 아들 같고 그래, 신경이 많이 쓰여. 요즘 애들 같지 않고 건실한 청년이라 탐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다시 건우를 만나게 된다면 아버지한테는 그와의 관계를 절대 못 말하지 싶었다. 반대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뭐 그의 숨겨진 사정을 알면 부모님 생각도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많아진 예화가 새 반창고가 붙은 무릎을 절뚝이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왠지 말 못할 고민이 많아지는 긴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회진 시간에 맞춰 집무실을 나서던 홍 교수는 병원 복도에서 달갑지 않은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바로 딸아이를 많이 아프게 했던 건우와 그의 옆에 딱 붙어있는 그의 전 와이프 서진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건지 세 사람은 복도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건우가 선호를 보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탐탁지 않은데 그의 옆에 딱 붙어 있는 서진은 선호가 더 불친절해 질 수 있는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그 사건 이후로 이혼했다 들었는데 아직까지 둘의 연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 감정이 표정에도 다 드러났는지, 차가운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아 자네도 여기 병원 다니는 구만. 나는 자네를 여기서 마주하는 게 꽤 꺼려지네만."

 

 

 그의 서늘해진 목소리에 같이 회진을 도는 인턴 의사들이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선호를 쳐다볼 정도였다. 항상 환자들에게 인자하고 유머러스한 말투로 정평이 나있는 그가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악의를 드러내며 표정을 굳히다니 이건 그의 옆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건우가 옆에 딱 붙어있는 서진을 난감해 하며 대답했다.

 

 

 "그럼 잘 치료 받고 가게."

 

 

 그가 마지막까지 차가운 말투로 말하며 건우를 지나쳤다.

 

 

 

 그의 반응이 더 서늘해진 건 자신의 옆에 있는 서진 때문임을 건우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어깨에 힘든 모습으로 기대어있는 서진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그녀의 고급 세단 앞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건우가 이를 악문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자꾸 꾀병부리면서 날 자꾸 찾아 올 거야?"

 

 "꾀병아니야 진짜 나 요즘 스트레스가 심하단 말이야. 체한 것처럼 어지럽고 갑자기 복통까지 찾아왔다고."

 

 

 그녀가 그의 어깨에 더 찰싹 붙어 기대었다.

 

 

 "그럼 김 비서랑 따로 와서 링거 맞고 가면 되잖아. 당신 가족 전담하는 의사 부르던가."

 

 "아픈 그 순간 당신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걸 어떡해."

 

 "그래도 일하는데 매번 이렇게 전화로 꾀병부리면 나도 힘들단 말이야.“

 

 

 그가 그의 어깨에 기댄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그녀여서 부부사이 일 때도 자주 병원을 찾던 그녀였다. 그런데 요즘 도를 넘어서서 일하는 그에게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전화해 병원을 데려다 달라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그랬다. 그런 식으로 그녀가 건우를 찾고 자신의 집과 병원을 오라가라 한 것은.

 

 

 "당신이 평소에는 내 전화 씹잖아. 먼저 연락도 안주잖아! 그러니까 내가 자꾸 그러는 거잖아."

 

 "우린 헤어졌어. 근데 평소에 연락할 이유가 있는게 이상하잖아."

 

 

 그의 차가운 말에 서진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몇 번 말했잖아 계속 보였잖아 나는 당신한테 미련 남았다고."

 

 "내 마음도 당신에게 보였잖아. 충분히 김 비서한테 보고 받았으면 알거 아니야 내가 그 애 있는 카페를 몇 번이나 찾았는지"

 

 "포기가 안 되니까 그러지. 내가 자꾸 당신을 부르고 찾게 되잖아. 나는 아직 당신 못 놔. 자기 놓치고 나서야 깨달았어. 내 마음이 어떤지. 당신 두고 다른 남자 만났을 때는 몰랐어 당신이 이렇게나 나한테 소중한 존재인지."

 

 

 서진이 자신의 마음을 다 꺼내 보이며 그에게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

 

 

 "이 병원 고집하는 것도 맘에 안 들어. 왜 하필 여기야 응?"

 

 "그건, 이 병원에 날 담당하시는 주치의 선생님 계시니까 그러지!"

 

 

 죽을 것 같다는 그녀의 전화에 몇 번이나 속아. 이 병원을 찾는 것이 독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는 예화의 아버지인 선호가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선호가 둘을 본 것이다. 그를 본 순간 가슴이 죄이는 듯 한 통증과 함께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화의 마음을 어떻게 돌린다고 해도 일이 완벽하게 틀어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자신을 바라보는 선호의 차가운 눈빛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핑계인거 알아. 당신을 담당해 주려는 의사는 회사에도 회사근처 병원에도 차고 넘치는데 내가 바보 같았어."

 

 "내 탓으로 돌리지마! 내 전화에 줄곧 달려와 줬던 건 당신이잖아."

 

 "그래 결혼하기 전 끝까지 지켜준다고 해놓고 너한테 못해줘서 널 쉽게 포기해버려서 그게 미안해서 이러는 거야. 이제는 더는 이럴 일 없어. 운전은 김 비서 불러서 해. 이렇게 싸우고 널 안전하게 데려다줄 자신이 없다."

 

 

 건우는 미련 없이 그녀의 차키를 보닛 위에 올려놓고 주차장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정건우! 정건우 너 정말 이럴 거야! 야!"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혼자 남은 서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통의 전화에 금방 자신이 있는곳 까지 달려오는 그를 보며 그래도 희망을 좀 품었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을 향한 마음 한줌조차 남지 않은 걸까 자괴감에 입술이 절로 깨물어졌다. 처음에 그가 자신이 가진 부를 보고 결혼까지 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혼했다. 자신이 가진 돈을 보고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녀가 바람을 피건 사치를 부리건 모두 받아 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못 받아주고 자신을 비난하며 놓아버리면 그녀가 그의 손에 쥐어준 돈과 권력이 모두 다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게 될 테니까. 결혼은 하고 싶고 자유는 지키고 싶은 서진의 남편감으로 되도록이면 순진하고 욕심이 있는 사람이면 족했다.

 

 

 하지만 판단오류였다. 정건우라는 사람은 욕심 부렸던 것을 쉽게 포기 할 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바람 핀다는 것을 알게 된 건우와의 사이는 극단적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이혼만은 막고 싶었던 그녀가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있는 동안 건우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연인으로 만났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건우는 자신이 쥐어준 권력과 부를 모두 버리고 그 앳되보이는 학생을 택한다 했다. 말도 안 되게도. 처음에는 그냥 자신의 투정을 받아주다 지쳐 반항하는 거라고, 자신을 버린걸 후회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에 자기가 준 영현그룹의 팀장이라는 자리를, 나중에 물려받게 될 수많은 재산을 그리고 오서진 그녀를 버렸다.

 

 

 "정건우... 돌아와.. 나 이렇게 버리지 마..."

 

 

 집안에 들어오면 언제나 자신을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던 그가 한순간에 없어지자, 서진은 그가 떠난 이후로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그를 두고 바람을 피웠던 것도, 그를 날카롭게 대했던 것도 그를 무시했던 것도 모두 다 후회가 되었다.

 

 

 "내가 잘 할게 진짜 나 이렇게 두고 가지마. 제발."

 

 

 의사에게 받은 약봉지를 주차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페데기를 쳤다. 음식을 먹고 체하긴 했지만 병원까지 올 정도는 아니었다. 아파 기댈 수 있는 그의 어깨가 너무 좋아서 있는 핑계 없는 핑계까지 다 만들어 그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드린 것 뿐이었다.

 

 

 "당신 나한테 반드시 돌아오게 할 거야. 무슨짓을 해서든"

 

 

 그녀가 눈물을 훔쳐내며. 머리를 비장한 표정으로 쓸어 넘겼다. 여태까지 원하면 가져보지 않은 것이 없는 그녀였다.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3일 후, 예화의 무릎은 거의 아물어 있었다. 3일 동안 건우의 문자와 전화가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울렸지만 예화는 일부러 단답을 하거나 받지 않았다. 그를 그렇게 쉽게 받아드릴 마음도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끝내지 못한 사랑을 택하기엔 부모님이 많이 걸렸다.

 

 

 -불편한거 알아. 계속 기다릴게.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르지 않은 듯 건우는 문자로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밀어내고 무시해도, 한결같은 그의 마음은 예화를 자꾸 감동시키고 있었다.

 

 

 

 따사로운 해가 조금씩 저물어갈 무렵 가은은 예화의 마지막 수업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댄스교습 학원으로 이끌었다. 신이 난 표정의 그녀는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예리한 표정으로 연습실 내부와 분위기를 점검하듯 바라보았다. 마치 예화의 매니저라도 된 듯 한 표정이었다.

 

 

 "내가 너 연습할 수 있게 여기 일주일 강의권 끊어났어. 장기자랑에 나갈 수 있게 선생님한테 한곡만 집중적으로 연습해 달라고 그랬어. 잘해주실 거야."

 

 

 가은이 황당하다는 표정의 예화의 어깨를 두어 번 쳤다.

 

 

 "무슨 노래인데."

 

 

 예화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은이 빠르게 핸드폰 음악어플을 검색하더니 요새 핫한 노래인 청하의 벌써12시를 틀었다.

 

 

 "아쉬워 벌써 12시 어떡해 벌써 12시네."

 

 

 그리고 노래를 틀어놓고 예화 앞에서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걱정 마! 날 포함한 우리 과 여학우들 몇 명이 백댄서 해줄게. 우리 어제부터 수업 끝나고 모여서 동영상보고 연습하기로 했어."

 

 "백댄서?"

 

 "응 죽이지! 죽이겠지?"

 

 "나한테 말도 안하고 곡도 정하고 댄스 학원도 정한거야?"

 

 "말하면 허락 안 할 거잖아. 예화야 한국 대학교 미인대회 우승의 8할이 장기자랑이야. 이걸 완벽하게 준비해야 된다고."

 

 "수강료는 어디서 나서?"

 

 "내가 민수랑 반띵했어 걱정하지 마."

 

 "으아 너 진짜! 얼마야 내가 줄게 그거!"

 

 "에이 네가 미인으로 안 뽑혀도 괜찮아 우리사이에 무슨 그 정도 투자야 할 수 있지."

 

 

 쿨하게 말했지만 가은의 앵두 같은 입술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너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인데!"

 

 "들켰어? 헤헤. 이번 주 용돈 그냥 탈탈 턴 것뿐이야 그래서 이번주 나 우리학교 학식밖에 못 먹어 밖에 나가 사먹을 돈이 없거든. 그것은 곧 데이트 비용도 없단 말이지. 우리 민수 나랑 이번 주 내내 학식 먹어야 돼."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말속에 부담이 아주 가득 들어있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은이 초빙했다는 아주 슬림한 체형의 남자 선생님이 등장했고, 예화는 그 시간 이후부터 정말 시간이 12시가 될 때까지 연습을 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몸을 쓰니 머리고 허리고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거기다 그녀를 가르치는 춤 선생님의 열정은 엄청나서 가은이 계약한 시간보다 더 길게 그녀의 춤선을 잡아주었다.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되나 정말."

 

 

 춤 연습을 하고 예화는 TV에 나오는 아이돌들이 얼마나 연습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놈의 동작들이 하나하나 디테일이 있는지. 한 동작조차 외우기가 어려웠다. 수십 번을 반복해야 음악에 맞춰 빠르게 취해야하는 동작들이 외워질까 말까 였으니 기억력이 모자라면 춤도 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은의 엄청난 투자와(?) 자신하나만 바라보고 미인대회를 내보낸 학생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목부터 배까지 땀으로 젖을 때까지 안 되는 웨이브를 무던한 연습으로 성공시켰다.

 

 

 "예화씨 다음에는 후반부 연습할게요.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네요. 일주일 안에 되겠어"

 

 

 그녀를 가르치느라 땀이 한 바가지인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그녀가 인사를 했다. 그녀의 안전한 귀갓길까지 고려한 가은이 친절하게 댄스학원도 집 앞으로 잡아놨기에 100미터만 걸으면 집 앞이었다. 자정을 넘겨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밤의 고요한 분위기가 그녀를 감성적이게 만들었다. 바라보는 밤하늘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시선을 자꾸 하늘에만 주게 만들었다.

 

 

 거의 다다른 집 앞 예화는 익숙한 실루엣이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예화는 지래 겁을 먹고 수상한 사람이면 크게 홍교수의 이름을 부르겠노라 생각하고는 그 실루엣에게 용감하게 다가갔다.

 

 

 "선생님?"

 

 

 하지만 그는 선호를 부를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너무 늦었지 미안해.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 3일 동안 전화하고 문자했는데 안받아주는 너 보고 미칠 것 같아서."

 

 "선생님.."

 

 "고민이 많았겠지 알아."

 

 "죄송해요. 제가 못됐어요."

 

 

 새벽 쌀쌀한 공기에 얼굴이 붉어진 그가 안쓰러웠다. 얼마나 문 앞에 서있던건지.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신이 뭐라고 한 남자가 이렇게 까지 목을 매나 안쓰럽고 신경 쓰였다.

 

 

 "말해줘. 이제 네가 어떤 말을 하던 받아드릴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을게. 더 이상 너한테 다가서는 건 널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아."

 

 

 그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닫혀있는 대문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자신을 기다리며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할 말을 얼마나 정리하고 다 잡았을까 싶어. 예화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추웠죠? 손이 다 얼었네."

 

 

 그녀가 그의 차가운 손을 붙잡았다.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서."

 

 

 그리고 그의 너른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스킨십에 그의 눈망울이 더 커질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니야 내가 널 아프게 한거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지."

 

 

 

 .

 .

 .

 

 

 

 

 

 "우리 다시 사귀어요 만나 봐요. 끝을 못 냈으니 다시 시작해야죠."

 

 

 

 

 

 새벽의 감성에 취한건지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반한건지.

 

 

 

 

 

 그녀의 감정선이 눈 녹듯 풀려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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