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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불순한 교수
작가 : 퀸카대행진
작품등록일 : 2020.7.31

담임선생님과 풋풋한 첫사랑을 했던 여학생들은 다들 행복했을까?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은 완벽한 비밀 연애를 해야만 한다. 사회적 통념, 친구들의 시선, 부모님들의 반대는 어떻고? 여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선생님과 여제자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가 있다. 카카오톡ID: lov2lovely

 
14. 이젠 아니야
작성일 : 20-09-28 16:22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9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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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이게 다 뭔말인가 싶어 울상이 된 얼굴의 예화가 입도 열지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오서진! 입닫어 나랑 예기해."

 

 

 

 그가 화난 듯 입술을 굳히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썹이 한껏 모아져 있다는 것은 그가 많이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학생들을 혼내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지어보이던 표정이다.

 

 

 

 돌아가셨다고.

 

 

 

 분명 서진의 입술이 그렇게 말했다. 그 고우시던 분이 어쩌다가 그리 되셨단 말인가. 앞에 있는 한적한 강가와 검은색의 상복을 입고 있는 서진을 번갈아 바라본 예화가 잠시 비틀거렸다. 건우가 그런 그녀의 팔을 옆에서 힘 있게 붙잡았다.

 

 

 "왜 말 못하고 끙끙거려 바보 같이, 차라리 말해! 속 시원히 말하라고 5년동안이나 멍청하게 뭐하자는 거야 눈꼴셔서 못 봐주겠다. 정말 당신의 그 지독한 순애보!"

 

 "그만해. 여기서 이러는 건 아니야. 오서진."

 

 

 그가 다급하게 그녀를 다그쳤다.

 

 

 "아니, 내가 왜 그만해야해? 저 여시 같은 계집애한테 당신을 뺏겼는데. 당신은 얼마나 저 애를 향한 마음이 깊으면 그런 일을 겪고도 저 애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거야?"

 

 "그만하라고 했어."

 

 

 하지만 둘이 나란히 강가에 서 있는 것을 본 순간부터 이미 눈이 뒤집혀 버린 서진은 그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녀는 속상한 눈으로 입술을 깨물며 예화의 팔을 잡고 있는 건우의 손을 바라보다가 다시 날선 눈으로 둘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 남자가 너를 갖기 위해서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서진의 날선 표정에 예화의 표정이 혼란스럽게 구겨졌다. 도대체 이 둘이 자신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단 말인가. 그녀가 죽을 만큼 사랑했던 정건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었단 말인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는 언제까지나 자신을 매몰차게 버린 미운 상대 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를 잊고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너하고 함께 있겠다고 결론적으로는 당신 어머니를 제 손으로 죽인 셈이지. 3 년전 까지만 해도 죄책감에 숨도 못 쉬었어 이 남자. 내가 옆에서 치료하고 고쳐서 사람 만들어 놨더니. 또 너를 찾아가네. 이거 진짜 어떻게 해야 해?"

 

 "..."

 

 "젠장.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고!"

 

 

 서진이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짜증스러운 손길로 머리를 쓸어 올리다 결국 헝클었다. 그녀는 상복을 입고 그의 어머니를 찾는 이 일을 무려 5년 동안이나 함께 해왔다. 하지만 오늘 예화와 함께 이곳에 서 있는 그를 본 순간 잠잠하던 꼭지가 정점을 찍고 획 도는 느낌이었다.

 

 

 "젠장.."

 

 

 속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그것은 비단 예화와 건우에게로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그를 이혼을 했음에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분노도 한 몫 하고있었다.

 

 

 "하아."

 

 

 그의 앞에서 이성을 끈을 놓아버리고 길길이 날뛰는 서진과, 옆에서 설명이 필요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예화. 두 여자 사이에서 불편한 기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건우가 정리하려 나섰다. 우선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서진부터 진정 시켜야 했다.

 

 

 "당신 내가 예화 보내고 전화할게. 오늘 우리 어머니 뵈러 와준건 고마워. 그러니까. 제발 나중에 다시 예기하자."

 

 

 그는 애원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고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정말 전화할거야?"

 

 

 그의 간절해진 목소리에 길길이 날뛰던 서진이 한껏 약해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 일로 건우가 자신에게 영영 돌아서면 어쩌나 싶은 맘이 그제야 든 것이었다.

 

 

 "응."

 

 "정말이지 당신이 나한테 먼저 전화 할 거지?"

 

 "그렇다니까."

 

 "알겠어. 나 많이 못 기다려 나 이기적이고 못되서 인내심 없는 거 당신이 제일 잘 알지?"

 

 "알았다고."

 

 

 

 "김비서!"

 

 

 "김비서 서진이 좀 데리고 가요."

 

 

 건우는 이곳 어딘가 있을 사람을 찾았다. 김비서는 서진의 비서 겸 운전기사로 그녀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부모에게 그녀와 건우에게 생긴 일을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역시나 그가 기다렸다는 듯 어딘가에서 숨어있다 나타나 서진의 뒤에 섰다.

 

 

 "가시지요. 아가씨."

 

 

 그의 목소리에 서진이 마지막까지 예화를 째려보며 마지못해 자리를 움직였다.

 

 

 

 

 * * *

 

 

 

 

 잠시 후, 예화와 건우는 라떼 두 잔만을 시켜놓고 양주의 한 한적한 카페에 나란히 마주 앉아 있었다.

 

 

 "네가 궁금해 하는거 말해줄게 지금 모두 다."

 

 

 예화의 긴장한 눈빛을 마주한 그의 머릿속은 5년 전 서진이 말한 그날 밤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건우의 부모님이 머무는 본가. 학교에 불미스러운 그 소문이 퍼진 그날 이 후, 어제는 학부모들이 몰려와 난리를 치고 가더니, 오늘은 학생들이 방문해 집 앞 대문에 달걀을 던졌다. 그뿐인가. A4용지에 입에도 담지 못할 글을 인쇄하여 뿌리는 바람에 온 동네 사람들이 건우의 일을 모를래도 소문이 나서 다 알 것만 같았다.

 

 

 "죄송해요."

 

 "뭐가 죄송하냐. 너와 나는 부모 자식사이도 아닌데."

 

 

 명예를 목숨같이 아는 직업군인인 건우의 아버지 재현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그는 그저 같은 집에 머물고 있는 유령처럼 대했다. 그가 그때의 그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를 그만둔 순간 그의 아버지는 바로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겠다. 선포하고는 계속 그를 외면하는 중이었고, 그의 어머니인 을하는 투척한 달걀들로 엉망이 돼 버린 대문을 깨끗이 닦고, 학생들이 뿌리고간 온갖 욕이 담긴 종이들을 하나하나 주어 마당에서 태웠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본인뿐만이 아닌 부모님까지 힘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네놈새끼 더 이상 안 보려면 호적에서 파내던지 해야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를 붙잡은 건 재현의 차가운 한마디 었다. 옆에서 을하가 그를 말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으나 건우는 자존심이 센 아버지가 속상한 마음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참고 인내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 모든일은 서진과 한국에서 함께 지냈던 집 말고 다른 집을 구할 때까지 잠시 본가로 들어온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선생님 우리 힘내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흔들릴거에요.

 

 

 

 그래도 저녁때쯤이면 꼭 오는 예화의 문자를 보며 버텼다. 그녀는 힘든 그의 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 꼭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 보내주곤했다.

 

 

 

 "이렇게 불명예스러울 바에야 다 같이 죽는 게 났다 내가 동네 창피해서 살수가 없어! 유부남에다가 학교 선생이라는 자식이 어린 학생과 놀아나다니!"

 

 

 하지만 그런 그의 작은 행복을 깨고 또 재현이 들어와 난리를 쳤다. 을하는 뒤에서 그의 불같은 성미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꼭 깨물고 서 있었다.

 

 

 "차라리 나가! 나가서 내 눈에 띄지마라 보는 게 더 괴로우니까!"

 

 "..."

 

 "병신 같은 자식.. 좋은 사돈 붙잡아 호강하면서 살라고 장가 보내놨더니! 어휴 저 머저리 같은 놈!

 

 "여보 나가요 나가. 건우도 쉬어야지!"

 

 

 서진은 재현의 인맥을 통해 만나게 된 여자 였다. 재현은 육군 소장 중장 대장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낸 뼛속까지 완벽한 군인이었다. 그쪽에 오래 몸담고 있던 까닭에 나랏돈을 꽤나 만지는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했었다. 서진은 거기서 친분을 쌓은 대한민국의 굴직한 기업을 가진 사업가이자 정치인을 지낸 사람의 딸이었다. 그의 나이 27살 중등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아버지의 소개로 서진을 만났을 때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배경과 인생의 그늘없이 여유가 넘쳐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재벌, 그들의 사위가 되는 게 그때는 사랑보다 더 커보였었다. 남들은 아등바등 모아도 절대 가질 수 없는 부와 권력을 그녀와 결혼하기만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시절 서진을 죽도록 사랑한건 아니었는데, 결혼까지 했다. 결혼을 하고 가까이서 본 그녀의 가족 재벌들은 딱 한마디로 말해서 꼴불견 이었다. 꼭 힘없는 사람들의 추앙과 대접을 당연시하며 받으려고 들었고, 가족까지 믿지 못해 끊임없이 서로를 감시하고 으르렁 댔다. 그 속에서 자라난 서진이 정상적으로 컸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결혼 후에 더 재멋대로 구는 그녀를 이해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보이는 그녀의 본 모습은 철없고 아이 같고, 남한테 지고는 못살고. 표독스럽고 사치스럽기 까지 했다. 그녀와 이혼예기가 슬슬 흘러 나올때 쯤. 서진이 공부를 핑계로 미국행을 택했고, 그 사이에 건우는 예화를 만났다. 진정 마음을 다 줄수 있는 상대를 하필 같은 학교에서 선생과 제자로써 만난 것이다.

 

 

 "죄송해요. 아버지."

 

 

 건우는 그 말 밖에 아버지에게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저는 서진 이와 다시 잘해볼 생각이 없어요."

 

 "네가 그 집하고 이혼해서 더 소문이 커지는 거다 그래서 더 네가 몹쓸놈 소리를 듣는 거라고!""

 

 "예화를 만나기 전에도, 이혼예기가 흘러 나왔던 거 아시잖아요. 서진이랑 헤어진 건.. 우리 둘의 문제였지 예화 때문이 아니에요."

 

 "하, 그래서 네놈이 당당하다 이거냐!"

 

 

 화를 참지 못한 재현이 급기야 오른손을 올려 부쳤다.

 

 

 "정재현!"

 

 

 더 이상 참지 못한 을하가 재현과 건우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방으로 돌아가요!"

 

 

 성격이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탓에 늘 평정심을 유지하던 을하의 포효에 재현도 더 이상 뭐라 말을 못하고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건우를 손등을 쓰다듬으며 안타깝게 쳐다보던 을하도 뒤이어 방문을 닫고 그의 방에서 사라졌다.

 

 

 "하아."

 

 

 -답장도 없고 걱정되네. 선생님... 힘내요 내가 할 말은 이것밖에 없어서 죄송해요 사랑해요.

 

 

 부모님이 모두 나가고, 예화가 또 보낸 문자를 한번 보고 열 번을 보아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꾹꾹 누르던 그는 상자 안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것을 증명하는 합격증과 자랑처럼 탁자위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던 학생들과 찍었던 액자들을 몽땅 쓸어 담았다. 벼랑 끝까지 몰린 지금 더 이상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는걸 알았다. 그랬기에 그 자랑스러웠던 합격증도 학생들과 함께했던 추억들도 아무것도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수학경시대회에서 받은 트로피 까지 몽땅 상자 안에 담겨졌다.

 

 그 길로 상자를 품 안에 끌어안은 그는 집밖을 나갔다. 너무 가까운데 버리면 누가 들춰 보기라도 할 것 같아서 옆 동네 아파트까지 가서 그것들을 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여태껏 그 물건들이 그와 그의 부모님을 붙잡고 자꾸 미련을 두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직과 관련되어 있는 물건들을 몽땅 버리고 집에 들어온 건우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침대위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 뜬금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119에서 온 전화였다.

 

 

 "김을하씨 가족분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김을하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지금 긴급하게 후송중인데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많이 위독한 상황이라 서요."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거에요 이 새벽에 장난하십니까?"

 

 

 정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이런 때 쓰이는 말 인걸까. 집에 잘 계시던 어머니가 별안간에 교통사고라니 몇 번을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어. 건우는 당장에 침대위에서 날듯이 일어나 부모님의 방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안에는 잠귀가 밝아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 아버지만 있었지 그 옆에 누워있어야 할 을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는요 어머니는 어디계세요!"

 

 

 그가 미친놈처럼 방안을 뛰어다니며 재현에게 소리를 질렀다.

 

 

 영문을 모르고 깨어난 재현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그 길로 부자는 병원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제발 최악의 경우만 아니기를 바라며 병원에 도착했지만, 부자의 눈에 보이는 건 교통사고로 얼굴, 몸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 된 모습의 을하였다. 황망한 표정으로 가만히 산소 호흡기에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을하를 쳐다보는 부자에게 건내진건 그녀가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들고 있었다던 상자였다.

 

 

 "하.....여보...."

 

 

 "하...아악.....엄마..... 어머니.... 아 정말... 왜.. 흑흡...."

 

 

 아까 건우가 내다 버린 상자였다. 을하는 새벽에 그것을 찾아 해맨것이다. 아들이 평생 노력해 일궈낸 것들을 버리러 간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그 물건들을 새벽에 나가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것들을 들고 늦은 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을하를 미처 보지 못한 트럭운전자가 횡단보도에서 그녀를 치었다고 했다. 지금 빠르게 긴급 체포된 트럭 운전자는 늦게 일하고 퇴근하던 중이어서 피곤했다고 경찰서에서 그렇게 진술하고 있다 했다.

 

 

 건우와 재현이 오자마자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던 을하는 다음날 새벽 숨을 거뒀다.

 

 

 건우는 그 순간 세상이 무너졌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그 새벽에 나가 사고를 당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그는 하루하루 목을 죄어오는듯한 죄책감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큰일을 치루고 눈에 띄게 쇠약해진 아버지를 볼 면목도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소문에 힘들어하는 예화를 보듬어줄수도 없었고, 아버지와 번갈아가며 만취가 되어 집에 들어와 잠을 겨우 청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됐다는 사실을 어린 예화에게 말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이었다. 이 죄책감들을 그녀와 함께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예화는 많은 것을 배우고 앞으로 일궈내야 할 것이 많은 고작 17살짜리 여학생이었다. 자신이 꽁꽁 갇히고만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앞날이 창창한 그녀까지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는 예화를 일부러 더 차갑게 대했다.

 

 

 "난 더 이상 널 만날 수가 없어. 너를 만난 대가가 너무 크다. 그래서 나 너무 힘들어."

 

 

 그녀를 떠나보내려는 결심에는 같이 죄책감에 괴로워 할 예화를 위하는 감정이 분명 많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같은 몹쓸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예화와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잘못하다간 그가 그녀를 해칠 것 같았다. 옆에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무섭고 잔인한 말로 예화를 때어냈다. 지금은 이렇게 용서를 빌며 그녀 앞에 앉아있지만. 그때는 예화를 보낼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널 보냈던 거야."

 

 

 모든 예기를 들은 예화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어떻게.. 그동안 어떻게 버텼던 거예요."

 

 

 그의 예기를 들으며 몇 번이고 심장이 쿵 떨어지고 가슴속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훅하고 치밀어 올랐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의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가진 명예나 직업 모든 것을 잃어서. 내가 싫어진 거라고 그래서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힘든데 날 버리고 갔다고 그렇게만 생각했단 말이에요."

 

 "교사라는 직업을 잃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어. 서진 이와 이혼한 것도 이미 예정된 수순 이었어서 괜찮았어. 그런데. 어머니는 ... 어머니는 ... 도저히 안됐어."

 

 "하... 하아..."

 

 "너한테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어. 나는"

 

 

 예화가 너무 많이 울어 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을 힘겹게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미안해.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서. 끝까지 나 혼자 안고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이야기를 하며 참고 참던 그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예화는 그의 옆에 가 앉아 조용하게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건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미안해요. 선생님의 아픔까지 나는 몰랐어."

 

 

 그의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 나란히 앞좌석에 앉아 있음에도 대화가 없었다. 예화는 그 모든 사실을 안 충격에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입을 닫아버렸다.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은 건우도 옆에서 아무런 말도 건내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그녀에게 괜한 짐을 쥐어준것 같아 미안했다.

 

 

 "예화야"

 

 

 고속도로 상황이 좋아 금세 도착한 집. 간신히 인사만 꾸벅한 채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려는 예화를 건우가 불렀다.

 

 

 부르는 목소리에 멈춰는 섰지만 예화는 그를 등지고 선채 대꾸하지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던 건우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그녀를 부르기 위해 입술을 뗐다. 하지만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예화가 그를 향해 뒤돌아섰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연락할게요."

 

 

 그 일과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사정이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이 되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어왔다.

 

 

 "안 돼? 나는 정말 안 되겠어?"

 

 

 순간 예화는 하려던 말도 잊고 당황했다. 그런 표정은 반칙이다. 고등학교 시절 저 얼굴에 코꿰어 고백까지 하고 사귀었다. 헤어지고 나서 저 얼굴을 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약해지지 않으려고 지금도 얼마나 마음단속 중인데! 모든 사실을 들었어도 그때 생각을 하면 너무 억울했고 너무 분했고 그가 미웠다.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날이면 심장을 거칠게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잘못했어. 미안해."

 

 

 그의 계속되는 사과에 예화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떻게 모든 상황을 알아버린 지금 그의 사과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사과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려고 한다. 다시 그와 시작해 보고 싶은 생각이 피어오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예화는 그에게 잡혀있는 손부터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다시 그와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불현듯 선생님과 다시 만난다고 홍교수에게 고백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끔찍했다. 까딱하다가 자신의 부모님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던 그녀가 잡혀있는 손을 더 힘껏 비틀자 건우는 더 세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뭔가 손목안쪽에 있는 뭉뚝한 상처의 느낌에 건우는 예화를 끌어당겨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이번엔 두 손으로 붙잡고 다시 자세히 바라보았다.

 

 

 "너 설마.."

 

 

 손목에 나있는 상처를 본 건우의 얼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굳어졌다. 그를 떠나있는 시간동안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증거가 그녀의 손목에 있는 상처에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준 상처 때문에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못된 행동을 한 날 응급처치 하고 병원에 데려가지만 안았으면 난 이 자리에 없었어."

 

 "왜 이런 행동을 했어! 왜 그랬어. 정말."

 

 "당신이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하아."

 

 "..."

 

 "나한테도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오늘은 그만 돌아가 줘요."

 

 

 

 

 

 

 

 

 망연자실한 표정의 그를 두고, 예화가 집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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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술 마시러 가요. 2020 / 7 / 31 227 0 5470   
1 1. 널 다시 원해 2020 / 7 / 31 389 0 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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