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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불순한 교수
작가 : 퀸카대행진
작품등록일 : 2020.7.31

담임선생님과 풋풋한 첫사랑을 했던 여학생들은 다들 행복했을까?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은 완벽한 비밀 연애를 해야만 한다. 사회적 통념, 친구들의 시선, 부모님들의 반대는 어떻고? 여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선생님과 여제자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가 있다. 카카오톡ID: lov2lovely

 
13. 말할수 없는
작성일 : 20-09-28 16:17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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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3화.

 

 

 

 

 

 이런 때일수록 아무렇지 않게 보여야 했다. 옷매무세를 다듬고 화장도 또렷하게 했다. 그리고 전투에 참전하는 군인처럼 강의장으로 입장했다.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꺼내놓고 수업준비를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옆의 학생들이 자신을 대화의 도마위에 올려놓고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얘기 들었어?"

 

 "어 재래잖아 저기 앉아 있는 애."

 

 

 할 수 있다면 무시하고 귀마개라도 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야 하니 그것도 힘든 일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복도를 걸어가는데도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시선들이 자꾸 따라다녔다. 5년 전 고등학교 때의 악몽이 살아 나는 듯싶었으나, 그때와 달리 철없지 않고 머리가 더 큰 학생들이라, 대놓고 뭐라고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예화야, 홍예화!"

 

 

 수업이 끝나고 알바를 가기까지 남은 시간들을 어떤 것을 하면서 채울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가은이었다.

 

 

 "내가 밥 같이 먹자고 문자했는데 왜 안 받아!"

 

 

 그제서야 예화가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가은이 보낸 문자가 5통이나 와있었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확인을 못했네."

 

 "에이그 정말. 네가 연락이 없길래 걱정했잖아."

 

 "미안해."

 

 "그나저나 너 진짜 괜찮아?"

 

 

 가은이 그렇게 물으며 예화를 앞에 두고 흘깃 거리는 시선들을 느꼈는지 표정을 짐짓 무섭게 바꾸며 예화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뭘 봐!"

 

 

 그녀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말을 중지하고 각자 가던 길로 사라졌다.

 

 덕분에 잠시 시선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지마 나 괜찮아."

 

 "별것도 아닌 것들이!"

 

 "야아."

 

 "내가 저번에 말했지 소문은 금방 사라진다고. 그러니까 너도 당당하게 굴어 알겠어?"

 

 

 가은이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목소리를 크게 했다.

 

 

 "응 알아."

 

 "수업은 다 끝났어?"

 

 "응 다 끝났어."

 

 "내가 오늘 같이 화끈하게 놀아줄까?"

 

 

 가은이 왜인지 모르겠으나 팔을 걷어 부쳤다.

 

 

 "아니야 오늘은 그냥 혼자 있을래. 좀 있다가 카페 알바도 가봐야 되고"

 

 "흐음 그래? 나 너랑 놀아줄 준비 제대로 하고 있었는데."

 

 

 가은이 아쉽다는듯 입맛을 다셨다.

 

 

 "다음에."

 

 "언제든 내가 필요하면 말해. 나 그러면 수업도 포기하고 너 만나러 갈게."

 

 

 강의장의 앞자리를 차지할려고 남들보다 10분 먼저 강의에 참석하곤 하는 우등생 가은이 무려 수업을 포기한다니. 예화는 자신을 위해 애써주는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그럼 내일 봐. 홍예화 너 이 학교에서 잘못한거 없어 어깨피고 다녀!"

 

 

 예화는 가은의 기운찬 배웅을 받으며 교문을 나섰다. 괜찮은 척 했지만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 조차 이미 힘이 빠져있었다.

 

 

 "어 교수님?"

 

 

 그때 가은의 뒤로 슬그머니 윤하가 다가왔다. 그도 똑같이 교문으로 향하는 예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스터 소문의 주인공이 밝혀져 교내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을 미리 알고 예화를 찾아다녔던 윤하였다. 교수실에 앉아 강의 준비에 집중을 하려고 해도 그녀의 손목에 난 상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신경이 쓰였다. 교내에 소문이 주인공이 누구라는게 알려지고 부터는 더이상 집중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수실을 나와 그녀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다행히 예화의 모습을 그녀가 학교를 나서기 바로 직전 볼 수있었다.

 

 

 "쉿"

 

 

 윤하가 큰소리를 내려고 하는 가은을 제지하고는 예화가 교문을 거의 다 나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가은을 바라보았다.

 

 

 "예화 어떡해요?"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윤하가 말없이 가은의 어깨를 두어 번 친 뒤 예화의 뒤를 쫓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걱정스러워 따라 붙어야 될 것 같았다.

 

 

 

 

 

 * * *

 

 

 

 

 카페 알바 시간까지 시간이 붕떴기에 예화는 무작정 시끄럽고 사람들이 넘치는 대학로로 나왔다. 그녀는 정처 없이 거리를 걷다가 길가에 있는 액세서리를 구경했다. 예쁘고 반짝이는 것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손가락에 껴보기도 하는 그녀의 얼굴에 흐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의 다음코스는 노래방이었다. 다행이었다. 구지 여럿이 오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풀러 혼자 찾을 수 있는 코인 노래방 같은 것이 많이 생겼으니 말이다. 예화는 단돈 3000원으로 원 없이 15곡을 연달아 불렀다. 가사를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발라드도 부르고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소찬휘의 티얼스 같은 노래도 불렀다. 6곡을 불렀을 때 목소리가 중간 중간 갈라졌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아."

 

 

 그녀를 쫓아온 곳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예화를 보자 윤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걱정이었던 듯싶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상처를 잘 극복하고 있었다.

 

 

 잠시 후, 예화가 노래방에서 나와 카페 알바를 가는 모습까지 확인한 윤하는 수업을 위해 다시 학교로 향했다.

 

 

 

 

 * * *

 

 

 

 "네 크흠 주문하시겠습니까?"

 

 

 힐스카페 주문을 받는 예화의 목소리에서 자꾸 쉰 소리가 섞여 나왔다.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며 나름 재미있게 즐겼을 뿐인데. 곧바로 안하던 짓을 한 부작용이 나오고 있었다. 손님을 응대할 때 청량해야할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선 소정이 숨 죽이고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사이즈는 뭘로 크흠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드시겠습니까 테이크 아웃 해드릴까요?"

 

 

 케이크를 정리하던 소정이 이제는 옆에서 배꼽을 잡았다.

 

 

 "이소정 너 자꾸 옆에서 웃을래?"

 

 

 손님이 잠시 뜸할때 예화가 소정을 다그쳤다. 하지만 두 눈이 이미 반달으로 휘어진 소정은 놀리는것을 전혀 멈출 생각이 없는듯 이제는 따라하기 까지 하며 놀려댔다.

 

 

 “크흠 손님 주문 하시겠습니까 크흠!”

 

 “...”

 

 "언니.. 크큭 언니 목소리가!"

 

 "뭐 뭐 어때서. 허스키하고 좋구만."

 

 "손님들이 보면 언니 담배피는줄 알겠어요."

 

 "좀 좋은 쪽으로 생각 못하니. 연약해서 감기 걸린 걸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아 진짜 웃겨 손님 표정 봤어요?"

 

 "너 자꾸 나 놀리려면 저리가있어. 남은 재료 재고 정리나 빨리해!"

 

 

 카운터를 대체할 인력도 딱히 없었기에 예화는 그 목소리로 계속 손님을 받았다. 다행히 그녀의 목소리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알아챈 손님들이 알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주시구요 사이즈는 미듐사이즈로 가져갈 거예요' 라고 묻지 않아도 한 번에 대답을 하며 배려를 해주었다. 가끔 '감기 걸리셨나봐요.' 하며 걱정을 해주는 손님도 있었다.

 

 

 "언니 자요. 마시고 일해요."

 

 

 손님이 한차례 왔다가 몰려 나가고 잠시 다리를 두드리며 쉬고 있었던 예화에게 소정이 따뜻한 차를 옆에서 내밀었다. 그래도 예화를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건 알바생중에 그녀 밖에 없었다. 소정이 내준 차를 반쯤 마셨을 때 또 다음 손님이 찾아왔다. 아주 익숙한 얼굴인 그녀는 친구와 함께 방문 한 듯 밝은 표정으로 시끄럽게 대화하며 카페에 들어섰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하고 치즈 케잌 하나요."

 

 

 주문 줄에 도도하게 서있는 진희 대신 그녀의 친구가 대신 주문을 했다.

 

 

 "예화야 안녕."

 

 

 그녀는 옆에서 인사로 대신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목소리였다. 주문을 한 친구가 '홍예화? 얘가 걔야?' 라고 진희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묻는 것이 들렸다. 진희가 말한 이름에서 그녀가 교내에서 아주 핫한 소문의 주인공임을 인식한 듯 했다. 둘은 예화를 몇 번 더 힐끗하더니 창밖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진희는 그녀에게 지극히 의도적으로 인사를 건낸게 틀림이 없었다. 그녀의 속을 알 수 있는 빤한 태도에 언짢은 마음이 든 예화는 잠시 둘의 앞으로 나가는 커피에 설탕이라고 잔뜩 넣어서 줄까 손가락 하나로 휘휘 저어서 줄까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정상적인 커피를 내다 주었다.

 

 

 "많이 참았다. 홍예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아낸 자신을 칭찬하며 예화는 소정이 준 차를 벌컥 들이켰다.

 

 

 "앗 뜨거."

 

 

 물론 뜨겁다는 것을 깜박하고 들이킨 탓에 바로 뱉어 내었지만 말이다. 카페 밖 창밖을 보니 방금 전까지 주황빛으로 노을 진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여 갔다 알록달록한 보라색이 어렸을 때 집 앞에서 사먹던 소프트콘 아이스크림 같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먹을까 고민하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로 떴지만 예화는 그 번호의 주인공이 금방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목록에서는 지웠으나,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았던 번호 정건우 그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번호는 안 바꿨네?"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선생님."

 

 "나랑 갈 곳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화가 카페 밖 창가를 내다보았다. 보랏빛 하늘을 등지고 그가 창가 앞에 서있었다. 그가 고정된 눈으로 뚫어지게 자신을 본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셔서 뭐하는거에요."

 

 

 창밖에 서있는 그를 응시하며 전화로 물었다

 

 

 "알려줄게. 내가 널 멀리했던 이유."

 

 "......"

 

 

 5년 전에는 그렇게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일을 말해준다는 그의 말에 솔직히 구미가 당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또렷하고 깊은 눈을 예화가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제안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궁금했고 알고 싶었었기에.

 

 

 "일 천천히 끝내고 나와."

 

 

 그녀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가 그렇게 말한 후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퇴근까지 30분이나 남아있었다. 시계를 보는 사이에 창밖에 서있던 그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예화가 멍하니 끊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설거지를 끝낸 소정이 옆으로 친근하게 다가왔다.

 

 

 "언니, 저번에 만난 그 선배들이랑 언제 약속 잡을까요? 이 사람들 내 안부 물으면서 언니 안부도 묻는거 있죠. 대게 궁금한가봐."

 

 

 그제야 와인바 헌팅 이후 예화가 미안한 마음에 소정에게 그 사람들에게 술 한 잔 산다고 문자를 보냈던 기억이 났다.

 

 

 "다음주.. 다음 주가 좋겠어."

 

 "그럼 그렇게 말할게요."

 

 "그냥 가볍게 보는 거지?"

 

 "그럼요. 그 선배는 좀 다른 것 같긴 하지만. 싫으면 거절해 버려요 그래도 돼."

 

 

 그렇게 소정과 약속을 잡으며 예화는 고민에 휩싸였다. 5년 만에 나타나 자신의 곁을 맴도는 정건우가 있는데, 자신이 그를 때어내고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 나쁠 것은 없어보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이 그를 잊는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 약속...아니다 해 다음 주에 만나자."

 

 

 잠시 고민하다가 예화가 다시 소정에게 긍정의 답변을 주었다. 알바시간 종료까지 30분이 남아있었다 그 시간이 참 더디게 지나갔다. 일을 끝낸 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침착해.. 침착하자."

 

 

 자신에게 주문 같은 다짐을 하고, 겉옷을 입고 가방까지 어깨에 걸친 그녀가 카페에 나왔다. 때 맞춰 카페 앞에 선차가 그녀를 반겼다. 건우는 구지 차에서 내려 옆 좌석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그의 차에 타기 전 예화는 카페 안에 자리하고 있던 진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예화 옆의 건우를 본 그녀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져 있었다. '이거 더 피곤해지겠구만' 생각을 하며 예화는 건우가 열어주는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예화는 어색한 기운에 그의 차를 한번 쭉 둘러보았다. 방향제에서 나는 좋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차 안은 그의 깔끔한 성향을 반영하듯 중후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옆자리에 타고서도 진정을 못하는 손끝은 아직까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기 싫어 가방으로 일부러 손을 가렸다.

 

 

 그와 이렇게 가까이 자리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입술까지 바짝 말랐다.

 

 

 "네가 내 옆에 있는게 믿기지가 않아."

 

 

 건우가 운전을 하며 먼저 운을 띄었다.

 

 

 "좋아서 탄거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아요."

 

 

 그녀가 날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이 자꾸만 세게 나가는 건 그를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자존심 같은 거였다.

 

 

 "그건 너무 잘 알고 있어. 나 몇 번이나 너한테 거절당했잖아."

 

 

 그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어떻게 생활 하셨어요?"

 

 

 그의 목소리에 짐짓 마음이 약해진 예화가 그동안의 애증 원망 같은 감정은 다 배제한 채로 그에게 평범한 질문을 했다. 그저 궁금했었던 사소한 질문.

 

 

 "서진이와 같이 생활했었던 그 집에서는 따로 나와서 독립했어."

 

 "아..."

 

 "그냥 혼자살기 적당한 오피스텔로 들어갔고, 지금은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어."

 

 

 그 일이 있은 후, 예화도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지만 그도 마찬가지였다. 불미스러운 소문에 휩싸였던 그는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전부인인 오서진과 같이 살던 집에서도 나와야 했을 것이고.

 

 

 그동안 학교조차 다닐 수 없게 돼 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자신을 버린 그만 원망하기만 했지 그 후,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도 그 긴 시간동안 홀로 묵묵히 자신이 감당해야낼 벌을 받고 있었던 거였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학교보다 학원이 더 좋아. 책임감도 들하고 페이도 꽤 세고."

 

 

 그녀의 마음을 파악한 듯 그가 대답을 덧붙였다.

 

 

 "이 나이에 고등학생들 보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좋은 대학들 들어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는 학생들 보면 가르치는 보람도 꽤있어."

 

 

 학생들을 보살피고 함께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의 차분하고 친절한 태도에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아이들도 꽤 되었었다. 그의 배려심이 17살 때는 너무 좋았다. 포근하고 한없이 따뜻해서 그의 자상한 눈길이 자신만 봐주길 바랐다.

 

 

 "그때도 제자들 예뻐하시고 잘 보듬어 주셨 잖아요."

 

 

 말을 하다 먹먹해지는 기분에 예화가 잠시 심호흡을 했다. 5년 전 그에게 품었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위험하게 가슴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이성으로는 판단이 잘 안되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수상했다.

 

 

 "그중에 한 제자가 너무 예뻐서. 모든 걸 포기 했었지."

 

 

 그가 노골적으로 그녀를 겨냥해 던지는 말에 예화가 그를 쏘아보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운전하는 차는 이제 막 서울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조금 멀어 눈 붙이고 있어도 돼."

 

 

 그가 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수상한 행동하면 우리아빠 부를거에요."

 

 "……."

 

 

 그가 운전을 하다 짐짓 상처받은 표정으로 예화를 응시했다. 마침 신호도 걸렸기에 차는 정차해 있었다. 잠시 목을 가다듬던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한테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 많이 했어. 그런데 너도 아는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제 네가 싫어할만한 행동은 안 해. 약속할게."

 

 

 그가 그렇게 말한 후 신호가 바뀌자 다시 차를 출발 시켰다.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대화가 없는 차 안, 피곤하기 까지한 몸에 자꾸만 눈이 감겼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창밖의 풍경은 이제 푸르는 녹음이 우거진 색깔로 바뀌고 있었다. 그건 도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장시간의 운전에 피곤한 듯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손으로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깼어?"

 

 "네."

 

 "많이 피곤했나봐. 너무 잘 자서 안 깨웠어."

 

 

 

 당신 때문에 어제 과음해서 피곤한 거라고, 예화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켰다. 차는 양주의 넓다란 주차장에 멈춰 섰다.

 

 

 

 "여기까지 왜 온거에요?"

 

 "누굴 좀 만나려고."

 

 "여기에 누가 계신데요?"

 

 "우리 어머니."

 

 

 

 그가 먼저 앞서 걸어갔고 예화가 뒤를 따라갔다. 수풀이 우거진 흙길을 따라 걸어가니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가 나왔다. 예화의 기억 속 그의 어머니는 자신을 찾아와 학교 선생님이던 그가 잃을것에 대해 걱정하고 건우를 사랑하게 돼 버린 어린 예화를 안타까워했다. 그를 닮아 차분하고, 고운 사람으로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심상치 않은 느낌에 예화가 생기 있는 또렷한 눈을 하고 건우를 올려다보았다.

 

 

 강가와 예화를 번갈아 보던 건우가 말을 아꼈다. 그는 잘게 물결치는 강가를 한참을 더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까지 널 데려오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가 예화를 여기 데려온것을 후회한다는 투로 말했다.

 

 

 "왜 선생님 어머니가 여기계신데요? 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꾸만 해요."

 

 "근데 안 되겠어. 가자. 미안해."

 

 

 그가 강가를 등지고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가려했다. 그때 그의 걸음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검은색의 가지런한 정장을 입은 여자가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년 만에 만난 그의 전부인 오서진은 많이 마른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선천적인 귀티와 우아함은 여전했다.

 

 

 "하아 당신.."

 

 

 

 서진이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예화와 자신의 전남편 이었던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예기했다.

 

 

 "나랑 어머니 기일에 여기 같이오는거 거절해서 누구랑 가나 했는데, 이제야 얘를 데려올 마음이 생겼던 거야?"

 

 "오서진!"

 

 

 건우가 화난 표정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자! 나랑 얘기해."

 

 

 하지만 그의 손길을 우악스럽게 뿌리친 서진이 예화의 앞에 다가와 섰다.

 

 

 

 

 

 

 

 

 "그럼 저 애도 알았겠네? 당신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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