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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고잉홈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쓸쓸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오! 나의 보디가드
작성일 : 20-09-27 21:45     조회 : 338     추천 : 0     분량 : 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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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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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야, 잘 지내고 있지? 미안. 엄마가 정말 미안해. 올 봄엔 꼭 한 번 보러갈게. 약속할게, 딸.]

  내 계좌로 30만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 문자가 도착하고 약 십 분쯤 후에 엄마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몇 개월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어라 답 메시지를 보낼까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연희 씨, 밀당하는 거야? 뭘 그렇게 고민해? 튕기자 말고 받아줘. 남자 애태우지 말고.”

  오전 내내 무얼 하는지 책상에서 꿈쩍 않고 앉아있던 영업소장이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나를 보고 말한다. 그 바람에 조용히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던 두 직원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향한 그들의 시선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난 그냥 모른 척했다. 아랑곳 않고 휴대폰을 그대로 들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자꾸만 웅크리게 하는 추위보다도 하늘 위에 높이 뜬 밝은 해를 보기 힘들다는 게 더욱 싫다. 새벽 기운이 가시지도 않은 저녁 같은 아침에 이슬을 맞아가며 출근한 이후로는 줄곧 창문도 나지 않은 사무실을 지켜야한다. 퇴근시간엔 다시 깜깜한 밤이 찾아와 있었으니까.

  한 달 전, 이사를 한 이후로는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영업소장과 직원들과 먹은 식사 시간은, 왠지 겨우 주어지는 자유 시간을 억지로 강탈당하는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었다. 일을 시작한 후로 처음 난 내 권리를 그들에게 요구했다. 오천 원 이하로 정해져 있는 점심값을 급여에 포함해 받기로 하고 난 사무실에서 혼자 먹는 도시락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도시락이라기엔 마치 전투식량 같은 딱딱하게 식은 밥에 매일 반복적으로 먹는 밑반찬 두어 개가 전부였다. 난 그것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뜨거운 물에 말아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혼자가 된 사무실의 고요함에 드문드문 묻어나는 나만이 내고 있는 달그락 소리를 음미하는 것이었다.

  해가 바뀐 것과 함께 나에겐 약간의 변화들이 있었다. 스물일곱 살이 되었고 다시 혼자가 되었고 사는 곳과 공간이 바뀌었다. 일 년 가까이 연락이 없던 엄마에게서 문자 메시지도 왔다. 그를 볼 수 없게 된 후로, 그로부터의 딱 한 번 연락이 왔었다. [나 용준인데....... 잘 지내지?]. 문자 메시지로 도착한 그의 연락을 난 무시했다. 아니, 문득 느껴지는 반가움과 두근거림을 무시했다. 그리고 외로움에 조금씩 적응되고 있었다. 가슴 한 켠은 그랬다. 그가 있던 자리가 그새 흔적 없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그 자리는 비워져 있는 채 그대로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슬고 곰팡이가 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평정심 속에도 가끔 쓰라린 무언가가 느껴지는 걸 보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증상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직 시간이 약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엄마가 보고 싶고 그가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모두 지나간 과거에 있었고 난 앞으로만 살 것이 분명하다. 엄마를 믿지 못하는 딸도 아니며 그가 그립다고 괴로워하거나 끊임없이 그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나약한 나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가정했던 상황이 아니듯 피치 못하는 돌발 상황들에 난 부딪치고 있었고, 아직까진 크게 다치지 않고 가고 있다.

 

  “안녕하세요.”

  난 밝게 인사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추위 따윈 잊게 해주는 유일한 곳이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하며 나를 힐끗 보셨다. 나의 웃는 얼굴에 잠깐 멈칫하셨던 것이다. 꽤나 말씀이 없으신 분이지만 이번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좋은 일 있으신가 보네요.”

  큰 솥에 끓고 있는 국물을 커다란 국자로 휘저으시며 하신 말씀에 난 대꾸하지 않고 그저 표정을 유지한 채 주문을 했다.

  “저, 해장라면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사장님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하셨다. 사장님이 계신 주방 쪽 끝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왔지만 한밤중 같은 어둠이 이미 깔려 있다. 그리 밝지 않은 은은한 이곳의 조명은 오히려 저녁 식사 분위기에 더 알맞다. 저 큰 솥에서 끓고 있는 국물 덕분에 습도도 알맞고 작은 가게 안에서는 어떤 소리든 생생했다. 사장님의 칼질 소리, 그릇 소리, 보글보글 국물 끓는 소리, 후루룩 손님들이 라면을 먹는 소리들. 다른 식당이나 술집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도 간혹 들릴 뿐이다. 그것이 좋았다. 그다지 외롭지 않고 그냥 아무 시름없이 사는, 너무나 평범해서 이상적인 생활을 느끼게 해 준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내 앞에 놓인 해장라면과 소주 한 병은 그 비주얼만으로 내 등을 토닥여 주는 것 같다. 나의 점심 도시락과 ‘골목라면’의 라면 한 그릇은 이렇게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싼 집을 구하느라 버스 정류장에서 꽤나 걸어 들어가는 골목이었지만 맘에 드는 동네이어서 괜찮았다. 그럼에도 집에서 이삼십 미터 앞까지는 골목이 외져서 어두워진 후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보다 퇴근이 조금 늦을 때나 ‘골목라면’에서 식사가 늦어졌을 때에는 나름의 방법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디인지는 몰라도 나보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 집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도 ‘골목라면’ 단골이었다. 퇴근 시간은 나보다 조금 늦는 듯 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난 그를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엔 골목까지 뒤따라오는 그가 혹시 치한은 아닐까 잔뜩 겁을 먹고 집으로 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를 보디가드쯤으로 여기는 걸 그가 눈치 챌까봐 겁나기도 한다. 아무리 그 아이를 마주쳐도 난 끝내 모른 척하고 그냥 도움을 받기로 이기적인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그 아이가 술을 꽤나 마신 듯 했다. 가게를 나오면서부터 비틀거렸다. 골목을 들어서 집을 향해 갈수록 그의 다리가 그리는 갈지자는 점점 커졌다. 난 약 7, 8미터 후방에서 걷고 있었다. 그의 속도를 맞추려니 답답했다. 반 쯤 지나왔을 때, 난 그냥 그를 지나쳐 가기로 결심했다. 걸음을 재촉하고 그를 지나치려는 순간 그 아이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난 놀라 몸을 피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는 곧 벽을 의지해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난 다시 가던 길을 가려했다. 어차피 집 앞이었고 아직 의식은 있어 보였다. 난 그를 앞질렀다. 골목엔 나와 그 아이 둘 뿐이었고 내 뒤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벽을 짚은 채 그는 꼼짝 않고 서 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까만 골목길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난 그를 지켜보고 서 있다. 그냥 갈까 다시 망설였다. 밤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하늘을 향해 입김을 뿜었다. 하늘에 별이 가득한 청명한 공기 속에 그와 나는 있었지만 너무 추웠다.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는 크게 기침을 몇 번 하더니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난 그를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벽을 짚은 채 힘들게 구역질을 해댄다. 벽을 짚은 마른 두 손은 빨갛게 얼어 있다. 억지로 몸을 가누려는 듯 떨고 있었다. 난 등을 천천히 두드려 주었다. 숨을 가쁘게 쉬면서 그 아이는 몸을 낮췄다. 난 오던 길로 급히 달려 내려갔다. 골목 끝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물 한 병을 샀다. 다시 그 아이가 있는 곳까지 왔을 때 그는 온 몸을 늘어뜨린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아이 참...! 괜찮아요? 정신 차려 봐요!!”

  그는 꼼짝 않고 있다가 다시 가쁜 숨을 쉰다.

  “정신 차려요! 이것 좀........ 이것 좀 마셔 볼래요?”

  그가 눈을 뜬다.

  “집이 근처에요? 근처인 건.......... 맞죠? 어디에요? 아이 참........ 경찰을 불러야 하나.......”

  난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어떡할까 고민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냥 주저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

  나의 비밀 보디가드,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흐린 가로등 빛에 새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골목의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날 만큼. 그의 언 손을 잡았다. 너무 차가워 놓을 수가 없어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잠시 정신이 든 듯 실눈을 뜨고 있던 그는 커다란 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의 왼쪽 눈 끝으로부터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이 어둔 골목을 비추는 별빛에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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