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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쓸쓸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변화와 변질의 상반된 의미
작성일 : 20-09-27 21:41     조회 : 354     추천 : 0     분량 : 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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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가 출근한 후, 정적이 흐르는 집 안은 유독 차갑고 을씨년스러웠다. 게다가 어젯밤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침대 옆에 뒹구는 옷가지들, 식탁위에 가득 싸인 빈 맥주 캔들과 동규 씨가 선물한 와인 병, 과자봉지들, 싱크대에는 와인 잔을 비롯한 설거지거리들과 과일 껍질이 뒤섞여 시큰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난 한숨을 쉬는 대신 눈을 감았다. 지난밤과 현재와의 괴리감을 깨주는 이 너저분한 것들이 정리되기 전에 혼잡해진 머릿속부터 정리해야 했다.

  어영부영 다시 4개월을 그렇게 보냈지만 난 여전히 방황 중이었다. 그가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한 듯 보였다. 하지만 특별히 입증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나의 심증일 뿐이었다. 또 다시 캐묻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예전에 비해 자신의 행방을 내게 곧잘 알리거나 집에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졌을 뿐이다.

  난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뒤처리와 정리들은 꼬박꼬박 해주었던 그였다. 이른 아침이 됐든 늦은 밤이 됐든 요리와 빨래는 내가, 설거지와 청소는 그가 전담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그가 더 부지런히 실천해왔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며 슬쩍 짜증이 났지만 이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그를 이해하려 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쯤부터 그의 회사일이 좀 바빠지긴 했다. 처음 인턴과정을 거쳐 직원이 되었지만 정직원이 아니었던 그는 이번에 2년째 근속을 하면서 정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관리직 쪽으로 업무도 이동하고 있었고 근무 평가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경쟁도 불가피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상황을 내게 시시콜콜 이야기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그가 부쩍 예민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조금씩 다시 나를 조여오고 있었다.

 

  11월 말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연말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때 이르다고 여겨졌지만 날씨만은 그렇지 않았다. 첫눈이 벌써 내려서였을까. 여러 매체에서나 거리에서 성탄절 분위기를 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를 둘러싼 배경들이 아무리 변하여도 난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저 춥기만 했다. 옷을 껴입어도 몸은 계속해서 떨렸고 손발은 얼음장 같았다.

  난 어느새 회사 일에 적응해 있었다. 영업소장의 실없는 행동들도, 이 대리를 비롯한 직원들도 여전했다. 난 일주일에 삼사일(영업소장이 외근하고 돌아오는 날을 제외한)은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다 날랐고 전시장과 사무실을 반짝반짝 닦는 일도 꾸준히 했다. 견적서와 계약서등을 정리하는 일에도 이젠 도가 텄다. 그럼에도 무언지 모르게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에게 한가로워 보이고 싶지 않아, 비품을 관리하고 영수증을 정리하는 일과 화장실 청소까지 광범위하게 움직였다. 직원들과 부딪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편하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다행히 일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았고 딱히 스트레스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뭔가 허전했다. 어렵고 복잡한 일 때문에 가끔은 스트레스를 받고 싶었다. 상사나 직원들과 부딪치며 불만을 토해내고 싶기도 했다. 가끔 그런 얘기들을 내게 하는 용준이가 부럽기도 했다. 작은 케이지에 갇힌 새 마냥 단조로운 내 일상이 원망스럽고 싫었다. 이런 생각들을 내가 감히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나 있을까.

 

  “연희 씨는 데이트 안 해? 크리스마슨데, 남자친구랑 놀러도 가고 그러지? 아, 부럽다 부러워........ 정말 좋을 때야. 안 그래, 이 대리?”

  성탄절을 앞둔 금요일 퇴근시간을 알리며 영업소장은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슬쩍 웃어 넘겼다. 이 대리나 다른 직원들도 그랬다.

  “다들 연말인데 남자친구든 가족이든 파티도 하고 놀러 가고들 좀 그래. 나처럼 고독한 기러기들이 실컷 부러워하게. 허허....... 난 그럼 술이나 한잔하러 간다. 다들 잘들 퇴근해요. 흠!”

  의미 없는 말끝에 의미심장한 헛기침을 한번 하고 영업소장은 사무실을 먼저 나섰다.

  “기러기가 무슨 자랑도 아니고......... 쯧쯧.........”

  이 대리는 영업소장이 나간 출입문을 바라보며 말하고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갑시다! 연희 씨도 얼른 정리하고 가. 난방 잘 끄고 탕비실이랑 화장실 전기 잘 살피고!”

  “네.”

  그들은 이렇게 나를 남겨두고 사무실을 나갔다.

  ‘한심해........ 소장은 연말 잘 보내라는 인사라도 했지.........!’

  난 생각했다. 그들이 나가기 전 옷을 입는 척하다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영업소장이 나가기 전 꺼 놓았던 난로를 다시 틀었다. 휴대폰을 들고 이것저것 훑어보았다. 괜히 주소록과 통화기록들을 살폈다. 몇 일간 통화기록도 수신 메시지도 없음을 확인했다. 몇 안 되는 주소록의 연락처들은 너무 오래되어 연락하기 애매한 사람들뿐이었다. 엄마와 용준이를 빼고는. 때마침 진동과 함께 문자 메시지창이 떴다.

  [오늘 늦어. 미안. 먼저 저녁 먹어.]

  한 동안 집으로 갈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사무실을 나섰다. 난방을 끄고 탕비실과 전시장, 화장실을 모두 체크했다. 어두운 저녁 하늘이 맑았다. 어제까지 매서웠던 찬바람도 잦아들고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검푸른 하늘을 향해 내뿜은 입김이 매 말라 공기 중에 빠르게 흩어졌다.

  버스를 탔다. 집에 가는 버스는 아니었다. 그냥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 정류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십 분정도를 달렸을까, 난 적당한 거리의 정류장에서 무작정 하차했다.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오래된 동네였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난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치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한번쯤 걸어보았음직한 거리의 풍경들이 가득했다. 작은 규모의 동네 재래시장을 끼고 낡은 2, 3층짜리 건물들이 즐비했고 오히려 어색하게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간혹 보였다. 뷰티샵에서 틀어놓은 음악소리는 시끄럽지 않았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밝기의 불빛, 정당한 정도의 상점들과 사람들이 일시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렸던 한 아주머니를 따라 걷다가 상점들을 구경하다보니 어느 새 아주머니가 사라지고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그 때 구수한 냄새가 어디에선가 거리로 흘러나왔다. 그 냄새를 맡고서야 난 내가 배가 고픈 상태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냄새를 따라갔다.

  ‘골목라면’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을 들어서기 전 낡은 건물 1층에 있는 작은 라면 가게였다. 다행히도 가게 안엔 아무도 없었다. 한 차례 저녁 식사를 끝마친 손님들이 남긴 흔적만이 몇 개 안되는 테이블 위에 남아있었고 사장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는 설거지를 하느라 바쁘셨다. 사장님은 나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계셨지만 난 그가 하던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사 오 분 쯤 지났을 때, 마지막 남은 테이블을 정리하러 주방을 나오신 사장님이 날 보고 놀라셨다.

  “어........ 방금 왔는데요. 음....... 해장라면 하나 주세요........”

  놀란 사장님의 표정을 보고 나도 놀랐다. 급히 벽에 걸린 메뉴를 살피다가 난 주문을 했다.

  “아, 예!”

  사장님이 대답하셨다.

  “어....... 저....... 소주도 있나요?”

  내가 묻자 사장님은 테이블을 정리하시며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병 주세요........”

  곧 사장님은 진한 사골국물에 파와 어묵을 띄운 국물과 소주를 가져다 주셨다.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잔에 반쯤 따라 먼저 마셨다. 빈속에 들어가는 차가운 소주의 맛은 아주 짜릿했다. 그러고 나서 그릇 째로 마신 뜨거운 국물은, 내가 아니라 마치 국물이 나를 삼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조금 전 사무실에서 집에 갈까 말까를 망설이던 나를 떠올렸다. 망설임 없이 그냥 나왔더라면 난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 잠깐의 망설임의 시간이 고맙게 느껴졌고 곧 나의 선택에 스스로 경의를 표했다.

  나조차도 무언지 모를 느낌에 둘러싸여 지낸지 몇 개월. 그 요상한 느낌들로부터 나를 구해준 소중한 선택이었다. 아니, 내게 ‘선택’을 가능하게 해준 몇 분의 망설임과 몇 시간의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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