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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고잉홈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쓸쓸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사라지는 나
작성일 : 20-09-27 21:40     조회 : 367     추천 : 0     분량 : 8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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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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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출근이라는 부담감과 긴장은 월요일 아침 눈을 뜨고부터 들기 시작했다. 지난밤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뒤척이지 않으려 애쓰는 바람에 온 몸이 다 욱신거렸다. 짙은 쪽빛 하늘을 확인한 것까지 기억하는데 언제 잠들었는지 눈을 뜨니 일곱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딸그락 소리와 동시에 현관 센서 등이 꺼지는 게 보였다. 그가 방금 집을 나섰다. 뻑뻑한 눈을 꿈뻑거려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났다. 침대 옆 책상 위에 그가 남긴 쪽지가 놓여있었다.

  ‘첫 출근 잘 해! 오늘부터 시작하는 일이 있어서 일찍 출근해. 퇴근도 늦을 거야. 미안. 저녁에 전화할게!’

  난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아홉 시까지 출근이지만 첫 날이라 삼십분 전엔 도착해야 했다. 게다가 전철로 여덟 정거장이니까 이동 시간도 고려해야 했다. 긴장감이 드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 회사에 가까워지면서 긴장감은 더해갔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긴장이 풀렸다.

  자동차 전시실과 사무실이 따로 있었는데 사무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책상은 대여섯 개 정도 있었다. 직원은 서너 명 뿐이었고 그나마도 모두 남자들이었다. 영업소장님은 내가 홍일점이라는 말을 몇 번 되풀이하시며 직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는 연실 웃고 있었고 다른 직원들도 나를 반겨 주었다.

  “자, 이제 소개도 했고........ 보다시피 송 양은 우리 영업소에서 제일 중한 사람이니까 앞으로 잘들 대해 주고....... 일은 이 대리가 알아서 가르쳐 줘. 그럼, 오늘 제일 먼저 할 일은....... 우선 연희씨, 아침은 먹었나?”

  “아, 아니요.”

  “그래? 그럼 요 앞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랑 커피 좀 사오겠나? 우린 곧잘 이렇게 아침을 먹어. 다들 뭐, 혼자들 살고 아니면 마누라한테 아침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신세들이라.......”

  그의 눈웃음이 돋보였다. 영업을 오래해서 그런지 사람 좋게 웃으며 그는 내게 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연희씨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사와도 되고.”

  “아....... 네........”

  난 2만원을 건네받고 사무실을 나왔다. 조금 전에 잦아들었던 긴장감 같은 느낌이 다시 느껴졌다. 편의점을 향하면서 난 생각했다. 방금 인사를 나눈 직원들의 표정 하나하나와 내 책상의 위치, 받기로 한 월급의 액수, 잠시 후 사무실에서 그들과 함께 하게 될 아침 식사와 영업소를 찾아오는 고객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또 그 모두를 상대하게 될 알 수 없는 내 모습까지.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지폐 두 장에 시선이 머물렀고 다시 두리번대며 편의점을 찾았다. 문득 오늘 아침에 용준이가 써 놓았던 쪽지가 생각났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지난 주말, 우리의 모습까지 잠시 상기하게 했다. 하지만 난 머리를 흔들어 잡념들을 떨치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영업소장은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무지 애쓰는 것 같았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늘여놓으며 껄껄 웃었다. 쉼 없이 얘기하고 웃으며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는 그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서는 난 도저히 샌드위치를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다른 직원들은 익숙한 듯 아랑곳 않고 식사를 했지만 그의 농담에 크게 반응하진 않았다. 식사의 끝은 그의 수다의 끝이었다. 그가 자리를 뜨자 이 대리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는 나를 불렀다. 난 삼분의 일도 채 먹지 못한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연희씨는........ 원래는 아홉 시 출근인데, 이십 분정도만 일찍 나오면 돼요. 나와서 할 일은 크게 없어. 뭐........ 사무실은 지저분한 것들만 좀 치우고 먼지 닦고. 중요한 건 영업 시작 전에 전시실하고 상담 창구예요. 거긴 늘 고객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깔끔하고 청결하게, 수시로 정리해 주면 되고요. 견적서나 계약서 같은 서류들 잘 관리해 주면 되고....... 음....... 고객들 차 대접, 비품 관리........ 뭐 그 정도? 아! 우린 화장실 청소 같은 건 안 시켜요. 다 남자들이니까 우리가 해요. 여자 화장실은 뭐, 거의 연희씨 혼자 쓸 테니 거기만 좀 신경 쓰면 되고요. 가끔 이렇게 아침을 먹긴 하는데......... 연희씨가 이해해요. 저 양반 원래 좀 그래요.”

  이 대리는 나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사무실을 나간 영업소장 이야기를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뭐 물어볼 거 있으면 해요. 서류랑 비품들은 설명해 줄게요.”

  그 날은 하루 종일 이 대리를 쫒아 다녔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다 물어보진 못했다. 그가 가르쳐주는 것들을 하나하나 수첩에 적기 바빴다. 다행인 건지, 첫 출근 날에 고객들은 많지 않았다. 이 대리는 하루 종일 내 업무를 대신하며 나를 견습하게 했다.

  “그럼, 내일부턴 직접 해 봐요.”

 

  집에 오니 여섯 시 사십오 분이었다. 종일 한 일은 그리 없는 것 같은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음도 무거웠다. 차라리 그냥 피곤함을 즐기기로 하고 씻지도 않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잠깐 눈을 감았는데 떠오른 생각이 나를 벌떡 일어나게 했다. 왜 그랬을까. 난 오늘 그가 늦을 거라는 사실과 함께 늘 벽장에 쑤셔 박혀 있는 그의 백팩이 생각났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오면서 들고 왔던 것인데, 쓰지 않는 짐처럼 벽장에 박아 두고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난 무엇에 홀린 듯 벽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물건들을 파헤쳐서 그의 백팩을 꺼냈다. 내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난 가방을 열었다. 사회복지사 관련 서적 몇 권과 장지갑 하나가 있었다.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지갑을 열었더니 외국 지폐 몇 장이 있었고 반대편엔 네 번 접어 놓은 종이가 있었다. 난 그 종이를 꺼내어 펼쳤다. 그러자 무언가가 그 안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사진이었다. 그녀일 거라 직감했다. 사진 속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갸름한 얼굴에 큼직큼직한 이목구비, 짙은 화장을 하고 가슴골이 보이는 하늘 색 셔츠를 입고 찍은 상반신 사진이었다. 난 숨이 가빠졌다. 손에 들린 종이를 펼치는 동안 온 몸에 피가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용준! 이곳에 온지도 벌써 삼 개월이 넘었어. 나에겐 삼 년 같은 시간이야.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순간이 단 일 초도 없었어. 그게 너무 괴롭지만 다시 자기 볼 날을 기다리며 꾹 참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부탁한 책 보내줘서 너무 고마워. 덕분에 큰 도움 되고 있어. 앞으로 십 오개월........ 까마득한 시간이지만 늘 내 곁엔 자기가 있어 든든해.......... 건강하고 자주 전화해. 사랑해! ........ 사랑하는 경진.]

  그녀의 글은 절절했다. 그를 향한 그리움이 곳곳에 진하게 묻어났다. 삼 개월이 되었다면 그의 퇴근시간이 빨라졌던 그 시점이었다. 난 편지를 반복해서 읽었다. 그녀의 사진도 자꾸만 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고는 얼른 그 사진과 편지를 지갑 속에, 가방 속에 그대로 넣어 두었다. 벽장을 다시 정리하고 난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자기라니............’

  따뜻한 물이 온 몸에 흘렀지만 피부엔 소름이 돋았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캐치하려고 애썼다. 마침내 잡아낸 생각에 급히 샤워를 끝내고 물기가 마르기도 전 티셔츠만 걸쳐 입고 욕실을 나왔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 여덟 시가 안 되었다. 난 휴대폰 주소록을 미친 듯이 뒤졌다. 대학 동기 중에 용준이에게 지금 그가 다니는 식품 회사를 소개해 준 친구가 있었다. 내 휴대폰 주소록에 그의 전화번호가 있을 것이다. 긴장이 된 건지 몇 번을 뒤졌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난 컴퓨터를 켰다. 용준이와 내가 가입되어 있는 동문카페를 다시 뒤졌다. 그 동기의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난 정신없이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 연희야. 송연희. 갑자기 이런 연락해서 미안한데........ 급하게 확인할 게 있어서. 용준이가 다니는 회사에서 경진이라는 여자 있지? 너도 혹시 잘 아는지....... 용준이랑 만나는 것 같은데 넌 알 것 같아서.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이해하고 좀 얘기해 주겠니?]

  문자의 내용은 막장이었다. 하지만 난 아무 생각 없었다. 전송버튼을 누를 때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끝내 메시지를 보내놓고 난 유유히 젖은 머릴 닦았다. 마치 범죄를 저지른 듯한 기분이었다. 애써 내 미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메시지는 이미 보내졌고 답장만 기다리면 돼! 바보같이 굴지 말고 확실히 하자. 난 강해. 난 소중해. 난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어.......!’

 

  정말 피곤했던 건지, 정신이 들고 보니 씻고 나와 젖은 머리에 티셔츠 하나만 간신히 걸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열시 반.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가 막 퇴근한 모양이었다. 콧노래도 들려왔다. 나의 머리는 엉킨 채로 어느 정도 말라 있었다. 입다만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후 선풍기를 침대 쪽으로 틀어 놓고 다시 누웠다. 그가 욕실에서 나오기 전 다시 잠이 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잡생각이 하나 둘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그의 콧노래와 물소리가 들렸고 난 괴로웠다. 다시 의식을 잠재우고 움직임 없이 자는 척 해야 했다. 내가 잠든 사이 그는 무얼 할까 하는 궁금증이 잠을 방해했다. 다행히도 그는 욕실을 나와 옷을 입고 스킨을 바르는 것 같았다. 잠깐 고요함이 흐르긴 했지만 곧 침대로 와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는 다시 슬며시 일어나 선풍기의 타이머를 세팅하더니 조심스레 불을 끄고 다시 누웠다. 곧 그의 코고는 소리가 크지 않게 들려왔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역시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깨어있는 순간순간이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서, 혹은 이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 낮 동안은 최대한 많은 일을 하려고 했다. 전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나름 과잉친절을 베풀어 보기도 하고 시시한 영업소장의 농담을 맞받아쳐 주기도 했다. 난 칭찬도 받았다. 그러면 진짜 기분이 좀 좋아지기도 했다. 오히려 퇴근시간이 두려웠다. 용준이가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했다.

 

  “.......... 응.......... 그래서 ........ 음........ 알았다.............”

  그는 같은 대꾸만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통화시간은 십 분을 넘기고 있었다. 낯선 기류가 날 숨 막히게 했다.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연희야........ 너, 창희한테 연락했니?”

  전화를 끊고 그가 물었다.

  “응.........”

  “후......... 나한테......... 그냥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

  그의 휴대폰 벨이 울렸던 그 때 난 이미 알 수 있었다. 창희는 내 친구가 아닌 그의 친구임을 난 간과했다. 그저 뭔가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참사를 불렀다.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대응책을 생각해 낼 겨를도 없었다. 설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또 한 번 난 이성을 잃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없이 눈물만 났고 몸이 떨렸다. 그는 그런 날 그저 바라보다가 땅을 보다가를 반복하며 서 있었다. 한 차례 막힌 숨이 뚫리고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입을 열었다.

  “회사 동료야......... 그냥 동료인데........ 내가 좋대........ 나도 알아, 안 되는 거. 나도 잘 아는데........ 그 애가 많이 괴로워했어. 그냥....... 미안해서 잘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괴로워했다고? 괴로워......... 네가 그걸 이해하기나 해? 하아..........”

  난 다시 숨이 막혔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얼굴이 하얗게 되어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난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침대 밑에 있던 캐리어를 꺼내어 손에 잡히는 대로 짐을 쌌다. 그는 얼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 말 않고 캐리어를 끌고 현관을 나섰다. 난, 보란 듯이 행동했다.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무조건 그 공간을 벗어나고픈 마음뿐이었다.

  짐을 끌고 무작정 도심으로 향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막 입사한 회사에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고온다습한 여름 공기가 무색하게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도심의 여름밤은 화려했다.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소리, 수많은 자동차들과 불빛, 어딘가에서 들리는 흥겨운 음악소리. 이 모든 것들이 날 울게 했다. 눈물이 눈앞에 가득 차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낮처럼 밝은 색색의 불빛들이 물 위에 뿌려놓은 물감처럼 아른거릴 뿐이었다. 이내 차들과 사람들도 내 눈물에 묻혔다.

  한참을 걷다가 어느 유흥가 골목에 외롭게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동전을 털어 투입구에 모두 넣고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전화벨이 한참을 울리고 나서야 엄마는 받았다. 엄마는 한참 침묵했다.

  “엄마......... 나 연희......... 잘 지내?”

  “어........ 그럼. 너는? 너도 잘 지내지?”

  “응........ 나 회사 다녀, 엄마. 큰 회사는 아닌데 다닐 만 해........ 엄마는 괜찮아?”

  “어, 그래. 잘 됐네. 잘 됐어......... 엄마도 그래. 여전히 바쁘지 뭐....... 저기........ 연희야, 엄마가 아직 일하는 중이라.......... 엄마가 나중에 전화할게.”

  “어? 어....... 알았어.........”

  난 터지려는 눈물을 꾹꾹 누르고 밝은 목소리로 얘기하려고 했다. 어쩌면 엄마의 목소리도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연희야! 미안. 엄마가 먼저 연락 못 해서......... 우리 다음에 얼굴 보자. 꼭. 알았지?”

  “그래, 엄마......... 봐야지.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보고 싶다, 딸........ 잘 지내고 있어. 엄마 이만 끊을게.”

  “어, 엄마! 잘 지내요..........!”

  엄마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동전은 아직 남아 있었다. 난 수화기를 내려놓고 동전 반환구에서 남은 동전을 꺼내어 손에 쥐었다. 눈가까지 차였던 눈물을 난 흐르지 못하도록 닦아냈다. 목구멍에 차여 있던 것은 삼켰다. 전화 부스를 나와 주변에 모텔 간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집에 와. 와서 얘기하자.]

  허름한 도심의 어느 골목에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은 작은 여관. 어떠한 이유로든 잠을 제대로 잤을 리 없었지만 언제 잠이 들었었는지 휴대폰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그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오전 일곱 시. 지금 막 도착한 이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가 지난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지만 부재중 전화도, 별 다른 메시지의 흔적도 없었다. 이번 주 내내 일곱 시면 집을 나서던 그였다.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었던 나는 침대 옆에 그대로 놓여있는 캐리어를 들고 여관을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안은 깨끗했다. 침대도 정리되어 있었고 용준이의 스킨 향만이 남아 있었다. 캐리어는 그대로 두고 난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퇴근 후 난 집에 걸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닌데 아무렇지 않은 듯 집으로 퇴근하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래도 그저 땡볕 아래 걷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걸어가며, 그에게 해야 할 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인지와 당장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답은 없었으나 꾸역꾸역 난 자취하는 알바동기들 몇 명을 떠올리다 집에 도착했다. 열쇠를 넣었는데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가 벌써 퇴근해 있었다.

  “연희야.........”

  난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서 있었다.

  “들어와........”

  난 그의 눈길을 피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 캐리어를 열어 놓고 내 옷들을 다시 옷장에 넣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식탁으로 가 의자를 빼내며 내게 말했다.

  “앉아. 내가 다 말할게. 얘기하자, 우리...........”

  난 의자에 앉았다. 그는 날 마주보고 앉아 상체를 내 쪽으로 쭉 빼며 말했다.

  “미안해, 정말......... 내가 잘못 했어! 정리할게, 당장. 네가 뭐래도 다 받아들일게........ 네가 바라는 대로 뭐든지........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 난 그 두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말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헷갈렸다.

  “내가 널 믿을 수 있을까.........?”

  “믿어 줘. 약속할게!”

  힘없이 튀어나온 내 말에 그는 재빨리 대꾸했다. 난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정리하고 있던 내 캐리어로 다가가 짐들을 꺼내어 정리했다. 그는 곧 나를 쫓아 짐들을 같이 정리했다. 힐끗 그를 보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얼굴이 환해진 그는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지금 그 미소처럼 마음도 환해졌을지, 아니면 나처럼 복잡해졌을지......... 그의 사죄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 아직 정하지 않았음에도 마음 한켠에 드는 안도감이 날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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