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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쓸쓸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부모와의 인연이란 어떤 것일까
작성일 : 20-09-27 21:32     조회 : 371     추천 : 0     분량 : 4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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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취를 시작한 이유는, 물론 집과 학교와의 거리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도 2학년 때까지는 그 수고를 감수하고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을 했었다. 3학년이 되면서 자취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데는 얼마든지 이유가 있었다.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약간의 돈과 엄마의 월급으로는 더 이상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려면 우선 통학시간을 줄여야 했다. 학교 근처 오래된 주택가의 작은 단칸방 사글세는 한 달 치 통학 교통비와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난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학교와 집, 일을 오가는데 교통비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서울에 혼자 계신 엄마였다. 물론 한 집에 살 때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진 앉았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 것도 처음이었다. 바쁜 회사 일에 홀로 지내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처음 집을 나왔을 때에는 아침저녁으로 몇 번씩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엄마가 안 하면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곤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수시로 체크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작년 가을부터는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이 보통의 일상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는 엄마는 그랬다. 어디냐고 물으면 집이라고 하면서 빨리 끊기를 바라셨다. 씻다가 나왔다거나 가스 불에 뭔가 올려놓고 깜빡했다거나, 택배가 왔다거나 하면서 엄마는 핑계를 대는 것 같았다. 엄마 옆에 누군가 있을 거라는 것은 내 예측일 뿐이었지만, 난 그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좋지 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고 엄마가 언젠가 내게 이야기 해 주길, 또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될 일이라고 그냥 여겼다. 그리고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일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집에 가는 일은 처음엔 매주, 그 다음엔 한 달에 한 번, 지금은 학 학기에 한두 번 정도로 줄었다.

 

  나도 자취생활엔 금세 익숙해졌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늦게 들어오지만, 이제부턴 취업준비를 해야 해서 자기 전에 꼭 취업 정보를 확인한다거나 관련 서적을 보며 공부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간단한 식사나마 웬만하면 집이나 학교에서 해결하려 했다. 4학년이 되면서 이렇게 난 점점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미리 좀 연락 해주지. 어제 카페에 급하게 야기하느라 엄청 곤란했어.”

  지난 밤, 잠깐 날 보러 오시겠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난 카페 매니저에게 쉬는 날을 조율해 줄 것을 부탁했다. 토요일이어서 아르바이트를 대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매니저와 주중 파트타임 알바생에게 눈초리를 받으며 쉬는 날을 어렵게 바꾸었다.

  “그래서 어제 연락했잖아.”

  엄마는 당당하게 말했다.

  “더 일찍 했어야지. 알바 급하게 바꾸느라 엄청 욕먹었거든!”

  “그래? 미안하다.”

  바로 사과하는 엄마를 향한 원망스러운 눈빛을 난 거두었다. 엄마는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다. 난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뭐야? 웬일로 딸내미한테 오면서 뭘 무겁게 들고 왔어?”

  “밑반찬 몇 가지랑 냉동밥. 오래두고 먹어도 되는 것들이니까 두고두고 먹으라고.”

  엄마는 손에 든 짐을 내게 모두 내어주며 말했다.

  “정말? 웬일이래? 안하던 걸 다 하시고......... 뭔가 불안한데?”

  “불안하긴........”

  농담처럼 건넨 내 말에 엄마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그동안 엄마와 연락하면서 하게 되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말없이 걷고 있는 나에게 엄마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걷고 계셨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한 눈에도 들어오는 방 안을 굳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집이 좀 추운 것 같다. 곰팡이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전혀 안 추운데. 방바닥은 되게 따뜻해. 곰팡이도 없는데.........”

  엄마의 눈동자는 또 흔들렸다. 난 엄마가 가져온 밑반찬들을 정리하고 커피를 타기 위해 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말했다.

  “자고 갈 거지? 내일은 아침부터 아르바이트가 있긴 한데, 엄마만 괜찮다면......... 오랜만에 저녁이라도 편하게 먹고........”

  “아니야. 자긴 뭘....... 너 편하게 일해. 엄마도 바빠.”

  엄마는 차분히 말했다. 물이 끓자 난 머그컵 두 개에 믹스커피를 털어 넣고 물을 부었다. 책상 겸 밥상 앞에 엄마는 앉아 있었고 난 커피를 가져갔다.

  “연희야........”

  엄마는 내가 건네준 머그잔을 받아들어 두 손으로 감싸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도 잔을 손으로 감싸며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날 불러놓고 한참을 뜸을 들였지만 난 기다렸다.

  “연희야, 엄마......... 이사 가려고.”

  “이사? 어디로?”

  엄마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태연한 척 물었다.

  “부산!”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부산은 무척 생소한 곳이다. 하지만 난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음....... 부산이라........ 좀 머네?”

  놀라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가 더 놀란 듯 그제야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보다 얼굴보기 더 힘들겠네. 어차피 나도 이제 졸업반이라 바쁘긴 하지만. 안 그래도 나도 엄마한테 야기하려고 했어. 연락 잘 못할 것 같아서........”

  엄마는 내 말을 듣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머뭇거리셨다.

  “딸아, 엄마........ 좋아하는 사람 생겼는데....... 그 사람이 참 좋아.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서 이사 가는 건데....... 괜찮아?”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힘들어 하셨다. 더듬거리며 말을 해 놓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

  “엄마! 긴장하지 마! 내가 남이야? 딸한테 얘기하는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해?”

  머그잔을 감싸고 있는 엄마의 두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난 말했다.

  “어? 어, 그래........ 그러게 말이다.”

  엄마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내가 괜찮고 말게 어디 있어?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엄마 결정인데........ 엄마 인생이니까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 나도 그렇게 사는데 뭘........ 난 엄마랑 내가 그냥 무사 무탈하게만 지내면 된다고 생각해. 세상에 가족이라고는 우리 둘 뿐인데 서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그럴 수 있지 않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내 엄마고, 나는 엄마 딸이라는 건 변하지 않잖아. 꼭 같이 있어야만 가족인 건 아니니까....... 각자 행복하고 그걸 서로 확인하면서 살면 되는 거지........”

  난 말했다. 엄마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보았지만 조금 전까지 떨리던 손은 진정 된 것 같았다.

  “연희야........ 참....... 딸이 엄마보다 낫네!”

  엄마의 눈 주위가 붉어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고 나도 그랬다.

  “그래도 연희야, 엄마가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꼭 해야 될 것 같아. 엄마가 이런다고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그냥, 엄마 미안한 마음........ 받아 줘. 엄마가 이기적인 건 맞는 것 같아. 앞으로 네가 날 원망할 수도 있고........”

  엄마가 말했다.

  “알았어. 받아 줄 테니까, 됐어? 더 이상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돼. 이제 나도 성인이고, 나도 내 맘대로 살 거 거든! 그러니까 나한테 애처럼 잔소리나 하지 마요!”

  난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녀는 끝까지 울지 않으려, 약해 보이지 않으려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러고 일주일 후, 엄마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부산에 잘 도착했다고 하셨다. 난 아르바이트 때문에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된 아저씨는 엄마가 다니는 회사의 간부이신데 이번에 부산에 공장을 증설하면서 그곳 책임자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보다는 한 살 많으시고 결혼을 한 번 하신 적이 있고 성실하고 자상하신 분이라고 엄마는 내게 설명했다. 언제든 기회가 되면 나와 하루라도 꼭 함께 보내고 싶다고도 하셨다.

  물론 근래부터 엄마와의 연락이 줄었던 상황이었고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지만, 갑작스레 변한 상황이 그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았다. 엄마는 많지는 않아도 한 달에 한 번씩 나에게 용돈을 챙겨주겠노라 하셨고 그에 대해 아저씨도 동의하셨다고 한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전 엄마가 내 손에 쥐어주려 했던 돈 봉투는 받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엄마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엄마와는 달리, 특별한 것 없는 내 생활은 상대적인 느낌이었을까. 불연 듯 외롭고 고달프게 느껴지는 것이. 생각해 보면 그럴 것도 없었기에 괜한 생활 피로쯤으로 난 여겨버렸다.

  4학년이 되면서 더 신경 써야 하는 학점관리, 스펙관리와 아르바이트, 늘 똑같은 일과 속에서 외로워할 틈도, 고달프다고 느낄 여유도 없었다. 엄마가 내 곁에 없었던 것도 늘 그랬지만 내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에 미지의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문득 느껴지는 것이었다.

  엄마가 부산으로 가고 나서 딱 4주가 지났을 때 그녀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엄만 잘 있어. 우리 딸도 잘 지내지? 얼마 안 되지만 용돈 써. 다음 달에 또 보내줄게.]

  그 날, 난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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