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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의 플레이리스트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능, 사랑.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작지만 커다란 우리 모두의 적지만 많은 사랑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솔직해서 아름답고 자연스러워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렸으면 합니다.

 
내 짠한 친구
작성일 : 20-09-27 20:39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7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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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이 넘도록 영태가 연락이 없었다. 주중엔 원래 그런 녀석이었지만 수연씨를 만난 이후로는 만나든 안 만나든 그가 나의 상황을 한 번씩 체크해 왔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서 토요일까지 굳이 근무를 하고 습관처럼 허전함을 채워줄 나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그였다.

  지난 토요일 ‘버닝 러브’ 공연이 끝나고 웬일로 수연씨의 전화를 받고 뛰쳐나간 이후였다. 나도 이건이와 처음 술을 한 잔을 했던 그 다음 날, 내내 반 실신상태로 집에만 있어야 했기에 영태 녀석을 궁금해 할 겨를이 없었다. 수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난 영태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그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목요일이던 다음 날 아침, 난 여느 때처럼 편의점에서 이건을 만났다. 그때처럼 늘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마치 습관이 된 아침체조마냥 편해지고 나름의 활력이 되고 있었다. 그는 내가 고를 수 있도록 오늘 일자 우유를 직접 진열해 놓고는 빈 박스를 가지고 나왔다.

  “참, 수연이 누나.......라고 ....... ‘버러’ 아르바이트 누난데요, 곽 사장님께서 누나가 연락이 안 된다고....... 형 친구 분한테 물어본다고 하시던데....... 혹시 친구 분 연락되세요?”

  그가 내게 물었다.

  “어? 그래? 음....... 내가 연락해 볼게.”

  그를 보내고 난 바로 영태에게 전화를 했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처음이지만 출근시간이라서 연락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화는 꺼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퇴근 후 회사로 찾아가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난 출근을 서둘렀다. 난 종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영태는 늘 퇴근이 늦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난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그의 회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 한 번 더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역시나 꺼진 상태였다.

  녀석의 결혼식 이후에 혜정씨는 두세 번 정도 보았다. 영태에겐 내가 유일한 절친 이었기에 나의 존재에 대해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난 주저 없이 그의 회사 로비에 있는 직원에게 내 신분을 밝히고 그가 일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안 본 새 살짝 야윈 듯 해 보이는 것이 나의 직감에 의한 착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를 알아본 녀석의 표정은 반가움도 놀람도 아닌 것임엔 틀림없었다.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난 그에게 나오라는 눈짓을 보내고 사무실을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전화는 왜 꺼놔서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투벅투벅 걸어 나오는 그를 향해 난 아이를 꾸짖듯 물었다.

  “그렇다고 뭘 여기까지 와? 내가 애냐? 새끼........”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애가 아니니까 그런 거잖아. 너 인마,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말해봐!”

  난 그에게 다그쳤다.

  “참........ 정리하고 나올 테니까 기다려.”

  그가 말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녀석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에 난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근처 순댓국밥집을 찾았다.

  “수연씨랑........ 문제 생긴 거야?”

  난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영태는 순댓국에 밥을 말아 한 술 뜨더니 입에 가져가 대려다 나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수연씨, 아르바이트도 안 나온다고 그러더라.......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내 표정 읽고 짐작 하지 마. 나도 모르니까.......”

  그가 말했다.

  “짐작 안 해, 새꺄. 그러니까, 적어도 나한텐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나쁜 놈아!”

  난 다소 격앙된 말투로 그를 다그쳤지만 곧 후회했다. 그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수연이....... 어머니가 아셨어. 걔가 많이 힘든 상황이야.......”

  그가 어렵게 말했다.

  “휴....... 너는, 너는 인마? 그래서 넌 어떤 상황인데?”

  “장인어른이 이혼을 요구하셔. 혜정이는 거부하고 있고....... 참....... 나란 새끼....... 정말 개새끼 아니냐?”

  그는 한숨을 뱉으며 괜한 순댓국만 뒤적거렸다.

  “그게 뭐 하루 이틀이야? 결혼한 순간부터 그랬잖아, 늘! 영감탱이!”

  난 잠깐 흥분했다.

  “내가....... 그 노인네한테....... 혜정이한테.......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영태는 고개를 떨구었다.

  “사장님! 저희 소주 한 병 주세요!”

  난 소주를 주문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가져다 준 소주를 받아 난 두 잔을 채웠다. 그가 술잔을 넘겼다. 나도 같이 잔을 넘기고 나서 다시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밥부터 먹어, 인마!”

  난 그에게 말했다. 그제 서야 영태는 휘젓던 국밥을 한 입 떠먹었다. 그러고 나서 난 다시 그에게 잔을 부딪쳤고 그렇게 우리는 순대국밥을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말없이 비우고 있었다. 소주의 쓴 맛이 점점 목구멍을 찌르듯 넘어갔다. 녀석도 그랬는지 눈을 한 번 찡긋하더니 눈물을 짜냈다.

 

  고등학교 시절, 딱히 친구가 없었던 녀석이 한번은 항상 반 일등을 도맡아 하던 아이(집안도 성격도 좋고 재능도 뛰어나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전교회장)를 재끼고 일등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며칠 후, 영태는 하굣길에 반 아이들 몇 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대놓고 영태에게 성적을 알아서 관리할 것을 요구했고, 그 이후로도 수회 협박을 받았었다. 그 사실을 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함께 분노해 줄 수는 있었지만 별 도움은 줄 수는 없었다. 그 때 난 동네 슈퍼마켓에서 소주 한 병을 몰래 사와 우리 집에서 녀석과 함께 나누어 마셨다. 그는 그날 처음 소주 맛을 보고 눈물을 흘렸었다. 오늘이 그때 이후 처음 보는 녀석의 눈물이었다.

 

 

 

  일주일전, 수연의 전화를 받고 영태가 달려갔던 날이었다. 두 사람은 평소 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주말 데이트를 오랜만에 즐겼다. 그녀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직후라 피곤했지만 어쩌다 쉬는 일요일을 맞은 터라 마음이 도리어 들떠 있었다. 그건 영태도 마찬가지였다. 수연은 며칠 전, 이 날을 위해 심야영화티켓을 준비했고, 영태도 주말에 하게 될지 모를 외박을 대비해 혜정이게 미리 연막을 쳐 둔 상태였다.

  늦은 밤의 데이트였어도 둘은 짜릿한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반은 조느라 제대로 감상하진 못했어도 심야영화를 본 후 시원한 봄밤의 바람을 느끼며 강변을 거닐었다.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데이트를 마치고 영태는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그 때 그녀는 엄마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 십여 통을 확인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녀는 영태와 작별키스까지 나누고야 귀가했다.

  그날 아침, 쉬는 일요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수연은 웬일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밖에서는 그녀의 엄마, 지애가 아침을 준비하는 달그락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시계를 확인하니 여덟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일어났네?”

  눈을 비비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신의 방을 나오는 수연에게 지애는 말했다.

  “뭐 화나는 일 있어? 무슨 밥 하는 소리가 잠을 다 깨워.”

  수연은 엄마에게 말했다.

  “밥이나 먹어!”

  지애는 말했다. 툴툴거리는 딸 앞에 방금 지은 밥을 한 그릇 툭 내려놓으며 그녀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엄마, 오늘 집에 있을 거야? 나 오늘은 잠만 잘 건데.”

  수연이 말했다.

  “그건, 네 맘대로 하고....... 후....... 밥부터 먹자.”

  그녀는 수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무슨 급한 일 있어? 밥 먹고 어디 가?”

  수연은 엄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애는 식사가 끝나고 나서 몇 시간 전 집 앞에서 목격했던 수연의 행동에 대해 물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막상 수연의 태연한 행동과 말투를 보고 끝내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다.

  “남자 친구 있었니?”

  지애가 물었다. 갑자기 꺼낸 엄마의 질문에 수연은 국을 마시다 사례가 걸렸다.

  “켁켁켁....... 윽....... 응? 큭큭.......”

  “남자 친구냐고. 새벽에 집 앞에서 키스하던 사람.”

  지애는 여전히 수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켁켁....... 어떻게....... 어떻게 봤어?”

  옆에 있던 물병을 잡고 통째로 마시더니 수연이 되물었다.

  “어떻게 보긴....... 눈 뜨고 봤지.”

  그녀는 잠시 멈추었던 식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건 반길만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없더라도 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꼭 이야기 해 주는 딸이었기에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던 것 사실이었다. 그래서 먼저 묻기를 망설였다. 지애는 알고자 하는 걸 인내하고 기다리는 성격이 못 되었다.

  새벽에 잠이 깬 지애가 수연의 부재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으나 수연은 받지 않았다. 지애는 불안한 마음에 그 때부터 집 앞에서 수연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다 할 때까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남자 친구 아니야?”

  지애가 물었다.

  “....... 뭐....... 뭘 봤는데?”

  수연은 말을 더듬었다.

  “뭐야? 남자 친구 아니야? 왜 대답을 못 해, 얘가?”

 지애는 손에 쥐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씹던 음식을 물을 마셔 급히 넘기고는 다시 물었다.

  “맞아....... 남자 친구....... 맞다고........”

  수연이 비로소 대답했다.

  “근데 왜 대답이 더뎌? 뭐 문제 있는 사람이야? 나이는 좀 있어 보이던데.”

 지애는 다시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연은 여태껏 엄마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본적이 없었다. 뭔가를 속이고 둘러댈 만큼 소심한 성격도 아니었고 판단과 실행을 하는데 늘 흔들리지도 주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왜 이혼남이라도 되니?”

  지애는 질문을 이어갔다.

  “...............”

  수연은 말없이 고개만 좌우로 저었다. 지애는 더 이상 묻기가 겁이 났다. 시선을 떨구고 있던 수연이 다시 고개를 들어 지애의 표정을 한 번 확인하고는 입을 뗐다.

  “결혼....... 했어....... 그 사람.”

  수연이 말했다. 수연의 대답에 지애는 조금 전까지 콩닥거렸던 심장이 툭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런 엄마의 표정을 읽은 수연이 다시 말을 꺼냈다.

  “어....... 근데, 좀....... 특별한 상황이야.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수연이 말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은데? 특별한 상황? 넌 그 상황 엄마한테 설명할 수 있겠어? 엄마가 그걸 들을 수 있겠니? 엄마는....... 널, 누구보다 존중하는데 후....... 그래도 그건 아니지. 흠........ 내일부터 아르바이트 가지 않는 게 좋겠다. 일단, 그렇게 해!”

  이렇게 말하는 지애의 입가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먹다 만 밥그릇을 치우는 그녀의 손도 역시 그랬다. 그 모습을 보는 수연의 눈동자도 그랬다. 그녀의 심장도.

  적어도 수연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는 엄마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 행동해 본 적이 없었다. 지애는 그 전까지 웬만하면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했다. 그 시간동안 그녀는 말과 지시가 아닌, 행동으로써 늘 딸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노력했다. 유독 영악했던 수연은 다행히도 지애의 의도대로 스스로를 잘 다지며 성장해 왔고 성인이 된 후 그 믿음이 서로에게 굳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두 모녀는 서로 그 무엇도 자신들의 믿음을 깨뜨릴 순 없을 거라고 굳게 믿어 왔다.

 

  늘 그렇듯, 인생에는 그런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있다. 무한대의 내 머릿속을 최대한 탐험하며 생각해 놓은 모든 가능성을 나를 둘러싼 사방에 펼쳐 놓아도, 또한 그것이 든든한 에어백이 되어 줄 거라 믿고 조심을 해도, 불쑥 내 영역을 침범하는 손님들. 그 어떤 손님이든 예측하려 해도 불가능 한 게, 결국은 내 밖의 영역이기 때문에 무한한 우주 같았던 내 자신도 부질없어지는 그런 순간이 우리에겐 꼭 있다.

  모두 아는 것이지만, 우린 때론 모른다. 아는데 모르는 것. 그 심술궂은 손님들로 인해 잘 정돈해 놓았던 삶이 엉망이 되곤 한다. 산다는 건, 정리와 정돈이 아니었다는 걸 이 때 깨닫게 된다. 산다는 건, 나의 ‘삶의 순간’이 잠시 엉망이 되었을 때 우린 비로소 ‘삶’이란 걸 조금 깨우치고 ‘일’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과정일 뿐이다. 죽더라고 끝나지 않는 깨달음의 과정일 뿐이다.

 

  수연은 아무 변명하지 않았다. 엄마의 낯선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딱히 변명할 만한 여지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 날 하루는 종일 멍해 있었다. 걱정이 되지도, 머릿속이 복잡하지도 않았고 오직 육체적 피로에만 집중이 되었다. 오후 내내 밀린 잠을 자고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눈을 뜬 그녀는 휴대폰에 남아있는 부재중 전화 두 통과 문자 하나를 확인했다.

  [푹 자고 일어나면 전화 줘.]

 영태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녀는 곧 거실로 나갔다. 지애는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지애는 자고 일어난 딸을 한 번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말했다.

  “강요하고 싶은 건 없어. 너 상황 파악 잘 되는 아이잖니....... 네 맘도, 내 맘도 누구보다 네가 잘 알 테고........ 얼마가 걸리든 간에 상황을 악화시키지만 마라. 단, 지금 당장은 엄말 위해서라도 일은 일단 쉬렴. 그러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엄마한테 할 말이 있으면 그 이후에 해. 기다려 줄 테니까.”

  차분히 이야기하는 지애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듯 보였고 그것이 수연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에 엄마의 말이 더욱 가시처럼 따가웠다.

  “알겠어요.......”

  수연은 차분히 대답했다. 두 사람 모두에겐 맛없는 저녁식사였다. 한 번도 그래본 적 없는, 대화 없는 식탁위로 서로에 대한 걱정스런 맘이 공기가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셨어요. 솔직히 얘기했어요. 저,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요. 알바 그만둬요, 저....... 제가 다시 연락 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그래 줄 수 있죠?]

  수연의 메시지를 받은 영태는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수많은 상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져서 어지러웠다.

 

 

  그 날 영태는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증상을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더해졌다.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전화를 받지 않는 수연이 왠지 걱정되던 참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인내심을 발휘하여 담담히 받아들이려 애썼다. 집에서 보내는 오랜만의 일요일 오후였다.

  혜정은 영태가 아침이 다 되어서야 귀가한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 역시 예감이 좋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모른 척하려 아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쓰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수연의 메시지를 확인한 후 영태는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평소 같지 않은 영태의 모습에 인내심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던 혜정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무슨 일 있어?”

  미동조차 없는 영태의 반응에 그녀의 인내심이 좀 더 바닥을 향했다.

  “장보러........ 갈 건데....... 같이 가줘!”

  그녀가 큰 숨을 쉬며 말했다. 그제 서야 그는 혜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 있냐고, 물었었는데....... 아까!”

  그녀의 말투에 격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이때까지도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던 영태는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큰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

  영태는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요일인데, 왜 갑자기....... 휴........ 왜 갑자기 돌부처처럼 앉아서 넋을 빼고 있는데? 이 나쁜 새끼야!”

  영태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혜정은 꾹꾹 누르고 있던 감정이 북받쳤다. 굵은 눈물방울이 눈에 맺혀 뺨 위로 흐르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영태는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쁜 새끼! 개자식! 이 미친 새끼!!”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겨우 욕이 전부였지만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혜정은 모든 설움을 토해냈다. 영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또 한 번 머리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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