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너의 플레이리스트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능, 사랑.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작지만 커다란 우리 모두의 적지만 많은 사랑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솔직해서 아름답고 자연스러워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렸으면 합니다.

 
안녕! 좋은 아침!
작성일 : 20-09-27 20:32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818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 오늘 거....... 그걸로 계산할까요?”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주말동안 잠만 잤더니 월요일 아침엔 조금 더 서두를 수 있었다.

  “어?”

  그가 뒤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이시네요?”

  그가 말했다. 난 그냥 미소로 대답했다.

  “아! 여기요!”

  그가 내게 우유를 건네주었다. 난 받아든 우유를 계산대로 가져가 샌드위치와 함께 계산을 하고 돌아섰다.

  “맛이 달라요. 아세요?”

  그가 날 보며 말했다.

  “........?”

  난 대답대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거랑, 며칠 지난 우유랑은 맛이 달라요. 훨씬 고소하고 진해요.”

  “아....... 그래요? 몰랐네요. 맨날 아무 생각 없이 마셔서....... 오늘은 맛을 느껴 볼게요. 고마워요.”

  나의 어설픈 인사에 고개를 꾸벅 하고는 우유 상자를 들고 그는 창고 쪽으로 향했다. 난 샌드위치와 우유를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난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쪽 진열대에서 난 물건을 고르는 척 서성거렸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 5초정도 걸린 것 같았다. 다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저기....... 안 바쁘시면 다음 달에 저희 공연하는데 오실래요? 친구 분이랑.......”

  문을 열려는 순간 그가 뒤에서 다가오며 말했다. 나지막이 내게 얘기하는 그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난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혹시......... ‘버닝러브’?”

  쑥스럽게 웃으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아르바이트 하나 보네요....... 아, 여기 매일 오시진 않는 거 같아서....... 전 회사가 저기예요.”

  난 손가락으로 회사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럼....... 또 뵙겠네요.”

  그리고 이번엔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칼 퇴근까진 기대할 수 없지만 퇴근길 복잡함을 피할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다. 지하철에서도 출입문 옆 기둥을 겨우 사수할 수 있었다. 월요일치곤 괜찮았다.

  의외로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은 집에 들어가면서 부터이다. 옷을 벗어 던지는 그 순간부터. 소파에 턱 주저 않으면 큰 한숨이 나온다. 난 잠시 눈을 감고 피로를 풀어 보려 했다. 문득 영태가 궁금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일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새끼....... 전활 안 받냐?”

  난 야속해 하듯 그에게 말했다.

  “어, 주차 중이었어.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그냥....... 너 어떤가 해서.”

  “미친 놈....... 뜬금없긴.......”

  괜시리 궁금했던 녀석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게 들렸지만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흠....... 바쁘냐? 아, 바쁘겠지.......”

  “새끼....... 할 일 없음 나와. 술이나 한 잔 하게!”

  “월요일에 무슨 술은....... 너, 요즘 수연씨....... 잘 만나고 있냐?”

  난 조금 망설이다가 수연씨 얘기를 꺼냈다.

  “음....... 그럼.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어. 걔 아니면 숨도 못 쉬겠다....... 씨.......”

  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녀석이 걱정되었지만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너보단 낫거든? 쓸데없이 내 걱정 같은 거 하지 말고 너나 좀 잘해....... 너 새꺄, 나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누가 널 챙겨 주냐고.......?”

  녀석이 내 심경을 읽었는지 마치 형처럼 말했다.

  “칫.......”

  난 비웃었다. 그래도 그의 말에 수긍했다.

  “....... 금요일 날 보자. ‘버러’에서.”

  “버러?”

  난 무슨 말인지 몰라 물었다.

  “‘버닝러브’! 새꺄. 수연이 일하는데. 가보고도 모르냐....... 어차피 주말엔 수연이 못 만나. 걔가 주말에 일하니까. 원래 평일에만 보거든.”

  “하루도 안 보면 안 된다는 거지? 아....... 이 소름끼치는 새끼!”

  난 전화를 끊고 씻기 위해 옷을 벗었다. 욕실로 들어갔고 샤워기 물을 맞을 때까지 잠시 동안 무의식 상태였다. 아직 데워지지 않은 물이 내 머리위에 차갑게 떨어지는 그 순간 깨달았다. 깜짝 놀라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재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맞았다. 물의 온도가 아니라, 내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열이 점점 높아져 내 정신까지 지배하는 듯 했다. 의식 없이도 행할 수 있는 내 일상들이 마치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뿌연 김으로 가득 찬 욕실이 알몸의 나를 싣고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가고 있는 것 같았다. 월요일의 무거운 기분과 익숙한 피로가 그날은 그렇게 풀렸다.

 

  아침부터 내내 흐리고 공기도 뿌옜다. 하지만 기분이 다운되진 않았다. 2월 날씨치고는 꽤 포근했다. 금요일 잔업을 피하기 위해 주중에는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평소보다 아침 시작이 조금씩 늦어져서 편의점에서 그를 마주친 날은 화요일 한 번 뿐이었다. 그것도 그가 일을 마치고 트럭에 올라타는 모습만 멀리서 보았을 뿐이다. 오늘도 아침식사를 위해 편의점에 들렀지만 ‘00우유’트럭의 운전자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난 우유회사 직원이 가져온 오늘 자 우유를 골라 샀다. 역시 신선하고 고소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딩동’ 하고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칼 퇴근함. 회사 앞으로 간다!]

  영태의 문자였다. 녀석의 회사와 우리 회사는 차로 약 10분 거리이다. 퇴근 시간에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6시 20분까지는 녀석이 도착한다. 금요일은 의무적으로 바쁜 날이지만 난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한숨을 돌린 후 손목시계를 보니 분침이 정확히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후 야근하는 동료에게 인사했다.

  “데이트라도 있어?”

  남과장이 물었다.

  “데이트는 무슨.......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난 남과장에게 말했다. 피식 웃는 남과장의 표정이 왠지 신경 쓰였지만 난 무시하고 회사를 나섰다. 영태는 칼 같은 타이밍으로 회사 정문 앞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쯧쯧....... 불쌍한 놈!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에 겨우 나 보려고 그렇게 뛰어 나오다니.......”

  녀석의 차를 발견하고 달려가 조수석 문을 열자 녀석은 혀를 차며 내게 말했다.

  “아, 새끼. 말을 꼭....... 그래, 고맙다. 안 그래도 연희 만나던 시간이 맨날 비어서 심심했다. 그래, 큰 도움 돼!”

  안전벨트를 매며 내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여행이 효과가 있긴 있구나. 네가 네 입으로 연희 얘기가 나오고.......”

  녀석이 말했다.

  “.........?”

  난 그를 쳐다보았다. 영태의 말에 문득 몰랐던 걸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후 난 내 자신을 비롯해 누구든 그녀 얘기를 입에 올리는 것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그랬던 나를 잘 아는 영태도 내게 한 번도 그녀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없었고 힘들어 하는 내게 위로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 때 난 회사와 부모님께만 알리고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불금은 불금인가보다. 날씨마저 포근해서였을까, 이제 막 어둠이 내린 거리에 젊은이들의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학생들과 연인들이 오가는 가운데 영태 녀석과 내가 걷고 있었다. 난 녀석을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녀석이 말했다.

  “누가 뭐래? 나, 밥 안 먹었는데.......”

  내가 말했다.

  “술이나 먹어, 새꺄........”

  그가 매몰차게 말했다.

  “아이 씨....... 이기적인 놈!”

  난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멀리서 흐릿하게 쿵쾅대는 비트가 들려왔다. 조금씩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버닝러브’ 앞에 이르렀다. 영태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묻어났다. 문을 여니 작은 홀을 어림잡아 이십 여명의 관객들이 채우고 있었고 ‘Electric President‘의 ’Monsters’가 흐르고 있었다. 무대 뒤쪽에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커다란 음악소리를 뚫고 수연씨가 나를 향해 인사하며 다가왔다.

  “아, 안녕하세요.”

  난 얼른 인사 하고는 영태를 보았다. 녀석의 얼굴은 화색을 넘어 매우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이었다.

  “오빠, 맥주 가지고 올게요.”

  그녀가 말하자 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조용히 공연만 보고 갈게. 끝나면 전화해.”

  영태의 말에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 맥주를 가지고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늘 ‘버러’ 신곡 소개한대요. 요즘 엄청 핫한 거 아시죠? 잘 들어보세요! 곧 앨범도 나오니까. 그럼 공연 재미있게 보세요!”

  그녀는 웃으며 말하고 다시 사라졌다. 그 날 난, 수연씨를 처음으로 눈여겨 본 것 같다. 염색하지 않은 단발머리를 대충 뒤로 묶었지만 깔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누가 봐도 대학생처럼 보이는 진하지 않은 화장에 우아해 보이는 검은 색 앙고라 목폴라 티셔츠에 청바지, 목걸이와 팔찌 같은 장신구로 살짝 포인트를 준 차림새가 좋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좋은 사람이야........ 나한텐 과분하지만, 나를 정말 잘 이해해줘.”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녀석이 내게 말했다.

  어느 새 관객이 조금 더 늘어 있었다. ‘Electric President’의 음악이 멈추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곧 무대가 암전되고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관객들의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70 퍼센트는 여성관객으로 보였다. 우리 둘은 소수에 속했지만 남자들의 환호성도 적잖이 섞여 들렸다.

  곧 무대 위 조명이 켜지고 심벌 소리와 함께 ‘버닝 러브’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의 스포트라이트가 그의 얼굴에 떨어지는 순간 관객들의 함성이 모아졌고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긴 앞머리는 왼쪽 눈을 거의 가린 상태였지만 야윈 얼굴의 윤곽이 조명으로 드러났다. 블랙계열의 의상에 블랙 기타, 무대는 온통 흑백이었다. 머리 위 조명이 그의 눈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고 움직이는 입술 또한 흑백의 입체감을 띄었다. 눈을 감고 있는 듯 보였으나 알 순 없었다.

  예전 그 날, 처음 들었던 곡이었다.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고 무대를 응시했다. 노래하고 있는 그를 응시했다. 잠시 그 날의 기분이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나는 곧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그를 떠올렸다. 우유를 건네며 내게 말을 걸던 그를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다시 무대 위 그에게 집중했다가를 반복했다. 갑자기 미치도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내 과거를 떠올렸었고 여행을 떠올렸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가슴 한켠이 뜨겁게 아렸었다. 그렇다면 정작 이 노래를 만든 그는, 지금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내가 알고 있는 무대 밖에서의 그의 모습은 진짜 그의 어떤 일부일까. 난 끊임없이 속으로 질문을 하며 무대 위 그를 응시했다.

  첫 곡 무대가 끝났지만 나의 질문들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채워갔다. 바로 뒤이어 두 번째 곡이 시작되었고 관객들의 함성이 좀 더 커졌다. 두 번째 곡은 빠른 템포의 락 장르였다. 그가 격렬하게 기타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그 리듬에 맞춰 손을 뻗어 호응했고 내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다. 흑백의 무대가 음악의 색깔과 어우러졌다.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나의 질문들은 걷잡을 수 없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고 그 모두를 집어 삼키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그의 몸짓이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난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의 내 자신이 걱정되었다.

  ‘버닝 러브’의 비트와 멜로디,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뇌리에 박힌 그 감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영태는 곱창을 구우며 내내 휴대폰을 힐끔거렸다. 늦은 저녁식사를 할 겸 단골 대포 집에서 곱창구이에 소주 한잔 기울이고 있지만 녀석의 잔은 아직 한 번도 비워지지 않았다. 이런 친구 녀석과 함께 있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법도 하나 난 상관하지 않았다. 덕분에 소주 한 병을 혼자 다 마셔버렸다.

  “괜찮냐?”

  지나가는 대포집 이모를 부르려는 나를 제지하며 그가 물었다.

  “괜찮겠냐?........ 이모! 이거 하나 더요!”

  빈 소주병을 집어 들고 굳이 지나가려는 이모를 불러 세워 한 병 더 주문했다.

  “나도 데려다 줘!”

  난 그에게 말했다.

  “아이........ 이따가 같이 마셔! 기껏 공연 보여줬더니 혼자서 마시고....... 뭐야?”

  영태가 내게 말했다. 그 때 이모가 소주를 가져다주었고 영태는 그걸 받아들고 내 잔을 채웠다. 그리고 녀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기울이던 술병을 얼른 내려놓고는 전화를 받았다.

  “끝났어?....... 어....... 아....... 그래? 오늘 성공했나보네....... 그럼, 집에 들어가서 전화해. 나 안자니까 늦더라고 꼭....... 그래.......”

  오늘 공연 때문에 손님이 많았던 데다가 공연 뒤풀이까지 해야 해서 늦게 마칠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라는 수연씨의 말을 녀석은 내게 전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단숨에 한 잔을 넘기고는 내게 말했다.

  “너네 집으로 가자. 가서 제대로 먹자!”

  그는 곱창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난 소주 한 병을 다 마셨지만 그리 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거나 다 먹고 가던지....... 넌, 인마! 집엔 안 가냐? 오늘 금요일이야. 집에나 가. 자식아.”

  내가 말했다. 하지만 영태는 내 말을 들은 척 하지 않고 계산서를 집어 들고 일어났다. 난 먹다가 급히 옷을 집어 들었다.

  “야! 아....... 이 새끼.......”

  그를 따라 일어서니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는데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니 개운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열시 반을 넘고 있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사 온 캔 맥주를 꺼내어 녀석에게 건네고 우린 나란히 소파에 드러눕듯 앉았다. 시계를 확인한 후 난 영태에게 다시 물었다.

  “원래 이러냐?....... 혜정씨....... 너 안 기다려?”

  “자식.......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간다. 봐봐. 전화가 오나, 안 오나.”

  영태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하는 걱정보다 이렇게 말하는 녀석이 난 왜 외로워 보였을까.

  “궁금하고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후....... 나도 몰라. 정말이야. 너도 알잖아....... 난 내가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 바보 같았어. 아니, 이기적이었지. 혜정이한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혜정인 나를 용서하면 안 되잖아. 죄책감 때문에 미치겠는데....... 수연이 아니면 숨을 못 쉬겠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내가 원망스러워 죽겠다, 나도!”

  맥주 한 캔을 원샷 하듯 들이키고 난 후 그는 말을 꺼냈다. 녀석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난 맥주를 하나 더 꺼내어 그에게 주고는 내 것을 한 모금 마셨다.

 “그냥....... 잘 살고 싶은 마음밖엔 없었는데....... 엄마랑 동생도....... 근데 엄마랑 동생을 오히려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내가 한심해 보이지?”

  그가 말했다.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에 무어라 말해 주기가 조심스러웠다.

  “너도 어쩔 수 없었잖아. 지금도 그런 거고....... 넌 항상 최선을 다 했어.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난 말했다. 녀석은 한숨을 지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한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영태는 고2 2학기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대신에 음료수를 만드는 공장에서 새벽까지 일을 했고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등교하기를 반복하는 생활을 했었다. 공부가 뒤쳐질까, 쉬는 날에도 늘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내느라 친한 친구들도 없었다. 녀석의 성격이 180도 바뀌었던 게 그 때부터였을 거다.

  난 어쩌다 녀석이 주말에 쉬게 되면 우리 집에 불러서 함께 공부해 주는 그런 친구였다. 공을 차거나 영화를 보는 일, 친구들과 라면 끓여 먹으며 여자얘기에 열을 올리는 일도 그에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용해 질 수밖에 없었고 한 곳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수연씨를 만나면서 참 오랜만에 보게 되는 녀석의 표정과 말투, 행동들이 내게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정말 오랜만에 내 집에서 널브러져 맥주를 마시며 내게 조용히 얘기하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그 때 그 푸르렀던 청년의 쓸쓸한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는 대화를 그리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모두 열 두 개의 캔 맥주를 마셨고 그 날, 무척이나 외로웠던 것 같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0 세상에서 가장 편한 2020 / 9 / 27 298 0 7004   
29 아일랜드 2020 / 9 / 27 285 0 2922   
28 그리움은 습관일 뿐 2020 / 9 / 27 285 0 1502   
27 곽사장의 버닝 러브 2020 / 9 / 27 283 0 3590   
26 내가 우리에게 하지 못한 한 가지 2020 / 9 / 27 293 0 4872   
25 다시 ‘버닝러브‘ 2020 / 9 / 27 281 0 2156   
24 행복해지자 2020 / 9 / 27 300 0 3900   
23 다른 삶을 산다는 것 2020 / 9 / 27 288 0 4499   
22 판단과 선택 2020 / 9 / 27 293 0 18484   
21 강호와 이건 2020 / 9 / 27 286 0 12915   
20 안녕 2020 / 9 / 27 285 0 3310   
19 모든 것이 강물처럼 2020 / 9 / 27 298 0 3853   
18 우정을 나눌 때 2020 / 9 / 27 280 0 5156   
17 우린 왜 결혼했을까 2020 / 9 / 27 278 0 5072   
16 너에게, 나에게 2020 / 9 / 27 295 0 4850   
15 낯선 그리움 2020 / 9 / 27 295 0 7306   
14 너의 자리 2020 / 9 / 27 281 0 15639   
13 네가 마련해준 특별한 공간 2020 / 9 / 27 267 0 5492   
12 내 짠한 친구 2020 / 9 / 27 288 0 7944   
11 너와 나의 거리 2020 / 9 / 27 277 0 4455   
10 일상이 된 너 2020 / 9 / 27 283 0 7239   
9 그들이 만났던 날 2020 / 9 / 27 273 0 7752   
8 봄, 아침 2020 / 9 / 27 294 0 5516   
7 안녕! 좋은 아침! 2020 / 9 / 27 304 0 8185   
6 난 네게 반하지 않았어 2020 / 9 / 27 295 0 2564   
5 나의 새로운 일상 2020 / 9 / 27 277 0 8365   
4 나의 구세주 2020 / 9 / 27 272 0 4314   
3 널 따라오지 말았어야 했어 2020 / 9 / 27 287 0 3264   
2 너의 첫인상 2020 / 9 / 27 297 0 4653   
1 꿈에서 깨어나기를, 깨지 않기를 2020 / 9 / 27 524 0 458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고잉홈
땡글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