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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의 플레이리스트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능, 사랑.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작지만 커다란 우리 모두의 적지만 많은 사랑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솔직해서 아름답고 자연스러워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렸으면 합니다.

 
너의 첫인상
작성일 : 20-09-27 20:26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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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열장만 더 줘봐.”

 은복이가 인상을 쓰며 얼굴에 부채질을 해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장 남았어.”

  내가 말했다.

  “뭐야, 겨우 이것뿐이야? 참 나....... 그렇게 잔소리를 해 싸더니....... 아줌마 갱년기네, 갱년기야.......”

  은복이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어디 관객 수가 이 종이 쪼가리 숫자에 비례하더냐? 욕심을 버리자.”

  내가 말했다.

  “아, 그건 그거고. 기타....... 언제까지 기타 없이 버티라고? 지는 나이나 많아서 힘든 티라도 내지. 이기적인 노친네! 하긴 뭐, 그것도 제 업보야. 공연도 주목을 못 끄는 판에 요기 구석탱이에 깨알만하게 써 놓은 걸 누가 보겠어? 진짜 감 떨어지지 않냐?”

 은복이는 속사포를 쏘아댔다.

  “솔직히 깨알은 아니지......... 그래도 천재잖아.”

  내가 말했다.

  “천재는 개뿔!”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말자언니는 ‘버닝러브’를 혼자서 10년째 이끌어 왔다. 곽사장님 말로는 90년대 중반부터 존재해 왔다고는 하나 증거가 될 만한 흔적들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지금은 이곳이 그 어느 동네보다 생기 넘치는 곳이 되어 버렸지만 그 한 가운데 이런 오래된 클럽이 여태껏 존재한다는 건 이제 신기한 일이 되고 말았다.

  말자언니는 이곳 ‘버닝러브’ 곽사장님의 소울 메이트라고 했다. 세상에 이런 남녀관계가 가능하구나...를 보여주는. 그냥 그저 곰 같은 곽사장님에 또 그저 곰 같은 말자언니지만 서로 기생하며 공생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다. ‘버닝러브’가 ‘버닝러브’가 된 것도 이곳 곽 사장님의 가게가 ‘버닝러브’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그렇게 그들은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 날 처음 이곳을 찾아 왔다. 졸업은 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던 나에겐 친구 같은 베이스 기타 하나가 전부였다. 학교는 다니는 내내 지루하기만 했다. 그래서 난 마냥 졸업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고 바로 그 날, 내게 가장 재미있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거기가 바로 여기, ‘버닝 러브’.

  4년 전 이미 말자언니는 밴드 ‘버닝 러브’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늘 남자 멤버들과 성격과 의견이 충돌했다고 했다. 그렇게 멤버들이 언니와 싸우고 나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랬겠지....... 겪어 보니 이 곰 같은 여자를 어떤 남자가 감당했겠나 싶었다. 꽉사장님 말고는.

 

  “아, 씨발....... 우리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찜통더위에 홍보전단 붙이는 일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은복이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볼멘소리를 씹어 뱉었다.

  “맨날 이렇게 해 왔는데 뭘 그렇게 걱정해? 공연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기타 구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지 않아?”

  나는 말자언니와 은복이의 눈치를 동시에 살피며 말했다. 말자언니는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언니, 점심 뭐 먹어요? 우리 좀 힘들었는데?”

  은복이는 안면을 바꾸었다.

  “맨날 이삼천원짜리 국수나 백반 같은 거 말고 딴 것 좀 먹어요! 삼복더위에 아침부터 부려먹었잖아! 열사병에 영양실조까지 걸려 쓰러져 죽으면 언니가 장례 치러 줄 거야? 아니, 감옥가요, 언니....... 노동법에 다 걸려. 이런 거!”

  은복이가 말했다. 나 같으면 말자언니에게 감히 하지 못할 말이다. 은복이는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말자언니 앞에선 이나마도 자제하는 편이다.

  “미친년....... 뭐가 쳐드시고 싶으세요? 정확히 말을 하든가, 네가 사든가!”

 꿈쩍도 않고 기타만 만지고 있던 언니가 은복이를 치켜 보았다.

  “음....... 에잇, 그래, 뭐....... 까짓, 내가 쏠게요! 뭐, 맨날 국수 아님 순두부지만 그래도 언니한테 얻어먹은 게 있는데 나도 양심이 있지. 갈 거죠? 그럼? 응?”

  은복이가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자언니는 만지작대던 기타를 퉁! 하고 내려놓고 자동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나도 언니를 따라 무의식적으로 일어섰다.

  “아, 뭐해?”

  말자언니가 은복이에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아이 씨......”

  은복이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점심 한 끼에 자존심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앞장섰던 말자언니를 은복이는 얼른 따라 잡고는 앞장서 갔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짜증나게 했던 더위에도 불구하고 날아가듯 앞장서더니 큰 골목에 새로 생긴 식당 앞에서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3층짜리 새 건물인데 외관은 족히 백년은 되었을 법한 빈티지한 비주얼이었다. 얼마전 오픈한 태국 음식점이었다. 앞서 간 은복이는 그 앞에서 가게 안을 힐끗거리며 보고 있었다. 말자언니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언니....... 내가 사요.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 봤어? 내가 살 건데....... 여긴 좀....... 맛 없을 거 같지 않아요? 냄새부터가 벌써 낯설어....... 괜히 돈 주고 검증 안 된 음식 맛없게 먹고 쌍욕이나 뱉는 찌질이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어딨어....... 그치?”

  은복이가 다시 안면을 바꾸자, 말자언니는 그녀의 머리를 한 대 치며 말했다.

  “짜장면이나 사! 미친년아....... 저 냄새 맡으니까 짜장면 땡긴다.”

  우리 셋은 잠시 잊었던 더위를 다시 느끼며 가게로 돌아왔다.

 

  “누구세요?”

  “............”

  가게에 다시 도착했을 때 누군가 그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은복이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보통 키에 손등까지 내려오는 블랙 긴 소매셔츠가 마른 몸을 더 말라보이게 했고 한 쪽 눈을 거의 가린 단발 컷의 헤어가 무척 답답해 보였다. 그나마 오래입어 헤진 느낌의 너덜너덜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 컨버스 스니커즈가 때가 탔을지언정 그 답답함을 조금은 중화시켜 주었다. 등엔 거북이 등껍질만한 백팩과 어깨엔 낡은 가죽 기타 케이스를 매고 있었다.

  우리 셋은 말없이 서 있는 그를 아래위로 한 번 훑었다.

  “저....... 기타 구하신다고......”

  그가 입을 열었다. 뜻하지 않은 손님에 당황한 우리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계속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닌가요?”

  그는 한 발 앞으로 물러 나와 뒤돌아 간판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짜장면 먹을래요?”

  말자언니는 어리버리한 그에게 한 마디 던지고는 앞장서 가게로 들어갔다.

  “아! 일단 들어오세요. 맞아요, 맞아. 우리 기타 구해요.”

  은복이가 수습을 하며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짜장 네 개, 맞죠?”

  “네! 감사합니다.”

  개성각 사장님의 말에 말자언니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은복이에게 재빨리 돈을 내라는 눈짓을 보냈다.

  “예? 아, 네....... 언니도 참....... 처음 보는 분한테 메뉴도 안 물어보고 막 시켜도 돼요?”

  가방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며 은복이가 말했다.

  “짜장면은 국민메뉴야. 안 그래요, 사장님?”

  말자언니가 그릇 포장을 벗기며 말했다.

  “암요, 암요.”

  개성각 사장님이 대답했다.

  “설마 못 먹는 건 아니지? 보아하니, 배고파 보이기도 하고....... 얘가 사는 거예요. 부담 갖지 말고 먹어요.”

  언니는 짜장을 비비며 그에게 말했다. 이것이 말자언니가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식사가 오는 동안 통성명을 겨우 마쳤던 우리는 각자의 짜장을 다 비비고서야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김이건이라고 했지?

  급하게 면을 비비고는 한 젓가락 크게 집어 들어 입에 밀어 넣기 직전 말자언니가 그에게 물었다. 의외로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식사하는 모양새가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그는 “네.” 라고 답하고 먹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말을 꺼낸 건 그였다.

  “저........ 여기서 연주 할 수 있는 거죠? 음....... 이거 먹고 한 번 해볼까요?”

  허기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먹는 속도를 반도 내지 못하고 있는 나와 은복이는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어서 먹어요.”

  말자언니가 말했다. 선뜻 대답한 말자 언니와 우리 셋은 어색할 것 같았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그와의 첫 만남과 첫 식사를 동시에 마쳤다.

 

  말자언니, 은복이, 나는 약 십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연주는 우리를 그렇게 얼어 붙게 만들었다. 무슨 곡을 연주한 건지 몰랐지만 현란하지 않고 절제되고 무거운 듯 했다. 어둡고 슬픈 듯도 했다. 쉽지 않은 연주인 것은 분명했다. 오래전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친근함과 신선한 충격이 동시에 느껴졌다. 정신이 들자 말자언니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어허.......와우!”

  정적을 깨고 은복이가 박수를 쳐댔다.

  “언니, 언니....... 우리 힘들게 일한 보람이 있네. 그쵸? 와우!”

  은복이는 박수를 이어갔다.

  “포스터 봤지? 공연 날짜. 잠자는 시간 빼고는 연습이야. 너는 특히, 곡도 익혀야 하고 노래도 좀 해야 돼.”

  말자언니는 그에게 바로 말을 놓았다.

  “최대한 빨리 익혀 볼게요. 누나들보다 체력은 좋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가 말했다. 앞뒤 잘라먹고 가운데만 쏙 빼먹는 화법이 마치 친남매마냥 척척 맞았다.

  “어? 아니....... 누나들.......이라니? 누가 누나들이래? 며....... 몇 살이세요? 참 나....... 우리 스물셋밖에 안 먹었는데?”

  은복이가 정색했다.

  “누나들 맞네요.”

  그가 씩 웃었다. 웃는 모습이 예뻤다. 한 시간여 전 가게 앞에서 마주쳤던 그와, 한 시간여 후의 그는 다른 사람 같았다. 방금 연주했던 그의 기타소리가 그의 몸에, 그의 얼굴과 미소에 뿌려진 듯했다. 아름다웠다. 냉방도 제대로 켜지 않은 이 지하 연습실의 습한 열기가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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