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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의 플레이리스트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능, 사랑.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작지만 커다란 우리 모두의 적지만 많은 사랑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솔직해서 아름답고 자연스러워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렸으면 합니다.

 
꿈에서 깨어나기를, 깨지 않기를
작성일 : 20-09-27 20:25     조회 : 524     추천 : 0     분량 : 4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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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단조롭게 비추고 있는 외로운 태양을 뒤로 하고 구름 사이를 뚫고 하강한다. 부산한 소리를 내며 비가 나타났다. 꿈에서 깨어난 듯 괴리감 느껴지는 현실을 맞이해야만 했다. 가볍게 비워낸 줄 알았으나 또다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비다.

  유난히 회색빛이 감도는 풍경이다. 알록달록해야 할 한가을에 국제공항은 유독 계절을 무시하듯 늘 그랬다. 언제나 무채색의 사람들의 웅성거림만 그 느낌을 더할 뿐. 여기 나를 둘러싼 배경과 소리, 그 냄새마저 나를 회색으로 만들어 버린다. 다시 난 그렇게 그 배경에 스며야 한다.

  떠날 때보다 싸늘해진 기온과 가을비에 축축이 젖은 공기가 익숙한 낯설음에 당황하고 있는 나의 가슴을 한 대 툭 때리는 듯 했다. 혼자임에도 편치 않은 발걸음으로 짐을 찾은 나는 공항 밖으로 나왔다. 밖은 또 다른 회색이었다. 물감보다 물이 더 많아 질펀한 느낌의. 큰 한숨으로 빗줄기 사이에 회색 입김을 내뿜었다.

  ‘이 곳을 벗어나는 순간, 과연 난 여행의 효과를 경험하게 될까.’ 살짝 긴장되고 두렵기도 했다. 여행은 나쁘지 않았다. 취리히 공항에 첫 발을 디딜 때와 비슷한 강도와 속도로 뛰고 있는 심장을 한 번의 심호흡으로 달래며 공항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어이~도강호! 여기, 여기!”

  상스러운 어투의 익숙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영꽝이라 불리는 불알친구 영태였다. 이십년을 가까이 알아 왔지만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다. 녀석의 갑작스런 출현에 소름이 돋았다.

  “어.......네가 여긴 어떻게.......”

  내가 말했다. 커다란 덩치가 우산의 사이즈를 벗어나 외투와 바지를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녀석은 힘겹게 내게 달려왔다.

  “야, 씨! 안 들리냐? 몇 번을 불렀는데......”

  숨을 헐떡거리며 내게 말한다.

  “징하다, 징해. 이기적인 새끼.”

  한 달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그는 욕부터 뱉었다. 최근 두 달여간 연락이 뜸했는데 여행 중이었던 내게 뜬금없이 두어 번의 안부 전화를 했었다. 어쩐지 무언가 불길했다.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에 여긴 왜 왔어?”

  “만사 재껴 두고 달려온 친구한테 할 소리냐? 오늘은 별 일 없지? 뭐, 짐도 많지 않은 것 같고........”

  잠시 원상태로 돌아왔던 이 녀석의 표정은 이내 좀 전의 구린 표정으로 바뀌며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피곤도 풀고 이 형님이랑 회포도 풀 겸 가볍게 한 잔 어때? 오랜만에.”

  “...........”

  “왜 암 말이 없어? 응? 죄인은 너야. 뻣대지 마라.”

  그의 제안을 듣는 둥 마는 둥 난 짐을 끌고 걸음을 뗐다.

  “어? 이 자식이!”

  “피곤해.”

  굳이 핑계를 대려하지 않아도 내 얼굴에 그대로 묻어있으리라 믿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걷는 내 앞을 그가 가로막았다. 스텝이 꼬이자 그는 얼른 캐리어를 잡아챘다.

 

  사실 이 녀석, 귀찮을 만큼 가족보다도 더 자주 나를 찾았던 놈이다. 늘 퇴근시간을 알려 주는 건 이 녀석의 전화였고 늘 그 시간이후의 우리의 동선은 태엽을 감아 놓은 병정 인형마냥 자동 반사적이었다. 벌써 5년째이다. 태엽을 감는 쪽은 이 녀석, 인형은 물론 나였지만.

  그러던 영꽝이 3개월 만에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여행을 다녀온 나를 마중하러.

 연락도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난 묻지 않았다. 여행후의 고단함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을 이겼기 때문에 난 또 병정 인형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일 년 전 새로 뽑은 녀석의 애마 은색 2012년형 BMW X1은 빗속에서도 반짝거림을 잃지 않고 후광을 내뿜고 있었다. 셀러브리티를 에스코트 하듯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낮은 자세로 내 짐을 받아 트렁크에 실은 녀석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아주 젠틀한 손짓으로 내게 타라 신호했다.

  그저 얼른 몸을 안착시키고 싶었다. 차에 올라 좌석에 몸을 맞췄다. 역시 이 녀석의 감각이 돋보이는 좌석이다. 이것이 내 몸을 잘 받쳐 들었고 머리를 기대면서 온 몸에 힘을 풀었다. 비로소 난 편안함을 느꼈다. 그제야 입을 열고 성대를 울릴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어디 가는데?”

  겨우 입을 뗐는데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피곤하다. 술은 담에 하자.”

  “그렇게 피곤하면 잠깐이라도 눈이나 붙여, 인마!”

 또다시 이 녀석의 능청에 대꾸할, 아니 거부할 기력이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래도 마지막 반격 아닌 반격은 해야 했다.

  “미친 놈....... 잘 다녀왔냐 묻지도 않고 이게 뭔 행패야?”

  “어허! 행패라니! 그러는 네 놈도 백 년 만에 보는 형님한테 반색은커녕 죽을 상이냐? 바쁜 시간 쪼개서 마중까지 나왔는데. 혼자 공기 좋은데서 실컷 힐링하고 왔다는 놈이.”

  본색을 드러내는 영태 녀석이다.

  “피로회복 제대로 하게 해 줄 테니 넌 그냥 따라만 와.”

 

  아무리 급해도 영태는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이 아니다. 20년을 넘게 이 녀석을 알았어도 단 한번 누굴 기다리고 반기는 놈이 아니었다. 녀석은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게도 그랬으니까.

  나와는 다르게 영태는 착한 놈이다. 아니, 순수한 놈이랄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한 관광지에 세워진 오래된 조각상처럼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보며 추억의 사진을 촬영하고 쓰다듬고 그 느낌을 기억하려 애쓴다. 흔한 존재가 아니기에 한 때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또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았다. 흔들리지 않고 그냥 가만히, 질투 나도록 자연스럽게. 떠나가는 사람도, 짓궂은 사람도 태연히 받아 칠 줄 아는 순수한 놈이었다. 부러울 만큼.

  그런 생각도 했다.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고, 눈보라와 폭풍우도 겪었을 그다. 겉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스크래치들은 그를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고 차갑고 어둔 밤이 그를 외롭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녀석은 늘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또 다른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난 의아했다. 이십년의 시간이 남다를 거라 여겨지다가도 문득 그 조각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혹은 그 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얼마나 관심을 받고 풍파에 끄떡없을지 물어본들 소용없는 그런 친구였다. 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 슬펐다.

 

  영태는 2년 전 결혼을 했다. 그를 만나면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결혼을 했어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은 녀석의 결혼은 충격적이었다. 오래간다 싶었던 1년여의 연애가 결혼이란 마무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녀석이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생각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재수씨는?”

  내가 물었다.

  “오....... 웬 관심? 황송하네. 바깥바람 좀 쐬고 오니까 정신이 돌아 온 거야? 하긴, 개나 소나 하는 실연 좀 했다고 그 유난을 떨었으니 달라져야지. 안 그럼 양심이 없는 거지. 새끼....... 이제 좀 낫냐? 유난 좀 그만 떨어 새꺄....... 너 인마, 한 달씩이나 쳐 나갔다가 와서는 또 혼자 귀신처럼 굴면 아주 죽여 버릴 거니까!”

  너스레를 떨며 영태가 말했다.

  “.......”

  난 쓴 미소로 답했다.

  조수석은 열선으로 데워져 있었다. 빗소리가 차단되고 좌석에 앉는 순간 잊혀졌던 현실감이 주사약처럼 온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몸에 딱 맞는 착석감과 열선의 온기는 한 달간 스위스의 시골에서 느꼈던 소똥냄새와 건초냄새 섞인 햇살의 온화함과는 상반되는 느낌이었다. 공항에 내리면서 느꼈던 회색의 느낌을 입체화시키는 듯한 한기 같은 온기였다. 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친구 녀석의 느끼한 콧노래가 그 느낌을 가중시켰다. 나도 모르게 등받이에 머릴 떨구었다. 이 녀석에 진 건지 잠에 진 건지 헷갈렸다. 계기판의 시계가 5시 30분을 지나는 순간을 목격한 후, 난 눈을 감았다.

  “자식....... 피곤한 척은....... 끝은 끝인 거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바로 오늘부터. 알았냐? 언제까지 사춘기 소년처럼 살랑 바람에 그렇게 날아만 다닐래?”

  영태가 말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날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그의 너스레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뭐야.......뭔데 이래? 너야말로 정신 나간 생쥐마냥 호들갑떨지 말고 말해. 하긴, 말해도 오늘은 안 될 테지만. 오늘까지만 나 좀 냅둬줘. 난 안가.”

  잠에 빠지기 직전 온 힘을 다해 거부의사를 밝혀보았다.

  “하하....... 넌 이 차에 탔고 탔으면 가는 거야. 멍청한 새끼......”

  그가 말했다.

  “진짜........ 오늘은 아니잖냐. 좋은 말 할 때 집으로 가라.”

  난 겨우 말했다. 맘속으론 이미 쉬기를 포기했지만 녀석이 집을 향할 거라 믿고 싶었다. 나의 말을 가볍게 집어 삼킨 영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난 애써 녀석의 콧노래를 귀에서 지우고 빗소리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아주 잠깐이었다. 열을 세고 난 후 깨어난 것 같았다. 눈을 뜨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차 밖은 밝은 빛에 둘러 싸여 있었다. 비도 어느새 잦아들어 가루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무사귀환을 환영한다. 친구야!”

 영태는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며 말했다. 예전에도 숱한 경험들이 존재했지만 오늘은 낯설고 어색했다. 밝은 불빛들을 뒤로 하고 좁고 오래된 골목에 차를 멈춘 그는 차에서 내려 손수 조수석 문까지 열어 주었다. 몸이 무거웠다. 녀석이 원격으로 날 조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생각이 멈춰버린 나는 어느새 홍대 앞 어느 좁은 골목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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