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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22.왜 하필 지금
작성일 : 16-10-25 17:27     조회 : 700     추천 : 0     분량 : 9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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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안 되겠어!”

 

  아리아는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도저히 잠이 안 온다. 바깥을 보니 새벽인 것 같다. 이렇게 달이 짱짱할 동안 한 숨도 못 잤다. 무도회장에서의 일 때문이다. 그 이상한 놈만 아니었어도! 어떡하지?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저지르는 수밖에 없어. 떠나는 건 내일. 오늘 안에 해결하자.

  “좋아. 가자.”

 

  아리아는 방을 나서 살그머니 이도의 방문으로 갔다. 똑똑 두들기자 안에서 으음~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문이 열리며 부스스한 머리를 한 이도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응? 아리아? 하아암. 대체 무슨 일...... 앗!”

 

  아리아는 이도의 손을 잡아끌며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아리아!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잔 말 말고 따라와!”

 

  아리아는 이도를 끌고 숙소를 빠져나와 몇 블록 떨어진 으슥한 골목길에 도착했다. 바닥은 갈라져있었고 돌담 사이로 징그러운 벌레가 슥슥 돌아다녔다. 이도는 머리를 긁으며 아리아를 봤다.

  “뭔데?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야?”

 

  아리아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다 네 잘못이야.”

  “어?”

  “네가 바보처럼 눈치가 없으니까!”

  아리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닥의 흙먼지들은 휘날려 두 사람의 다리 사이를 맴돌았다. 달빛은 비스듬히 매달려 둘 사이에 광명을 내리쬔다. 밤하늘의 별빛은 구경꾼이 되어 응원의 빛을 보냈다. 나뭇가지들은 흔들흔들 엉키고 나뭇잎은 서로 사그락사그락대며 웅성웅성댔다.

  드디어.

 

  “이도! 나, 나는 너를-.”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와 아리아의 말을 끓었다. 이도는 고개를 홱 돌려 어디에서 비명이 난 건지 찾았다. 다시 한 번 들려온다.

  이도는 이빨을 갈았다.

 

  “심상치 않아. 우리 숙소 쪽에서 비명이 들리고 있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자!”

  이도는 숙소를 향해 치달렸다. 아리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잠깐......”이라 말하며 머뭇거렸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이도를 보고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아, 신이시여! 아리아는 이도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비명은 숙소에서 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함성도 들려왔다. 그리고 칼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이도는 숙소 밖으로 도망쳐 나온 한 하숙객을 붙잡고 질문했다.

  “이봐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하숙객은 손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알 수 없는 괴한들이 침입했어요. 한 두 명이 아니라 적어도 이삼십 명이! 방 여기저기를 뒤지며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어요. 방해되는 사람은 죽이고요. 저는 간신히 도망쳤어요. 지금 안에서 괴한이랑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맞다!”

  하숙객은 침을 삼켰다.

 

  “그놈들, 제국의 대자를 찾고 있었어요.”

  이도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날 찾는다고? 아니, 동란은 끝난 것 아니었어? 순간 엘리자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짓이다. 말을 안 듣는 꼭두각시를 대신해 직접 일을 벌인 거야.

  “이도! 받아.”

 

  어느새 옆에 온 아리아가 칼 하나를 건넸다. 아리아도 하나를 차고 있었다.

  “어디서 난 거야?”

  “무기점 하나를 털었지. 그래봤자 칼 두 개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잖아?”

  아리아는 숙소를 올려다봤다.

 

  “널 암살하러 온 거야?”

  “무식한 놈들이야. 적어도 수십 명은 된대.”

  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판사판이군. 들어가자.”

  “응. 다른 선원들은 걱정 없지만, 메이랑 소니아가 걱정이야. 그 둘은 몇 층에 묵지?”

  “2층 끝자락이야. 가자!”

 

  둘은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바닥에 널브러진 중년 여성 시체 한 구가 보였다. 이 숙소의 여주인이다. 그녀가 쓰고 있던 헤진 모자 하나가 피 웅덩이 위에 놓여있다. 이도는 그 모자를 들어 올려 턴 뒤 머리 위에 푹 눌러 썼다. 정체를 들키면 곤란하니까.

  “이도, 앞에 적이 두 명 있어.”

 

  그 두 놈은 방문 하나를 두들기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이도와 아리아는 그들을 기습했다. 이도가 한 놈의 손을 찔러 칼을 놓치게 하자, 아리아가 받아서 놈의 목을 찔렀다. 남은 한 놈은 장난하는 것처럼 검을 놀려 이도와 아리아를 견제했다.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아리아를 그 놈의 뒤를 보며 소리 질렀다.

 

  “야! 거기! 이 녀석 죽여 버려!”

  그 놈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돌렸다. 아리아의 칼이 놈의 목을 사선으로 죽 그었다. 피가 솟아오르며 목이 뒤로 꺾이고 놈은 쓰러졌다. 이도는 방문을 쾅쾅 두드리며 외쳤다.

  “거기 안에 누구죠? 수상한 놈들은 죽었습니다!”

 

  방 안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는 그냥 하숙객인데......”

  “알겠습니다. 나와서 조심히 도망가세요.”

 

  이도와 아리아는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적을 격파해나갔다. 곳곳에서 선원들과 괴한들이 싸우고 있었다. 운 나쁘게 말려든 하숙객의 시체들이 즐비했다. 젠장. 원하는 게 나면 나만 노리면 될 것을. 그들은 어느새 메이와 소니아의 방 앞에 도착했다.

  “가자!”

 

  이도는 문을 발로 찼다. 문이 쾅하고 열리며, 한 괴한이 소니아와 메이를 겁박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도와 아리아를 보고는 재빨리 움직였다. 소니아와 메이를 한 팔로 꽉 잡아서 칼을 두 목에 댄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마라.”

 

  소니아는 씩 웃으며 이도를 향해 윙크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부식 마법을 바른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몰래 부싯돌을 사용해 불똥을 만들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놈은 상당히 긴장한데다가 이도와 아리아에만 집중해서 모르는 모양이다. 소니아는 손수건을 놈의 무릎 뒤쪽에 갖다 댔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무릎 뼈가 으스러졌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리아는 단번에 접근해 놈의 목을 땄다.

  이도는 메이에게 갔다.

  “메이,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메이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이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할 정도의 정신은 있었다.

  이도는 소니아에게 말했다.

  “슈리랑 루카는 어디 있어요?”

 

  “그 광견들? 아마 맨 위 층에 있을 거야. 5층으로 간 놈들,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을걸.”

  이도는 아리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리아, 나는 여기서 소니아랑 메이를 지키고 있을게. 너는 선원들을 이끌고 남은 잔당을 소탕해줘.”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이도는 방문을 닫고 책상과 옷장을 끌어다가 문을 막았다. 침대도 끌어볼까 했지만 이도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이도는 침대 위에 앉아 한숨 돌렸다. 이제 보니 소니아가 메이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뭐야, 싫은 티 팍팍 냈던 주제에.

  “소니아, 저 놈이 뭘 물어봤던 거죠?”

 

  이도는 눈짓으로 그 시체를 가리켰다. 소니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 찾더라고. 그래서 난 모른다 했지. 실제로도 몰랐고. 근데 놈들 눈치가 마치, 대자가 묵는 방을 정확하게 알고 찾아왔는데 없어서 당황한 느낌이었어.”

 

  “아리아가 불러서 잠시 밖으로 나갔거든요. 그 때 놈들이 들이닥친 모양이네요.”

  “아리아가 불렀다고? 오호라.”

 

  소니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군.”

  “이 놈들, 독립파겠죠? 아니면 무역협회의 사병이든가.”

  “그렇겠지. 달리 누가 널 찾겠어?”

 

  “하지만 협상을 했는데.”

  소니아는 칫칫 혀 치는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순진하군. 독립파는 꼭두각시야. 본체는 식민지 무역협회와 자연주의파 문필가들이지. 무역협회가 자금, 군수품, 식량 등등을 대주고 자연주의파 문필가들은 독립의 정당성을 부여해. 아마 이번 협상은 삼자 간 불협화음 때문인 것 같아. 무역협회와 문필가들은 전쟁을 불사할 생각이 있었지만, 독립파는 전쟁까지는 안 가고 대자 납치 건으로 해결을 볼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니 덜컥 한 발 물러서서 협상을 체결한 거고. 그걸 고깝게 본 무역협회와 문필가들이 대신 행동을 개시한 거지. 이렇게 되면 발을 뺄 준비를 하던 독립파는 더 이상 뺄 수가 없는 거야.”

  이도는 이마를 질끈 눌렀다.

 

  “독립파가 대자 납치를 하는 건 이해하지만, 무역협회와 문필가들은 왜죠? 협상 카드로 쓰려고?”

  협상 카드.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내 생각일 뿐이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도 몰라.

 

  이도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어쩌면 대자 처리 건에 관련해서도 삼자 간의 의견대립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독립파는 대자 납치를 원하는 거고, 나머지 둘은,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애초에 대자를 협상 카드로 쓴다니. 뭔가 무식하지 않아요? 께름칙하단 말이에요. 어쩌면 무역협회와 문필가는 독립파에게 대자를 협상 카드로 쓸 거라 말해두고, 뒤로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메이가 입을 열었다.

 

  “대자님, 제가 하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저는 저희 부족 신관의 딸이었어요. 그래서 정치에 관련해선 제가 좀 주워들은 게 있어요. 대자님, 저희들의 경우에 한 부족이 적대적 부족의 왕족을 사로잡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에요.”

  메이는 잠시 쉰 뒤 말했다.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저희에게는 선민종족 사상이 퍼져있어요. 그래서 부족들끼리 서로서로가 자기가 진짜 선민종족이라고 주장하죠. 그러다가 대립이 극심해지면 쓰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적 부족의 왕족을 사로잡아 공개적인 장소에 말뚝을 박고 거기에다가 묶어버려요. 그러고는 살을 한 점 한 점 떠서 죽음에 이르게 하죠.”

  이도는 저절로 눈이 찌푸렸다. 그러나 메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죽으면, 이렇게 주장하는 거죠. 보라, 어떤 신이 자신이 선택한 부족의 왕족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데 방관한단 말이냐.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신이 없거나, 아니면 그들이 선택받지 못한 민족이거나. 당연히 후자라고 주장하죠. 이 방법은 효과가 강력해요. 전쟁에서 적 부족의 왕족을 죽이는 것보다도. 어쩌면 이주민 사회의 문필가들이 저희의 이런 풍습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그럼 그 말은.”

 

  이도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 자식들이 날 공개처형하려고 날 납치한 거였단 말이야?”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그런 건 생각도 못 했다. 보통 미친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했다간 제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단 말인가? 아니. 생각해보자. 메이가 방금 말한 선민종족 사상, 제국과 비슷하지 않은가?

 

  제국은 자신들의 신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 신은 제국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리스크를 동반한 해결책을 알려준다.

  그래서 제국민은 ‘신’이 자신들을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보호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제국의 대자는 신에게 올리는 제의를 통해 간택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국의 대자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제국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런 대자가 죽는다면?

  신이 실재하지 않거나, 혹은 이제 신은 제국을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둘 중 어느 것이든 제국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

 

  제국의 붕괴는 식민지가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이다.

  이도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말도 안 돼.”

  가만히 듣고 있던 소니아가 말했다.

  “어떻게 보면 제국도 선민사상으로 뭉쳐있다고 말 할 수 있지. 일리 있군.”

 

  그 때 누군가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셋은 숨을 죽였다.

 

  “둘 다 침대 밑에 숨어있어요.”

  메이와 소니아는 조심조심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도는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문 밖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다.

  “거기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빨리 열어!”

 

  아무 말도 없자 놈은 협박을 했다.

  “안 열면 도끼로 문을 부숴버리겠다. 순순히 나와!”

 

  이도는 가만히 있었다. 얼마 안 가 도끼로 문을 찍는 소리가 났다. 쩍, 쩍. 나무 갈라지는 소리. 이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에 땀이 흘렀다.

  이윽고 문에 제법 큰 구멍이 나며 나무 파편이 튀어나왔다. 이도는 그 구멍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비명이 들렸다. 그러나 도끼질은 멈추지 않았다. 놈들도 한 둘이 아닌지 구멍을 이용해 무기를 놀렸다. 그 중에는 창도 있어서 위험했다.

  “빌어먹을.”

 

  갑자기 구멍 밖으로 석궁이 보였다. 이도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다가 벽에 푹 박혔다. 섣불리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도는 최대한 견제 했지만 구멍은 늘어만 갔다. 결국 문이 뚫리고 말았다.

  여섯 명의 적이 들이닥쳤다.

 

  여기서 죽을 선 없어. 이도는 마음을 다졌다.

  그 때 소니아가 외쳤다.

 

  “이도! 받아!”

  소니아는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칼을 이도에게 던졌다.

 

  “그거 내가 만든 신병기야! 방금 불 붙여 마법 작동시켰으니까, 그걸로 놈들을 해치워!”

  “무슨 마법인데요?”

  소니아는 엄지를 척 들었다.

 

  “부식!”

  이도는 칼을 바라봤다. 검은 기운이 비 맞은 지렁이처럼 검신을 꿈틀꿈틀 감싸고 있었다.

  이도 앞으로 칼을 든 놈이 다가왔다.

  둘의 검이 서로 맞붙었다.

 

  이변이 일어났다. 놈의 검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더니 후두둑 떨어지듯 분해된 것이다. 이도는 당황한 놈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다. 다음은 창이었다. 검으로 한 번 막자마자 창은 으스러졌다. 그 다음 놈도, 그 다음 놈도 식은 죽 먹기였다.

  “읏!”

 

  이도는 신음하며 몸을 옆으로 던졌다. 또 석궁이다. 하지만 피했다. 이도는 놈의 두 발을 잘랐다. 부식은 재빠르게 번져 놈의 하반신을 집어삼켰다. 듣기에도 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이도는 숨통을 끊어줬다.

  “끝났나?”

 

  여섯 구의 시체가 늘어나있었다. 믿을 수가 없다. 혼자서 여섯 명을 당해 내다니. 그 어떤 장군도 이처럼은 못하리라. 물론 특별한 무기 덕이지만. 이도는 소니아가 준 검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검도 부식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침대 밑에서 빠져나온 소니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이런, 이런. 코팅이 덜 됐나?”

 

  그 때 아리아도 선원들을 이끌고 왔다. 슈리와 루카도 있다. 피를 뒤집어 쓴 채 둘 만이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

  이도는 물었다.

  “선원들은 무사해?”

 

  “응. 부상당한 선원이 몇 명 정도, 죽은 놈도 몇 명 있는 것 같은데 시체가 많아서 확인이 안 돼.”

  이도는 눈을 감았다.

  나로 인해 또 무고한 자들이 죽었다.

 

  젠장. 현실은 예고 없이 몰아닥친다.

  이도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대단하다. 그래도 암살자들인데 선원들이 다 물리쳤네.”

 

  “말했잖아? 우리 선원들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물론 쪽수도 많았지만. 근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한 놈 심문해서 얻어낸 건데, 놈들은 총독도 암살하려고 해.”

  이도는 다시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오늘 밤 파티를 벌인다고 해서 병사들이 전부 술에 절어있을 텐데.”

  이도와 아리아는 슈리와 함께 선원의 3분의 1은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숙소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머지를 이끌고 숙소를 나왔다. 소란이 생각보다 컸기에 사람들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숙소의 참상을 목격하고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항구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항구요새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술에 빠져 정신을 잃은 병사들은 그냥 바닥에 널려있고, 정신을 차렸던 병사는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바닥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건데 숙소에 쳐들어왔던 놈들보다 더 수가 많은 듯하다. 이 정도 규모의 적병이 침입하는 걸 허용하다니, 경계가 얼마나 허술했던 걸까. 역시 방심이 최악의 적이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적을 무찌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목표지점은 총독의 집무실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병력을 나눴다. 선원의 삼분의 일은 집무실로 이도와 아리아를 따랐고, 나머지는 항구요새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적을 소탕하기로 했다. 선원들의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문제없었다.

 

  이도는 드디어 총독의 집무실이 있는 층에 올라섰다. 족히 삼십 명은 되는 괴한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집무실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곧바로 선원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선원측이 한 수 위여서 괴한들을 빨리 정리했다.

  상황 완료.

 

  이도는 옷소매로 얼굴에 묻는 피와 땀을 닦았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지금 알게 된 건데 집무실의 문은 철판으로 감싸져있다. 그래서 못 뚫었군.

  “드레이크 총독! 안에 있습니까? 이제 안전합니다!”

 

  얼마 안 가 문이 드르륵 하며 열렸다. 안에는 드레이크 총독, 비서관, 정예병 몇 명이 있었다. 전부 온 몸이 피로 점철되어 있다. 격렬한 전투를 한 끝에 내몰린 듯했다. 그들은 이도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레이크 총독은 그 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화승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달이 비추는 창가 옆에 서 있었다.

  “술이 원수지요. 대자님은 술을 안 즐기셔서 다행입니다.”

 

  “저도 당할 뻔 했어요.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요새 경비병은 거의 다, 아니 전부 당했습니다. 제가 방심했습니다. 뒤에 있는 분들은 다 아리아의 선원들인가요? 당신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드레이크 총독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군. 도덕 없는 놈들이란 건 알았지만.”

  총독은 서랍을 열어 편지 하나를 꺼냈다. 이도는 그 편지를 알아보았다. 황제의 편지였다.

 

  “황제폐하는 대자님께만 편지를 보낸 게 아닙니다. 저에게도 따로 보내셨죠.”

  “무슨 내용이죠?”

 

  “핵심은 간단합니다. 대자의 신병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위협이 그치지 않는다면 총독의 재량으로 전쟁을 벌여도 좋다. 당연한 조치지요.”

  이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진심입니까?”

 

  총독은 말이 없다.

 

  이도는 입을 굳게 다물고 바닥을 바라봤다. 기하학적 무늬의 양탄자, 그 미로 속에 빠져드는 듯하다. 난 이제 무얼 하면 좋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가진 것들은 소용이 없어. 이도는 눈을 감았다. 어둠이 그를 끌어안았다. 초라한 느낌, 푼돈도 못 벌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인간은 귀족이나 노예나 한낱 세상의 먼지에 불과하다고 하지. 과연, 정말 그래. 죽으면 그저 무로 돌아갈 뿐, 마치 등불을 켰다가 끄는 것처럼, 그저 그런 것일 뿐. 커다란 무가 몰려오고 있어. 무시무시해. 신대륙을 집어삼킬 끈적끈적한 무가 다가오고 있어. 난 뭘 할 수 있지? 먼지에 불과한 내 의미란 무엇이지? 언제인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 겸손함을 알아라, 겸손함을. 그러네요. 아버지는 언제나 옳죠. 탁월한 조언이네요. 난 바보죠. 난 멍청이에요. 도림의 태자라는 껍데기를 벗으면 나는 애송이일 뿐이죠. 하지만 도림국도, 그 이전에 그 자리에 있던 왕국들도 멍청하죠. 언제나 제국을 질투했고, 제국처럼 되고자 했고, 제국을 몰아내고 싶어 했지. 하지만 지형에서부터 차이가 나는걸. 서방은 드넓은 평야고, 동방은 서쪽은 산악지대이고 동쪽이 평야인걸. 제국을 본받기에는 반쪽밖에 안 돼지. 게다가 통합도 안 돼서 연합을 이루어야 했지. 제국이 지닌 평야의 수운교통로에서 생겨나는 막강한 부를 모방하기 위해...... 도림은...... 도림은 인위적으로...... 오직 도림만이 해낸...... 도림만이 가진......

 

  아.

  아아아.

 

  “그게 있었어.”

 

  이도는 몸의 힘이 빠진 탓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도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쥐었다. 마치 잡초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은발이 삐져나왔다. 무게중심을 잃은 이도는 그만 머리를 땅에 찧고 말았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았다. 일어설 기운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도는 신음하며 땅을 쳤다.

 

  “왜 하필 지금 생각나......”

 

  이도는 자그맣게 중얼대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달빛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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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끝이 시작되고 있었다." (4) 2016 / 10 / 31 684 0 2362   
28 27.참으로 오래 걸린 2016 / 10 / 30 444 0 5375   
27 26.바다를 건너며 2016 / 10 / 29 801 0 12560   
26 25.신의 가호가 있기를 2016 / 10 / 28 597 0 12539   
25 24.어둡고 바람 부는 밤이었다 2016 / 10 / 27 743 0 10914   
24 23.결점과 결심 2016 / 10 / 26 507 0 8218   
23 22.왜 하필 지금 2016 / 10 / 25 701 0 9485   
22 21.아리아와 함께 춤을 2016 / 10 / 24 674 0 13792   
21 20.협상의 행방 2016 / 10 / 23 998 0 12721   
20 19.물놀이를 즐겨요 2016 / 10 / 22 568 0 19416   
19 18.제2 라니냐 항구 2016 / 10 / 22 471 0 8046   
18 17.엘리자의 회초리 2016 / 10 / 20 465 0 2376   
17 16.고양이 울음소리 2016 / 10 / 19 647 0 14015   
16 15.루비가 박힌 단검 2016 / 10 / 18 400 0 8352   
15 14.항구를 떠나다 2016 / 10 / 17 403 0 4106   
14 13.도처에 놓인 그물망 2016 / 10 / 16 702 0 8793   
13 12.소니아를 보다 2016 / 10 / 15 594 0 9697   
12 11.그 날 2016 / 10 / 14 830 0 12356   
11 10.루카를 위하여 2016 / 10 / 13 536 0 7296   
10 09.다시 찾아온 2016 / 10 / 12 1259 0 16436   
9 08.선화의 짖궂음 2016 / 10 / 11 520 0 6245   
8 07.선상의 파티 2016 / 10 / 11 612 0 5057   
7 06.가녀린 손 (1) 2016 / 10 / 10 698 1 7374   
6 05.헬라와 욕조 2016 / 10 / 9 537 0 6228   
5 04.선화와 황제의 문답 2016 / 10 / 8 459 1 9336   
4 03.이도의 펜던트 2016 / 10 / 8 686 1 5708   
3 02.납치선에서 (2) 2016 / 10 / 7 611 1 6595   
2 01.고장난 마차바퀴 2016 / 10 / 6 533 1 8418   
1 00.라벤더와 라즈베리 향 2016 / 10 / 6 708 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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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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