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단 세 명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인간형으로 변형한 성난 늑대의 토템도 이제 막 새로운 토템을 얻은 큰 부리 독수리는 물론, 송토낙스의 워커마저 고철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큰 손상을 입었다.
레오폴드의 거처 근처인지, 경비병의 숫자도 숫자지만 점점 더 강력한 정예 병력이 깔려 있었고. 기상천외한 함정이 셋을 반긴 덕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셋은 결국 레오폴드의 알현실 문앞에 섰다.
성난 늑대가 바로 알현실의 문을 박살 내려 했으나, 큰 부리 독수리가 조용히 성난 늑대의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성난 늑대는 뒤에 서 있는 송토낙스를 돌아보면서, 뒤로 한발 물러났다. 송토낙스는 워커를 조작해 주먹을 앞으로 뻗으려 했다.
“앉은 황소!! 붉은 전갈. 이제야 도착했다. 나머지는 저 둘에게 맡기자.”
그렇게 외친 송토낙스는 바로 알현실의 문에 전력을 다 실은 주먹을 깊게 꽂아 넣었다.
한편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네스트라가 한마디 던졌다.
“벌레들이 하나둘씩 기어오는 모양이군요. 황제 폐하.”
네스트라는 코웃음을 치며, 거대한 레오폴드의 어깨 위에서 셋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늘 TV에서 보여주던 느긋하고 위엄 있는 모습 따위는 어딘가로 내다 버렸는지. 성난 늑대 일행이 쳐들어오는 모습에 다섯 살 어린애처럼 난동을 부렸다.
“쳐들어오지 못하게 해!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내란 말이야! 저 낡아 빠진 놈들은 내 과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송토낙스 네놈! 네놈은 그때 죽지 않았냔 말이다!!”
레오폴드는 송토낙스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울부짖었다. 이에 네스트라는 송토낙스가 구형이라는 걸 확인한 다음, 난처한 투로 레오폴드에게 재촉하듯 한마디 던졌다.
“폐하 저들을 막아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전쟁에 필요한 자원까지 전부 다 소모해가면서 막아낸 건 모르십니까? 지금의 소모량이라면 오히려 비스티어리 캐년의 원주민들이 여기까지 치고 올라올 텐데요?”
네스트라가 은근슬쩍 웃으면서 한마디 던지자, 레오폴드가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다시피 울부짖으며 의자의 팔걸이를 마구 내리쳤다.
“어차피 비스티어리 캐년의 그 야만인들이야 신형 워커를 개발하고 화생방이랑 핵미사일로 한꺼번에 죽이란 말이야! 그러면 되잖아!!”
우습게도 화생방의 재료부터 비스티어리 캐년에서 구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밖에 전쟁에 필요한 자원 역시. 도시는 레오폴드 궁과 그의 경호 및 보안으로 인해 거의 다 고갈된 상태였다. 심지어 안드로이드를 구성하는 금속마저 이젠 비스티어리 캐년에서 구해야 했다.
“폐하. 그래도 비스티어리 캐년과의 전쟁도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비스티어리 캐년 측이 머지않아 회복해서 반격해온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생각이옵니까?!”
네스트라가 다시 한 번 충고하자, 레오폴드는 울부짖으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왜? 너까지 반란을 생각하는 거냐?! 미천한 인간 주제에? 내가 아니었다면 너도 수용소에 처박혀서 평생 창녀짓이나 해야 했단 말이다!”
레오폴드가 화를 내면서 네스트라에게 채찍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레오폴드를 노려보았고, 레오폴드는 코웃음을 치면서 손가락에 붙은 채찍을 조용히 광검으로 바꿨다. 그리고 광검의 끝으로 네스트라의 등 한복판을 지지면서 비아냥거렸다.
“네년! 나한테 반항하려는 거냐? 설마 너도 내가 청소용 모델이라고 우습게 보고 반란을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네스트라는 등의 피부가 타는 고통 따윈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지저분한 과거를 나불거리면서, 치밀어 오르는 열등감에 자신을 짓밟는 레오폴드 MK-2의 모습에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의 눈앞에서 반응을 보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알았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서열 싸움에 진 개처럼 납작하게 엎드렸다. 그 와중에도 네스트라는 문득 옛날의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시궁창 같은 년. 네년 부모가 안드로이드와의 싸움에서 도망쳤다지! 덕분에 깡통 놈들한테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
네스트라는 대략 10여년 전.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을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레오폴드가 일으킨 안드로이드 대 반란으로 인해 사람들의 신경이 예민할 무렵이기도 했다. 하필이면 그때 인간 측의 지휘관이었던 네스트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사하고, 그 직후 안드로이드들의 공세가 강해진 탓에 사람들은 분노의 화살을 죄다 그녀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얻어맞거나, 온갖 더러운 욕설과 모욕이 담긴 팻말을 목에 건 채 개처럼 끌려다니는 게 일과였다.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두고두고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한 탓에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어딜 쳐다봐! 배신자 핏줄을 타고난 인간이!”
어느 날인가는 그냥 쳐다봤다는 이유만으로 린치를 당했고, 또 다른 날은 평상시에 여자를 접하지도 못할 무뢰배들이 길거리에서 대놓고 겁탈한 적도 있었다.
“네년 같은 배신자의 몸뚱이에 우리가 씨앗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라고!”
그때부터 네스트라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괴로워하게 되었다. 차라리 자신의 몸을 기계로 개조해서라도 인간인 것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그래 인간이라는 놈들은 원래부터 자기 동족마저도 혐오하는 짐승이었지….’
네스트라는 바로 애처롭게 비는 표정으로 레오폴드 MK2를 올려다봤다. 레오폴드는 그녀를 지배했다는 듯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짓누르면서 비웃음을 던졌다.
“히힛 히히히. 그래. 인간은 전부 다 내 앞에 개처럼 엎드려서 기어가면 되는 거야. 고작 피가 흐르는 물러 터진 살덩어리 주제에, 나를 우습게 봤겠다? 전부 다 내가 당한 만큼 되돌려줄 거라고.”
그렇게 한참 동안 웃던 레오폴드 MK2는 잠시 후 그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얼른 내 눈앞에서 꺼져! 한 번만 더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가죽을 벗겨서 안드로이드 소체에 덮어 씌워줄 테니까! 나는 안드로이드들의 혁명을 성공시킨 레오폴드란 말이다! 어디서 날 무시하냔 말이냐고!!”
이에 네스트라는 황급히 레오폴드의 어깨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레오폴드 황제 몰래 그동안 쌓여온 감정이 실린 한마디를 흘렸다.
‘미친 새끼. 내가 아니었으면 네놈의 반란이 성공이나 했을 줄 알았어?’
네스트라는 몇 초 전의 잔뜩 분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폴드 황제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