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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작가 : SJHM
작품등록일 : 2016.9.28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두 부류의 청소년들, 그 나이에 맞게 활발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이들과 자의든 타의든 빈약한 대인관계와 방에서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성격마저 내성적인 이들.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경혜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할 것이다.
어린시절의 가슴아픈 기억이 비수로 남아 그녀의 가슴에 늘 꽃혀있었고 드센 성격의 어머니는 그런 경혜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기에는 너무나도 서툴럿다.
그런 경혜는 매일밤 특별한 꿈을 꾼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현실세계에는 없는 자신만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꿈. 그런 꿈을 꾸는 순간이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어느날 밤에도 마찬가지로 경혜는 꿈을 꾸게된다. 허나 이번엔 지금까지 꾸어왔던 꿈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다 해져버린 코트를 입은 소녀, 그리고 그 소녀가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말.
"이렇게 빨리 널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 이후 이어지는 소녀의 사탕발린 말들.
"네 스스로도 후회하는 지금 네 모습을 바꿀 의지가 있다면 앞으로의 네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꿀 의지가 있다면 날 따라와. 너무 걱정하지마 언제든지 넌 다시 깨어날 수 있어. 네 생각대로 이건 네 꿈의 일부에 불과하니까."
경혜역시 히키코모리 같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깊이 파여버린 상처로 인해 그 모습을 고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
어차피 꿈이고 눈만 세게 감았다가 뜨면 이 꿈에서도 언제든지 깰 수 있기때문에 경혜는 서스럼없이 소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소녀의 손짓에 따라 벽면에 그려지는 문, 그 문이 열리는 순간 경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틀어 가장 기이한 모험의 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ep.02
작성일 : 16-10-25 16:17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1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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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방의 형광등이 갑자기 깨져버리자 경혜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비록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여러 미디어의 영향으로 겁이 많은 성격이긴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전무후무 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마치 한이 맺힌 원혼이 경혜의 새 집에 침입, 혹은 이전부터 그 집에 떠돌아다니며 경혜에게 신호 내지는 경고를 하는듯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큰방을 바라보다가 화장실로 시선이 멈춘 경혜는 더욱더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문틈을 붙들고 있는 검은 손과 그 사이로 보이는 인간의 눈빛..... 그리고 화장실 문은 쿵 하고 닫혀버렸다.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공포에 떠는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는 수 밖에..... 그러나 이대로 있다가 또 그 이름모를 존재에게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혜는 조심스레 풀려버린 다리를 겨우겨우 지탱하며 일어섰다.

 일어서자 마자 급하게 휴대폰부터 찾아 재빨리 라이트를 키고 서서히 화장실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방과 화장실의 거리는 불과 두발짝 차이. 그러나 경혜는 겨우겨우 양말을 쓸리며 바닥을 걷고 있었다. 두발짝 만에 도착할 리가 없다. 여차저차 드디어 화장실 문 앞에 서고 닫혀있는 화장실 불부터 켰다. 닫힌 문틈 사이로 자줏빛 형광등이 새어나온다. 오른손으로는 휴대폰을 집어들고 왼손으로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화장실 문을 열어 재끼려는 순간.

 

 “ 꺄악!!!!!! ”

 

 경혜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집 안을 가득 매웠다. 검은 형상의 무엇인가가 경혜의 어깨를 탁 붙들고 있던 것이었다. 놀란 경혜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하던 그때, 갑자기 그녀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왠 쇼를하고 자빠졌어?”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이 익숙한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린 경혜가 수분 범벅이 된 눈으로 뒤를 돌아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뭐, 귀신이라도 봤냐?”

 

 경혜가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장실에 있던거 그럼... 엄마였어?”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하고 자빠졌어. 네 엄마 2시간 대리뛰다가 이제 왔는데.”

 

 그렇게 엄마는 무심한 듯 경혜의 말을 흘리며 큰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짐은 어느정도 정리했네? 뭐야, 형광등 깨졌네? 에휴, 내일 또 사와야 겠네.”

 

 경혜가 엄마를 뒤따라 큰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화장실에 뭔가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사색이 된 경혜의 표정을 본 엄마는 그제서야 다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 했다.

 

 “화장실에..... 사람같은게 있었다고.. 분명히 봤어.... 손도 시커먼게.... ”

 

 눈물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보자 엄마의 표정도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베란다에 남아있던 각목을 들고 화장실문을 열어재꼈다. 그리고 경혜가 불을 키자 고요한 화장실 내부에 생명체라고는 그냥 날리는 파리 한 마리가 다 였다. 혹시나 하고 세탁기를 열어보았지만 역시나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엄마는 한숨을 쉬고 자신의 뒤에 바짝 따라붙은 경혜를 보며 말했다.

 

 “뭐... 요즘 너 많이 힘들고 신경쓰여서 헛게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내일 전학 잠깐 미루고 당분간 마음좀 편하게 가질래?”

 

 “그런게 아니란 말이야....”

 

 결국 경혜는 울컥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방으로 들어가 불을 키고 문을 닫아버렸다.

 경혜가 있는 작은 방 문 밖으로 엄마의 한탄이 새어들어왔다.

 

 “아휴... 지 엄마는 또 오죽하겠냐..... ”

 

 그날밤 경혜는 동이 틀때까지 작은방의 불을 키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많이 쳐주어야 두세시간 잠을 청했을까? 휴대폰 시간을 보니 6시 55분이었다. 그러나 밖은 아직도 어두컴컴함 그 자체였다. 4월 17일. 아직 쌀쌀할 시기라지만 보통 이쯤되면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오늘도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될 예정인가 보다. 근래 맑고 푸른 하늘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을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요즘 날씨가 너무 좋지가 않다. 아침 인터넷 뉴스피드와 이런 우중충한 날씨가 이루어내는 시너지는 사람의 기분을 더욱 더 우중충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저 안방에서 들리는 익숙한 음악소리, 엄마의 알람이었다. 7시에 일어나 9시까지 출근하는 엄마는 그 사이 내 등교시간까지 챙겨야 한다.

 그때 엄마가 방문을 노크하며 내게 말한다.

 

 “오늘 학교 갈 수 있겠어?”

 

 “갈거야.”

 

 마음같아서는 당연히 가기 싫었다. 학교..... 굳이 나같은 은따, 혹은 왕따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중학생들 중에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집에 있자니 어제 그 이름모를 존재가 내게 보복을 가할 것 같고 그렇다고 따로 나가있을 공간도 없었다.

 차라리 학교에 가는게 나을지도...

 오전 7시 50분, 드디어 경혜가 새로 다닐 학교로 가기위한 준비가 끝났다. 걸어서 약 15분~ 20분 거리지만 첫날이니 만큼 엄마의 자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기로 했다.

 

 “어제는 잘 잤냐? 그렇게 사람이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

 

 “무슨 상관이야.”

 

 운전도중 엄마의 질문에 경혜의 대답은 굉장히 싸늘했다.

 

 “도대체 뭘 봤길래 그래?”

 

 “말해도 안믿을 거면서 뭘 자꾸 물어볼라고 그래?”

 

 “아니다, 야 그만하자....”

 

 또 재발할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입을 닫아 버렸고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이들은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나가 이 어색하고 험악한 기류를 깨고 싶은 것이 경혜 어머니의 바램이었으나 경혜는 늘 자신에게 싸늘하게만 대해왔던, 그리고 자신의 말을 늘 무시해 왔던(어쩌면 경혜 자신만 이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엄마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약 5분이 조금 넘게 차를 타고 달렸을까, 앞으로 경혜의 새로운 학교가 될 중학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이도 이전에 다니던 구닥다리 낡은 사립학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로 외관부터 차이가 확실했다. 물론 양아치들과 학교의 시설은 완전히 별개의 상황이지만 이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화장실도 양변기조차 없던 그 시기를 생각해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

 마침내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혼자 들어갈 수 있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은근 걱정스레 물어봐 주는 엄마의 말에도 경혜의 싸늘한 테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가 바닥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들어 경혜에게 말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잘 하고와. 그리고 엄마한테 말좀 해주고...”

 

 그렇게 그녀의 어머니는 자차를 타고 근무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마지막 말에 든 생각은 이렇다.

 

 “뭐 일찍 들어와야 말을 하든 말든 하지...”

 

 기본적으로 9시까지 부동산에 앉아 있다가 11~12시까지 대리를 뛰는 엄마는 심하면 거의 새벽 2시가 넘어서 들어오신다. 그러니 경혜와 엄마가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주말외에는 없다. 문제는 주말에도 일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리가지 뛸 정도로 우리가 못사는 형편도 아니건만 대체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선택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경혜가 대충 유추해 보자면 괜히 어색하고 차가운 냉기만 돌아댕기는 집구석 분위기를 피해, 그리고 경혜를 피해 일터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경혜다.

 수업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드디어 경혜가 학교 내부에 들어섰다. 확실히 이전에 다니던 학교와 비교하면 꽤 넓었다. 그리고 그 학교 못지않게 시끄러웠다. 아, 그럼 그렇지.

 다행이 교무실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경혜가 1층 복도로 들어서자 바로 제1 교무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경혜를 스쳐 지나가는 남자아이들을 피해 경혜가 교무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고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적어도 노크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니까.

 그리고 문을 열어 제끼고 교무실 내부에 들어선다. 교무실 내부에는 의외로 선생님들이 몇 계시지 않았다. 세네명 정도? 다행이 여자 선생님 한분이 경혜를 알아봐 주셨다. 보아하니 바로 경혜의 담임선생님인 듯 했다.

 

 “전학생이야?”

 

 “안녕하세요...”

 

 “그래~ 어? 그런데 1학년이야? 난 또 우리반에 오기로 한 애인줄 알고 착각했네...”

 

 “네? 아니요, 저 2학년 맞아요.”

 

 “아~ 그 교복 명찰이 바뀌었구나.”

 

 “아...”

 

 2학년의 교복 명찰은 노란색인데 어찌된 것인지 1학년의 명찰인 녹색이 붙어있었다.

 교복점의 실수가 분명하다.

 

 “야단났네.....”

 

 말 그대로 야단이 났다. 이대로 교실로 들어가면 꽤나 쪽팔릴 텐데....

 다행이 선생님께서 교복 마이에 부착된 명찰만 커터칼로 제거해 주셨다. 촘촘히 박음질된 실들을 일일이 잘라내는 것이 차마 쉽지가 않았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경혜와 선생님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갔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냈어? 어머니 말씀 들어보면 좀 잘 지낸 것 아닌 것 같던데...”

 

 은근히 난감한 질문이다. 일본의 이지메마냥 굉장한 따돌림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취급을 받은것도 아니다. 서열을 따지자면 경혜는 엄연히 왕따들과 근접한 서열이었다. 다만 경혜의 성격도 분노하면 폭군이 되고 날씬한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완력도 그 연령대의 남자 평균을 가볍게 뛰어넘는 믿기힘든 파워로 인해 왠만한 맺집이 있는 남학생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여학생(심지어 남학생)들은 경혜에게 쉽사리 시비를 걸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냥.... 알아서 피해 다녔어요. 가끔가다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구 해서... ”

 

 “그래? 막 친구들이 심하게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고?”

 

 “네.. 뭐... 그러진 않았어요.”

 

 “다행이네... 공부는 어땠어?”

 

 “그저... 그래요....”

 

 “음, 선생님이 경혜 내신을 좀 봤는데 정말 선생님걱정 보다는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뭐 수학이 쫌 심각하긴 한 것 같은데 영어는 상타는 치는 것 같고.... ”

 

 “네.”

 

 “만약에 오늘 시간표에 수학이랑 영어 있으면 수학은 C반으로 가고 영어는 B반으로 가면 될 것 같아 담당 선생님들한테는 선생님이 말씀을 드릴테니까. ”

 

 “네.”

 

 그렇게 경혜의 담임 선생님은 경혜의 녹색 이름표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커터칼을 책상에 내려놓은 후에 마이를 경혜에게 건네주었다.

 

 “자, 입어봐.”

 

 경혜가 이름표가 제거된 마이를 입고 단추를 체웠다. 와이셔츠와 조끼에 이름표가 그대로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오늘은 마이를 안 벗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유인물을 받기 위해 들어왔다. 장발의 웨이브를 딴 예쁘장한 여자아이였다.

 이전 학교에서는 경혜도 밥먹듯이 두발규정을 위반하여 명단에 이름이 적히곤 했다. 당연히 경혜는 수긍했다. 머리를 묶기는 했지만 누가봐도 장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여자아이는 장발에다가 웨이브까지.... 여기는 두발이 자유인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 여자아이에게 오라고 손짓하더니 뭐라뭐라 말을 하신다.

 그리곤 그 여자아이가 날 쳐다보더니 선생님에게 목례를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쪽을 바라보더니 말씀하신다.

 

 “일단 쟤 따라가, 다른건 있다가 따로 불러서 설명해줄게. 아, 이동수업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칠판 옆에보면 다 써져있으니까 그거 보고 찾아가면 되고 알았지? 어딘지 모르겠으면 얘한테 물어보면 되.”

 

 “네.”

 

 대답은 했지만 뭔가 저 아이가 믿음직 스럽지는 않다. 딱 보기만 해도 경혜가 선호하지 않는 유형이라는 냄새가 풀풀 풍겨온다. 물론 그 진실은 차차 알게 되겠지. 정말 기적적인 확률로 걷모습과 다르게 성격은 딴판인 아이들이 있기도 하니....

 그렇게 유인물을 들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여자아이의 뒤를 쭈뼛쭈뼛 따라가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는 위층으로 아니, 더 놈은 3층으로 올라가 어느 교실로 들어갔다.

 

 ‘2-1’

 

 그 여자아이의 반이자 경혜의 반이기도 한 곳이다. 여자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인물을 교탁위에 내려놓고 경혜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보니 들어오라는 듯한 눈빛이었으나 시끄러운 반 분위기와 새로운 공간이라는 낮선 풍경과 부담감이 경혜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여자아이는 그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바라본 그 아이의 표정은 동정인지 짜증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표정이었다. 단 한가지 정확한 것은 적어도 경혜를 멸시하거나 비웃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경혜는 선생님이 오실때까지 기다릴 심산으로 창문 난간에 기대었다. 옆반은 화분을 깔아놓았지만 이 반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업시간을 약 10가량 남겨둔 시점에도 복도는 여전히 뛰어노는 아이들로 붐볐다. 그중 경혜의 눈에 띄는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상당히 통통한 몸집과 안경을 쓰고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

 

 “어..?”

 

 순간 경혜의 머릿속이 그 어느때보다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경혜가 초등학교 시절 그 생지옥으로 이사를 가기 전에 저 여자아이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순간.

 

 “아!”

 

 여자아이의 정체는 다름아닌 초등학교 3학년때 경혜의 단짝이었던 해민이었다. 여러번 짝꿍이 되었고 그만큼 그들의 우정도 돈독했으나 4학년때 반이 갈라지면서 만날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다 5학년이 되면서 아예 경혜가 이사를 가버렸다. (지금까지 서술했던 생지옥, 양아치 소굴, 그곳이 맞다.) 그렇게 다시 그 아이를 만났다는 사실에 경혜는 갑자기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낮선 환경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구세주가 바로 저기있었다.

 그때 어느센가 선생님이 3층에 도착해 경혜에게 말했다.

 

 “왜 나와있어?”

 

 “네...? 아..”

 

 “빨리 들어가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 마자 거짓말처럼 수업시간 5분전을 알리는 예비종이 쳤다.

 이전 학교에서 예비종은 점심시간에만 쳤는데 여기는 조예시간에도 종이 울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복도에서 소란스럽게 난리를 치던 아이들도 하나 둘 씩 각자의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에 지휘봉이 교탁을 탁탁 치는 순간 아이들이 하나 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신의 자리로 옮겨갔다. 그 여자아이는 옮겨갈 것도 없이 그냥 자신의 자리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시연아! 일어나!”

 

 선생님이 소리치자 그 여자아이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일어났다.

 그리고 선생님이 경혜를 교탁 옆에 세우고 교실이 한층 조용해지자 잎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반에 새로 전학온 전학생입니다. 이름은 강경혜고 신탄진에서 살다 왔다고 하니까 적응 잘 할수있도록 이상한거 시키지 말고 잘 도와줄 수 있도록. 알았지?”

 

 “네~!!”

 

 아이들의 대답과 함께 남자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예쁘다!!”

 

 “존예다!!!”

 

 경혜의 외모가 꽤나 미형에 가까운 편이긴 하다만 반을 둘러보면 경혜를 넘어서는 미모의 여자아이들이 간간히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경혜를 보고 오두방정을 떠는지 경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창피해 이 자리를 뜨고 싶을 정도였다.

 

 “자리는..... 어 야 빈자리가 없나?”

 

 그때 한 학생이 말했다.

 

 “책상 가져올까요?”

 

 “그래 그럼. 경혜, 쟤랑 같이가서 책걸상 가지고 맨 뒤에 앉아. 혼자앉아도 괜찮겠어?”

 

 “네, 그게 더.... 좋아요..”

 

 선생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자아이의 안내하에 경혜가 빈 상담실로 들어섰다.

 

 “신탄진에서 왔다고?”

 

 “어, 원래는 여기가 내 고향이야. 초등학교도 여기서 다녔고.”

 

 “정말? 그럼 여기 아는 애들도 있겠네.”

 

 “응, 해민이.”

 

 “지해민?”

 

 “응.”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어떻게 책상을 들고 교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남자아이의 도움으로 책상을 맨 뒷자리에 옮겼다. 그제서야 아침부터 계속 걸치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차가운 책상과 의자의 촉감이 왠지모르게 긴장감을 더해준다. 그녀의 앞자리에는 경혜가 교무실에서 처음만난 그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모범생 포스를 풍기는 남자아이..

 

 “이번에 수학여행 참여 설문지야. 이거 종례시간까지 반장이 다 걷어서 가지고 있어. 뭐... 솔직히 가고싶은 애들은 없겠지? 이런 판국에.....”

 

 “네에.....”

 

 “그 외에 전달할건 없고... 1교시 뭐냐?”

 

 “한문이요.”

 

 “음..... 쌤 나가도 되지?”

 

 “네에!!!”

 

 아이들의 대답소리가 그 어느때보다도 크다.

 

 “아따 이것들 증말.... 알았어 이것들아.”

 

 그렇게 웃음소리가 남발하는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유유히 퇴장하셨고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하나 둘씩 경혜의 자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안녕!!”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경....경하?”

 

 경혜가 직접 입을 열어 정정해 주었다.

 

 “경혜야 강경혜.”

 

 “아~ 살짝 헷갈린다..”

 

 그때 경혜의 눈에 익숙한 그 얼굴이 보였다.

 

 “어?”

 

 “맞네! 나 기억나지?”

 

 해민이었다. 해민이 역시 경혜가 기억이 나는 눈치였다. 그런 해민이의 물음에 경혜가 여지없이 답하였다.

 

 “당연하지, 지해민 맞지?”

 

 “개오랜만이다!!”

 

 해민이의 포옹에 경혜도 해민이를 토닥여 주었다. 경혜의 인생에서 몇 안되는 진실된 친구중 한명이 바로 해민이었다.

 

 “응? 아는 사이야?”

 

 한 남자아이의 물음에 경혜가 답하였다.

 

 “응, 같은 초등학교 나왔거든. 나도 원래 여기 살았어.”

 

 “레알?”

 

 아이들이 은근히 숙덕대는 눈치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반장, 부반장 소개와 몇몇 아이들의 들어줄 가치도 없는 자뻑, 그리고 해민이의 근황이었다. 다행이 해민이는 경혜가 혐오하는 유형으로 물들지 않고 초등학교 시절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자라주었다. 그런 절친을 보는 경혜의 마음도 잠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하교시간이 되어 해민이와 함께 교문을 나섰다. 오늘 하루만 해도 초등학교 동창들 여럿과 마주쳤다. 좋은 기억을 남겨준 아이들은 물론...... 질이 안좋은 아이들까지... 그 아이들은 참으로 감사하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각 반을 군림하는 생 양아치가 되어 경혜 앞에 돌아와 주었다. 즉, 상대할 가치가 없음을 미리 예고해주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교문 밖에서는 어쩐일인지 그녀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머니셔?”

 

 “응, 부동산은 어디로 내팽계치고.... 나 가야겠다.”

 

 “오케, 올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걍해! 낼 봅세!!”

 

 “잘가, 해민아!”

 

 그렇게 해민이와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나이에 안맞게 저게 뭐 하는거람... 뭐, 멋은 있네.)

 

 경혜가 엄마에게 다가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부동산은 어디로 내팽계치고?”

 

 “한시간 닫는다고 집안이 붕괴되냐? 어차피 돌아오는 길도 모르면서.”

 

 “차도 안가지고 온거야?”

 

 “어차피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그냥 걸어가지 뭐.”

 

 그렇게 아이들이 북적이는 학교앞을 벗어나 신호등을 건너 한산한 골목으로 빠졌다.

 

 “학교는 어때?”

 

 “그래도 저번처럼 또라이는 없는 것 같더라. 왠만한 애들 다 정상이야.”

 

 “그래? 다행이네..”

 

 그 이후로 한동안 침묵이 흘럿다 두 사람의 어색한 신발소리만이 주변에 울려퍼질 뿐이었다. 오늘따라 그런 건지 늘 그런 것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보이는 경혜 학교의 교복을 입고 홀로 귀가하는 아이들 한둘 정도..? 덕분에 두 모녀의 어색함은 거의 극에 치닫을 정도였다. 아무 생각없이 휴대폰만 만져대는 경혜를 보자 그녀의 엄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직도 삐졌냐.”

 

 “아니.”

 

 “그런데 왜 이래.”

 

 “원래 이렇잖아.”

 

 “하~ 그래.. 원래 그렇지.....”

 

 직접 학교로 찾아온 엄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경혜의 싸늘한 반응은 여전했다. 결국 두 모녀의 사이는 단 한발짝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두운 밤이 흐르고 경혜는 잠자리에 들었다. 사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이다. 보통 인간이 꿈을 꾸게되면 자신이 원치않는 꿈들도 수없이 꾸어오게 되어있다. 바로 ‘악몽’이 그 때문에 생겨난다. 하지만 8살 이후부터 경혜는 그러한 악몽을 꾸지 않는다. 경혜의 꿈은 우리가 흔히 꾸는 그런 꿈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의 모험과도 같기 때문이다. 마치 멀쩡하게 깨어있는 듯 의식도 제대로 살아있고 모든 기억과 인식, 판단력 등등이 꿈을 꾸기전 현실세계의 모든 것과 동일하다. 그렇게 꾸게된 꿈들 단순히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는 펑범한 꿈이 아닌 경혜의 기억의 일부분으로 영원히 남게된다.

 쉽게 말하면 밤이 되면 그녀는 늘 미지로의 모험을 즐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고 보면 될 것이다. 루시드 드림의 일종이냐고? 비슷하다. 다만 루시드 드림처럼 모든 것이 경혜의 뜯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 꿈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의 뜯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현실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경혜를 괴롭게 하는 요소는 거의 없으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꿈속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대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몇초가 지났을까 대문이 열리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만개해 있는 정원이 경혜의 앞에 펼쳐지고 경혜가 그 정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꽃밭들 사이에 이어져 있는 길은 단순한 땅이 아닌 투명한 금강석이 구름다리의 유리마냥 얇게 펴져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화려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이 길은 저 멀리 아주 조그마하게 보이는 주택까지 이어져 있었다. 드디어 앞으로 나아갈수록 화려했던 꽃들은 서서히 줄어들고 잘 익은 벼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사했던 하늘도 어느덧 짙푸른 낮의 가을하늘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약 10분가량을 걸었을까. 그 주택에 도착했다. 주택 문을 두드린다.

 

 “오늘은 토끼가 문을 열어줄라나?”

 

 누군가 듣는다면 정말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토끼가 문을 열어? 무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하지만, 위에도 서술했다시피 이곳은 현실세계가 아니다. 무조건 경혜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질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는 있다. 물론 거대한 토끼가 문을 열어주는 것도.....

 

 “안녕? 소녀야!”

 

 거의 170CM는 되어 보이는 토끼 한 마리가 두 발로 서서 잠겨있던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 토끼야?”

 

 경혜는 익숙한 듯 토끼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마치 동화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줄 알았지만 정 반대였다. 현대인의 전원주택의 인테리어와 가구들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집 내부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동물들을 둘러보더니 경혜가 찾는 이는 없는 듯 하다. 경혜가 옆에있던 토끼에게 물어보았다.

 

 “베루마는 아직도 오른쪽 눈만 뜨고 있어?”

 

 “당연하지, 왼쪽눈을 뜨게되면 네가 가장 싫어하는 하늘이 밝아지고 말텐데. 베루마에게 안내해 줄까?”

 

 “그럼 나야 고맙지.”

 

 어디론가 자신을 안내하는 토끼를 따라 베루마라는 의문의 존재에게로 향했다.

 나무로 된 벽장문을 열어 재끼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앉아있었다.

 온 몸은 녹색 나뭇가지로 이루어져 있었고 코는 마녀처럼 오똑하게 솟아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코는 새의 둥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었다.

 그리고 토끼의 말대로 오른쪽 눈만을 뜨고 있었는데 흰자가 없는 그 눈은 밝은 주황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즉, 흰자는 존재하지 않고 검은 색이어야 할 눈동자가 주황빛을 띄고 있었다.

 ‘적안’ 이라고 하면 설명이 맞지 않을라나?

 경혜가 8살 때 처음 이 존재를 만났을 당시 경혜가 물었다.

 

 “넌 누구야?”

 

 이 존재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내게 지어준 이름은 베루마,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나’야. 어두운 하늘을 밝게 비춰주고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지, 마음을 가라앉혀 평안을 주고 수천만 종류의 꿈을 선물할 수도 있단다. ”

 

 “우와! 정말?!”

 

 “그럼, 네가 지금 꾸는 이 꿈과 현실에서 꾸는 꿈도 다 내가 선물해 준 것인걸.”

 

 “정말? 그럼 넌 꿈을 선물해 주면..... 넌 꿈을 못꾸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

 

 “꿈을 누군가에게 선물해 주면.... 네가 가지고 있는 꿈이 하나 둘 씩 줄어들 테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꿈은 없잖아.”

 

 “걱정하지마, 꿈은 어떤 물건처럼 그 양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이건 정말 비밀인데 말이야.”

 

 베루마가 마치 아이들끼리 정해놓은 일급비밀을 말해 주려는 듯이 어린 경혜의 귓가에 속삭였다.

 

 “누군가에게 그 꿈을 선물해준 날에는 말이지, 우리가 그 꿈과 같은 꿈을 꾼다.”

 

 “정말?”

 

 “신기하지?”

 

 “응!”

 

 그렇게 베루마와의 첫만남 이후로 베루마와 경혜는 이 꿈속 세계에서 그 누구도 부러워할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베루마는 꿈과 현실을 통틀어 경혜의 절친한 친구이다.

 그렇게 방 한켠에 앉아있는 베루마에게 다가갔다. 첫만남 때만해도 경혜와 같은 어린아이의 체격이었는데... 녀석도 어느덧 경혜와 비슷한 체격으로 훌쩍 자라버렸다. 아니, 경혜보다 살짝 큰 것 같기도 하다.

 

 “안녕, 베루마.”

 

 “경혜 왔구나.”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누는 도중에도 베루마는 절대로 왼쪽눈을 뜨지 않았다. 경혜와 베루마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그 나이 또래들과 비슷했지만 그 보다 더 순수하다고 할 수 있겠다. 꼬꼬마 동물 친구들과 함께 꽃밭을 가꾸어 나가거나 스마트폰으로 현실 세계의 미디어를 시청하거나.... 그 외에 이런저런 고민상담도 이어졌다. 도통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경혜가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던 것은 베루마는 마치 경혜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경혜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해민이에게 조차도 기대할 수 없을...... 진정한 친구였다.

 경혜가 베루마에게 물었다.

 

 “7년동안 한번도 물어보진 않았는데, 어째서 넌 한쪽눈만 뜨고 있는거야?”

 

 “밝음과 어두움을 제대로 구분하기 위해서야. 늘 밝아서도 안되고 늘 어두워서도 안되지, 그리고 밝음과 어둠이 항상 공존해서도 안되. 밝음과 어둠이 각각 허락된 시간, 이 둘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야. 만약 지금내가 왼쪽눈을 뜨게 된다면 그 무엇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어둠이 드러나 버릴 거야.”

 

 “그럼 지금은 밝음만이 허락된 시간이라는 거네.”

 

 “맞아.”

 

 “그런데 그 시간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거야? 누가 정해주는 거지?”

 

 “글쎄?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든 난 그저 알 수 있을 뿐이야. 어둠과 밝음의 경계를.... 분명 누군가가 내게 알려주기 때문에 나도 알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겠지,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베루마가 경혜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제는 왜 안왔어? 이런, 정말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던 모양이구나....”

 

 “맞아... 하지만 엄마는 단순한 거짓말로만 치부하고 내 말을 믿어주질 않으셔. 뭐 늘 그런 사람이었지만....”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한 것을 봤던 모양이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것 마저도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면 말이야.”

 

 “사실, 쉽게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맞아. 어떻게 보면 엄마말대로 피곤에 젖은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난 정말 보았는걸... 검은 형체.....”

 

 “모든 것이 새까만 형체였니.”

 

 “맞아.”

 

 그때 베루마가 경혜의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너의 건너편에서 넘어온 손님이 왔다간 모양이야. 급히 전할 메시지만 전해주고 재빨리 사라진거야.”

 

 “무슨 메시지를 전해주었다는 거야? 난 받은 게 없는데....”

 

 “아니, 분명 알고있어. 그것이 메시지라는 것을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할 뿐이야.”

 

 “그 이유는?”

 

 “글쎄, 분명한 것은 집배원은 너와 아주 먼 곳에 있지만 오는길은 너무나도 가깝단다. 그 존재도 아주 가깝지. 단, 네게 오는길이 너무 험난했던 것 뿐이야.”

 

 그때 베루마가 어두운 흰 빛을 띄우는 왼쪽눈을 슬며시 뜨며 말을 이어나갔다.

 

 “언젠가, 네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바뀌고 말거야. 정해진 모든 것은 파괴되고 삶의 주인이 모든 것을 다시 설계할 날이...... 머지않아 네게도 찾아올 거야....”

 

 그리고 방에 있던 모든 것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새카만 주변에 남은거라곤 베루마와 경혜 둘뿐이었다. 그리고 앉아 있던 베루마가 서서히 다리를 피고 일어서더니 그 역시 기체가 되어 소멸하기 시작했다.

 

 “베루마? 어디가는거야....?”

 

 “잠시 성장의 길로 가려는 거야.”

 

 ”성장의 길? 이렇게 갑자기 왜?“

 

 ”그 때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가게 되는거야. 성장의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는..... 두 눈을 동시에 뜰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 그때 다시 만나자구 친구여.“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베루마는 완전한 기체가 되어 사라졌고 경혜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홀로 남게 되었다.

 별빛하나 없는 절망적인 하늘과 모든 것이 죽어있는 땅은 현실세계의 경혜의 처지를 대변해 주기라도 하듯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꿈에서 깨야해...“

 

 모든 것이 사라진 허허벌판에 더 이상 있고싶지가 않았다. 경혜는 온몸을 꼬집고 눈을 수차례 감았다 떴지만 그녀는 여전히 꿈속이었다. 정말 이상할 노릇이었다. 적어도 이전에는 경혜가 원하면 언제든 꿈에서 깨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 이 느낌은 경혜가 마치 꿈속 세계의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그 의식을 지배당하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공간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거지...?”

 

 그리고 그때 먹구름과 어둠만이 가득한 하늘에서 엄청난 괴성이 터져나왔다. 영화속에서나 보던 드래곤 울음소리, 혹은 이모템의 절규 가득한 비명소리.... 어떤 특정한 존재의 비명이라고는 차마 설명이 불가능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비명... 놀란 경혜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삭막하기 짝이없는 하늘에서 여태껏 꾸지 못했던 악몽의 형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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