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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파혼의 전말
작가 : 미세스존
작품등록일 : 2020.8.22

"결혼이고 뭐고, 일주일만 만나보자."

결혼을 고작 두 달 앞둔 커리어 우먼 한미주.

평생 한 번 밖에 못 해본 연애가 아쉬워 결혼이 망설여지는 그때,

운명처럼 나타난 대학 동창 지현민.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변한 그를 보고

미주는 운명처럼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청첩장을 주던 날

늦은 저녁 술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간다.

호기심은 점점 커져 호감이 되어가고,

결혼을 앞둔 두 남녀는 원초적인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 앞에 솔직하지만 한없이 나약한 두 남녀는

결국 위험한 계약을 하게 되는데......

 
17. 폭풍전야(D-4)
작성일 : 20-09-26 21:07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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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민이 매거진 ‘슈슈’ 사무실에 도착한 건 오후 열 한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다.

 

 홀로 반짝이는 3층의 빛을 보고 현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미주를 상상하고 있었다.

 

 서둘러 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문을 열기 전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자마자 반긴 건 미주의 뒷모습이었다.

 

 책상 위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고 출근을 하지 않았지만 오피스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내 복장이라기엔 다소 민망한 짧은 스커트.

 

 현민은 미주가 의도한 어떠한 상황 속에 놓여있음을 직감했다.

 

 “나왔어.”

 

 창문에 반사된 미주의 눈과 마주치자 현민이 민망함에 괜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제야 미주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한 쪽 발은 의자에 다른 한 쪽은 비스듬히 바닥에 내려 놓는 미주의 몸짓은 절제되면서도 유려했다.

 

 많은 책상 중 그녀의 자리에만 컴퓨터가 켜져 있었는데 모니터에 반사된 불빛 때문에 미주의 허벅지 사이가 이따금 반짝였다.

 

 햇살에 반사된 물결처럼 금방이라도 찰랑찰랑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현민은 자기도 모르게 미주의 허벅지 사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고 그걸 노골적으로 봐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보는 거 아냐? 애타게 만지고 싶었구나?”

 

 수줍게 웃으며 미주는 보란 듯이 다리를 꼬고 현민에게 오라는 손가락질을 했다.

 

 사무실 스피커에선 낭만적인 밤에 어울리는 쿠바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민은 이미 육감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응. 완전…… 나 보여주려고 그렇게 입은 거잖아. 얼른 만지고 싶다.”

 

 미주의 도발에 현민도 대담하게 말하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두 사람은 살면서 이런 유의 말과 행동을 해본 적 없었지만 연극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거만할 정도로 자신 있게 다가오는 현민을 보며 미주는 시각적인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빼빼 마른 동식과는 다르게 다부진 몸을 보고 있으면 미주는 믿음직스럽다 못해 한없이 피학적이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불 끌까?”

 

 무릎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온 현민이 나지막이 물었다.

 

 손은 어느새 미주의 허벅지에 다가와 있었다.

 

 현민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살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오늘은 보면서 하고 싶어.”

 

 이번엔 미주가 도발적인 말투와 함께 셔츠를 풀기 시작했다.

 

 이젠 오히려 상황이 두 남녀를 압도하고 있었다.

 

 “나야 좋지.”

 

 현민은 옷을 벗으면서도 자꾸만 미주의 손에 시선을 뒀다.

 

 단추가 하나씩 풀어질 때마다 은근히 보이는 속옷과 살 그 풍성한 경계를 찬찬히 감상 중이었다.

 

 “속옷 예쁘다.”

 

 빨간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보며 현민이 넌지시 말했다.

 

 그건 현민의 오랜 성적 취향이기도 했다.

 

 “새로 샀는데. 왜? 이런 거 안 좋아해?”

 

 완전히 셔츠를 벗은 미주가 두 손으로 자신 있게 속옷을 위로 들었다 놨다 하며 물었다.

 

 “아니, 완전 좋지. 이제 못 참겠어.”

 

 현민에겐 분위기며 의상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졌다.

 

 저절로 감격스러운 얼굴로 미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랑해.”

 

 미주 역시 같은 상황 속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고 사랑한다는 말 이외엔 지금 감정을 대체 할 말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신호로 현민은 그 즉시 미주의 몸을 움켜쥐었고 곧 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거세게 휘어잡은 탓에 미주의 입에서 짧은 신음소리가 났고 그렇게 격렬한 사랑의 움직임들이 전개되었다.

 

 건물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폭풍우 같은 거센 활동에 사무실은 온통 소음으로 가득찼다.

 

 폭풍우가 지나간 건 단말마 같은 현민의 외마디 비명 직후였다.

 

 야합일지라도 기승전결은 분명했다.

 

 짧은 절정을 지나가자 그 자리엔 고요가 찾아왔다.

 

 “윽…… 운동 아무리 해도 허리 아픈적 없었는데. 부러질 것 같다. 최고야 진짜……”

 

 현민이 알몸 상태 그대로 미주 위로 엎어져 버렸다.

 

 한차례 밀물과 썰물이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게 널브러져 있었고 그것은 곧 둘이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증거가 돼주었다.

 

 여전히 숨이 가쁜지 미주가 눈을 뜨지도 못하고 현민에게 말했다.

 

 “난 그 소리가 제일 듣기 좋더라. 널 기쁘게 해줬다니까 다행이다.”

 

 뿌듯해하며 말하는 현민의 팔뚝은 그 어떤 운동을 했을 때보다 부풀어있었다.

 

 “뭐야, 그러면 넌 아직 만족하지 못했어? 어떻게, 한 번 더 따끔한 맛 보여줘?”

 

 어린아이처럼 현민이 벌떡 일어나 미주를 노려보았다.

 

 미주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참아야 했다.

 

 “하고 싶어도 바로는 못 할걸?”

 

 보란 듯이 더 약 올리는 미주였다.

 

 “맞아. 세상만사 다 허무해. 몸에서 너무 많은 게 빠져 나갔어. 영혼까지 빠져나간 기분이야.”

 

 “큭큭, 현자타임 온거야?”

 

 “방금 전까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것 같다고 할까? 다시 충전이 필요해.”

 

 “충전? 어떻게 해줄까? 한번 더?”

 

 셔츠를 입다 말고 미주가 장난을 쳤다.

 

 “잘못했어. 다신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나 봐라. 그냥 나 좀 봐봐. 잠시만 눈 마주치고 싶어.”

 

 뜬금없는 제안에 미주는 자세를 고쳐잡고 현민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현민과 미주는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현민은 모든 게 신기한 아이처럼 미주의 왼쪽 눈을 보다가 찬찬히 오른쪽을 보면서 눈빛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방의 눈에는 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었고 차마 꺼내지 못한 말들이 담겨있었지만 둘은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됐다. 충전 완료.”

 

 먼저 눈을 피한 건 현민 쪽이었다. 새삼 부끄러운지 옷을 챙겨 입고는 일어날 준비를 했다.

 

 “벌써 끝났어? 난 하루 종일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눈빛 맛집이더라 네 눈. 아니 그래서 허무함은 조금 가셨어?”

 

 “응. 이제 안 허무해. 확실히 알았거든.”

 

 “뭐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 말에 미주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미주가 감당하기엔 아직은 버거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부담의 종류가 아니었다.

 

 몸을 맡기고 싶은 강물을 만났지만 부득불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연어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 결혼하지 말까?”

 

 그리고 결국 미주는 꺼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거기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간 현민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서렸다.

 

 찰나였지만 미주는 현민의 불안정한 시선에서 복잡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또 오바했다. 미안. 안 그러기로 해놓고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미주도 아닌 척 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뭐?”

 

 “나도 결혼 안하고 싶다고. 그런데 알잖아. 우리 사이, 우리 상황, 우리에게 남은 시간……”

 

 자조적이면서 안타까운 현민의 말에 둘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대신 다다음 생애는 꼭 만나자.”

 

 일부러 현민은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다다음이야?”

 

 그렇지만 다다음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는지 미주의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

 

 “말해 뭐해? 다음 생은 당연한거잖아. 다다음 생엔 서로 바꿔서 만나보고 싶어서.”

 

 현민은 능청스럽게 대답했고 미주도 그 대답이 맘에 드는 눈치였다.

 

 “굳이 왜?”

 

 “여자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어서랄까?”

 

 “그럼 난 비추. 너 같은 남자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야. 그렇지 않고선 별로 만족도가 높지 않거든.”

 

 “그러니까 널 빨리 찾아서 만나야지.”

 

 “되게 멋진 말 고마워. 이제 그만 나갈까? 데려다 줄게.”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미주가 현민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뭘 데려다 줘. 남자인 내가 데려다줘야지.”

 

 “그런 대사 엄청 시대 착오 적인 말인거 알지? 너 차 놓고 왔잖아. 지하에 차 있어.”

 

 막내 동생을 대하듯 머리까지 쓰담으며 미주가 먼저 걸아나갔다.

 

 현민은 미주의 그런 작은 배려가 고맙고 멋져보였다.

 

 게다가 당차게 걷는 뒷모습을 보며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럼 다다 다음엔 안만나겠네?”

 

 “응?”

 

 차에 시동을 걸기 전 미주가 불현듯 현민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현민은 그런 질문 자체가 귀여워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땐 거짓말쟁이가 될게.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널 만나면 또 다음 생까지 만나겠다고 약속할거야.”

 

 예상치 못한 답변에 차에 시동을 걸던 미주가 잠시 멈칫했다.

 

 “그거 알아? 방금 그거 완벽한 말이었어.”

 

 나지막이 진심을 전한 현민을 보며 미주는 다시 한 번 입술과 입술로 사랑을 전달했다.

 

 “여기서 한 번 더 하고 갈까?”

 

 긴 입맞춤 뒤에 미주가 현민의 허벅지를 쓰담으며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여기서?”

 

 아찔한 제안에 현민이 당근을 잃어버린 토끼 눈이 되었다.

 

 그 모습조차 귀여운지 미주가 현민의 머리를 한 차례 더 쓰담았다.

 

 버석버석한 머리를 만지며 미주는 심지어 모성애 비슷한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이 오롯이 느끼고 있는 현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아찔한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 곧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자 일탈 충동이 온몸에서 일어났다.

 

 “농담이야. 경비 아저씨 올 수도 있어서 이제 얼른 가야돼.”

 

 그렇지만 아직 미주도 그 정도 욕망까지는 무리가 있었다.

 

 그냥 떠본 말에 현민이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자 오히려 나중에 한 번 더 물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넌 의심 안해?”

 

 문득 현실로 돌아온 현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결혼 상대방에 관한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운전대를 잡은 미주의 손이 멈칫거렸다.

 

 “뭐가?”

 

 “우리 사이……”

 

 “……동식 오빠는 절대 몰라. 그냥 자기 여자라는 확신이 있어서 꿈도 못꿀걸? 왜? 걱정돼?”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미주가 말했다.

 

 “난 요새 너랑 있으면 다른 세계에 있는 착각이 들어. 마치 같은 시간인데 다른 차원에 있는 평행세계처럼.”

 

 “근데?”

 

 “내가 안전하게 걸어온 선의 반대편엔 새롭고 가슴 설레는 일들로 가득한 세계야. 그런데 드라마에서처럼 평행세계를 넘나들 수 있지 않잖아. 그래서 두려워.”

 

 “뭐가?”

 

 길을 잃은 아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민을 보자 덩달아 미주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영영 못 돌아갈까봐……”

 

 “……괜찮아. 어느 세계에 있던, 그게 맞은편 평행선일지라도 난 항상 너를 기억하고 바라볼거야.”

 

 현실과 이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두 남녀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런데 그때 적막을 깨는 요란한 벨 소리가 들렸고 그건 현민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큰일났다.”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사색이 된 얼굴로 현민이 허둥지둥 거리기 시작했다

 

 “왜?”

 

 “영상통화왔어.”

 

 “누구한테?”

 

 “소희……”

 

 머리 안에 있는 구체적인 모든 것들이 일제히 부서져 하얗게 되어버렸다.

 

 영혼이 빠져나간 현민을 보며 미주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벨 소리는 좁은 차 안에서 요란히 울리고 있었고 이제 미주와 현민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말
 

 그러나 세상일이 항상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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