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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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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5 11:19     조회 : 451     추천 : 2     분량 : 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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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에게 돈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적반하장일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마지막 날이 되자 사장은 원래 미성년자를 고용하면 안 되는데 내 사정이 딱해 보여서 먹여주고 일자리를 줬다면서 내가 자기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입을 놀려댔다. 노동청 같은데 신고를 해서 받으면 된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당장 고시원비를 내야 했다. 그가 총무의 일을 도와주며 총무의 환심을 사고 있지만 총무도 고시원 사장한테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어떻게 하면 돈을 받아 낼 수 있을까. 피켓시위가 떠올랐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독서실로 출근해야 했다. 그럴 시간이 있다 한들 그렇게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끝내 돈은 못 받고 욕과 구박만 실컷 받아먹다가 마지막 퇴근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고시원 총무가 돈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12시 35분, 내가 신발을 신발장에 넣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연 총무는 내 표정만 보고도 돈을 받긴 글렀다는 걸 깨달았는지 돈 달라기를 포기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한숨을 푹 쉬며 “사장이 돈을 안 줘서요.” 했더니 총무는 나보다도 더 깊게 한숨을 쉬며 “돈 안 주는 데는 답 없지.” 했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총무한테 돈을 안 주는 건 나니까 괜히 찔려 가슴 한가운데가 쓰라려 왔다.

 

 그에겐 아무 말 안 하기로 수차례 약속을 받아냈건만 총무가 기어이 한 소리 했나 보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자 그가 옷까지 갈아입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만화방이냐? 가자.” 가타부타 설명해 봤자 나보다도 더 부아가 나 보이는 그가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앞장을 섰다. 그를 믿어서가 아니라 그나마 한 명의 지원군이 생겼다는 게 조금 기뻤다. 그동안 거짓말을 하느라 그와 대화도 몇 마디 못했는데 사장 욕이나 하며 수다라도 떨 수 있게 됐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한쪽 팔엔 깁스를 하고 다른 한쪽 팔론 목발을 짚고 다니는 그가 나보다 걸음이 훨씬 느리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 휘적휘적 걸었다. 뻔한 잔소리나 해댈 텐데 듣기가 싫었다. 모퉁이에 서서 그를 기다리다가 그가 가까이 오면 또 혼자 앞서 걸었다.

 

 만화방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한 달 내내 들어간 곳인데, 돈 받으러 들어가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나 먼저 들어가기가 어색하고 무서웠다. 그보다 그에게서 나는 땀내가 먼저 도착했다. 나 혼자면 일이 분도 안 걸릴 거리인데 그 덕에 십 분은 넘게 걸렸다. 고기 한번 제대로 못 먹는데 그의 다리가 평생 안 붙을까 봐 걱정이 됐다. 그가 목발 잡은 손으로 문을 열며 나한테 “넌 그만 가봐. 따라와 봤자 좋은 꼴 못 본다.” 했다. 뭔 소리래. 좋은 꼴만 보고 살기엔 이미 늦었거든. “싫어.”하며 그보다 먼저 쏙 들어가 버렸다. 나를 본 사장의 얼굴이 귀에서부터 점차 발그레 물들었다. 얼씨구. 누가 보면 나 좋아하는 줄 알겠네. 그는 대번 사장을 알아보고 사장이 닦고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자기를 소개했고 그런 그를 ‘절름발이 병신새끼’라고 부르며 큰소리를 치는 쪽은 오히려 사장이었다. 난 그 옆에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하니 있었다.

 

 자기가 불쌍한 애 밥 먹이고 숙제 봐주고 할 때 넌 그지같이 생긴 놈이 어디 처박혀있다가 돈 받을 때 돼서야 나타났느냐고 하는 사장을 한 대 칠 뻔했다. 그가 돌부처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는 꼴을 보자 속이 더 상했다. 제풀에 꺾인 사장이 돌아가라고 하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돈을 주셔야 가죠.” 목발에 턱을 괴고 죽치고 앉아있는 꼴이 정말 돈을 줄 때까지 안 돌아갈 모양이었다. 고작 이러려고 가자고 했어? 그라고 별수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옆에서 보니 더 한심해 보였다. 사장은 영업 방해로 신고하기 전에 나가라며 고함을 질렀고 그는 씩 웃기까지 하며 “가긴 어딜 가요. 거지라 갈 때도 없어요.” 했다.

 

 손님들이 카운터 앞에 줄을 서 있는데도 사장은 가만히 있는 그를 끌어내려 했고 그는 크게 용을 쓰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순간접착제라도 깔고 앉은 듯 의자와 떨어지지 않았다.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오기가 생겼는지 사장이 그를 의자 채로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의 노는 꼴이 보기 민망하여 순간 그냥 혼자 집에 갈까 생각도 했다. 얼핏 보기에도 사장은 헤비급 이상이고 그는 달고 있는 석고 붕대 무게를 합쳐도 라이트급이 안 되는데 꿈쩍도 안 하는 게 신기하다고 혼자 감탄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이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붕 떠오르는 그를 보고 손님들이 먼저 달려들어 말렸다. 난 전화기를 잡았다. 그가 맞으면 전화를 하고 그가 때리면 전화를 안 하려 했는데 그는 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때리면 니만 손해다.’하는 표정으로 여유 있게 사장을 쳐다봤다. 손님들이 그를 사장에게서 뜯어 놓았을 때도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장을 에워싼 손님들은 사장을 나무라고 욕했다. 박 사장 그렇게 안 봤는데 다시는 이 가게 안 온다며 엄포를 놓는 단골들도 보였다. 나도 겨우 입을 열었다. “삼십칠만 팔천 원 줘요.”

 

 고시원비 삼십만 원을 내고 남은 칠만 팔천 원은 그의 손에 쥐여줬더니 그가 깜짝 놀라며 돈을 뿌리쳤다. 나보고 쓰고 싶은데 쓰란다. 쓴웃음을 지으며 “뭘 쓰고 싶은데 써. 쫌 있으면 또 고시원비 내야 되는데.” 했더니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기가 무능해서 날 고생시킨다고 한탄하다가 이내 태도를 고쳐 다시는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다음 주부터 주유소에서 일을 할 거니까 난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아르바이트는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는 그에게 다시 칠만 팔천 원을 쥐여줬다. “주유소 알바도 최저 시급이잖아. 하루에 오백 시간씩 일해도 부자 못돼.” 그가 나에게 오만 원을 돌려줬고 내가 다시 삼만 원을 그에게 줌으로써 우리의 자산 분배는 끝이 났다.

 

 안 그래도 재바른 사람이 못 되는데 목발까지 짚고 일하다가 차에 치이기라도 할까 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는 쉽고 재밌다며 주유소 일이 좋다고 했다. 내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사실 차를 좋아했고 차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그의 트럭을 타고 어딜 갈라치면 그는 지나가는 스포츠카를 가리키며 “내 다음 차는 점마로 살끼다.” 했고 엄마는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고 그를 구박했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엄마가 부러워하는 지프차를 가리키며 “걱정 마래이. 닌 저걸로 사줄게.” 했다. “스포츠카는 둘이 밖에 못 타니까 니캉 내캉만 타고, 나린이랑 놀러 갈 때는 니가 찌프차 몰고.” 하면 엄마도 그들만의 놀이에 빠져 “내가 와 운전을 하노. 운전기사 하나 둘끼다.” 하며 둘이서 킥킥댔었다. 내가 자기들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고개를 도리 대는 줄도 모르고. 그는 차종, 연식, 변속기 할 것 없이 박식했었고 꼼꼼한 성격에 실수가 없어 사장의 신임을 받았다. 몇 개월이 지나자 ‘주임’으로 승진했다며 자랑을 했다. 나도 같이 기뻐하다가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맥이 빠졌다.

 

 일 노예와 성 노리개 역할에서 해방된 난 학교만 다니는 행복을 느꼈다. 학교만 다니니까 수업시간에 잠이 덜 왔다. 학교에서 조용히 자율학습을 하니 몸이 편했고, 마음이 편했고, 성적이 올랐다.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자 담임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고등학교에는 두 가지 서열이 있었다. 플래카드를 내걸만한 대학에 갈 놈과 거기 못들을 떨거지들. 떨거지들에서 벗어나자 담임이 모의고사 문제집 같은 걸 많이 챙겨줬다. 그러자 성적이 더 올랐다.

 

 고기반찬은 일 년에 다섯 번 이상 못 먹을 귀신에 씌었는지, 가난이란 지옥은 내가 아는 유일한 지옥을 탈출하는 법에 집중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자기보다 고작 두 살 많지만 ‘형님’으로 모시며 나한테도 ‘큰아버지’라고 부르라며 소개를 했던 주유소 사장은 우연히 목이 좋았던 주유소가 생각보다 수익을 많이 남기자 자신의 뛰어난 사업수완이 룸살롱도, 단란주점도, 핸드폰 부품 사업도 다 성공시킬 것이라 믿었다. 제2의 이건희가 될 거라던 큰아버지는 사업이 차례로 망하면서 사기죄와 횡령죄로 고소를 당했고 학교에 입학하셨다. 그나마 잘 되던 주유소도 땡전 한 푼 안 남기고 채권자 손에 넘어갔고 그의 꼴난 봉급이 나올 구멍은 없었다.

 

 그의 봉급이 안 나오자 고시원비를 낼 돈이 없었고 이번엔 총무도 형편을 봐줄 수 없었다. 고시원 사장이 친절하게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짐을 두고 나가거나 들고 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그가 책과 옷가지 몇 개가 들은 박스 위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찜질방을 갈까, 피시방을 갈까, 하다가 더 싼 피시방이 낙찰됐다. 숙제를 하러 몇 차례 간 적이 있어 안면을 튼 피시방 사장은 나와 그가 사정을 설명하자 구석의 조용하고 담배 연기가 덜한 자리를 제공해 줬다.

 

 노숙 엿새째에 새로이 배운 점은 사람들 앞에서 가려야 할 몸 부위와 씻지 않으면 냄새가 나는 부위는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일찍 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만 대충 비누로 감았더니 속옷을 갈아입어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코를 톡 쏘았다. 나한테서 나는 냄새에 내가 구역질을 할 수도,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피시방에 사람이 적은 새벽까지 기다리다가 화장실 문을 잠갔다. 그래도 행여나 누가 들어올라 마음이 쓰여 씻는 와중에도 계속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 세면대에 한쪽 다리를 올린 채 사타구니를 연거푸 씻어 내자 오취가 조금 가셨다. 브라를 살짝 들어 올려 겨드랑이, 젖무덤 사이도 씻어댔다.

 

 일주일을 넘게 앉아서 자니까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뼈 마디마디에서 뚝뚝 소리가 나고 입에선 “아구 죽겠다.” 소리가 나왔다. 컴퓨터가 느려지면 껐다가 다시 켜야 하듯이 사람 몸도 잠깐 죽여줬다 깨워줘야 할 부분이 있는데 앉아서 자면 그걸 못한다. 거의 새것이었던 내 몸이 결려왔으니 꼬이고 부러진 그의 몸은 더했을 거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교통사고 이후로 허리가 부쩍 안 좋아져 앉아있는 것도 서 있는 것도 고통인 기색이었다. 별수 없이 돈을 모아 방을 마련하기 전엔 피시방에서 자자는 결심을 깨고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찜질방에서 자며 허리도 지지고 홀딱 벗고 목욕도 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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