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빌붙어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는 겁쟁이다.
그런 인물이 권력자의 허락 없이 스스로 뭔가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령님. 도착했습니다.”
나름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 차량의 내부였지만 결국 최필도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진 못했다.
“내려!”
일부러 더욱 거칠게 우성과 팀원들을 다루는 그의 모습을 보였지만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최필도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다는 우성 일행이 가져 온 식량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이게 전부였나?”
직접 밖으로 나와 가져 온 식량을 확인하던 박찬수가 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다 가져오려면 아직 멀었지.”
이제 완전히 적이 되었기에 말투부터가 달라져 있는 우성이다.
“건방진 새끼. 말투가 달라졌군.”
“흥. 날 죽이려는 놈을 상관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래봐야 손해를 보는 건 결국 네놈과 일행들이다.”
“그러시던지.”
생각하지 못한 우성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 박찬수였지만 이내 관심을 끄고 최필도를 불렀다.
“가져 온 식량 정리하고 사무실로 와.”
“알겠습니다.”
“저놈들에게는 오늘부터 한 끼의 식사면 줘라.”
“예.”
다시 나머지 일행이 갇혀 있는 곳으로 오게 된 우성과 팀원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어려울 것도 없었고 위험한 상황도 없었다.”
“그래도요.”
“혹시 다음에 놈들에게 끌려가게 되면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도록 해.”
“준비요?”
“그래. 놈들의 목적은 부족한 식량을 구하는 것.”
그러니 원하는 식량을 구해주고 팀에 필요한 것들을 숨겨 놓는다.
좀비들이 숨겨 놓은 물건을 찾아 훼손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생존자들이 찾아 사용한다면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 이곳을 탈출해 첫 번째로 갈 곳은 역시 마트입니까?”
“아직 모른다. 다음으로 가는 곳이 거리가 가깝다면 그곳이 우선 되어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
“예?”
갑자기 자신들을 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우성의 모습에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살짝 당황했다.
“앞으로 끼니는 하루 한 끼 뿐이야.”
“푸학! 그게 뭘 미안한 일입니까?”
“잘 먹어야 힘을 쓰는데 미안하지.”
“됐습니다. 겨우 그딴 거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죠.”
“뭐 인마?”
식량을 가져 오기 위한 움직임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철저하게 인원을 나눠 하루 한 번씩만 움직였으며 다행히도 목적지는 첫날의 마트였었다.
“네놈이 계속 가겠다고?”
“그래. 환자를 보낼 수는 없잖아.”
“건방진 새끼! 그건 너 따위가 결정하는 게 아냐?”
“그래? 그럼 박찬수에게 물어볼까?”
“뭐?”
“네놈의 고집으로 환자가 나가 식량을 적게 가져오면 참 좋아하겠는데?”
“이익!”
최필도는 계속되는 우성의 도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쩌지 못했다.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니 우성의 말처럼 환자를 데리고 나갔다가 식량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허튼짓을 하다가 걸리면 그대로 사살하겠다.”
“흥. 겁쟁이 새끼!”
심리학을 공부한 적은 없었지만 우성은 철저하게 최필도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했다.
권력자에 빌붙어 있는 겁쟁이인 놈의 감정을 건드리는 건 쉬웠다.
“이동한다.”
항상 밖으로 나가는 병력의 숫자는 동일했다.
매번 좀비의 공격으로 병력을 잃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트 내부로 들어오지 않는 건 동일했다.
“병신 같은 새끼.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할까요?”
우성과 함께 물건을 정리하던 진아가 미소를 지었다.
“내버려둬라. 오히려 고마운 놈이다.”
“크크크. 그렇긴 하네요.”
“탈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죽여 버릴 놈이기도 하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일부러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팀원을 공격한 최필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건 모두가 동일했다.
“빠른 놈이 하는 거지. 그만 나가자.”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니 이들을 감시하는 병력들에게도 요령이 생긴 모양이다.
추가적인 좀비의 공격이 몇 차례 있었지만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져 온 식량의 양도 제법 많았기에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식량을 옮기는 작업이 열흘정도 되었을 때 탈출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쉽지만 우리의 장비와 장갑차는 버린다.”
“알겠습니다.”
“놈들이 식량을 옮길 때가 기회야. 틈을 놓치지 않고 감시하는 병력을 제압한 후 모두 탈출한다.”
“예.”
반항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병력들은 태범 팀의 감시를 소홀히 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다림은 얼마나 되어도 상관이 없다.
완벽한 기회를 파악해 원하는 목적을 이루면 될 뿐.
“들어가.”
식량을 가지고 돌아온 후 다수의 병력들이 그것을 창고로 옮기는 과정에서 감시의 인원이 크게 줄어들었다.
모두가 갇혀 있는 곳의 문이 열렸을 때 눈빛을 교환한 우성이 먼저 움직였다.
퍽. 퍼퍽!
갑작스러운 그의 공격에 당황한 병력들이 공격하려 했으니 소용없었다.
투걱. 우득. 우드득.
이미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충분히 계획했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수의 병력을 제압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털썩. 털썩. 털썩.
병력들의 제압이 끝난 후 우성은 그들이 가진 무기를 빼앗아 팀원들을 무장시켰다.
“준호의 안전을 최선으로 한다.”
“알겠습니다.”
“준호는 허튼짓 하지 말고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달려.”
“예.”
“가자.”
외부를 경계하는 병력들이 한심한 모습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좀비의 위협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놈들이 울타리를 뚫고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형식적인 감시만 이뤄지고 있을 뿐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덜컥. 덜컥.
손쉽게 경계병들을 제압한 후 한곳에 모인 이들이 소리 없이 시선을 교환한다.
그 후 우성과 철민은 오히려 안쪽으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기다렸다는 듯 울타리를 넘어 달렸다.
삐익!
뒤늦게 이들의 탈출을 알게 된 병력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하지만 그들은 건물을 빠져나오기 전 갑자기 터진 폭약으로 인해 황급히 물러서야 했다.
“가자.”
안전구역을 탈출하는 건 참 간단한 일이었다.
목숨을 걸고 그곳을 벗어나려는 이들에 비해 그들을 잡으려고 목숨을 건 병력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쏴. 쏴라. 놈들을 죽여!”
뒤늦게 도착한 최필도가 고함을 질렀으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팀 태범은 그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그곳에서 사라졌다.
“내가 직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