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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1] 조우(3)
작성일 : 20-09-24 15:22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8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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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단ㅡ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있다.

 내 홀올로 어디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김광균 시인, 와사등)

 

 #05

 밤의 종로, 그 뒷골목은 낮보다 분산하다.

 

 종각의 화신상회를 기점으로 대로변은 유명한 카페나 관공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빛은 서서히 노을과 함께 저문다.

 

 그리고 종로 대로를 따라 설치된 전기 가로등에서 불이 들어오면서 밤의 거리가 시작되었다.

 

 아직 가로등 불빛이 골목 사이사이까지는 위세를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음식점의 불빛, 늦게 까지 연 카페의 전구, 혹은 술집들의 네온사인들이 종로의 골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골목마다 조선인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종로의 밤, 요즘 잘나가는 술집이라면 네온사인은 필수였다.

 

 멕시코 다방이나 낙랑회관, 혹은 제비다방보다는 명성은 덜 했지만, 여기 YMCA회관 뒤쪽의 '더 블루'는 요새 경성의 핫 플레이스로써 자리잡고 있었다.

 

 요즘 잘나가는 젊은이들은 종로에서 그들의 하루를 시작했다.

 

 1. 화신에서 쇼핑

 2. 카페에서 클래식을 감상

 3. 단성사에서 영화

 

 그리고 이곳 '더 블루'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그들은 근처의 낙랑회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곳, 더 블루로 향했다. 한참 기다리는 줄은 8시나 되어야 줄어들었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찾아오셔도, 기다리는 시간은 똑같습니다."

 

 술집 마담은 기분이 좋은 하소연을 했다.

 

 요새 들어 일본의 억압정책이 유화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겉좋은 개소리인 것을 이 시대를 사는 조선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남촌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즉 밤의 종로는 이시대의 조선 젊은이들의 억압된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옵쇼! 종로의 푸른 밤, 더 블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문에 흰색 셔츠에 검은색 나비넥타이를 맨 남 점원이 서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더 블루에 온 손님들을 맞았다. 입구 옆에 한글로 더 블루라고 세로쓰기가 크게 되어 있어서,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인은 레이첼이란 영어 이름의 30대 젊은 여 사장이었다.

 

 더 블루는 1층의 근대식 시설로 이루어진 술집이었다.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썼다고 기사가 나온 덕분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술집 중간에 타일을 이용해서 만든 장식품이 눈에 뛰었다.

 

 7시경을 지난 모든 테이블은 술잔들이 오간다.

 

 “여 정종 좀 더 가지고 오오”

 

 구석에 위치한 한 테이블에서 종업원을 찾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40대 중년의 사내였다. 여 종업원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술병을 올려놓는다.

 

 사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그를 포함해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자, 날래 술잔들 채우시라우."

 

 그들 사이에서 이북 평안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방금 술을 주문한 중년의 사내 반대쪽에 앉은 민머리 선생, 그는 얼마 없는 옆머리를 긁적거렸다.

 

 모임의 사람들은 그 선생의 말에 따라 술잔을 채운다. 이제 시작된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다들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어이 독산(禿山), 그게 사실이야?”

 

 독산, 민둥산을 뜻하는 한자어로 사내의 별명이었다. 이제는 별명 자체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두고자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내래 대머리 아니라 말 안했네? 그거이... 에이 다시 시작해야갓구만."

 

 영 맛이 안산다는 듯, 술을 한잔 들이킨다.

 

 "1900년초에 조선인들 1000여명정도가 영국 상선을 탔던 일이 있엇서. 그들은 미리견(미국) 밑에 묵서가(멕시코)라는 나라로 갔댓어. 애니깽 농장으로 끌려가 제대로 된 사람 대우도 못 받고 지냈다고 하더라고.”

 

 독산의 빈 술잔이 다시 채워졌다. 정종의 끝맛이 왠지 씁쓸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 전에 조국으로 돌아왔다고 함네.”

 

 [노이만 등장. 48세. 유학파. 머리에 대한 이야기에 민감.]

 

 경성 그전에 한성, 이곳에서 자란 어떤 이들에게는 평안도 사람은 천치라는 말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 이북 양반은 여기 모임에서 노선생이라 불리며 모임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00년 초반, 이만은 미국 장로교회의 선교 사업 중 일환으로 평안도 출신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사내는 네브라스카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1920년대 상해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다.

 

 1. 상해: 지식인들의 대표적인 모임으로 유명한 원동위원부.

 2. 조선: 평양에서 지식인들의 모임으로 유명한 동우구락부.

 

 노이만의 과거 경력 때문인지 경성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는 이 모임의 지적 호기심에도 항상 영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분들이 돌아와서 어떻게 되었는가?”

 

 “소문에 말이야. 두창(痘瘡: 천연두)에 걸려 돌아오는 바람에, 격리 되어서 집단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함네. 그들의 피부에 수포자국이 가득하다고 하지 안갓어.”

 

 “두창? 마마말인가? 허허... 이렇게 안 된 일이 있을 수 있나. 겨우 조국에 돌아왔더니, 질병으로 인한 격리조치라니.”

 

 노이만의 말에 집중하는 것은 모임의 인물들만이 아니었다. 저기 노이만의 테이블과 떨어진 작은 테이블에 한 사내가 앉아 있다. 깊게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그 사내의 눈이 아무도 모르게 빛났다.

 

 두 테이블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그리고 손님들의 소리가 그 사이를 메꾸고 있었다. 그때문에 노선생 테이블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곰인가?”

 

 노이만, 그는 자신의 취기가 올랐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곰이라니... 헛것이 보인다는 듯 눈을 감았다 뜬다. 아닌가? 다시 보니 그 자리에는 덩치 큰 사내가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있다.

 

 “곰 같은 사내로군.”

 

 곰 같은 사내도 자신을 쳐다보는 노이만의 시선을 느꼈나 보다. 그는 모자를 더욱 눌러쓰며 삐루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조선 땅에 저렇게 큰 덩치의 사내도 있었군.’

 

 노이만은 작게 중얼거린다.

 

 “자 다들, 요새 경성에 돌고 있는 그 소문은 들어봤는가?”

 

 콜롬비아 레코드사의 유행가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중절모를 쓴 한 사내가 주제를 던져준다.

 

 그는 담배를 한번 맛있게 들이마시더니 그 연기를 이내 세상 달콤하게 뿜어냈다.

 

 “무슨 소문? 혹시 남촌의 괴짐승에 관한 소문 말입니까? 벌써 피해자가 3명이라면서요. 제가 다니는 경성제국대학에도 그 일 때문에 난리입니다. 의학 전문학교에서 해골이 하나 없어진 사건이 일어났다는데, 그것도 그 짐승의 소행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명동 쪽으로는 아예 당분간 걸음도 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만 해친다고 하지 않았나?”

 

 “들리는 이야기로는 생긴 것이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하더군. 다만 호랑이처럼 몸에 줄무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수많은 반점이 있다지. 그것이 조선 땅에 사는 짐승은 아닐 거라는 얘기가 있지.”

 

 “지리산 반달곰이라는 이야기는 뭔가?”

 

 “아예, 환상속의 동물 불가사리(不可殺伊)라고 하지 그래.”

 

 “종로 경찰서에서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조선인의 연쇄살인이라면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수사를 시작했다지.”

 

 노이만은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풍성한 가죽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가뿐하게 정종을 목에 넘긴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했다.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들었다.

 

 “내래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잇서. 죽은 일본인 두 명은 미쓰코시사, 그리고 한 명은 동아양행이라는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야. 그런데 그 동아양행도 말이야. 그거이 미쓰코시 자본이 들어간 회사라 안갓어.”

 

 노이만은 이 정보는 비밀이라면서 주의를 요구했다.

 

 “왜 하필 미쓰코시와 관계된 사람들만 죽었을까? 왜 일본인이냐..는 말이야. 내래 사건에 관심이 있어서리 그간 기사를 살펴보고 있었단 말이지. 범행 요일이나 그 간격에는 규칙성은 없지만, 범행 장소에는 규칙성을 발견했지. 본정 뒷골목, 조지아 백화점, 그리고 수표교."

 

 “그렇다면?”

 

 “마치 경로가 북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느낌이야. 그렇다면 다음 사건은 종로나 다른 북촌 어딘가 일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 안갓어.”

 

 노선생의 눈이 가게안을 흝고 구석으로 향했다. 다음 날이 주말이라 그런지 아직 많은 이들이 테이블을 지키고 있었다.

 

 아까 잠시 눈이 마주쳤던 곰 같던 사내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만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지만 생각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여종업원을 불러 술을 더 시켰다.

 

 모두들 소문의 잔상만 소득 없이 이야기 했다.

 

 어느덧 회중시계에 9시를 나타낸다. 노선생은 자리를 파하는 잔을 들자고 말한다.

 

 아쉽지만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났다. 모임의 테이블에는 2원이라는 거금이 남겨졌다. 팁을 마지막에 내려놓은 이는, 모임에서 가장 어린 경성제국대학생 이정재였다.

 

 여기 모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대단한 직책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조선의 흘러가는 이야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 정재는 모임에 되도록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민족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직 서툰 정재는, 이곳에서나마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민족 정체성에 대해 확립을 시켜나갔다.

 

 팁은 모임자리를 할 수 있게, 올 때 마다 자리를 만들어주는 마담에게 주는 작은 성의 표시였다.

 

 "다들 쌩큐 쌩큐! 항상 찾아줘서 고마워요."

 

 이정재가 술집을 나선다. 마담은 항상 영어로 말하고 그다음 조선어로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술집 앞에서는 노이만이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의 밤기온은 모두에게 시리다. 그런 노이만의 모습이 꼭 '골무'같다고 느끼는 정재였다. 술김에 장난을 쳐본다.

 

 “선생님, 그렇게 머리 뜨겁게 하시면 나던 머리도 안 날겁니다.”

 

 “예끼, 이놈이네 못하는 소리가 없구마이. 나랑 같이 선술집에 가서 한 잔 더 하고 가는거이 어떠네?”

 

 “네, 선생님.”

 

 #06

 조선의 밤거리는 이제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경제력이 있는 계층만이 풍요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변모했다.

 

 노이만, 물론 그의 한낱 월급쟁이 돈으로는 유흥을 즐길 수 있는 형편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새 미국 서적 몇 권을 번역해서 관공서에 넘기고 조금 여유가 생긴 터, 젊은 부르주아 계층에게도 술을 한잔 사줄 수 있는 배포가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거기에는 이 젊은 친구와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들은 더 블루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간판이 없는 선술집으로 이동했다. 어딜가나 손님들로 북적 거릴 시간이었다. 기본안주로 받은 콩 까먹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거, 콩 까는 소리 좀 안 들리게 할 수 없네?”

 

 “어, 노선생님 오셨소? 아따 내가 무슨 힘이 있간디. 다들 돈 없는 양반들이라 모이면 맨날 안주로 기본만 찾아 쌌는디.”

 

 선술집 주인이 웃으며 노이만을 맞는다.

 

 노이만은 털모자를 벗어서 옆에 위치한 나무 의자에 올려놓았다. 무게도 없는 것을 잠깐 올렸을 뿐인데, 의자는 무너질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내래, 이거 즈번에도 고치라 말 안했네? 여기 양꼬치랑 술 좀 가져오라.”

 

 노이만과 이정재는 서로의 안부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들은 선술집 주인이 내온 술을 금방 들이켰다. 이만은 이제 눈 앞의 젊은 사내에게 따로 부른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내래 아까 경성의 괴 소문 이야기하면서, 미쓰코시사 언급 한거이 니 기억나네?”

 

 “네, 연쇄살인 사건이 미쓰코시랑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까는 내래 말을 좀 아꼈는데 말이야.. 음.”

 

 이만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정재는 긴장감을 느꼈다.

 

 “이번에 미국 문서를 좀 번역해서 경성 주식회사에 갔다가 주지 안앗갓어. 경성 주식회사하믄 그래도 힘이 좀 있는 애미나이들이 일하는 곳 아니네.”

 

 “네, 선생님.”

 

 “거기 가면 말이야, 조선에 있는 회사들에 관련된 정보가 다 문서화 되어있어. 내래 시간도 남고해서 잠깐 살펴보는 중에 말이야. 미쓰코시사랑 연관된 문서가 있어서리 유심히 봤지. 미제 자동차 수입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는데, 뭐 그거야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그거이 말이야... 종이 뒤편에 낯익은 이름이 있지 안갓어. ㈜동아양행이라는 회사의 이름이었지.”

 

 정재는 이제 이만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 진다. 일단 자신의 술잔을 넘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알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때 191X년 한창 회사령이라고 해서리, 돈이 될 만한 회사들은 다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놓은 적이 있어. 그리고 대내외 선전용으로 신문에 매일 관련된 기사들이 도배가 되었지.”

 

 “저도 얼핏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좋은 홍보 효과를 줄 수 있었던 시기에, 미쓰코시 자본으로 만든 동아양행이라는 회사만 신문에 나오지 않았간. 비단 신문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때 미쓰코시사에서 분식 회계를 위해 만든 가짜 회사라는 소문만 무성했어.”

 

 “그런데요?”

 

 “근데 말이야, 내래 본 서류에는 멕시코와 주류를 거래한 장부들은 다 동아양행 앞으로 되어 있지 안갓어. 시기가 190X년도에 시작. 그리고 주류 무역이 끝난거이 193X년도. 동아양행과 합작하던 영국회사가 브리테인 스팀쉽 컴파니(Britain Steamship Company)라는 화물 선박회사야. 아까 내가 애니깽에 대해서 말했던 거 기억나네? 이 선박회사가 1905년 당시에 조선인들의 멕시코 이민을 도왔던 선박인 일포드호(San Ilford)를 소유한 회사이기도 함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애니깽들을 태우고 멕시코로 간 선박 회사가 동아양행 그리고 미쓰코시사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네요.”

 

 노선생은 고개를 차분히 끄덕이며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양행의 서류 한편에 주류무역을 시작할 때 책임자들의 성함이 적혀 있었어. '이기철', 자네 아버지 성함이지. 그리고 또 한명의 이름이..."

 

 정재는 술 때문인가, 자신의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준마이 다이긴조(純米大吟醸), 이번에 세 번째로 살해 당한 일본인의 이름이지.”

 

 우연일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는 연관이 없지 않은가. 정재는 애써 표정을 밝게 짓는다.

 

 “그래서, 내래 이 사건이 미쓰코시 상사... 좀 더 나아가서 지금은 이름만 남은 동아양행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 사건이 '멕시코에서 돌아온 애니깽들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불길한 느낌도 들어."

 

 정재가 정리한 노이만의 말은 다음과 같다.

 

 1. 미쓰코시사에서는 많은 자본을 출하해 동아양행을 만들었다.

 2. 미쓰코시사와 멕시코간의 주류무역에는 동아양행이 중심역할을 했다.

 3. 주류무역의 관리자에는 자신의 아버지 '이기철'과 일본인 연쇄살인 사건의 세 번째 피해자인 '준마이 다이긴조'가 있었다.

 4. 주류무역을 위해 합작한 영국 선박회사는 1905년 멕시코 이민을 도운 일포드(San Ilford)를 소유하고 있다.

 

 노이만은 다음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 근거는 일단 동아양행은 미쓰코시사의 자회사로 봐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미쓰코시사에 근무했던 앞선 두사람이 죽은 것이나, 동아양행에서 근무했던 일본인이 죽은 것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요. 아버지가 한때 미쓰코시에서 일하신 것은 맞습니다... 허나, 동아양행이라는 곳은 선생님께 처음 듣습니다. 그곳에서도 일하셨다니...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군요.”

 

 “그렇네?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 내래 자네 아버님 조심하시라는 차원에서 말한거이까네, 조심하라고는 꼭 전해 드리라우. 대상이 일본인들이라니까네 별 문제가 있갓나 싶다만.”

 

 “뭐든지 조심해야 되는 시대 아니겠습니까?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님께는 제가 꼭 조심하라고 전해드리겠습니다..”

 

 서로의 잔에 시간을 조금씩 더 담아서 비운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선생은 값을 지불하려 선술집 주인을 부른다. 주머니 안을 쳐다보는 사내, 옳거니! 어제 꼬불쳐둔 둔 1원 정도의 동전이 더 보였다.

 

 “혹시 종로 경찰서에서 뭐 들은 거 있으면 잊지 말고 기억해 두라. 나중에 값 치르고 이야기 좀 듣갓소.”

 

 선술집 주인 손에 20전 정도를 더 쥐어준다. 아주머니는 한 번쯤 받지 않겠다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사내의 손에 든 20전이 사라졌다.

 

 “나 같은 여편네가 뭘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소. 기억해 둘랑게. 잘 가시오.”

 

 선술집 앞, 노선생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피 꺼내더니 입에 문다. 담배 포갑지에는 영어이름인 'MAPLE' 그리고 한글로 '풍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이 그나마 싸지 않네. 너도 한 대 피우라.”

 

 이정재의 입가에는 멋쩍게 주름이 지어졌다. 사내는 이내 거절하지 않고 이만이 주는 담배를 받았다.

 

 “제가 담배 피는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손끝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한다야. 그건 어떤 좋은 냄새도 못 없애는 법이간.”

 

 바람이 아직 차다.

 

 담배 끝에서 나온 연기는 곧 종로의 시린 밤 공기를 따라 골목길로 흩어진다.

 

 그 연기의 방향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종로의 밤은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내뿜는 조선인들의 애환의 향과 함께 깊어 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1.지명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남촌과 북촌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종로와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과 남쪽을 나눈데서 유래했습니다.

 (2) 1930년대 경성은 을지로를 기준으로 북쪽엔 조선인, 남쪽에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 했습니다.

 (3)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북촌: 종로, 가희동, 삼청동 : 남촌: 충무로, 을지로, 명동.

 2. 일포드호(San Ilford): 1905년에 한인들이 멕시코로 이민갈 때 타고 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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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 20-09-24 15:26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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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301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9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91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9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90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94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32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8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92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21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8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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