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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0] 영의 기록
작성일 : 20-09-24 15:16     조회 : 467     추천 : 0     분량 :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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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기억 못하겠지만 너는 그 날 나를 보고 있었단다.”

 

 소년이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 마태오 신부는 방금 기도를 마친 후였다.

 

 마태오 신부는 항상 기도를 마치고 나면, 구부렸던 등을 피면서 허리가 아프다고 유난을 떨었다. 소년은 그런 마태오 신부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주님께서 너를 내게 처음 보내 주신 날이 생각났단다. 내가 조선에 돌아와 경성에 처음 도착한 그날도 오늘처럼 진눈깨비가 내렸지.”

 

 기억잃은 소년과 방황하는 사제의 만남을 기록한 동화같은 이야기, 자신의 기억에는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치 꺼져 있었던 전원을 이 마태오 신부가 켠 것처럼, 소년의 기억은 그와 만나고 난 후의 기억부터 존재했다.

 

 “예. 신부님이 러시아 미술관에서 나왔을 때, 반대편 골목에 앉아 있던 저를 보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진눈깨비 내리는 본정(本町: 충무로)거리를 걷고 있었어. 그때의 난, 돌아온 조선에서의 계획에 대해서 아직 갈피도 못 잡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고 있었단다.”

 

 10년 전, 그렇게 이 마태오 신부는 소년을 만났다고 했다.

 

 1920년대 중반, 외국에 온 듯 낯선 이질감이 가득했던 본정의 번화가 거리. 다섯 살의 어린 소년이 골목의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번잡한 번화가에서 누구의 이목도 끌지 않는 아이였다. 마치, 현세의 시간에서 소년만 동떨어져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아무런 말도 않고 멍하니 반대쪽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마태오 신부에게 간단하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이 다였다.

 

 마태오 신부는 소년이 자신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를 금세 알아차렸다. 그의 눈 때문이다.

 

 관상에서도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눈으로 친다. 흰자와 검은 눈동자가 잘 조화를 이루며, 자신이 주시하고 있는 사물을 똑바로 바라보는 진중함을 가진 눈.

 

 소년의 눈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담겨있는 듯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했다. 어찌 저렇게도 잔파도 없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눈 전체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황색의 빛으로 주변이 물들어 갔다고 말한들 누가 믿기나 할까?

 

 그날 자신의 기억은 다른 이들에게 영원히 함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 마태오 신부였다. 이윽고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뱉은 말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팔괘(八卦)가 소멸하기 전에 나를 찾아야 할 텐데...”

 

 소년의 눈동자는 흔들리는 법이 없었고 그 눈은 일관되게 편안함과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마태오 신부는 아이의 이름과 주소를 물었다. 어느덧 자신도 이 공간에 동화된 듯, 아무도 둘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 어느새 사내도 소년의 반대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는 소년의 눈만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토록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에 앉아 있어 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에 빠질 때쯤, 소년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런 그의 모습에도 아무 걱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소년이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어서였을까? 소년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기로 한다.

 

 그렇게 소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소년의 기억에 보이는 것은 오래된 기록들이다. 낡은 종이 위에 적혀있던 글자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종이 위를 꿈틀거린다. 선의 생명감이 살아난다. 그것들은 이제 종이를 배경삼아 헤엄치다 서로 서로 뭉치기 시작한다. 글자 하나 하나가 합쳐지면서 그것은 큰 그림이 되고 곧 살아있는 영상이 되었다.

 

 인간의 역사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은 존재했다.

 

 그들은 자연스레 시간의 물밑에서 뭍으로 올라왔다. 고대 문화(文化)시대를 걸쳐서 문명(文明)시대에 이르는 오랜 시간, 역사의 어느 장에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사람이었다가, 불이었다가, 물이었다가, 땅이었다가, 땅에서 생성된 어떠한 에너지였다가, 다시 형체가 존재하는 어떠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에너지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나누어서 몇몇을 동쪽으로 보내었다. 지금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란과 파키스탄을 지나, 히말라야 산을 거쳐서 중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들은 황하 문명(黃河文明)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시기 황하 문명과 함께 아시아에서는 작게는 여러 부족문화가 그 시작의 씨앗을 틔우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의 한반도 북쪽, 만주지역에서 시작한 홍산 문화(紅山文化)였다.

 

 그들은 [의식]의 형태로 계속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그 [태초의 의식]들은 인간의 무의식의 구조에 관여하여, 인간들 스스로 무의식에서 의식을 나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남은 무의식에 스며들어가, 인간의 의식에 관여하여 지금의 역사시대를 이루어내는데 공헌하였다.

 

 인간의 의식이 스스로 자리 잡는 동안, 그것에 대한 반발력으로 무의식에서는 자연스럽게 금기(禁忌)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들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염려한 태초의 의식들은 스스로 형태를 만들어 내어 금기들을 자신들의 몸에 가두었다.

 

 그들은 형태를 가진 자신들에게 스스로 호문클루스(Homunculus)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시간의 축 뒤로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추었다.

 

 현재 전 세계의 민족이 모두 다르게 기억하지만, 역사시대가 있기 전 인류의 존망(存亡)을 결정지었던 [대홍수: Déluge]가 있었다.

 

 오직 인류의 10%만이 생존했던 대재앙.

 

 그 이후, 호문클루스는 어쩔 수 없이 문명을 다시 잉태하기 위해서 스스로 몸에 가두었던 금기들까지 사용하여 씨앗을 만들었다.

 

 이미 금기들은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된지 오래였기에, 그것들의 영향이 씨앗에게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류 중 그 영향으로 나누어 놓았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진 인간들'이 있었다.

 

 그들 중, 시간의 축에서 잠시 나와 있던 자신들에게 말을 걸었던 이들이 존재 했다. 호문클루스는 이에 놀라워하며 그들에게 이름을 선물하였다.

 

 그들은 역사에 노아(Noah), 남무(Nammu), 복희(伏羲), 그리고 여와(女渦)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이들은 역사시대가 시작되면서 스스로 호문클루스와 인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역사의 첫 장에 기록된 노아(Noah)는 신농(神農)과 더불어 무엇을 태어나게 하고 성장을 돕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노아는 서쪽에서 그리고 신농은 동쪽에서 그 씨앗들을 사용한다. 그 경계는 히말라야 산이었다. 그들은 씨앗들을 이용하여 다시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여기서 신농에게 전해지는 전설을 엿보도록 하자.

 

 "신농은 인류에게 농사를 가르쳐 주었고, 그때 하늘에서 수많은 씨앗이 떨어져 밭에다 심어졌다."

 

 노아는 씨앗을 이용하여 최초의 의식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나누게 된다. 그에게 내려오는 전설은 이러하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세기 10:1),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창세기 10:5)"

 

 금기들의 영향이 이미 스며든 씨앗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처럼 씨앗들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금기는 인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호문클루스는 인간들에게 퍼진 금기를 통한 혼란을 우려했다. 고민 끝에 인간의 의식을 다시 나누어 그들에게 [죄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최초의 인류들은 십계명이나 8조법 등의 기본 장치를 만들어 내어 금기가 인류의 의식을 완전히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던 호문클루스는 몇 천 년이 지나면서 그들이 태초에 자리를 잡았던 그곳과 완전히 동화하였다.

 

 남은 씨앗들은 혹시나 미래에 있을 대홍수와 같은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 남겨두게 된다. 그리고 호문클루스는 서쪽의 노아일족과 동쪽 최초의 인류들에게 씨앗에 대한 의무를 맡긴다.

 

 1.노아는 예전에 자신이 나누었던 샘, 야벳, 그리고 함을 다시 불러 그들의 '직계 자손들'에게 노아의 자아(ego)를 물려주게 하여 자신의 의무를 이어나가게 하였다.

 

 2.신농은 친구였던 여와와 함께 씨앗을 이용하여 [다섯 본질들]을 만들고 그 의지를 먼 미래까지 이어지게 하였다. 이 다섯 본질들은 때로는 짐승의 모습으로, 때로는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그 의무를 다하였다.

 

 최초 이름을 부여받은 초 인류들 또한 문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어느 날 자연스레, 원래 그랬던 것처럼 시간의 뭍에서 물밑으로 사라졌다.

 

 &

 

 서쪽의 노아는 자신이 나눈 최초의 세 자아(Ego), 셈(Shem)과 야벳(Japheth), 그리고 함(Ham)를 통해 창조주의 뜻대로 자손을 널리 퍼트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 멀리 떠나 다양한 민족들의 조상들이 되었다.

 

 노아 일족은 문명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몇 가지 장치를 하게 된다.

 

 1. 호문클루스와 최초의 인간들을 서서히 잊을 수 있도록 민족들에게 각자 다른 언어를 주었다.

 

 -> 결국 그들의 이름들은 민족들에 따라 다르게 불리게 되었다. 그 기록들은 변질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초의 이름들은 사라졌다.

 

 2. 아주 천천히 진보에 대한 거부감이 없도록 문명의 촉진을 위해 심어 놓았던 태초의 씨앗들을 거두었다.

 

 -> 의식과 죄의식을 나눈 탓에 인간의 무의식은 한계를 갖게 된다. 이는 결국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로 이어졌다. 문명의 발전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예견케 하였다.

 

 동쪽의 신농(神農), 복희(伏羲), 그리고 여와(女渦)는 아직 여물지 않은 문명에 혼란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뿌려 놓았던 씨앗들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신농, 모든 것을 파괴하는 능력을 가진 여와, 그리고 복희는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능력을 가졌다.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이용하여 적절하게 문명에 개입한다.

 

 여러 민족 간의 화합을 도우거나 때로는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인위적인 힘을 가하자 오히려 반작용으로 인간은 문명의 발전에 스스로 노력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을 사랑한 복희'는 문명에 더 이상 자신들이 개입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줄 것임을 깨달았다.

 

 복희는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다. 그리고 '최초의 본질'이었던 마고(麻姑)와 함께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 세상에 대한 씨앗들의 영향력을 사라지게 하였다.

 

 복희와 마고는 자신들의 의무를 다한 후 스스로 신농과 여와의 앞에 나타났다.

 

 화가 난 그들은 복희를 영원한 잠에 들게 하였고, 마고를 인간의 육체에 넣어 영원히 삶의 순환 속에 살아가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미 씨앗의 영향력이 사라진 세상이었다.

 

 결국 신농과 여와는 자신들이 만든 다른 본질들을 이용해 스스로 인간들을 통제하려 하였다. 그들은 민족의 수와 언어 그리고 문명의 전파를 조절하였다. 인간들은 이들을 선인이나 영물이라는 이름으로 받들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씨앗의 영향으로 민족의 수가 늘어났고 언어의 수도 더 많아졌다.

 

 복희는 씨앗의 영향력이 사라지기 전에 '자연계와 인간계의 본질'을 자신의 팔괘(八卦])안에 남겨놓았다. 그 영향으로 서로의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일이 덜했고 많은 변화 없이 진보를 이루어 가며 살 수 있었다.

 

 상고시대를 거쳐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 그리고 단군조선으로 시간은 흘러갔다. 인간의 문명은 혼란기를 거쳐 안정기로 가고 있었다.

 

 시간의 축을 형성하던 신농과 여와는 완전히 인간의 시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영원한 잠에 들었던 복희는 그들의 영향력이 약해짐에 따라 '팔괘의 힘'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달칵"

 

 영상 필름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종료를 알렸다. 곧 카메라의 줌 아웃(Zoom out) 버튼이 눌러진 듯 영상의 인물들과 멀어져 갔다. 필름의 끝에 자연발화된 것처럼 불이 붙어버리고 이내 타버려 재가 되어 버린다. 잿가루는 어느 새 바람을 만나 공기중으로 날아간다. 그것은 '아아' 이제 먼지가 되어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소년은 눈을 떴다.

 

 ‘이것 봐. 내가 금방 눈 뜰 것 같다고 했잖아.’

 

 마태오 신부는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정신이 좀 드니?”

 

 신부가 소년의 손을 꽉 쥐었던 모양이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서 표정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아니다. 분명 이 얼굴은 아프다기보다 무엇인가 궁금해 하는 얼굴이다.

 

 “여... 여기가 어디죠? 저는 왜 여기에 있나요?”

 

 무엇인가 벌어 진건가? 소년은 갑자기 기억상실증의 소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야 다섯 살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마태오 신부는 오히려 안심하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소년의 눈 주변을 감싸던 황색의 빛도 사라졌다. 그러나 눈의 총명함은 잃지 않았다.

 

 마태오 신부는 그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랑 함께 가자. 내가 너의 가족이 되어 줄 테니.”

 

 소년은 그제야 웃는다. 그날, 보이는 것이 다인 공간에서 보이지 않던 감정선은 얼어 있던 소년의 시간 흐름을 깨우기 시작했다.

 

 #02

 조선왕조의 몰락기에 노예 이민이 존재했다.

 

 그들은 바로 사기를 당해 멕시코로 노예 이민을 떠난 조선인들이었다.

 

 1905년, 영국 화물선 일포드 호를 타고 조선인 1000여명이 멕시코 유칸다 반도에 도착했다.

 

 그들은 조선의 시골 돼지우리 같은 숙소에서 머물며, 밧줄과 카펫트의 원료인 애니깽(Henequen)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했다.

 

 매일매일 조선인의 한이 멕시코의 오지 메리다(Merida)에 상여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4년의 계약기간을 채운 조선인들에게 들려 온 것은, 나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돌아갈 곳을 잃은 그들에게 일방적인 계약연장이 들려왔고, 다시 강제노역은 시작되었다.

 

 1920년이 지나서야 종료된 노예계약, 이제 갈 곳을 잃은 그들에게 남은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한 생명이 태어났다. 애환이 서린 애니깽 공장을 뒤로 하고 가족은 생존을 위해 멕시코시티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멕시코 내부의 혁명과 전쟁에 휘말렸고, 어린 소년의 부모는 결국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

 

 소년은 부모의 겉옷 안에서 멕시코 이민 카드와 낡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멕시코 이민 카드의 구석부분에는 [국적: 일본, 모국어: 일본어]라고 되어 있었다. 휴지 조각보다 못한 종이에 글씨가 휘갈겨진 노동 계약서에는 그것을 보증한다던 나라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비가 내린다. 이제 젖어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이민 카드와 종이 계약서, 소년은 그것들을 자신의 손에 꽉 움켜쥐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에 소년은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처절한 울음소리는 계속 되는 비에 묻혀서, 다행히 다른 이에게는 소년의 감정이 닿지 않았다.

 

 1930년 어느 날 조선에서 이민자들의 귀환을 요청하는 전보가 왔다.

 

 흘러버린 긴 시간도 어른이 된 소년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지 못했다.

 

 부모의 한을 반석삼아 목적을 세운 그는 잘 다듬어진 자신의 복수가 오히려 기다려졌다.

 

 나는 이번에는 가지 않을 테다. 하지만 복수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생에 가장 성스럽고 바람직한 행위가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끔찍한 경험이 될 것이다.

 

 내 약속한다.

 

 내 자존심의 끝에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그들의 목을 치며 그 끝에 서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1. 팔괘: 중국 상고 시대에 복희씨가 지었다는 여덟 가지의 괘

 2. 최초의 인간 이름들은 성경, 수메르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그리고 동양 신화에서 왔습니다.

 3. 판도라의 상자: 재난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쓰이며, 알면 위험해질 수 있는 비밀 등을 이르는 말

 4. 애니깽: 1900년대 초 멕시코의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간 조선인 노동자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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