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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하늘을 등지고
작가 : 사평
작품등록일 : 2020.9.24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오고가는 서신. 이 물건 하나 탓에 우리의 인생이 전부 망할 지경이다. 우린 그저 시키는 대로 전해주었을 뿐인데.

그래서, 그렇다... 우리는 도망쳤다. 심지어 그 서신을 들고.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할 말이 많지만, 우선 우리가 왜 한 나라의 성문을 작살냈는지부터 말해줘야겠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이것으로 귀결된다.

그들은 하늘을 등졌으니.

 
Episode3 _ 선전포고
작성일 : 20-09-24 08:15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7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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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이라고 주장하는 뭔가를 받도록 강요하는 왕눈이 괴물, 이를 거절하는 하온과 그의 일행.

 

 서로 간의 실랑이로 하루가 금세 지나고 어느덧 밤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할 때였다.

 

 사람이 아닌 다른 둘의 경우, 왕눈이 괴물은 잠은 자지 않았으나 하온의 침낭에 쏙 들어가 호주머니에 창인지 뭔지를 쑤셔넣고 있었다. 징하다.

 

 돌가죽인 사루비는 모두가 잠든 순간에도 눈을 시퍼렇게 떠선 보초를 서고 있었다. 돌가죽이란 종족은 잠을 잘 필요가 없는 특이한 족속이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감시원이 있다.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서.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눈에 무언가가 비췄다. 숲 속에서 조그맣게 움직이는 한가지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을 따르던 동공이 곧 무언가를 포착한 즉시, 감시원은 그대로 그들 곁을 떠났다.

 

 감시를 중단하고, 자신이 본 것을 나라님께 보고하기 위해 빠르게 귀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다음 날의 아침이 밝아왔고, 전령 일행은 다시 이웃나라 투르나를 향해 길을 나섰다.

 

 그동안 사라는 어느새 은근슬쩍 동행인이 된 왕눈이 괴물을 쭉 관찰하고 있었다.

 

 워낙에 특이한 인간상… 아니 괴물상인지라 조금의 연구만으로 꽤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우선 몸에서 가시가 나온다. 화가 나거나 몸을 방어하고 싶을 때 꽤 길쭉한 가시를 여러 개 뽑아낸다.

 

 그리고 하온 외의 인물이 그 창이라고 주장하는 물건을 건드리는 걸 싫어한다. 사라나 울이 이를 만지려고만 하면 곧바로 역정을 내며 빼앗는다.

 

 특히 울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다. 울이 만지려고 할 때는 가시까지 세우며 성질을 냈다.

 

 반면 하온한테는 무지 친근하게 굴면서 수시로 창을 받기를 권한다. 이걸 끝까지 남의 걸 공짜로는 못 받겠다고 거절하는 하온도 참 대단하다.

 

 나이도 엄청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잡지식들을 굉장히 많이 알고, 모두에게 반말을 쓰는 걸 보면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여태까지 발견된 적이 없었을까?

 

 뭣보다 보다 보면 은근히 귀엽다. 가시는 세워도 그걸로 남을 찌르려 한 적은 없고, 특히 호기심이 대단해서 사라가 조금만 흥미돋는 말을 하면 가시 세우던 상황에서도 곧바로 호의적으로 돌변해 말을 보챈다. 그러면 더욱 귀여워지는 것이다.

 

 가끔 나름대로의 유머를 던지기도 하는데, 반응이 안 좋아도 본인은 연습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이 역시 귀여운 점이다.

 

 "야, 하온아. 너 정말로 안 받을 거니? 지금 안 받으면 이젠 나도 모른다? 나중에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좋아요. 안 주셔도 돼요."

 

 "야! 농담이야! 그냥 받아주라, 으응?"

 

 하지만 암만 그래도 이렇게 나이 많아뵈는 생물의 언행이 이토록 경박해도 되는걸까? 여러모로 정말, 도무지 알 수 없는 신기한 사람, 아니 괴물이다.

 

 그렇게 수레 위는 평온함 속에 약간의 시끄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사라는 이런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그녀가 살던 시골 마을도 딱 이런 분위기였다.

 

 도란거리는 말소리, 적당히 덜컹거리는 진동. 그 편안한 풍경을 즐기며 잠시 낮잠이라도 자려고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여정은 언제까지고 평화롭지 못했다. 그 끝이란 정말 갑작스럽게, 단 하나의 존재가 출현함에 따라 간단히 찾아왔다.

 

 그들의 길 앞에 늠름히 서 있는 것은, 크고 건장한 돌가죽.

 

 크고 우악스러운 도끼를 꼬나 쥐고 있는 전사 하나가 그 눈을 부라리며 서서히 마차로 다가왔다.

 

 그리고 모두가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높이 뛰어올라선, 그 거대한 도끼를 마차를 향해 내려찍으려 했다.

 

 만일 낮잠을 자려던 사라가 조금이라도 일찍 눈을 감았다면 그들의 여정은 그대로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때 순간적으로 사라가 발휘한 기지와 반사 신경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도끼가 자신을 타격하기 직전에 사라는 팔로 바닥을 밀쳐내서 위로 튀어 올랐고, 두 발로 돌가죽 전사의 복부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 덕에 도끼날의 궤적이 바뀌어 마차를 부순 정도로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돌가죽의 무시무시한 괴력이 담긴 도끼는 그대로 그 마차를 완전히 분쇄시켜버렸다.

 

 솟구치는 파편들과 나뭇조각이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주변으로 튀어댔고, 그중 몇몇 파편은 그들의 옷을 찢고 상처를 입혔다.

 

 가벼운 상처만 입은 것이 기적 같을 정도다.

 

 짐들이 이곳저곳에 멀리 흩어졌고, 자욱하게 퍼진 흙먼지 속에서 당황한 일행은 콜록대며 상황을 파악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온은 파편과 모래가 눈에 들어가 앞을 볼 수조차 없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사, 사라······!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야?"

 

 "난 됐어! 웬 돌가죽 하나가 나를 습-"

 

 말을 끝마칠 겨를조차 없이 두 번째 일격이 날아왔다. 그 공기의 떨림에 잔뜩 쫄아서 목을 한껏 뒤로 젖혔더니, 눈 앞으로 시퍼런 서슬이 한번 번쩍이고 지나갔다.

 

 흙먼지로 인해 감각이 차단되어있었기에 이번에는 도끼날이 정말로 가깝게 다가왔었다. 한 끗 차이로 도끼날을 피한 사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털끝 하나하나가 일어서며 자신의 위험을 알렸고 폐가 아플 정도로 숨을 몰아쉬었다.

 

 피부 전체의 촉각이 한기에 몸서리쳐질 정도였다. 생애 처음으로 느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그러나 숨조차 여유로이 쉬지 못했다.

 

 적은 이미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다음 일격을 날리려고 했다. 또다시 피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의 몸이 긴장으로 순간 굳어버렸다. 첫 두 번의 회피와 같은 행운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던 것이었다.

 

 뒤늦게 발을 튕겨 도약했지만, 그 전에 이미 도끼날이 사라의 등을 스쳤다. 일직선으로 주욱 난 상처가 그녀의 몸 전체에 죽음의 공포를 다시 한번 새겼다.

 

 거의 뒤로 날려지다시피 몸을 피했다. 비록 등짝의 상처는 얕았지만, 그로부터 피가 뿜어지면서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돌기 시작했다. 이를 본 돌가죽은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다.

 

 "뭐냐, 넌? 뭔 인간이 그리 빨리도 움직이는 거야?"

 

 사라는 숨을 몰아쉬느라 대꾸할 겨를도 없었지만, 돌가죽 전사도 대답을 들으려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곧바로 다음 공격에 나섰다.

 

 반면 사라는 더 이상 회피를 반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되는 대로 손에 잡히는 수레의 나무토막을 들어 도끼를 쳐내 방어했지만, 도끼가 닿자마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양팔이 그 진동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다음 일격을 막은 나무바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팔이 저려서 손가락 하나도 꿈쩍 못할 만큼 아팠다.

 

 손에 쥐이는 것을 들어 대충 방어 흉내를 내봤자, 적의 도끼질 한방이면 모조리 가루가 되어 바스라지고 만다. 결국 금속이 필요했다.

 

 적의 공세를 조금이라도 더 막아낼 수 있는 단단한 재질. 그래, 강한 금속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왕눈이 괴물 씨!"

 

 "뭐? 나······ 나?"

 

 "그 창인지 뭔지를······!!"

 

 "하······ 하지만 이건······!"

 

 "지금이······ 그딴 소리 할······ 때 같아요?!"

 

 "그런 게 아냐! 위험하단 말이야!"

 

 나무 뒤로 숨고, 바닥을 구르고, 스치고 베이면서, 사라는 그 괴물을 향해 나아갔다.

 

 그깟 금속토막이 별 도움이 안 되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라도 필요했다. 사라에겐 희망이 필요했다.

 

 "빨리 내놔-!!!"

 

 사라의 고함에 왕눈이 괴물은 고민을 그쳤다. 될 대로 되라 싶은 마음으로 그 창이라고 하는 손잡이를 던져버렸다.

 

 은빛을 영롱히 반사하는 그 금속 손잡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체공하다가, 이윽고 사라의 손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돌가죽 전사도 팔을 휘두른다. 위에서부터 벼락처럼 내려치는 쏜살같은 일격, 서슬이 바람을 찢으며 굉음을 자아낸다.

 

 부웅-

 

 그래, 서슬이 바람을 찢으며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독 크다.

 

 ...아니, 이번에만 유독 튼 소리가 난 게 아니다. 단지 두 소리가 동시에 겹쳐 울렸을 뿐이다. 휘둘러진 무기는 총 두 개였다.

 

 사라는 자신이 보고 있는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창이다. 확실히 기다랗고 날카롭게 제련된, 아주 요란하게 생긴 화려한 창이었다.

 

 분명히 손잡이를 잡았을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만듦새 좋은 창이 한 자루 들려 있던 것이다.

 

 그 창의 가장 길다란 날이 방심하고 있던 돌가죽 전사의 어깻죽지를 그대로 꿰뚫고 있었다.

 

 곧 그 팔에 들려 있던 도끼가 떨어지고, 그 돌가죽은 재빨리 창을 뽑아내서 뒤로 도약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사라는 적이 놓친 무기를 황급히 자신의 손에 쥐었다.

 

 한 손엔 도끼, 한 손엔 창. 이제 그녀에게 있는 무기는 두 개, 반면 돌가죽은 그냥 맨손.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그······ 그 손잡이 같은 게 진짜로 창으로 변하는 거였구나. 깜짝 놀랐네······. 후욱."

 

 상황이 유리해지자 조금 전까지의 미칠 것 같던 긴장이 다소 가라앉았고, 반대급부로 사라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의기양양함이 담겼다.

 

 그 뒤에선 왕눈이 괴물은 모든 눈을 다 부릅뜨며 그녀가 창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상당한 경악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에 사라는 점점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허억······. 물어나 보자······. 후, 너 뭐냐······? 뭔데 선량한 시민한테 도끼질이야?"

 

 무기를 빼앗긴 돌가죽 전사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쥐고선 비틀대며 뒷걸음질을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못 가 두꺼운 나무에 가로막혔다.

 

 "어딜 가려고······. 이게 뭔 상황인지 설명은 해야지?"

 

 사라는 돌가죽 전사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내가 놓칠 줄 알고? 이렇게 된 이상 이 돌가죽의 의중을 하나부터 끝까지 알고싶었다. 나라님 말로는 인간을 섬기려 태어났다던 돌가죽이 이제 인간 모가지를 자르려 하지 않았던가.

 

 의기양양하게 발을 옮기던 바로 그때, 갑자기 둔탁하게 우지직하는 굉음이 울려퍼진다.

 

 나무가 아작나고 뿌리가 뒤틀리는 소리였다. 혼미해진 사라의 의식은 지금 눈앞에서 무엇이 벌어지는 건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 돌가죽 전사는 팔 하나로 땅에 꽃힌 거대한 나무를 통째로 뽑아내고 있었다.

 

 돌가죽 전사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힘에는 자신 있던 사라마저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곧 그 굳센 뿌리가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흙을 헤치며 솟구쳐나왔을 때, 사라의 발은 똑바로 움직이질 못했다. 아니, 애초에 피할 곳도 없지 않은가. 저 폭이며 높이며 이미 사라는 외통수 안이었다.

 

 돌가죽 전사는 울부짖으며 온 힘을 다해 그 나무를 사라에게 후려쳤다.

 

 “크아아아아아!!!”

 

 사라 역시 온 힘을 다해 두 무기를 나무를 향해 후려쳤다. 둘 사이에서 무서울 정도로 강한 바람이 일어댔다.

 

 굉음이 울렸다. 사라의 괴력으로 나무는 두 조각으로 박살난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나무의 질량을 막아낸 충격은 온몸에 퍼져서 그녀의 머리를 울렸다.

 

 돌가죽 역시 때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사라의 손에 있던 도끼를 낚아채고, 그 기세를 타 한 바퀴 회전하며 강한 일격을 날렸다.

 

 이를 창으로 방어한 충격으로 그녀의 머리가 또다시 흔들렸다.

 

 귀에선 이명이 들리고, 속은 울렁이며,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똑바로 걷지도 못할 정도의 어지럼증과 현기증이 닥쳐왔다.

 

 돌가죽 전사의 공격이 계속 이어졌고, 방어에만 치중하는데도 사라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힘이 들었다.

 

 쇠와 쇠가 강하게 맞부딪쳤고, 사라의 팔이 멀리 튕겨 나갔다. 곧바로 다음 일격이 닥쳐왔다.

 

 방어해야 한다, 하다못해 공격해야 한다! 온 힘을 다해서 팔을 앞으로 뻗었다. 제발, 창아. 조금 더 빨리 움직여 먼저 적을 꿰뚫어다오. 제발 좀!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 도끼는 이미 너무나 빠르게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팔을 조금만 더 뻗으면 적을 제압할 수 있을 텐데, 아아, 저 도끼가 조금이라도 더 느렸다면······.

 

 그때 돌가죽 전사의 뒤에서 보인 것은 하온의 모습. 잔뜩 충혈된 한쪽 눈을 간신히 뜬 채, 이쪽을 향해 흑광석을 뻗고 있었다.

 

 날아오던 도끼가 느려진다. 마치 어제 하온이 멈췄던 그 옷 장식처럼 느려졌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사라는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사라는 그대로 팔을 뻗어 돌가죽 전사의 다른 한쪽 어깻죽지에 창을 관통시켰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대로 뛰어올라서 튀어나온 창날을 땅에 꽂아 넣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거구가 대지 위로 쓰러지며 둔탁한 울림이 흙먼지와 함께 사방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첫 번째 전투가 끝났다.

 

 사라는 왕눈이 괴물을 만났을 때 자신이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그저께부터 쭉 알 수 없는 일만 벌어졌다지만, 이번 일이야말로 정말 그 알 수 없는 일의 극한을 찍었다.

 

 그녀는 부디 이 말마저 철회할 날이 오지 않기만을 빌 뿐이었다.

 

 

 ***

 

 

 다행스럽게도 하온의 눈은 물로 씻어내고 시간이 지나자 별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충격에 튀어 오른 파편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날아온 파편이 들어갔던 듯하다.

 

 그동안 일행은 돌가죽을 단단히 묶어놓았다. 밧줄이든, 덩굴이든, 사슬이든 뭐든, 저항 못 하게 고정할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써서 철저히 구속했다.

 

 완벽히 무력화된 적을 앞에 두고 울이 나섰다. 오랜 기간을 정치판에서 살아온 그는 이번에도 적의 내면을 꿰뚫어보려 그 밑밥을 깔아댔다.

 

 "넌 누구야? 뭣 때문에 우릴 습격했지?"

 

 "그건 너희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돌가죽인데도 사람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을 보니······. 반란군의 일당이구나. 아닌가?

 

 "······."

 

 "좋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지?"

 

 "······."

 

 묵묵부답이다. 이후로 그들이 어떤 추궁을 하고 어떤 심문을 한들 돌가죽 전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울도 난처해졌다. 그의 말에 뭔가 대답이 이끌어져야 이를 단서삼아서 뭔가 추리할 건덕지가 생길텐데, 이렇게 반항적인 침묵 앞에선 암만 울이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고문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돌가죽 하나에게 정신이 팔려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라님께 받은 임무를 수행하려면 길을 떠나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여기 묶여있는 이 자가 너무나 처치 곤란하다.

 

 묶어두면 누군가 구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풀려났다간 다시 추격할 수는 없다 쳐도, 자신들이 뭘 가지고 어느 길목으로 갔는지를 다른 이들에게 낱낱이 말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나 순박하게 자라왔던 두 젊은이에게는 살해라는 잔혹한 선택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셋도 이들에게 그런 무거운 죄를 지우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나라님에게 명령받아 임무를 수행할 뿐인 어린 청년 아닌가.

 

 오랜 고민의 시간 후, 하온의 아버지 울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자를 여기 묶어두고 떠나도록 하지."

 

 일행은 모두 놀랐다. 총대를 맨 것이 가장 이런 쪽으로 냉혹하리라 생각한 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그 말에 찬성했다.

 

 그래, 다들 이것이 어리석은 판단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

 

 설령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이 문제는 너무나 버거워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묶어둔 돌가죽에게 멀어지고 나서, 울이 또다시 뜻밖의 말을 하였다.

 

 "잠시 날 내려주고 먼저 가고들 있게나. 잠시 볼일이 하나 있어."

 

 하온이 무슨 일이냐며 따라가려고 하였지만, 왕눈이 괴물은 뭔가를 짐작했는지 그를 말리고 울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일행에서 떨어진 울은 그대로 돌가죽이 묶여있던 곳으로 향했다. 돌가죽은 멍하니 그를 보고 의아해했다.

 

 곧 울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손 안에 잡히는 자그마한 도구 하나다. 그걸 돌가죽의 입 안에 물렸다. 철컥 소리가 났다.

 

 그것은 대부분이 철로 만들어진, 정교하게 조직된 부품들의 집합체였다. 오래전 황금시대에 만들어졌던, 지금은 기술력이 유실된 무기.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의 힘으로 강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 물건. 학자들은 이것을 총이라고 부른다.

 

 탕! 하고, 시끄럽게 귀를 울리는 굉음이 숲 전체에 울려 퍼진다. 깜짝 놀란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숲을 떠났고, 그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이 서로를 비벼대며 쏴아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다른 전령들은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기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울을 기다릴 뿐이었다.

 

 

 
작가의 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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