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21.아리아와 함께 춤을
작성일 : 16-10-24 22:06     조회 : 674     추천 : 0     분량 : 1379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도 일행은 하루 지나 오후 늦게 쯤에 제2 라니냐 항구도시로 돌아왔다. 총독은 오늘 밤에 요새에서 병사들을 모아 축배를 든다고 한다. 이도는 숙소로 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자고 싶었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그렇다고 달리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마음은 허전했다.

 

  안 되겠다. 방 안에만 있으니 더 기분이 이상하다. 이도는 숙소를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밤의 람다 항구는 또 색다른 맛이 있었다. 이도는 가로등이 만든 밝은 원과 약간 어두운 다각형의 도형 사이로 지나갔다. 아침에는 사람이 지나다니던 제법 큰 골목에는 야시장이 들어섰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노점상은 행인을 붙잡고는 물건을 사라고 재촉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기고 음식이 지글지글 익는 냄새가 났다. 어쩐지 아침보다 밤에 사람들이 더 활기차 보였다.

 

  “어라.”

 

  마곡과 검은 기름 등을 취급하는 마법 상점 앞을 지나가는데 소니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소니아는 다양한 색깔의 마곡이 든 병들을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었다. 이도는 옆으로 가 말을 걸었다.

 

  “뭐 새로운 레시피라도 시도해 보려고요?”

 

  “아? 뭐야, 이도잖아. 왜, 내가 뭘 연구할지 궁금해?”

  “그냥 이 신기술 자체가 저한테는 신기해요.”

 

  소니아는 씩 웃었다.

 

  “이번에는 부식 레시피를 강화해 볼 생각이야. 저번에 내가 그 암코양이의 공격을 막았잖아? 그걸 좀 더 공격적으로 이용할 순 없을까 싶어서.”

  “그땐 덕분에 살았어요.”

 

  “그치? 근데 손수건에다 발라 쓰기엔 좀 그렇잖아. 그래서 이번엔 무기에다 발라서 써 볼 생각이야. 화살촉이라든가, 검이라든가. 하지만 부식효과가 발라놓은 무기 자체에는 영향을 안 주도록 코팅을 잘 깔아야 돼. 그래서 쓸 만한 재료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지.”

  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료를 유심히 보는 소니아를 봤다.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그 암코양이 말이에요. 그것도 마법의 부작용 아닐까요? 소니아처럼.”

  소니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어쩌면 이미 레시피로 만들어졌을 수도. 만약 그게 상용화된다면 무시무시할 거야. 최소한 일당십은 당해낼 수 있는 놈들인 것 같으니까. 아, 이런 젠장. 돈이 없다. 이도, 돈 좀 있어?”

  이도는 주머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냈다.

 

  “얼마든지.”

 

  “세상에. 역시 대자야! 근데 금화 하나면 충분해.”

 

  소니아는 찢어질 듯 환하게 웃으며 금화를 받았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아이 같아 이도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소니아는 그 웃음을 눈치 채고 눈을 부라렸다.

  “인마, 너 지금 나보고 꼬맹이 같다고 생각했지?”

 

  “네? 아니, 절대로요!”

  “의심스러워. 안 그래도 지금 메이, 그, 그 아주 버르장머리가 까진 계집 때문에 신경 쓰여 죽겠는데 말이야. 그 꼬맹이, 항상 내 옆에 있으려고 한다고!”

 

  그 때 어딘가에서 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하게. 소니아는 행동을 멈췄다. 확실하지 않아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메이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났다. “소니아, 어디 있니~?” 소니아는 듣자마자 몸을 잔뜩 움츠렸다. 동공이 떨렸다.

  “젠장, 저 애 무서워. 힘이 장난이 아냐! 수틀리면 내 엉덩이를 깐 뒤 손바닥으로 갈길지도 모른다고. 으으, 분명히 그럴 거야. 너 인마, 왜 저런 애를 데리고 와가지고!”

 

  소니아는 이도의 다리를 찼지만 이도는 유쾌하게 웃어댔다. 또 “소니아~!”하는 메이의 목소리가 났다. 소니아는 재빨리 재료를 구매한 뒤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리고 이도에게 자기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고 메이에게 말하라고 했다.

  “소니아!”

 

  메이가 행인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도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안녕하세요, 대자님. 혹시 소니아 못 보셨나요? 제가 보살펴야 하는데 도망쳐 버렸어요.”

  “소니아라면 저기로 갔어.”

 

  이도는 소니아가 간 곳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메이는 꾸벅 인사하고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딱히 소니아를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고 그냥 거짓말이 싫었다.

 

  이도는 야시장을 구경하며 목적지 없이 걸어 다녔다. 이번에는 노점술집이 보였다. 간이테이블을 놓고 영업하는 것 같았다.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슈리, 루카, 돌격대장이 한 자리에 모여 술 마시고 얘기하고 있었다. 돌격대장이 이도를 보고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이, 신참! 심심하면 일로 와봐!”

 

  이도는 웃으며 그들 자리로 갔다. 슈리는 꽤 마셨는지 얼굴이 붉었고 루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잠깐, 얘들 미성년자 아니야? 으음. 여기는 서방이잖아. 동방이랑 달라. 그래도 루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담배를 피는 모습은 이질적이다. 하긴, 천진난만할 얼굴로 사람도 죽이는데. 이도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슈리가 이도에게 잔 하나를 내밀고 말했다.

 

  “자, 이유 불문하고 일단 한 잔 받아!”

  “나는 술을 안 하는데.”

 

  “소녀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야?”

  “그럼 딱 한 잔만.”

 

  슈리는 이도의 주먹 크기 정도의 잔에 위스키를 가득 따랐다. 이도는 침을 삼켰다. 위스키는 이렇게 먹는 게 아닐 텐데.

  “이도! 바당!”

  루카가 이도에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이도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단은 받았다.

 

  “난 담배도 안 하는데.”

  “젠장, 신참! 넌 대체 뭔 재미로 사냐? 여하튼 마시자고!”

  돌격대장은 위스키가 따라진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슈리와 루카도 같이 따라했다. 이도도 일단은 호응해주었다. 물론 마실 때는 적당히 버렸다.

 

  슈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장. 이제 전쟁도 끝났고. 뭐, 이제 제국에 가서 보상 받을 일만 남았는데, 대장은 뭐가 하고 싶어?”

 

  “나야 누님을 따라야지.”

  “재미없어!”

  “재미없다니, 이 년아. 모험이 이걸로 끝날 리가 없잖아?”

 

  슈리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뭔 소리야?”

  “대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군. 제국의 대자는 의무적으로 외국에서 태스크포스 활동을 해야 해. 누님은 당연히 신참을 따라 움직일 테고, 그럼 나도 당연히 함께 하는 거지.”

 

  이도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아리아가 제 태스크포스 활동에 참여한다고요?”

  “지금까지 뭐 들었어?”

 

  “하지만 아리아는 귀족 작위를 받기로 거래를 했는데.”

  “그건 그거고, 누님은 지금 네놈한테 푹 빠졌단 말이다. 뭐든 너와 함께 하겠지.”

 

  이도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까요?”

  슈리와 루카는 딴 말을 했다. “루카, 모험이라면, 역시 죽여야 할 적들이 많이 나오겠지?”

  “물논!” “그럼 우리도 태스크포스 활동 참여해볼까?” “선장님을 따르쟈! 다 죽이쟈!” “좋아, 건배!” “건배!” 슈리와 루카는 맥주를 러브샷했다.

  돌격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하, 이 답답한 놈! 진도 조금도 안 뺐지?”

  “진도가 뭡니까?”

 

  “내 속이 다 탄다, 이놈아!”

  돌격대장은 위스키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셔댔다.

 

  슈리가 이도에게 말했다.

  “이도, 서방인에게 좀 배워. 서방인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하루 만에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아리아는 안 그러는 것 같던데.”

  “그건 선장이 특별한 거고! 잘 들어. 선장님은 폭풍우에는 거리낌이 없어도 남자 문제에는 바위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잘, 뭐라 해야 하나, 구슬려야 한다고!”

  이도는 위스키를 조금 마셨다.

 

  “나라고 별 다를 건 없는데.”

  “답이 없네.”

 

  슈리는 위스키를 마셨다.

  루카가 피던 담배를 픽 던지고는 외쳤다.

 

  “나 방법 알아! 선원들한테 들어써!”

  “뭔데?”

  “꽐라가 될 정도로 술을 먹이는 거야!”

 

  이도는 기침했다.

  “그건 범죄잖아.”

 

  “우린 이미 범죄자인데?”

  루카의 말에 슈리와 돌격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은 웃어서 나온 눈물을 닦았다.

  “이건 됐고, 슈리, 루카, 니들은 애인 없냐?”

 

  슈리는 한숨을 쉈다.

  “그 망할 배에서 있을 리가 없잖아, 근육대장. 그래! 이제 제국에 가면 생길 수도!”

 

  루카는 슈리를 와락 안았다.

  “나는 슈리만 있으면 됑!”

  “소녀는 너 필요 없어!”

 

  “아잉~”

  슈리와 루카가 티격태격 할 동안 이도는 돌격대장에게 물었다.

 

  “대장은 미래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나? 뭐 별 거 있나. 이제 어차피 제국 본토로 가야하니까, 뭐 대충 잘 정착해서 예쁜 마누라 얻고 자식들 숨풍숨풍 낳고 잘 먹고 잘 사는 게 꿈이지.”

 

  이도는 위스키를 조금 마셨다.

  “소박하네요.”

  “소박한 게 최고야.”

 

  “지금 일은 마음에 안 드나요?”

 

  “나쁘진 않아. 다만 계속 할 순 없다는 게 문제지. 또.”

  돌격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이 아주 편한 일도 아니고.”

 

  그는 순간 아주 쓸쓸해보였다. 그러나 슈리와 루카의 싸움소리가 그의 감상을 방해했다. 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둘을 가리켰다.

  “물론 이놈들은 상관없겠지. 싸움에 아주 미친년들이거든.”

  “잘 알고있습니다.”

 

  “푸하하!”

  대장은 위스키를 쭉 마셨다.

  “맞다. 여기 오는 길에 누님을 봤는데, 어디더라?”

 

  대장은 어느 한 길을 가리켰다.

  “그래. 저 길로 여기에 오면서 누님을 봤어.”

 

  “그렇군요.”

  “재미없는 대답 좀 그만해라, 신참! 가서 좀, 응? 뭔 말인지 알지?”

  “뭘요?”

 

  “이제 전쟁도 끝나고, 우리도 내일이나 모레 쯤 곧 갈 텐데, 응? 오늘이 이 신대륙에서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잖냐? 마지막 밤이라고! 우리 외로운 누님이랑 놀아주란 말이다! 자, 어서 가!”

 

  돌격대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이도를 떠밀었다. 이도는 마지못해 가는 척하며 발길을 옮겼다. 이도 생각에 아리아랑 논다는 게 딱히 나쁜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흠, 이도는 바보가 아니다. 모두가 자기와 아리아 사이가 좀 발전하기를 바라는 걸 안다. 또 둘 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확신이 안 섰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아리아를 향한 자신의 상냥함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희아. 이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좀 더 나은 잠자리를 제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만약 그런 일이 아리아에게도 일어난다면?

 

  “젠장.”

  이도는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우왕좌왕, 우왕좌왕. 항상 이 꼴이다. 그 날 이후로 무슨 마법에 걸린 마냥.

  우왕좌왕, 이렇게 해도 될까? 우왕좌왕,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결정의 순간은 다가온다. 산사태처럼 쏟아져내려온다.

 

  재밌는 건 산사태 위험 장소 밑에서 우왕좌왕한다는 점이다.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

 

 

 

  길을 쭉 걸어가던 도중, 이도의 눈에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아리아였다. 이도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근데 아리아의 얼굴이 이상했다.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아련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도가 옆에 오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을 보자 아까까지 이도의 머리를 지배하던 고민덩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제 중요한 건 아리아다.

  ‘뭘 보는 거지?’

 

  이도는 아리아의 시선을 따라갔다. 언덕 위에 한 귀족의 저택이 있었다. 하도 정교해서 무슨 귀족 아이들의 장난감 같았다. 저택의 창은 안에서 솟아나오는 불빛 덕에 환했다. 천장의 화려한 샹들리에도 얼핏 보였다. 하하호호 웃음소리와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온다.

  무언지 알 것 같았다. 유력귀족이 주최해 저택 안에서 가면무도회를 벌이는 것이다. 동방에서는 이런 가면무도회 대신 잔치를 벌였다. 아리아는 그 가면무도회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도는 아리아를 보며 그녀의 과거를 상상했다. 노예 시절, 자신의 주인이던 귀족의 저택에서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걸 보았던 걸까? 자주 했던 걸까? 그곳에서 아리아는 귀족들이 먹을 음식과 술을 날랐던 걸까? 그리고 귀족들의 춤사위를 부러운 눈길로 봤던 걸까?

 

  “아리아.”

  아리아는 화들짝 놀랐다.

 

  “이도? 왜 여기 있어?”

  “그냥 심심해서 돌아다니니까 네가 보이더라고.”

 

  이도는 저택을 가리켰다.

  “가볼래?”

  “어? 잠깐! 기다려봐.”

 

  아리아는 당황했다.

  “초대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냐?”

 

  “나는 제국의 대자야. 초대 따위는 필요 없어.”

  “그래도 나는, 그, 자격이 안 돼. 귀족이 아니잖아? 아직은.”

 

  아리아는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이도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손님이라고 하면 돼. 갈 거야 안 갈 거야?”

 

  이도는 아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리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택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이도는 아리아의 손을 꽉 붙잡고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와서 보니 생각보다 큰 저택이었다. 위로 삐죽삐죽 솟은 디자인이 어쩐지 제국의 교구를 연상하게 했다. 대문 앞에는 짙은 보라색 바탕에 보석을 점점이 박아 넣은 더블릿을 입은 남자가 지키고 서 있었다. 손에는 명단이 들려있다. 얼굴은 새 모양 가면으로 가렸다. 가면 사이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녕! 좋은 밤?!”

  이도는 순간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좋은 밤이네요.”

 

  “좋은 밤! 좋은 무도회! 신난다!”

 

  이상한 남자는 갑자기 한 바퀴 휘리릭 돌았다.

  “초대! 증! 초대증! 내놔!”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이도는 고개를 저었다.

  “초대증은 없습니다.”

 

  “불가! 불가! 돌아가!”

  남자는 저 뒤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도는 펜던트를 꺼내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저택은 제국의 대자를 이런 식으로 대합니까? 내 이름은 이도입니다.”

 

  남자는 입을 떡 벌리더니 명단에 이름을 써 갈겼다. 그리고 이도를 향해 한껏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한 무릎을 꿇고 한 손은 내미는 상당히 이상한 동작이었다.

  “나 눈썰미 부족! 송구함! 옆 여자는 누구!”

 

  “내 동행입니다.”

  “이름!”

  아리아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아.”

  “좋아! 가면과 옷! 안에 준비! 미용사도 준비! 남는 건 즐기는 거!”

 

  이상한 남자는 또 한 바퀴 돌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남자가 입으로 낸 소리다. 이도와 아리아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리아는 씩 웃었다.

  “신대륙은 인종도 다양하고 사람도 다양하지.”

  “장애인에게도 일자리 주는 건 우리나라뿐인 줄로만 알았는데.”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오른편에는 저택이, 왼편에는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조경이 결벽증 환자의 방처럼 정갈하게 잘 되었다. 꽃도 가지각색으로 다양한 향기가 났다. 꽃전이 먹고 싶은걸. 제법 많은 귀족들이 가면을 쓴 채 곡조를 따라 엉덩이를 실룩이거나 남녀끼리 엉큼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눈을 동글동글 뜨며 구경했다. 가면무도회는 화려했다. 폭죽이 터지고 사용인들은 때깔 좋은 음식을 나르고 정원을 빙 두르는 작은 강 위에는 꽃잎이 둥둥 떠다닌다. 아리아의 이목을 끌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둘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도 메인 홀에서 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다. 은은한 샹들리에의 빛 아래 남녀가 음악에 따라 서로를 안고 스텝을 밟아나가는 광경은 어딘가 장엄했다.

 

  옆에서 가면을 쓴 여자 미용사가 다가왔다. 그녀는 둘은 미용실로 안내했다. 둘은 각자 다른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도는 적갈색 베스트가 포인트인 요즘 유행하는 서양 귀족옷을 입었다. 아리아는 프릴이 너울거리고 비단이 사글사글하여 보드라운 느낌이 나는 풍성한 드레스를 입었다.

 

  금방 끝난 이도는 미용실을 바로 나왔다. 하지만 아리아는 여자라서 화장, 머리스타일, 장신구 등등 할 게 많았다.

  “늦네.”

 

  이도는 밖으로 나왔다. 휘파람을 불며 정원을 구경했다. 동방의 잔치와는 다른 분위기이다. 도림에는 기생이라고 해서 이런 축제에 흥을 돋우는 직업여성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 가면무도회는 참석자들이 스스로 흥을 만들었다. 방금 어떤 남자 귀족이 여성을 위로 던져 올려 받는 묘기를 선보여 박수를 이끌어 낸 것처럼. 이것도 동방과 서방의 차이겠지.

  조금 기다리다보니 아리아가 나와서 살며시 이도 곁으로 왔다.

 

  “짜잔, 공주님 같아?”

  이도는 몸을 돌려 아리아를 보았다.

 

  놀라웠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배 위에서 그냥 선머슴처럼 하고 다닐 때도 충분히 예뻤다. 하지만 이렇게 화장도 하고 좋은 옷도 갖춰 입으니 선녀가 따로 없다. 아니, 서방에서는 여신이라고 해야 하나? 앞머리는 은색 머리핀으로 정갈하게 넘겼고, 뒷머리는 풍성해보이게 말아 올린 뒤 내렸다. 티 하나 없는 하얀 드레스의 흉부는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게다가 꽤 대담해서 가슴 윗부분이 트여있다. 윽. 하지만 이 정도로 코피가 나진 않아.

 

  아리아는 이도가 빤히 바라보자 얼굴을 붉혔다.

  “이상해?”

  “아냐! 좋아, 좋아. 예뻐.”

 

  “정말?”

  아리아는 씩 웃으며 이도와 팔짱을 꼈다. 이도는 당황했다.

  “너무 붙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다들 이렇게 하잖아. 우리만 손잡고 다닐 순 없지.”

 

  “일리 있네.”

  이도는 곧 팔짱을 즐기게 됐다. 살결의 감촉이 좋았다.

 

  아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들어보였다.

  “이거 어때? 장신구로 고른 건데, 진짜 다이아몬드래!”

 

  아리아는 거친 숨을 내쉬며 목걸이에 박힌 다이아몬드를 관찰했다. 그녀의 볼에 홍조가 띠었다.

  “정말 예쁘고 곱지 않아? 아아!”

 

  아리아는 완전히 다이아몬드에 빠진 듯하다. 이도는 아리아가 도림에 오면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림은 소박한 문화를 사랑하니까.

  꼬로로록, 아리아의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아리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도, 넌 못 들은 거야.”

  “아무렴요.”

 

  둘은 저택 안으로 들어가 우선 주린 배를 채웠다. 먹을 게 참 많았다. 아리아는 일부러 고기류는 피했다. 대신 아기 볼 살처럼 탱글탱글한 푸딩이나 혀가 녹을 듯한 초콜릿, 지렁이 먹는 식감의 젤리 등등의 디저트를 위주로 먹었다. 선상 생활을 하면 이런 디저트를 좀처럼 먹기가 어렵다.

 

  아리아는 “이거 너무 맛있다! 너도 먹어봐!”하며 디저트를 먹다가 입가에 묻는 것도 몰랐다. 이도가 말해주자 그제야 머쓱하게 웃으며 닦아냈다. 이도는 그런 아리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녀처럼 강인하면서도 상냥하고, 어딘가 슬프면서도 위로가 되는 여자는 아리아가 처음이다. 비록 아리아가 자기 자신을 비하할지라도, 이도에게 있어 아리아는 이제 신뢰 그 이상의 존재였다.

 

  이도는 어렴풋이 느꼈다. 아리아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 위험하지만, 해볼 만한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신중히 하자.

  이도는 웃으며 말했다.

 

  “디저트는 다 즐겼어?”

  “후아. 이제 한 달은 문제없어.”

 

  “그럼 이제 춤출래? 디저트 분량 뺄 겸.”

  “춤?”

  아리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 할 줄 몰라.”

 

  “괜찮아. 나도 모르니까.”

  “놀리는 거야?”

  “그냥 서로 손 잡고 빙빙 돌면 되지 않겠어? 아까 그 이상한 사람처럼.”

 

  그러더니 이도는 휘리릭 돌았다. 이도의 돌발행동에 아리아는 깜짝 놀라더니 배를 부여잡고 웃어댔다. 이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까 홀짝였던 위스키가 지금 효과가 오나? 어떤지 알딸딸한 게, 무얼 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담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리아는 살짝 삐져나온 눈물을 닦아냈다.

 

  “무조건 비웃음 당할 거야.”

  “기꺼이. 출 거야 말 거야?”

 

  이도는 일어서서 계단에 앉아있는 아리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과장된 포즈로. 아리아는 킥 웃으며 이도를 올려다보았다. 이도의 머리 옆에 청명한 달이 떠 있다. 달빛이 비추어지는 이도의 모습이 어쩐지 홀리는 것 같으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음, 잘생겼다. 아리아는 일부러 젠체하며 슬그머니 일어났다.

  “뭐,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 춤춰보자.”

 

  “좋아, 결정!”

  이도는 아리아의 팔을 확 붙잡고 정원으로 달려갔다. 아리아는 당황해하며 외쳤다.

 

  “너 좀 이상해! 얼굴도 빨간 게, 술 마셨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주님?”

  “푸핫! 바보 같아.”

 

  “왜, 싫어?”

  아리아는 미소 지었다.

 

  “아니, 좋아.”

  “좋은 게 좋은 거야. 암.”

 

  둘은 분수대 옆으로 갔다. 물이 조금 튀기기는 했지만 적당한 장소였다. 낭만적이었다. 둘은 서로의 양손을 꽉 잡고 마주섰다. 근데 누구도 움직이질 않았다.

  아리아는 속삭이듯 말했다.

 

  “뭐해? 움직여야지.”

  “그게, 음, 잘 안 되네. 정말로 그냥 빙빙 돌기도 그렇고.”

 

  이도는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커플 몇 명이 솜씨 좋게 춤을 추고 있다. 리듬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게 중요해 보인다.

  “일단 몸을 좌우로 흔들어보자. 옆의 귀족처럼.”

  “응.”

 

  둘은 불안하게 첫발을 띠었다. 공원에 있는 악단의 곡조에 맞춰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도는 그만 발을 헛디뎌서 아리아의 발을 밟고 말았다.

  “꺅!”

  “아이고. 미안.”

 

  “좀 잘해봐, 바보.”

 

  “디저트나 먹을걸.”

  이도는 진지한 표정으로 잘 리드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조금 해보니까 감이 붙어 제법 안정적이 되었다. 하지만 동작이 너무 단순했다. 그들의 뻣뻣하고도 어색한 춤사위를 본 몇 명의 귀족들은 큭큭 대며 비웃었다. 일부러 간신히 들릴 정도로 비웃었다.

  이도는 얼굴을 붉혔다.

 

  “미안. 내가 괜히 춤추자고 해서.”

  아리아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기뻐.”

  “아냐.”

  이도는 그 말을 곱씹었다.

 

  “아냐. 이거 네 애칭 맞지?”

  “왜?”

  “아냐...... 라고 불러도 될까?”

 

  선화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이도는 씩 웃었다.

  “아냐. 음, 어감 좋네!”

  이도는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이며 아리아의 허리를 뒤로 접었다. 아리아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둘의 얼굴이 키스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도는 씩 웃었다.

  “재밌지?”

 

  “너만 재밌겠지!”

  “하하!”

 

  술기운이 꽤 오른 이도는 대담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리아는 비명을 지르거나 깔깔 웃으며 즐겼다. 근데 이도가 주위를 안 봤던 탓에 옆에서 춤추던 귀족과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상당히 덩치가 큰 귀족이어서 이도는 퉁하고 튕겨나갔다. 그에 따라 아리아의 몸도 휘청거리다가 넘어졌다. 바로 옆의 분수대 위로. “안 돼!” 이도는 외치며 아리아를 반대편으로 밀쳤다. 그러나 대신 자기가 빠지고 말았다.

  “이도!”

 

  아리아는 물에 빠져 흠뻑 젖어버린 이도를 분수대에서 꺼냈다. 이도는 두 손으로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아리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완전 젖어버렸네. 괜찮아?”

 

  “어차피 우리 것도 아닌데. 갈아입고 가면 그만이지.”

  이도는 머리를 흔들었다. 물에 한 번 빠지니 술기운이 완전히 달아났다.

 

  그 덩치 큰 귀족이 다가와 사과했다. 이도는 사람 좋게 용서해주었다. 사실 자기 잘못도 있기 때문이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져서 둘은 일단 정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정원 가장자리 변에 놓인 벤치로 갔다. 언덕 아래가 보이는 곳이었다.

 

  “가만있어봐.”

  아리아는 손수건을 이용해 이도의 머리의 물기를 짜냈다. 하지만 곧 손수건도 젖어버렸다. 그래도 아리아는 목덜미의 물기라도 닦아주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이도의 몸은 선이 참 곱다. 남자 맞아? 여동생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네.

 

  “이제 괜찮아.”

  이도는 기분 좋은 낮 빛을 띠고 어스름이 진 도시 전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깍지 낀 채 위로 쭉 늘여서 몸을 풀었다.

 

  “춤추고 냉수마찰 좀 하니까 기분이 좀 풀리네.”

  “고민거리라도 있어?”

 

  “그냥, 세상사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싶어서.”

 

  아리아는 이도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 그렇지 뭐. 해적질도 물 좀 탄다 싶으면 문제가 일어나고, 거래가 성사된다 싶으면 상대방 마음이 달라지고.”

 

  이도는 아리아를 응시했다.

  “네 생각에 난 어떤 놈인 것 같아?”

 

  “어? 으음. 일단 착하고, 신분도 높고, 믿음직하고, 말주변도 있고, 아는 것도 많고, 음, 그리고.”

  아리아는 살짝 이도의 눈치를 봤다.

  “잘 생겼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내 능력에 대해서 말이야.”

 

  “능력?”

  “응. 요즘 들어 내가 무능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이도는 한숨을 쉬었다.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도, 아직 먼 것 같고, 옛 대자 출신 오현제만큼의 영웅은 꿈꾸기도 어렵고, 뭐랄까, 내가 지금까지 있던 곳에서는 내 존재가치가 충분했고, 내가 가진 것들이 도움이 되었는데, 이 새로운 곳에서는 그 모든 게 소용이 없어. 갑자기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느낌이랄까. 내가 상상도 못 했던 가혹한 세상이라는 느낌이 들어. 도림에서는 내가 태자라는 이유만으로 날 존경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대자라는 이유만으로 날 해코지하려하지. 그런 불합리한 세상이야.”

 

  이도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이마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나는 변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이런 잔인하고 거짓된 세상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걸까. 애초에 꼭 변해야만 하는 걸까, 원래의 나만으로는 이곳에서 내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건가. 그런,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나약해지는 느낌이 들고. 또 뭔가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되고, 항상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고.”

  희아. 더 나은 선택. 불. 그만!

 

  날 괴롭히는 건 나야.

  이도는 말을 멈추고 쓸쓸한 눈빛을 땅바닥에 던졌다. 그러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아리아를 돌아봤다.

  “미안, 내 푸념만 늘어놔서 재미 없었-.”

 

  아리아가 이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뒤, 그의 입술을 자신의 것으로 막아버렸다. 물컹하며 서로의 입술이 담쟁이덩굴처럼 얽혔다. 이도는 눈을 번쩍 뜬 채, 눈을 질끈 감고 키스하는 아리아를 바라봤다. 혀는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아리아가 머리를 뒤로 뺐다. 얼굴이 홍당무다.

  이도는 먼 산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어?”

  “아니야.”

 

  아리아는 씩 웃으며 이도의 등을 팡팡 쳤다.

  “그냥 나도, 너는 충분히 누군가의 키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

  이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네. 응. 고마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항상 위로가 돼.”

  “내가 할 말이야.”

  아리아는 고개를 옆으로 숙여 이도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나도 처음 해적밀수를 시작했을 때, 너처럼 방황했어. 하지만, 음, 정확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더라. 너도 지금 그런 거야. 방황하는 게 당연해. 그러나 곧 깨달을 날이 오겠지.”

 

  “그 날이 언제일까?”

  아리아는 소니아처럼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네가 숫총각을 떼는 날? 아하하!”

 

  이도는 일부러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아리아는 웃다가 멈추고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미안. 기분 나빴어? 하긴 내가 할 말은 아니지.”

  “넌 왜 내가 숫총각이라고 생각해?”

  “왜냐니? 약혼녀 없다며.”

  “약혼녀가 없다고 숫총각이란 법은 없잖아.”

 

  아리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건 그러네. 그럼 너 숫총각 아니야?”

 

  “아니, 맞아.”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아리아가 이도의 무릎을 퍽퍽 치자 이도는 와하하 웃어댔다. 이도는 문득 아리아의 손을 바라봤다. 곱고 보드라운 손. 이도는 자기도 모르게 그 손을 잡았다. 약간 냉기가 느껴진다.

 

  아리아는 가슴이 두근댔다. 이도의 손을 통해 델 것 같은 따스함이 전해져왔다. 왜 지금 타이밍에 손을 잡는 거지? 설마. 이건, 진도 빼기의 신호인 것인가? 아리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이도는 별 의미 없이 그런 행동을 한 거지만 아리아가 알 길을 없었다. 아리아는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이도, 나, 나 말이지. 사실은-”

 

  “삐이이이이이익!”

  갑자기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동시에 얼굴을 뒤로 돌렸다. 쥐 가면을 쓴 한 남자 귀족이 서 있었다. 그는 둘은 보며 껄껄 웃었다.

 

  “보기 좋은 한 쌍이구려! 오늘 밤은 또 새 생명이 싹을 트겠군! 와하하핫!”

  그러고는 쌩하니 도망쳤다. 이도와 아리아는 갑작스러운 어색함에 서로 거리를 벌렸다. 이도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방금 무슨 말 하려고 한 거야?”

 

  “아니, 아무것도.”

  하아. 정말 세상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둘은 한동안 말없이 람다 항구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봤다.

 

  이도가 말했다.

  “여기도 오늘로 마지막이네.”

 

  “그러게 말이야. 시간 참 빠르네.”

 

  “넌 신대륙이 고향이잖아? 떠나는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은데.”

  아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딱히 고향에 애정이 있거나 하진 않아.”

  “그렇구나. 근데 이제 돌아갈까?”

 

  이도는 치아를 달달 떨었다.

  “추워가지고.”

 

  “푸핫! 알았어.”

  둘은 옷을 저택에 반납하고 가면무도회장을 나섰다. 이도가 몸을 말리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둘은 숙소에 도착해 각자 방에 들어가 각자 침대에 누웠다.

  아리아는 밤하늘의 별바다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대로 괜찮은가?’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9 28."끝이 시작되고 있었다." (4) 2016 / 10 / 31 684 0 2362   
28 27.참으로 오래 걸린 2016 / 10 / 30 444 0 5375   
27 26.바다를 건너며 2016 / 10 / 29 801 0 12560   
26 25.신의 가호가 있기를 2016 / 10 / 28 597 0 12539   
25 24.어둡고 바람 부는 밤이었다 2016 / 10 / 27 743 0 10914   
24 23.결점과 결심 2016 / 10 / 26 507 0 8218   
23 22.왜 하필 지금 2016 / 10 / 25 701 0 9485   
22 21.아리아와 함께 춤을 2016 / 10 / 24 675 0 13792   
21 20.협상의 행방 2016 / 10 / 23 998 0 12721   
20 19.물놀이를 즐겨요 2016 / 10 / 22 568 0 19416   
19 18.제2 라니냐 항구 2016 / 10 / 22 471 0 8046   
18 17.엘리자의 회초리 2016 / 10 / 20 466 0 2376   
17 16.고양이 울음소리 2016 / 10 / 19 647 0 14015   
16 15.루비가 박힌 단검 2016 / 10 / 18 401 0 8352   
15 14.항구를 떠나다 2016 / 10 / 17 403 0 4106   
14 13.도처에 놓인 그물망 2016 / 10 / 16 702 0 8793   
13 12.소니아를 보다 2016 / 10 / 15 594 0 9697   
12 11.그 날 2016 / 10 / 14 830 0 12356   
11 10.루카를 위하여 2016 / 10 / 13 536 0 7296   
10 09.다시 찾아온 2016 / 10 / 12 1259 0 16436   
9 08.선화의 짖궂음 2016 / 10 / 11 520 0 6245   
8 07.선상의 파티 2016 / 10 / 11 612 0 5057   
7 06.가녀린 손 (1) 2016 / 10 / 10 698 1 7374   
6 05.헬라와 욕조 2016 / 10 / 9 538 0 6228   
5 04.선화와 황제의 문답 2016 / 10 / 8 460 1 9336   
4 03.이도의 펜던트 2016 / 10 / 8 686 1 5708   
3 02.납치선에서 (2) 2016 / 10 / 7 611 1 6595   
2 01.고장난 마차바퀴 2016 / 10 / 6 533 1 8418   
1 00.라벤더와 라즈베리 향 2016 / 10 / 6 709 2 141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드래곤 플래닛
에르노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