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열일곱 노미

　1919년 음력 10월 14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에서 태어난 나의 할머니 오노미님은 대대로 의원을 지내며 살아온 오씨 집안의 일남 일녀 중 장녀였다. 노미라는 이름은 당시 여자아이들에게 흔하게 붙여주던 이름으로 아이를 아무렇게나 부르는 말인 이놈 저놈 할 때의 바로 그 '놈'이란 뜻으로, 여자아이를 부를 때는 '노미'라고 했다. 그저 별 뜻 없는 '아무개'라는 뜻이다. 그러나 노미 부모님이 이런 이름을 지어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귀한 아이일수록 ‘개똥이’, ‘소똥이’ 하며 일부러 천한 이름으로 부르면 나쁜 운이 비켜 가고 좋은 운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노미의 조부께서는 근동에서도 알아주는 명의셨다고 한다. 그러나 노미의 아버지는 집안 가업인 한의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셨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노래로 세월을 보내며 양반 상놈 가릴 것 없이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셨고, 세상천지에 모르는 기생이 없었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 유력인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냈지만, 일본 신사에 대놓고 오줌을 눌 만큼 일본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런 아버지 덕분에 당연히 집안 형편은 좋을 수가 없었으나 살림 솜씨 좋고 살뜰한 어머니와 음으로 양으로 돌봐주시는 조부님 덕분에 노미는 그럭저럭 부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세상을 오늘만 살던 남자였던 노미의 아버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혼인한 지 칠년 만에 노미를 얻은 후였다. 생각지도 못한 어여쁜 딸을 얻은 노미의 아버지는 그때부터 집안 살림도 살피시고, 여자 문제들도 대충 정리하시고, 노미 어머니와도 다시 살갑게 지내게 되셨다.

　이렇게 노미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다. 노미 아버지는 어린 시절 노미에게 늘 비단옷만 해 입히시고, 잠시도 걷지 못하게 늘 어깨 위에 목말을 태우고 둥개둥개 하며 걸으셨다고 한다. 대단한 딸 바보셨던 노미 아버지는 멀 길을 갈 때면 노미를 꼭 말 위에 태우고 다니셨고, 일부러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셔서 노미는 어린 시절 서로 내 딸 하자, 내 며느리 하자는 아재들이 많았다.

　워낙 예쁜 아기였던 노미는 그렇게 끔찍한 아버지 사랑, 살뜰한 어머니 가르침을 받으며 컸고, 당시로는 매우 특별하게 여자인데도 소학교도 잠깐 다녔는데, 아버지가 일본놈들 판치는 학교에 다닐 것 없다고 하셔서 소학교는 일 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 후, 서당에도 다니고, 미국 선교사님들이 하는 주일학교도 다녔다. 언문(한글)은 교회에서 배웠다. 나중에는 다 까먹었지만,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할 수 있었고, 그때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도 배웠다.

　노미는, 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두 손을 모으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를 세 번 외치는 할머니식 기도를 하셨다. 살면서 도저히 감사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울며 ‘감사합니다.’를 세 번 외치는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었던 그 수많은 날에도 말이다.

　애지중지하던 딸을 아무에게나 시집보낼 수 없었던 노미의 아버지는 열여섯부터 들어오던 혼담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자꾸 거절하시다, 결국 노미가 열아홉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혼사를 치르기로 하신다. 그러나 노미의 아버지는 혼사가 결정된 이후에도 너무 억울해서 술을 일주일 내도록 드셨다고 한다. 하지만 노미의 혼인 이야기는 노미가 열아홉이던 때가 아니라 열일곱일 때부터 시작된다.

　어느 봄날, 노미가 열일곱이던 해, 버드나무에 새순이 돋아 버들잎이 아기 볼때기 마냥 보들보들하던 날 아침이었다. 여기서 버들잎이 아기 볼때기 마냥 보들보들했다는 표현은 할머니가 하신 것이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쓰실 수 있는지 그때 들으면서도 우리 할머니 표현력이 참 대단하시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노미는 그날따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평소보다 늦게 동네 밖 샘터에 물을 길으러 물동이를 메고 나섰다. 해가 거의 중천을 향해 뜨기 시작한 시각이라 샘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샘터 근처에는 아까 얘기한 데로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아기 볼때기 마냥 보들보들한 버들잎들이 흐드러진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기분 좋게 부는 날이었다. 노미는 얼른 물을 길어다 놓고는 냉이를 캐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누군가 '에헴!'하고 헛기침을 했다.

　“저... 저기요. 저 물 한 바가지만 주시겠습니꺼?”

　노미는 사실 인기척보다 바람결에 풍겨오는 ‘포마드 기름’ 냄새를 먼저 맡았다. ‘포마드 기름’은 당시 남자들이 머리에 바르던, 일종의 향수 역할을 하는 머릿기름이었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라 노미는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얼른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잠... 잠시만예.”

　하고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버들잎을 하나 따다 그 물 위에 띄웠다. 그리고 옆 눈으로 자기 앞에 서 있는 남자의 가슴쯤 만 본 채로 고개를 들지 않고 물바가지를 내밀었다. 남자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물을 주시는 건 고마우신데, 사람 눈도 안 보고 물을 줍니꺼?”

　하는 볼멘소리가 건너왔다. 생각지 못한 불평에 노미는 깜짝 놀라 얼른 고개를 들고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세상에...!’

　목단추를 여미는 까만 학생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훤칠한 청년이 눈앞에 서 있는데 노미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새하얀 피부에 숯으로 그려 놓은 듯한 검은 눈썹 밑으로 크고 맑은 눈이 있었다. 노미는 열일곱 일생 동안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처음 보았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서 노미는 얼른 고개를 다시 푹 숙인 채 물바가지만 남자 앞으로 가까이 내밀었다.

　“어서, 드시소.”

　남자는 잠시 물끄러미 물바가지를 바라보더니 바가지를 받아 들었다.

　“이 버들잎은...?”

　“물도 빨리 마시면 체합니더. 버들잎을 후후 불어가 천천히 드시소...”

　이 버들잎 서비스는 길 가던 나그네가 물을 청하면 벌컥벌컥 마시다 체하지 말라고 풀잎 하나를 띄워주는 것으로 당시에는 흔한 풍습이었다. 남자는 그제야 버들잎의 의미가 기억이 났는지

　“아, 고... 고맙습니더.”

　하고는 정말로 입으로 버들잎을 후후 불어 물을 천천히 마셨다. 노미는 남자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간지럽게 불고, 버들잎은 그 바람을 따라 더 하늘하늘하게 흔들렸다.

　이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곤 한다. 버들잎 냄새는 얼마나 산뜻했을까. 바람결에 불어오는 포마드 향기는 또 얼마나 강렬했을까. 두 사람이 서로를 곁눈으로 보는 장면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천천히 물을 다 마신 남자는 잠시 샘물 옆 바위 위에 걸터앉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노미는 남자가 아직 물바가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엉거주춤 남자가 물바가지를 돌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남자는 물바가지를 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다 마신 물바가지를 손에 쥐고서 먼 곳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노미는 더 참지 못하고 물바가지를 돌려달라고 말을 하려는데,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영산으로 가려면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합니꺼?”

　노미는 다행히 아버지와 영산에 자주 가봤던 터라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쭉 가시면 큰 갈림길이 나오는데예, 거기서 산 쪽으로 가시면 안 되고예, 오른쪽 좀 굽은 길로 내리가시다보믄 더 큰 길이 나오는데예, 그 길 따라 쭉 가시믄 바다가 나오고예, 바다가 보이믄 왼쪽 길 따라 한참 가시믄, 거가 영산입니더.”

　남자는 잠시 노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노미는 자기가 남녀 유별한 것도 잊고 말이 너무 많았나 싶어 입술이 삐죽하고 나왔다. 자기도 모르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이 남자가 빨리 물바가지를 돌려주고 제 길을 갔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이 남자는 물바가지를 돌려줄 생각이 없는 건지 가는 길을 잘 몰라서 속으로 생각하는 중인지 멀뚱멀뚱 노미를 내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안달이 난 노미는

　“저기... 그러니까.... 영산을 갈라하시믄요....”

　“예, 이 길 따라 쭉 가다가 산 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 굽은 길로 내리가라고요.”

　“예, 쭉 가시다가 큰 길이 나오고예....”

　“알겠습니더, 큰길 따라가믄 바다가 보이고 거기서 왼쪽 길로 가믄 되는 거지예?”

　“예....”

　노미는 속으로 이 사람 다 알아들었구만 왜 저렇게 안 가고 멀뚱멀뚱 서 있나 싶었다.

　“그리고...저.... 바가지....”

　남자는 그제야 ‘아!’ 하더니 손에든 바가지를 노미에게 건네주었다. 노미는 얼른 바가지를 받아들고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려고 똬리(물동이를 머리에 올릴 때 아프지 말라고 머리 위에 올리는 짚으로 만든 둥근 모양의 물건)를 머리 위에 올리고 물동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남자가 와락 다가오더니 물동이를 번쩍 들어 머리 위에 올려 주었다. 갑자기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 때문에 너무 놀랐는데 물동이가 엎어질까 봐 손을 놓지도 못하고 노미는 꼼짝없이 두 손을 위로 든 채로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풍기던 포마드 향기가 이제는 코를 찌르듯이 강하게 풍겨서 노미는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가까이서 본 남자는, 그 소년은 훨씬 더 잘생겼다. 지금까지 노미는 누구 외양을 보고 반해본 적이 없었다. 동무들이 동네 어떤 오라버니가 참말로 잘생겼다며 가슴을 쥐고 까르르 넘어가는 것을 볼 때도 사람 외모만 보고 저 법석을 떠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나도 잘난 외모에 반하는 일은 없었다.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노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 눈이 저리 맑고 클 수도 있나 싶었다. 사람 코가 저리 반듯할 수도 있나 싶었다. 그리고 남자 입술이 여자 입술보다도 더 붉고 아름다웠다. 남자는, 소년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노미는 똬리 끈을 입에 물고 있어서 뭐라 말도 못 하고 심장은 또 왜 그렇게 크게 뛰는지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노미는 정말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남자도 좀 놀랐는지 얼른 뒤로 물러서며

　“고맙습니더, 살펴 가시소.”

　하고는 획 돌아서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아까는 몰랐는데 등은 어찌 저리 넓은지. 노미 아버지는 키가 작고 아담한 분이셨고, 친척이나 사촌들 중에도 노미가 제일 나이가 많은 누나였던 터라 노미는 주변에 다 큰 남자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남자 등이 저리 넓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또 얼굴이 빨개져서 노미는 정신없이 뒤로 돌아 집 쪽으로 걸었다.

　평소에는 절대로 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물동이를 지고 가는 노미였다. 그런데 물이 자꾸 흘러넘쳐서 노미는 여간 당황스럽지가 않았다. 그러다 잠시 남자가 어디만큼 갔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노미는 살그머니 뒤로 돌아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혹시라도 또 눈이 마주치면 어쩌나 싶었지만 노미는 용기를 내어 남자를 한 번만 더 보기로 했다. 남자는 어느새 저만큼 멀리 걸어가고 있었고, 봄 아지랑이에 그 모습이 아롱아롱 일렁거렸다. 우리 할머니의 표현력이 또 한 번 폭발하는 순간이다.

　“그 뭔지 아나? 봄이면 아지랑이가 막 피어올라가 막 아롱아롱 하제? 그렇게 멀리 가는데, 안 보일 때까지 볼까 싶다가 내 부끄러버가 그냥 집에 왔는데, 물을 반이나 쏟아가 머리는 다 젖고 저고리도 다 젖고... 아이고, 참말로 우스버가.... 어무이가 니 왠일로 이리 홀딱 젖었노 하시고, 내 진짜 그때만 생각하믄....”

　하며 할머니는 배를 잡고 까르르 웃으셨다. 그 순간 할머니는 열일곱 봄날의 노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