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지명, 인명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15화. 선을 넘다.
“아.. 참 어머니 장례는 잘 치뤘지?”
머리를 징으로 한 대 친 듯 머리 골속에서부터 웅웅거림이 몰려왔다.
뒤이어 눈앞에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사탄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범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몸 속 안의 세포 하나하나 들이 김정혁을 죽여야 한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을 달래기 위해 이범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 이범을 보고 김정혁은 즐기는 듯 기름을 끼얹었다.
“아...나도 갔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탁..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끊을 놓고야 말았다.
그의 오른 손은 순식간에 김정혁의 뺨을 향해 날라 갔다.
짝!
...
황재철은 김정혁과 이범의 아슬아슬한 대화에서 이범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하다간 정말 큰일이 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범의 동작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때 김정혁이 다른 말을 꺼내자 솥두껑 같은 이범의 손이 김정혁의 뺨을 향했다.
순간의 찰나
황재철은 두 손으로 간신히 이범의 손바닥을 막았다.
‘으윽.... 망치로 손목을 내리 찍는 것 같군.. 한손으로만 막았으면 부서졌겠어..’
“둘 다 그만.”
이범은 자신의 손목이 막힌 곳을 바라보았다.
황재철이 두 손을 부들부들 거리며 자신의 손바닥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범아, 너도 정신 차려라.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이쯤 합시다.”
여전히 김정혁을 노려보던 이범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실눈을 뜨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했다.
‘뭐...뭐야..이 공포는....’
이범이 자신을 폭행하려 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김정혁은 움츠렸던 온몸을 폈다.
턱을 하늘 높이 치세우며 이범의 몸통에 들이 받았다.
“너 나 치려고 했냐? 쳐봐! 이 새끼야! 내가 콩밥 먹게 해줘?”
이범은 부들거리는 손을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이범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정혁은 이마를 들이 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쳐보라고 시발! 깽값 제대로 받아낼 테니까!”
황재철이 한번 자신의 분노를 막아준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이범은 떼쓰는 김정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보다 못한 황재철이 벌개진 두 손을 털고 난 뒤 김정혁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 합시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날 수 있습니다.”
뒤이어 발악하는 김정혁을 억지로 잡아 끌어 다른 쪽으로 안내했다.
김정혁은 가면서도 ‘개새끼, 너 살인 미수로 내가 고소 처먹인다.’ 등 갖은 욕을 했다.
“스으읍....후우우....”
이범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 쉬었다.
문득 자신의 쇄골에 박힌 보석이 낮게 웅웅거리며 빛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감정에 같이 동요 하는 것일까..’
가까스로 인내했지만 이범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황재철은 김정혁을 내보내고 난 뒤에 이범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이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넋이 나간 듯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벌겋게 부풀어 오른 손으로 이범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범아 괜찮냐?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갈게요.”
“어... 그래 피곤 했을 테니 들어가서 쉬어라.”
빠르게 걸어가는 이범의 가방에서 손톱만한 천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응? 뭐야 이 특이한 천 조각은?’
황재철은 독특한 느낌에 그 조각을 자기 주머니 안으로 집어서 넣었다.
수상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모으려고 하는 그의 형사적 습관 이었다.
***
이범은 반지하의 집으로 돌아왔다.
손바닥을 펴고 다시 쉴드를 만들었다. 그 안으로 들어간 다음 가부좌를 틀었다.
‘참아야해.. 아직은 때가 아니야 참아야해.. 천천히 모든 것을 깨부술 때까지참아야해..’
이러한 생각에 방해 하는, 다른 생각이 이범의 내면에서 피어올랐다.
‘아니 내가 왜 참아야해? 야금야금 고통스럽게 패는 것이나 화끈하게 뒤집는 것이나 같은 거 아니야?’
조금 이성적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때 갑자기 의식 저편에서 묵혀둔 생각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졌다.
‘이범..사실... 누군가 사람을 죽이고 화끈하게 뒤집어 엎어버리는 게 두려운 거였어? 그러니까 유진철이나 박진우를 못 죽였던 거지..’
‘그러니까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명목으로 그것을 자꾸 뒤로 미루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
‘내심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면서 김정혁이 정신 차렸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나 본데... 그럴 일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몸은 헬스해서 커졌지만 사실은 김정혁한테 처맞던 그늘의 손아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찌 질 한’ 놈...‘
“아니야!!!”
투명한 쉴드를 주먹으로 세게 쳤다.
쿵!!!
동그란 어항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범은 쉴드를 깨부수려는 듯 여러 번 내리쳤다. 쉴드 안이 불길에 휩 쌓였다.
쉴드 밖은 고요했다. 쉴드가 약간 금이 가면서 생긴 충격으로 인해 미동이 느껴졌다.
그 탓에 물 잔이 잠깐 흔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어항 안의 불꽃이 사그라 들었다.
다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이범은 손가락을 튀겼다.
쉴드가 해제 되었다.
그때 마루에 걸어놓은 어머니의 사진이 보였다.
“그래.....이렇게 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거야.”
이범이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두 눈의 눈동자는 한 여름의 녹음처럼 짙어졌다.
김정혁을 만났을 때 마다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참았던 이유는,
사실 누군가를 죽인 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실제로 반성을 하고 있었으면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이 정리 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전 보인 김정혁의 태도는 이범의 두려움의 굴레에 해방감을 주었다.
다음날 이범은 옷 장안에 검은 수트를 꺼냈다.
셔츠를 정성스레 입으며 옷을 단정히 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어머니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정결히 두 번 절을 했다.
이범의 두 눈으로 본 사진 속의 어머니의 눈이 한 없이 서글펐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김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뭐야? 이 새끼 갑자기 존나 무서운 척하네? 아까 걸로 부족했냐? 나 또 치려고?”
“한국대학교 앞 까페다. 병신새끼야 지갑 두둑하면 와서 치던가.... 아... 돈이 없어서 못 치겠구나?”
이범은 전화를 끊었다.
옆에 어머니 영정사진과 호랑이 가면을 챙기고 뚜벅뚜벅 한국대학교 앞으로 향했다.
***
황재철은 아무래도 이범과 김정혁의 사이가 뭔가 껄끄러웠다.
단순히 젊은이들의 다툼이라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앙금의 골짜기가 있어 보였다.
그는 이범의 사건기록을 한번 조회해 보았다.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으나..
최근에 어머니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근데... 뺑소니 사망 사건인데 범인을 못 잡았어?...’
담당이 교통과 최태욱 이었다.
다행히 안면이 있는 동료였기에 교통과 부서로 찾아가 사건 파일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재철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오랜만에 본 최태욱은 웃음을 지으며 황재철에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어~ 태욱아 물어볼게 있어서 이 사건 왜 아직도 미제인거야?”
최태욱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 다 지난 사건인데 갑자기 왜 들고 오셔서 그러는 겁니까..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사건을 요약해 보면, CCTV와 목격자가 있었고, 범인은 빨리 검거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 검찰에서부터 경찰 서장까지 사건을 빨리 덮으라는 엄청난 압박이 왔다.
덮지 않으면 즉각 인사조치가 날 수 있다면서..
최태욱은 어쩔 수 없이 사건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용의자는 누군데?”
“서울중앙지검 김동철 아들 김정혁이요..”
“허...”
이범과 김정혁이 왜 그렇게 불 튀기는 눈빛을 보내는지 알 법했다.
이범의 입장에선 자기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그런 비꼬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분노가 치밀었겠는가..
김정혁이 싸가지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패륜 짓을 저지른 것에 혀를 내둘렀다.
황재철이 잠깐 사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신입 김민재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넣어 오는 것을 보았다.
“민재야 그건 뭐냐?”
“아.. 이거 박진우 사건 호텔에 있던 청소부가 준 것인데요. 뭔가 증거인가 싶어 이렇게 보냈답니다.”
“한 번 줘 봐.”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천 이었다. 대부분이 불에 탄 듯 그슬려 있었다.
“아!”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불현 듯 생각이 난 듯 황재철은 자기 주머니 속에 있던 천을 들어서 맞춰 보았다.
이범의 가방에서 떨어졌던 그 천 조각 이었다.
그 뒤로 황재철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이 한 번에 연결되는 듯 생각이 끊임 없이 떠올랐다.
‘얼룩 무늬... 범... 호랑이 가면..?’
‘이범은 자기 어머니를 죽이게 된 김정혁에 대해서 엄청난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
‘일단 가장 쓰레기 짓을 벌인 김정혁의 친구들에 대해서 복수를 한다..’
‘마지막 종착지는 김정혁...’
‘한 사람의 손목을 굽게 할 정도의 강력한 힘...’
‘이번엔 김정혁이 죽을 수도 있다!!’
사색을 마친 황재철은 갑자기 책상을 두 번 쳤다.
탕! 탕!
“야! 잠깐 하던 거 멈추고, 그 서울중앙지검장 아들 김정혁한테 전화해서 신병 확보해, 잘못하면 여러 사람 죽을 수도 있겠다.”
***
김정혁은 한국대학교 까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김정혁 말고도 세 사람이 더 있었다.
“야 카메라 잘 챙겼지? 너는 화장실 앞, 너는 내 바로 뒤, 너는 저기 카운터 쪽에서 잘 찍어줘. 빼도 박도 못하게 증거로 삼게 말이야.”
안경 쓴 친구 한명이 이야기 했다.
“그래도 너 맞는 거 괜찮겠냐? 운동 많이 한 놈이라며.”
“야! 요즘은 먼저 맞는 사람이 장땡이야. 몇 대 맞고 돈 엄청 뜯어내거나, 아니면 감빵 들어가거나.
“…근데 나는 합의를 절대로 안 해줄꺼니까 그 새끼한테 남은 선택지는 하나야. 감빵 들어가는 거... 우리 아빠가 직접 나서면 최소 징역 10년은 가뿐하게 나올거다.”
김정혁은 사실 어떻게든 약을 올려서 이범을 감옥에 넣고 싶었다.
이범의 어머니를 차로 치이고 난 뒤, 으슥한 밤길을 걷는게 무서웠다.
그가 복수심에 칼빵을 놓을 것 같은 공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범을 자신과는 다른 세계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김정혁은 오히려 이 기회가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약을 올려서 속을 뒤집어 놓으면 때리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할 작정이었다.
“야 아무튼 너희들은 그 새끼 오면 잘 찍어줘 알았지? 이것만 잘 처리 되면 내가 제대로 쏠게.”
김정혁의 친구 셋은 김정혁이 알려 준대로 각자 자리를 잡았다.
자신은 통 유리창 쪽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있으며 이범이 오는 것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사거리에서 검은색 양복에 검은 구두를 입고 있는 한 사람이 옆에 커다란 액자 하나를 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에 김정혁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 이범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운동복과는 다르게 검은 수트를 입으니 더 키와 덩치가 커보였다.
그 모습에 김정혁은 잠깐 저승사자 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발...지까짓게 운동했으면 어쩌라고... 법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백날 천날 운동해봐라 멍청한 새끼야.. 오늘은 그 힘으로 니가 몰락하는 날이다.’
김정혁은 여유로운 척 입꼬리를 올리며 유리창 밖으로 손을 올렸다.
이범은 서두르지 않고 다가오더니 김정혁이 앞에 있는 유리창에 섰다.
김정혁은 으쓱하며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 거지새끼 까페도 처음 와봐서 입구도 내가 알려줘야 하나..’
와장창창창!
통유리가 폭포수 쏟아지듯 순식간에 바닥으로 깨져서 떨어졌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김정혁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김정혁은 허공에 몇 초간 떠있었다.
“이... 이.....새끼...”
그는 아등바등 애쓰는 발만 허공에서 발길질 하고 있었다. 김정혁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범은 김정혁을 깨진 유리조각들이 있는 곳에 던져 버렸다.
“으으으윽!”
깨진 유리창들로 인해서 그의 등에는 피가 솟아올랐다.
몸을 움츠리며 신음하는 김정혁을 두고 이범은 자리에 앉더니 액자를 탁자에 놓았다.
김정혁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한 여성의 사진이었다.
“우리 엄마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