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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한국남자 지훈
작가 : 오리무중91
작품등록일 : 2020.9.13

현재 20,30대 남자들의 현실적인 삶과 거기에 대한 위로를 하고 싶은 작품으로 , 주인공 지훈은 20대 후반의 남자로 남자로서의 부담함과 젊은 남자로서의 현실을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8화(1)
작성일 : 20-09-22 19:43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1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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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시간이 흘러 어느 여름날 석훈은 2년 전 수희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2년동안 30년간 서로 남이었던 석훈과 수희는 가족이 되어 이리저리 투닥거리고 또 화해하고 또 그 과정에서 맞춰가며 여느 부부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솔직히 결혼 전 그 일 때문에 자그마한 갈등들은 일도 아니었다.

  2년 사이에 석훈은 진급도 했고 삶도 안정적이고 수희와의 관계도 좋고, 석훈은 자그마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석훈에게는 2가지 고민이 생겼다.

  결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아기 소식이 없었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닌데 아직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는구나 하고 담담히 기다릴 뿐이었다. 수희도 결혼 전에는 아기를 안 가진다고 했었고 결혼하고 한동안은 피임하지 않으면 관계하지 않겠다고도 이야기했지만 석훈은 수희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석훈의 진심에 마음을 열었는지 피임하자거나 하는 이야기 없이 아기를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석훈은 그런 수희가 너무 고마워서 수희에게 더욱 잘하고 아껴주고 그냥 수희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최근 수희의 소비벽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고민이다. 처음에는 조그마하게 이것저것 사더니 최근에는 그 소비벽이 사치품으로 넘어가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석훈은 수희가 아기가 생기지 않는 실망감에 마음이 헛헛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 중이었다.

  띠. 띠. 띠. 띡 띠리릭! 철컥 퇴근을 하고 들어온 석훈이 집에 들어온다.

  “수희야 나왔어~”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보통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있는데 거실에 없다. 안방에 들어가니 수희가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 쓰고 옆으로 누워 등을 지고 있다. 낌새가 이상해 석훈은 침대옆에 조용히 앉았다.

  “나왔어~”

  수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오빠 왔어?”

  “자고 있었어?”

  “아니 그냥 누워 있었어. 오늘 좀 피곤하네...”

  “그래? 어디 아픈거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괜찮아.”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수희가 대답을 하고 목이 매였다.

  석훈은 이상함을 느끼고 이불을 젖혀 수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수희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너 울었어?”

  “아니 오빠...” 석훈이 걱정되어 미간이 좁혀지고 다그치듯 말했다.

  “아니 이야기 해봐 얼른!” 수희가 침대옆 선반일 열더니 무엇인가 꺼냈다. 꺼내어진 것은 하얗고 한쪽 끝이 분홍빛인 막대기... 임신 테스트기였다. 임신테스트기는 옅은 붉은 빛의 한 줄만이 있었다.

  임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석훈이 임신테스트기를 바라보고 실망하고 있는데 수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생리할 때가 지났는데 시작하지 않길레 혹시나 해서 해봤더니 아니더라... 그래서 힘이 빠지더라고... 괜히 기대했나봐...더 늦기전에 불임 클리닉이라도 가봐야 될까봐...”

  수희는 목이 계속 매이는지 말을 떠듬떠듬했다.

 석훈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수희를 폭 안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조급해 하지 말고” 석훈이 자신을 안자 수희가 석훈의 가슴팍으로 파고 들었다.

  그렇게 10여분 가만히 둘은 안고 있었다. 석훈이 수희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며

  “안 되겠다. 오늘 맛있는거 먹자! 뭐 먹고 싶어?”

  “나 지금 입맛 없는데...”

  “아 그러지 말고~ 간만에 데이트하자 우리!!” 석훈이 수희의 기분을 풀어주려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오늘 영화도 보자!”

  “고마워 오빠...”

  “자꾸 쳐지지 말고! 난 요새 영화뭐 하는지 확인하고 있을께 준비부터해 오늘 이쁘게 하고 기분도 내고 데이트도 하고 그러자!” 석훈이 수희를 일으켜 욕실로 밀어넣었다.

  1시간 뒤 준비를 마친 수희가 거실로 나왔다.

  “수희야 우리 오늘 근사하게 레스토랑가서 칼질하고 심야영화 보자!”

  “그래” 수희의 기분이 한결 나아 보인다.

  주차장에서 석훈이 조수석의 문을 열면서 에스코트하듯 팔을 휘져어 가슴팍에 공손히 덴다. 그 모습을 본 수희는 석훈의 너스레에 빵 터져 웃어버렸다. 수희의 웃음에 석훈은 같이 웃으며 놀렸다.

  “웃었다!! 이제 엉덩이에 뿔난데요~”

  “뭐래~” 수희는 석훈의 어깨를 살짝 치고 조수석에 올라 않았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석훈은 운전석에 올라 앉았다.

  “조심히 모시겠습니다. 공주님 오늘 저에게 다 맞겨주세요오.” 그렇게 석훈의 노력으로 수희의 기분은 많이 풀렸고 그 둘은 여느때보다 즐겁게 데이트를 했다.

 

  몇일 후 석훈은 백화점의 명품관 앞이다. 수희의 기분을 풀어줬지만 여전히 수희가 걱정되었다. 몇일 전 일도 있었고, 마침 수희의 생일도 가까워졌고, 겸사겸사 이번 생일 선물은 무리를 하더라도 근사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외벌이로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번에 큰마음을 먹었다.

  벌써부터 수희가 기뻐하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붕 뜬다. 오늘을 위해 몇일 간 이리저리 알아보기 위해 업무에도 지장이 있었다. 다행히 동생인 지훈의 친구 중 한 명이 백화점에서 근무를 한다기에 도와주기로 했다.

  도움을 주기로한 지선이란 친구는 지훈의 불알친구로 어릴 때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아 자주 집에도 자주놀러오고 지훈과도 막역한 사이인 친구이다. 어릴 때는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성인이 되고 본적이 없어 어색했다.

  탁탁탁탁탁타악 석훈이 문자를 쓰기위해 고개를 처 박고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

  ‘지선아 나 지훈이형인데 지금 백화점 명품관 앞이야...’ 2분정도 기다렸을까? 띵똥 답장이 왔다.

  ‘오 오빠 지훈이 형인데가 뭐에여ㅋㅋㅋ 처음보는 사인줄ㅋㅋㅋ 나 내려갈려면 30분정도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먼저 들어가서 둘러보고 있어요.’

  ‘그래 천천히 내려와.’

  답장은 천천히 내려오라고 했지만 지선이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명품관에 들어선다. 평소에 명품을 입거나 사본 적 없던 석훈은 명품관의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프랑스 궁전을 보는듯한 로코코풍의 화려하고 고풍스런 인테리어, 금색과 검은색의 세련된 선반들, 그 위에 명품가방들과 그 위로 내려지는 황금빛 조명... 석훈 본인이 살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스-르-륵 문이 열리는 것 조차 부드럽고 귀품이 있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까맣고 단정한 정복을 입은 점원들이 배 부분에 공손히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아...네”

  석훈은 서울역 비둘기 마냥 어깨를 내리고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석훈은 너무도 공손한 인사가 부담스럽고 어색할 따름이다. 20평 남짓한 매장 안에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남자 혼자 온 사람은 본인 뿐 이었다.

  그래도 수희의 웃는 모습을 위해 가방이 진열된 선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가방의 종류는 적었다. 전시되어있는 가방은 많지 않았다 크기별로 2~3개 정도였다. 수희가 결혼 때 예물로 받은 명품가방의 사진과 비슷한 가방을 보고 가까이가서 이래저래 살펴보고 있을 때 가방 안쪽의 택에 가격이 보인다.

  ‘5,250,000₩’ 석훈은 뜨억 했다. 손바닥 보다 조금 큰 가방이 저 금액이라니, 저 금액을 예물로 해준 동생놈에게 순간 고마웠다. 그냥 200~300만원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석훈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택을 가방에 흠집이 가지 않게 공손히 가방안으로 다시 넣어 두고는 이리저리 다시 두리번 거린다. 그때 깔끔한 검은 유니폼을 입은 점원이 다가와 물어본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신가요?” 석훈은 이런 친절 조차 부담스럽다. 빨리 지선이 내려왔으면 싶다.

  “아 와이프 선물 좀 사려고 왔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겟네요.” 점원은 빠르게 석훈을 위아래로 훝어 견적을 낸다.

  ‘키나 인물은 잘생기고 괜찮은데 입고 있는 셔츠나 구두는 명품이 아니네... 여기도 그저 그런 손님이네... 아 VIP들은 안오고 이런 사람만 꼬여...쯧, 소금 뿌려 쫒아낼 수 도 없고’ 점원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고객이니 표정 관리를 한다.

  “뭐 따로 찾으시는 건 없으신가봐요, 그럼 천천히 둘러보시고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점원은 석훈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귀찮아지기 전에 석훈에게서 떨어져야겠다 생각하며 거리를 둔다.

  그러고는 카운터에 있는 다른 점원에게 다가가 석훈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수근댔다.

  “야 텄어텄어, 가까이서 보니까 옷이랑 구두 다 싸구려더라. 어쩔피 못살 거 물건에 왜 손을 대나 몰라 괜히 설레서 달려갔자나.”

  석훈은 점원의 태도에 먼가 쎄~함을 느꼈지만 다시 혼자서 조용히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또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가방이 눈에 보여 다가가서 가격을 확인하려는데 뒤에서 점원이 “고객님 피팅 되어 있는 상품은 함부로 건드리시면 안 돼요.” 하고 크게 이야기 한다.

  순간 무안해진 석훈은 급하게 사과를 했다. 매장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모였다.

  “아 죄송합니다. 처음이라 몰랐네요.”

  “아 그렇다면 앞으로 조심해 주시겠어요?”

  “아 네 그러면 저 가방 가격 좀 알 수 있을까요?”

  점원이 살짝 한숨을 쉬고는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흠, 320만원 입니다. 고객님, 그리고 명품은 가격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고객님” 점원의 말에 석훈이 불쾌해 말을 하려 하는데 뒤에서 “언제부터 피팅 되어 있는 제품을 건드려선 안 됐죠? 그리고 상품에서 가격이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하죠?”하고 딴지거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선이었다. 지선은 석훈에게 다가와 석훈 앞에 있는 점원의 명찰을 보고 “한다정씨?”하고 말을 마무리했다. 점원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나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먼가 잘못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점원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시죠?” 하고 묻자. 지선이 “저 VIP마케팅 담당팀 손지선대리라고 합니다. 한다정씨는 근무를 얼마나 하셨죠? 제가 모르는 사칙을 알고 계신거면 저보다 오래 근무 하셨겠네요.”

  점원은 속으로 ‘ VIP마케팅 담당팀이라면 명품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인사권도 가지고 있는 부서인데, 아 명품관에서 근무하고 싶은데 일반 매장은 싫은데...식품관으로 보내면 어쩌지...아 짜증나...’라고 생각했다.

  점원이 지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불쾌하게 하려던 의도는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점원의 말을 듣고 있던 지선은 쉼호흡을 하고 나지막히 이야기했다.

  “한다정씨, 저한테 죄송하게 아니죠. 한 10분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른 고객들은 뭘 만지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더니 이 고객만 쳐다보고 있다가 상품건들자 마자 큰소리로 이야기 하시던데.. 왜 그랬던 거죠? 없는 이야기 까지 지어내면서 무안을 주려던 이유가 있나요?”

  지선을 갑자기 석훈쪽으로 돌아보더니 날카롭게 물었다.

  “오빠 혹시 진상 짓 했어?”

  “아니 나 그런 짓 안 한거 같은데... 그냥 들어와서 조용히 가방들 살펴보고 있었는데...”

  지선은 다른 점원에게 다가가 한번 더 물었다.

  “저기 혹시 저 고객이 진상짓이나 다른 고객님들께 피해갈 행동을 한 것이 있나요?” 다른 점원이 점원의 눈을 피하면서 지선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들어오셔서 조용히 가방 상품들만 살펴보셨어요.” “네 알겠습니다.” 지선은 다시 점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고객이 진상짓이나 다른 고객들게 피해갈 행동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왜 그런거죠? 이유가 있나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기 저한테 죄송할 게 아니라고 말씀드린거 같은데요.” 점원은 석훈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고민을 하는듯 하다 이내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 언행이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석훈은 가만히 점원을 쳐다봤다. “네 언행이나 행동은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하는 사과도 유쾌하지는 않네요. 제가 처음이라서 낯설어 하고 있을 때 친절보다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렇네요. 저도 이제는 궁금하네요. 왜 그렇게 불친절하셨는지 아니 무례하셨는지”

  지선이 석훈에게 “오빠 그만 직접하지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게.”하고 막아섰다. 그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한다정씨 지금 매장에 고객사은용 물품들 몇 개나 있죠?”

  “확인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지금 매장안에 있으신 고객님들 만큼 가지고 나오세요.” “네.”

  지선이 그리고 매장 안의 고객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접고는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들 잠깐 소동이 있었습니다.” 지선의 말을 끊고 5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 항의하듯 이야기했다. “아니, 내가 봐도 저 점원이 싸가지가 너무 없게 이야기하던데 여긴 직원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에요?”

  지선이 다시한번 90도로 사과하며 “죄송합니다. 많이 불편하셨죠. 저희 백화점 잘못입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게 명품관의 전 직원들에게 교육을 다시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지선이 이렇게 말하자 50대 여성분은 크음하며 “내가 지켜볼거에요, 거기 남성분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조치 잘 해준다니까,” 인사를 받은 석훈은 머쓱했는지 “아..네..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마침 점원이 사은품을 가지고 나왔고, 지선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꼭 보상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님들 불쾌하셨을 마음 조금이라도 위로되시라고 이거 하나씩 선물로 받아가세요.” 매장안에 있었던 10여명의 고객들이 지선 주변으로 몰려왔다.

  한 고객이 사은품을 받아 박스를 열고는 “어머 이거 그냥 주는거에요? 그냥 받기에는 고가 같은데요...”

  지선이 웃으며 응대했다. “아닙니다. 고객님 저희가 잘못한 부분인데요 뭐... 그걸로 위로가 되신다면 저희 더 감사하죠.” “네 그럼 고맙게 쓸께요.” “네 그럼...”

  지선이 석훈에게도 사은품을 하나 줬다. “오빠도 하나 받아.” 석훈은 어떨 결에 받긴 했지만 뭐에 쓰는 물건인지 도통 모르겠었다.

  “이게 뭔데?”

  “우선 받아!”

  “ㄱ그...그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지선이 석훈에게 잠시 밖에 홀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석훈이 멍을 때리며 기다리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지선이 석훈의 팔을 잡았다.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됬는데 우리도 마저 쇼핑해야지?”

  석훈도 그 말을 들으니 백화점에 온 목적이 생각났다.

  석훈이 다시 아까 그 매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지선이 팔을 잡아 끌며 “여기 말고 다른데 가자.” 했고, 석훈이 “수희가 여기 브랜드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결혼 할 때도 여기 브랜드 가방 콕 집어서 이야기 했었는데...”하며 지선을 말렸다.

  석훈의 말을 들은 지선이 석훈에게 질문했다.

  “오빠 혹시 언니 가방이 뭔지 알아? 모델명 같은 거”

  “몰라 근데 사진 찍어왔어 비슷한 거 사려고”

  “어구 똑똑네! 사진 보여줘봐” 석훈이 사진을 보여주며 쭈뼛댔다.

  “근데 비슷한 거는 가격이 500만원이 넘어가더라.”

  “응 이 모델 같은 라인은 그 정도 가격돼 더 비싼것도 많고.”

  “그땐 지훈이가 돈 내서 몰랐지..”

  “악 박지훈! 맨날 오빠 욕하더니 동생 노릇했네... 큭큭큭, 근데 내 생각은 이런 스타일 가방있으니까 다른 스타일 가방 사가는게 언니가 더 좋아할 걸? 내 말 한번 믿어볼레?”

  “그래?” 지선이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석훈을 바라봤다.

  “남자들은 여자들 사치의 세계를 너무 모른다니까! 오늘 나만 믿고 쇼핑해서 가봐 어차피 맘에 안들면 영수증이랑 교환권 보여주고 바꿔가면 되니까 상관없어!”

  왠지 지선이 더 신난 것 같은 쇼핑이지만 석훈은 지선을 따라다니며 쇼핑을 했다.

  들어간 매장마다 가방들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300만원 아래인 가방은 없었다. 그러다 100만원 초반대의 가방을 보고는 살펴보려 집었는데 지선이 쓱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오빠 그거 아동용이야.. 내려놔 그거 사가면 욕먹어...”

  무안해진 석훈은 조용히 가방을 내려 놓고는 속으로 ‘애기들 매는 가방이 뭐 저리 비싸 하고는 다시 한번 다른 세계가 있음을 실감했다.’ 1시간이 넘게 돌아다니다 지선이 자신만 믿으라며 골라준 가방을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향했다.

  가방은 300만원 초반 대로 처음 본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카운터에서 점원이 새 제품을 가지고 나왔고 지선이 상자를 열어 흠이있나 꼼꼼히 살펴보고는 예쁘게 포장을 부탁했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꺼내는데 점원이 “30% 할인되셔서 2,176,000원입니다.” 하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지선이 옆에 있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올렸다.

  “아까 불편하셨을 고객님께 드리는 백화점의 진짜 선물! 이거 원래 VIP들에게만 가는 건데 내가 힘 좀 썼어!”

  “너 이러다 큰일 나는거 아니야?”

  “장난이야, 담당자여서 일 처리 빨리한 건 있는데 충분히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컴플레인건이여서 괜찮아. 오늘 온 김에 사가야 될거 아니야.”

  석훈이 지선에게 감동했다. 석훈은 지선이 신처럼 보였다.

  “고마워.. 내가 진짜 밥사주께”

  “기다리신다. 계산부터 해, 나 나가있을께”

  “무이자는 6개월까지 가능하시고 최대 12개월까지 할부 가능하십니다. 몇 개월도 해드릴까요?” “6개월이요.”

  석훈은 명품이 적힌 종이가방을 들고 매장을 나왔다. 매장을 나오자 지선이 석훈을 보고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것도 선물, 아니다 이건 보상.”

  지선이 내민 손에는 크진 않지만 아까전에 무안을 당했던 브랜드의 마크가 찍힌 종이가방이 들려있었다.

  “이건 아까 그 직원 월급에서 까이는 보상, 큰건 아니고 활용도 좋은 스카프야. 언니가 그 브랜드 좋아한다면서 그리고 챙기라고 했던 사은품 있지 그거 여자들은 어차피 다 알지만 가방에 다는 악세사리야 이거 두 개 합쳐서 거의 100만원 돈 된다?”

  석훈은 그 직원의 월급에서 까인다니 통쾌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하다.

  “그 직원은 어떻게 되는데? 짤리는 거야?”

  지선이 손사레를 쳤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짜르진 않고 조만간 식품관이나 일반 매장으로 발령 날 거야. 오빠 할인 챙겨주려고 보고서 올릴 때 내용같이 올렸으니 조만간 그리 될 거야.”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랬을까?”

  “진짜 몰라서 그래? 그냥 급을 나누는 사람인거야.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급을 나눈 거지 그리고 본인이 명품을 팔고 있으니 본인 스스로 급이 높다고 생각했겠지. 그 명품을 사러오는 VIP들과 같은 급이라 생각하고 아래로 보이면 무시했던 거겠지. 그런 사람 은근 많아. 오빠랑 지훈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잘 몰랐겠지만.”

  석훈에게는 너무나 무겁고 공감이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어느덧 9시가 넘었다.

  “어릴 땐 그냥 떡볶이 좋아하는 꼬마였는데 너도 많이 찌들었다. 큭큭큭”

  “아 뭐래! 나 아직도 떡볶이 좋아하더든? 아니다 이젠 술을 더 좋아하나?”

  “찌든거 맞네, 언제 저녁이라도 사주께.. 지금 사주고 싶은데 너무 늦었다.”

  “됐어, 언제 지훈이 내려오면 같이 술이나 사줘~! 아 그리고 언니한테 할인받아서 싸게 샀다거나 세일 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마”

  석훈도 지선의 말을 알아들었다. “알겠다, 큭큭큭 오늘 고마웠고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볼게 와이프~ 기다린다.”

  “그래 들어가~” 석훈이 두 손은 무겁게 발걸음과 마음은 가볍게 집으로 향한다. 지선은 오랜만에 만났지만 몇 년이나 만났던 것 같은 편함이 있는 아이였다.

  아침이 밝았다. 탁.탁.탁.탁. 도마에 칼이 붙이치는 소리 알람이 아닌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에 석훈은 잠에서 깼다. 석훈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부엌으로 나갔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수희가 베시시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오빠 깼어? 내가 오랜만에 오빠 아침 맛있게 차려주려고 히히, 준비해서 나와”

  잠이 덜 깬 석훈이 고개를 끄덕하고 욕실로 들어간다. 솨아아아아아아 물줄기가 석훈의 머리부터 젖신다.

  어제 밤 석훈이 집에들어오자 소파에 앉아있던 수희가 석훈은 보이지도 않는데“왜 이렇게 늦게와!”하고 투정을 부렸다.

  석훈이 종이 가방을 뒤로 숨기며 엉기적 엉기적 들어왔다.

  “수희야 다른게 아니라. 짠!” 석훈이 두 팔을 들어 올려 종이가방들을 보여줬다.

  종이가방에는 명품브랜드의 시그니처 마크들이 박혀있었다.

  사태 파악이 안 된 수희가 “오빠 뭐야? 이것들 뭐야?” 하고 물었고, 석훈은 수희의 놀란 모습에 성공했다고 속으로 함성을 질렀다.

  “너 지난주에 힘빠지는 일도 있었고, 너 생일도 다가오고 해서 이벤트로 준비했지 히히힛” 수희가 감동한 얼굴로 “오빠...”하고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석훈이 “오빠...하고 있지 말고 후딱 열어봐!”

  부스럭 수희가 가방이든 상자를 열었다. 영롱한 붉은 빛 가방 요새 대세를 달리고 있는 브랜드의 가방이 눈에 띈다. 수희는 가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수희 자신도 모르게 가방을 가슴팍에 안고 방방 뛰어 다니면서 재빨리 거울 앞으로 가서 어깨에 걸쳐 자세를 취해본다.

  “어머 오빠 너무 이쁘다. 이런 걸 어떻게 알고 골랐어? 완전 좋아 진짜 너무 좋아 좋다는 말 말고 다른 말을 하고 싶은데 다른 말이 생각이 않나! 어떡해 나!!! 좋아서 죽는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어!” 수희가 잔뜩 흥분해서 방방 뛰고 있었다.

  석훈이 다음 종이가방을 가리키며 “저건 안 열어볼거야?” 잔뜩 흥분한 수희가 재빨리 달려와 “이건 뭐야?” 종이가방 안을 보자 조그만한 박스가 2개 들어 있었다. 하나를 열어 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방브랜드에서 나오는 테슬키링이 보였다.

  “오빠 이건 어떻게 알고 완전 좋아 저 가방만으로도 너무 좋은데!진짜 감동이야!” 석훈이 신기해 하며 “여자들은 진짜 다 뭐에 쓰는건지 알구나...” 조용히 읊조렸다. 다른 상자를 열자 같은 브랜드의 스카프가 나왔다. “오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진짜 이렇게 쎈스있는 남잔지 몰랐어!” 쪽.쪽.쪽.쪽 수희가 석훈의 머리를 잡고 볼에 사정없이 뽀뽀를 했다.

  “근데 진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석훈이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훈이 친구가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걔 도움 좀 받았어. 처음에 이 스카프 샀던 매장에 들어가서 보고있었는데. 걔가 와서 말하는데 무슨 비슷한 것 보다는 다른 느낌의 여러개가 났다고 하면서 가방을 골라줬고, 또 내가 그래도 너가 이 브랜드 좋아한다고 하니까 정 그러면 스카프 같은 활용도 좋은 아이템 하나 사줘라고 해서 하나 사는데 직원 찬스라면서 이 뭐냐 이것도 하나 선물로 준거야.”

  “도련님한테 그렇게 좋은 친구가 있었어? 친하게 지내라 해야겠네.”

  “이미 둘은 친해. 어릴 땐 우리집도 자주 놀러 왔었고”

  “진짜 오빠 너무 고마워 나 진짜 감동 받았어. 오늘 오빠 하고 싶다는건 다 해줄게!” 말을 들은 석훈이 음흉한 눈빛으로 수희를 쳐다봤다.

  수희도 석훈의 눈빛을 읽었는지 “씻고 나와”라고 석훈에게 이야기했다.

  둘은 그날 밤 어느 때 보다 뜨겁고 화려한 밤을 보냈다.

  씻으며 어젯밤 회상을 하던 석훈이 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석훈은 다 씻고나와 몸에 물기를 닦고 속옷만 입고 욕실 밖으로 나섰다. 밥을 차리다 속옷만 입고 나온 석훈을 본 수희가 음흉한 눈빛을 보냈다.

  “오빠, 아침부터 시그널이야?”

  어제 저녁도 재대로 못 먹고 힘을 써서인지 아침부터 그런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석훈이 웃으며 “아침부터는 힘들어 하루종일 업무에 지장 생겨”하고 받아쳤다.

 “옷 입고 나올게”

 “응 밥도 다 됐어.” 석훈이 옷을 입고 나와 식탁에 앉아 밥상을 봤다. 신혼 초에 한 달 정도 아침밥을 차려줬었는데 어느 순간 아침밥은 간단히 시리얼을 말아먹거나 식빵에 잼을 발라먹고 출근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딱히 섭섭하거나 한적은 없었다.

  석훈은 미영에게도 아침밥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2년 만에 받아본 아침밥상 석훈은 그저 이 상황이 웃음이 나왔다.

  “이거 명품백 사줬다고 다음날 바로 아침밥상을 차려주네, 너무 속물 아니야? 큭큭큭”

  수희가 삐졌다는 듯이 입술을 모으며 투덜거렸다.

  “무슨 속물이야 예전에도 차려 줬었잖아.”

  “신혼 초에 한 달 정도 차려 줬었지...여튼 잘 먹을게 오늘 덕분에 아침부터 힘내서 업무 볼 수 있겠다.”

  “그래 맛있게 먹어~” 이 때만 해도 석훈은 행복했다. 수희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사건을 채 일주일도 안 돼서 터졌다.

 

  사건이 터진 건 그 주 주말 아침이었다. 평소랑은 달리 잠에서 좀 일찍 깬 석훈은 수희의 잠을 방해 할까봐 거실로 나와 책을 읽고 있었다. 오전 9시 쯤 거실로 나온 지 3시간 정도 됐을까? 안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수희가 일어난 것 같았다.

  일찍 일어나 배가 고팠던 석훈이 “수희야 아침먹자!”하고 안방 방문을 벌컥 열었다. 화장대 앞에서 있던 수희가 입안에 있는 무언가를 꿀떡 삼키며 “깜짝이야 노크 좀 해!”하고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쳤다.

  무안해진 석훈이 사과를 하는데 뭔가 공기가 이상하다. 검고 무겁고 어색한 공기가 공간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정적을 깬 것은 수희였다.

  “오빠 나 오늘 약속 있댔자나 점심부터 만날거라 지금 준비하고 나가기도 바쁜데”

  “어어 알겠어, 혼자라도 먹어야지 뭐.” 말을 끝내고 안방문을 닫았다.

  석훈을 원래 있던 거실 소파로 와 다시 책을 펴들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수희의 표정과 그 순간의 어색한 공기와 정적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가슴에 남았다. 1시간 반이 지났나? 수희가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자신이 사준 가방을 매고는 “오빠 어때 잘 어울려? 예뻐?”하고 물었다.

  “너는 항상 예쁘지, 누가 사줬는지 가방 참 예쁘네”

  “치! 생색은~오늘 친구들한테 완전 자랑하고 올 거야”

  “내가 태워다 줄까? 나도 밥먹으러 나가는 김에 태워줄게.”

  “어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석훈이 모자를 눌러쓰고 수희와 같이 집을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수희가 가방을 뒤지더니 “나 입술에 바를 거 안 가져왔다. 나 올라가서 립스틱 하나만 가져올게.”

  “그래 차에 앉아 있을게 갔다 와.”

  “응 금방 갔다올게”

  ‘탁’ 수희가 차에서 내렸다. 그때 카톡! 수희가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 소리가 나자 자연스럽게 눈이 휴대폰 화면으로 간다.

  ‘수희야 출발했어? 어디쯤이야? 오늘 그 가방 가져나오냐?’

  카톡! ‘무슨 가방?’

  카톡! ‘왜 수희년이 연기해서 받아 낸 구O가방’

  카톡! ‘아~ 요망한년 얼마나 예쁜지 가져 나와봐라’

  카톡! ‘ㅋㅋㅋ요망한년 요새 남편한테 온 정성을 다하고 계신단다.’

  카톡! ‘양심이 있으면 한 달은 남편한테 껌벅 죽어야지’석훈의 두 눈에 두 사람의 대화가 번갈아 보였다. ‘연기? 무슨 말이지? 잘못 본 거겠지.’ 석훈의 찜찜함이 몇 배로 불어났다. 머릿속이 검은 무엇인가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벌컥 “오빠 빨리 가자 차 막힐라.” “어...어” 수희가 오는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수희를 약속장소에 내려주고 곧바로 집으로 왔다. 입맛이 없었다. 그냥 머리가 너무 아파 한숨자고 싶었다.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쉽게 잠이 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아침에 수희가 서 있었던 화장대로 가서 서랍들을 뒤졌다. 번호가 적혀 있는 작은 알약이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성교육 시간에 사진으로 본 적 있는 약, 약은 21이라는 숫자까지 적혀 있었고 14개의 약이 비어 있었다. 석훈은 이미 알고 있지만 혹시나 약의 뒷부분 적혀 있는 성분명을 검색해 본다.

  초록창으로 보이는 ‘데소게스트렐 :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과 유사한 합성 호르몬으로 3세대 경구 피임제의 성분이다. ’ 이라는 문장...확실해 졌다.

  그리고 몰려오는 배신감와 주체할 수 없는 붉은 덩어리...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석훈의 분노가 소리로 몰아친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내 무기력 해진다.

  처음 느껴보는 무기력한 배신감과 분노... 하지만 조용하다. 고요한 분노는 이내 석훈을 이성적으로 만든다. 침대에 기대어 2시간 가량 조용히 생각했다.

  ‘수희가 나에게 왜 그랬을까? 내가 왜 이런일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알던 수희는 뭐였을까? 꿈인가?’ 하지만 눈에 보이는 피임약...14개가 비어있는 피임약. 석훈의 품에 안겨 울던 날 아침에도 이 약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문득 지선의 말이 생각난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그 말... 수희도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몰랐을 뿐 아니 알았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런 수희, 결혼 전 그 사건에서 깨달아야 했는데 신이 주신 기회였을 텐데...

  석훈은 스스로 어리석었던 과거의 자신을 탓해본다. 석훈은 수희를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루시퍼도 천사였던 루시엘이 타락해서 생긴 지옥의 왕이듯 석훈도 타락했다. 수희의 행복을 불행으로 만들리 마침 수희는 지금 행복하다. 석훈은 자신이 행복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듯 수희도 똑같이 나락으로 떨어뜨리라 생각했다.

  석훈은 변호사인 친구 재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조곤조곤 붉은 분노를 보이지 않고 설명했다. 재현은 충분히 이혼 사유가 되고 귀책 사유는 와이프에게 있다고 이야기했다. 석훈이 말했다.

  “수희에게 무엇하나 남겨주기 않고 이혼하고 싶다. 가능하면 위자료도 청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

  “증거가 필요하지 피임이 부부간에 합의되지 않았다는 증거”

  석훈의 머릿속으로 문득 수희 친구들의 단톡방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한번 붉은 덩어리가 가슴속이 자리 잡았다. 두 덩어리는 합쳐져 가슴팍에 붉다 못해 자주빛 피멍으로 가리 잡는다. 석훈은 재현에게 수희 단톡방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이야기 중에 자신의 밑바닥을 보인 것 같아 더욱 처량하다.

  “그거면 확실할 것 같은데... 할 수 있겠어?”

  “해봐야지, 고맙다. 내가 너랑 통화하는 내내 너무 처량해져서 안되겠다. 고맙다 도움 필요하면 또 연락해도 되제?”

  “그래 짜샤 힘내라, 나만 알고 있을테니 걱정을 하지 말고”

  “그래 고맙다.” 석훈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친구의 힘내라는 말은 하나도 위로되지 않았다. 그 증거를 입수하기 전까지는 연기해야한다. 석훈은 더 더욱 처량해졌다.

  띠.띠.띠.띠 철컥, 저녁8시 수희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희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밝다.

  “오빠 나 왔어~”

  석훈은 쉼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어 왔어,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었고 재밌게 놀다 왔어?”

  “응 오늘 완전 많이 먹어서 한 2키로 쪘을 거 같아. 히힛” 석훈이 은근슬쩍 떠본다.

  “그래, 좋은 거 많이 먹고 건강해져야 애기도 빨리 생기겠지.”

  “그럼 나 오늘 완전 잘한거네? 크큭 칭찬해줘!”

  “그래 잘했어.” 석훈은 자신의 말에 조금도 변하지 않는 수희의 얼굴을 보고 역겨웠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표정관리가 안 되었다. 급하게 배 아픈 척을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 갔다. 석훈은 변기에 앉아 계속 되뇌었다.

  ‘석훈아 너도 연기를 해야해, 수희가 저렇게 나온다면 너도 마음 굳게 먹고 연기를 해야해. 마음 굳게 먹자 석훈아.’ 그렇게 석훈은 계속해서 자신을 갈아먹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수희가 석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오늘 친구들이랑 언니들이 가방 완전 이쁘다고 난리 났었다! 나 보고 결혼 잘했다고 오빠 칭찬도 완전 많이 하고 오늘 오빠가 나 기 완전 살려줬어! 어매 기 살어! 나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결혼 잘한 년 됬다!? 진짜 진짜 사랑해~”하고 팔을 활짝 펼쳐 석훈의 가슴팍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때 수희를 거부하며 “나 방금 화장실에서 나왔어, 냄새나” 수희도 펼쳤던 팔을 무안하게 접었다. 수희의 무안해하는 얼굴을 보고 석훈은 아차 싶어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탕탕치며 “여기 앉아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는 해야지”

  수희가 금새 밝아져서는 쪼르르 석훈의 옆에 앉아서 조잘조잘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했다. 내용은 대부분 자신의 자랑이거나 친구들의 험담이었다. 석훈은 계속 웃어주고 맞장구치며 자신을 스스로 좀먹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다.

  수희가 피곤했는지 석훈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빠 이제 자러가자 흐암~”

  “난 오늘 낮에 많이 자서 그런지 졸리지 않네, 먼저자 나 티비좀 더보다 들어갈게.”

  “알겠어, 나 먼저 자러 간다. 내일 출근하니까 너무 늦게까지 보지 말고”

  “알겠어.”

  척 안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석훈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날 밤 석훈은 잠을 거의 못자다 시피 했다. 동이 틀 무렵 지쳤는지 그제서야 잠이든 듯했다.

  ‘굿모닝~빠빠빠빠빰’ 휴대폰에 아침 알람이 울린다. 석훈을 일어나 씻었다.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부스럭 소리에 수희가 잠에서 깼다. 수희가 잠긴 목소리로 석훈에게 물었다. “오빠 어딨었어? 새벽에 깼을 때 옆에 없던데”

  석훈이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 티비 보다가 소파에서 잠들어 버렸어.”

  “으응 그랬구나, 잘 다녀오고 난 다시 잘레”하고 수희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석훈은 지난 밤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이불을 걷어 젖히고 수희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다녀올게~ 저녁에 봐.” 그렇게 석훈은 회색빛으로 물든 집안을 나섰다.

  석훈은 감정이 다 죽어버린 사람처럼 하루 종일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직장 동료들은 너도 나도 그런 석훈을 보며 무슨 일 있냐고 표정이 너무 안 좋다며 걱정하는 소리들을 해댔다. 석훈을 멋쩍게 웃으며 어제 잠이 안 와서 늦게까지 티비를 봤더니 피곤하다며 핑계를 댔다.

  그렇게 별일 없이 저녁이 되었다. 문앞 석훈은 퇴근하고 집문 앞에 서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락하고 포근한 나의 집이 었는데... 출근 보다 퇴근이 싫어질 줄이야, 괜히 실소가 나온다. 회색빛 세상이 되어버린 집은 석훈을 좀 먹었다.

  띠.띠.띠.띠 철컥 집에 들어서니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맛있는 냄새 나네 김치찌갠 가봐?”

  “아 놀래라! 뭐야 소리도 없이 들어와!”

  “소리냈어! 자기가 못 들어 놓고는...”

  “배고프지? 씻고 나와 밥 다 될려면 아직 좀 남았어.”

  “김치찌개엔 계란말인데 나 계란말이도 해줘.”

  “그래, 알겠어.” 탁. 안방에 들어선 석훈의 얼굴엔 방금 있었던 표정이 없어졌다.

  석훈은 화장대로 갔다. 어제 있었던 15라는 숫자가 없어졌다. 다시 조용히 서랍을 닫았다. 석훈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옅은 피 맛이 입안에 퍼진다. 밖에서 수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밥 다됬어 나와~”

  “배고프다” 석훈은 매일 그랬던 것처럼 수저를 놓고 주걱을 들었다.

  “수희야 밥 많이 먹을 거야?”

  “나 어제 완전 많이 먹어서 조금만”

  “알겠어” 밥 두 공기를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수희도 찌개를 내오며 식탁에 앉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때만 해도 수희는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이 관계가 깨진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석훈과 수희는 여느 일상처럼 저녁을 보냈다.

  석훈이 경계심이 없는 수희에게 증거를 얻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석훈이 실수인 척 수희의 핸드폰에 음료수를 엎었다.

  “어 수희야 미안 어떻하지? 수리 맞겨야 될 거 같은데.”

  “히잉...오빠...짜증나...” 수희가 볼맨소리로 투정했다.

  “회사 근처에 서비스 센터있는데 너만 괜찮으면 내가 가져가서 수리해서 퇴근할 때 찾아올게.”

  “그럴까? 나 답답해서 어떡하지?”

  “컴퓨터에도 메신져 깔려있고 SNS있으니까 오늘 저녁까지만 참자, 서비스 센터가려면 버스타고 한참 가야하자나.”

  “씨잉~ 알겠어. 오빠땜에 의도치 않게 디지털디톡스 하게 생겼네.”

  “그래...내 덕에 건강해 지겠네. 나 그럼 출근한다.”

  “그래 지녁에 일찍와~.” 철컥 문이 닫혔다. 석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회사로 그리고는 회사로 전화했다. “부장님 박석훈대리입니다. 아침부터 갑자기 와이프가 아파서요. 오전 반차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네..그럼 오후에 보게”

  “네 감사합니다. 다신 이런일 없게 하겠습니다.”

  “아니네, 갑자기 그렇다는데 괜찮네.”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 석훈은 서비스 센터로 가서 휴대폰을 수리하고 걸려있던 잠금장치도 풀어 증거를 수집했다. 대화방의 내용은 심각했다. 단 몇 일 사이에 감정이 메말라버린 석훈은 분노도 슬픔도 없이 담담히 그 내용들을 읽어갔다.

  대화방에는 남편들을 향한 음담패설, 시댁을 향한 욕, 그 중에는 지어낸 말도 많았다.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희의 말은 거짓도 있었다.

  ‘이번 명절수희는 왜 자기가 시댁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이럴려고 결혼했나’ 면서 신세 한탄하고 있었다. 실상은 저번 명절에 석훈의 본가에서 명절을 보내 이번에는 처가댁에서 명절을 보냈다. 외동딸을 둔 장인어른댁을 위한 석훈의 배려였다. 지훈도 이번 명절에는 내려오지 못해 석훈의 부모님은 이번 명절에 두 분이서 조용히 보내셨다.

  이제는 ‘수희가 왜 저렇게 이야기 했을까?’란 의문도 없었다. 그냥 이년은 그런 년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야기를 지어내면서까지 자신이 더 불쌍해야 돋보인다는 여자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출근을 했다. 석훈이 회색빛 표정으로 부장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오전에 배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죄송한데 내일 휴가 좀 써도 되겠습니까?”

  “아내가 많이 아픈가?”

  “네, 좀 상태가 내일만 좀 부탁드립니다.”

  “오늘 그냥 휴가 쓰지 그랬나.”

  “오늘 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반가만 썼습니다.”

  “그래 바쁘게 해야할 업무는 없지?”

  “네”

  “알겠네, 그럼 일보게”

  “네 부장님, 감사합니다.” 석훈은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봤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동료들이 고생했다고 내일 보자고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석훈이 쓴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내일 저 휴가라서 모래 뵙겠습니다.”

  “석훈씨 요새 무슨일 있어? 얼굴도 안 좋구 오늘 반차에 내일 휴가도 쓰고...”

  부장이 퇴근하다 말을 보탰다.

  “박대리 와이프가 좀 아프다네...” 동료들이 수긍하는 얼굴로 힘내라고 인사말을 하며 일어났다. 석훈도 대충 정리하고 퇴근을 했다.

  띠.띠.띠.띡 철컥 석훈이 회색빛 세상에 들어섰다. 유채색의 세상에서는 회색빛 표정이었던 석훈이 오히려 회색빛 세상에서는 유채색의 얼굴을 하고 있다.

  “수희야 나왔어~”

  수희가 저녁을 하다 말고 달려 나와서는 휴대폰부터 찾았다.

  “앗! 오빠 휴대폰은?”

  “여기 깨끗하게 고치고 새로 코팅도 해서 왔다. 어째 나보다 휴대폰을 더 기다린 거 같네.”

  “섭섭했다면 미안, 밥 되려면 아직 좀 남았어 씻고 나와.”

  “그래” 탁! 안방 문이 닫혔다. 회색빛 표정의 석훈은 화장대로 가 다시 한번 피임약을 찾아본다. 어제 있었던 16번 알약이 사라졌다. 질끈, 핏빛이 입안에 퍼진다. 그렇게 그날 저녁도 여느 저녁처럼 흘러갔다.

  그날 밤

  “오빠 자러가자.”

  “너 먼저 자, 오늘 휴대폰 때문에 일찍 온다고 일 다 못해서 업무거리 가져왔어.”

  “아까 저녁 먹고 하지그랬어.”

  “너 오늘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었는데 놀아줘야지~”

  석훈의 따뜻한 말...수희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석훈이 너무 좋았다. 결혼하길 너무 잘했단 생각을 했다.

  수희를 먼저 재운 석훈은 서재의 컴퓨터 앞이다. 타닥.타다닥.타다다닥. 오늘 모은 증거를 정리 중 이다. 불이 꺼진 검은 모니터의 불빛은 처량한 석훈의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석훈은 증거를 정리하면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배신감에 의해 그저 복수하기 위해 이혼을 생각했지만 지금 카톡 내의 대화 내용과 하루하루 없어지는 피임약 사진을 보면서 난 복수를 위해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화가 나서가 아닌 이 사람과는 행복할 수 없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순간의 분노로 선택한 이혼이었지만 완벽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초연하고 처량해졌다. 그렇게 석훈은 처량히 모든 것을 정리중이었다.

  드디어 마무리의 시작이 밝았다. 석훈은 씻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옆자리에는 수희가 누워 있었다. 수희를 잠깐 쳐다 보고는 이내 방문을 나섰다. 그때 석훈의 눈에는 어떠한 분노도 없었다. 그저 수희에 대한 연민과 거부감 뿐이었다. 부스럭 소리에 수희가 잠에서 깼다.

  “오빠 출근 준비중이야?”

  석훈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회색빛 표정으로 수희를 쳐다보곤 방에서 나왔다. 석훈은 더 이상 유채색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수희가 방에서 따라 나와서는 소리쳤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왜 사람 말을 무시해?” 석훈이 집을 나서면서 쳐다도 보지않고 이야기 했다. “오늘 일찍 들어올 게 기다리고 있어.” 철컥! 탁! 회색빛 대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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