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 순. 남.
도윤은 강현의 말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철벽녀 서지담이 연애를 하게 된 것은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런 지담도 세윤과 도윤에게 진심으로 축하해줬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지담은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지담이 도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도윤아 잘 먹었어”
강현이 낸다는 걸 굳이 도윤이가 식사비를 냈다.
“뭘~우리 사귀는데 네 공이 컸다고 들었어...고마워”
“이쯤에서 우린 빠져줄게...데이트 잘해”
둘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지담은 빠져주기로 했다.
“우리가 빠져줄게...데이트 잘해...헤헤”
세윤이 받아쳤다...그런 세윤을 흘겨보는 지담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죠.. 세윤씨 잘 가요”
강현은 도윤과 세윤에게 인사를 했다.
“네, 자주 보면 좋겠네요, 다음엔 술 한잔해요”
도윤도 인사를 했다. 강현은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강현의 차에 올라탄 지담은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타고 간 차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도윤은,
“저 두 사람 괜찮을까?”
하고 걱정스럽게 세윤에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연애에 있어서 겁이 많은 지담이에게는 저렇게 적극적인 이 선생님 같은 남자가 어울려... 딱이야 딱”
“그래 너한테는 나같이 진국인 남자가 딱이고?‘
“뭐~어? 네가 무슨 사골곰탕이냐? 진국이 뭐냐, 진국이...”
“그럼 뭔데?”
“음~세.순.남이지...”
“세순남? 그게 뭐야?”
“세윤이에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 큭큭”
“뭐~? 참~나...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렇지?”
하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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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은 집에 들어가려는 지담을 차 한잔하자며, 기어코 집 앞 카페로 그녀를 이끌었다.
하루종일 같이 있었는데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강현은, 잠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근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그런다고 내 얼굴에 구멍이 나겠어?”
지담은 민망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냥....이 얼굴 여기에 많이 담고 싶어서....”
강현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지담은 가슴이 저릿했다. 왜 그의 말이 이다지도 슬프게 들리는지...
“왜? 어디가? 꼭 마지막인 것처럼 말하네”
“그건 아니고... 3개월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당신 모습 잘 간직해 두려고... 왜, 마지막인 것 같아서 아쉬워? 그런 감정 아주 좋아, 잘하고 있어~”
하고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봉사활동은 계속해... 그건 당신 책임감과 신뢰에 관한 문제니까”
“큭큭...이 상황에서도 당신은 일밖에 모르는군... 그래야 서 지담인가?”
“그럼~그래야 나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일을 쉬어본 적이 없어”
“그래?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의 질문에 지담은 피식 웃고는,
“뭐, 이것 저것 했어. 과외, 편의점, 카페 기타 등등? 부잣집 도련님께서 학비 걱정을 했겠어~먹고 살 걱정을 했겠어? 난 스무 살이 되던 해 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어. 학비야 장학금으로 어떻게든 마련했는데, 생활비는 벌어야 했거든... 어때? 나, 이만 하면 기특하지 않아?”
“기특하네... 학비를 장학금으로 다녔다면 공부도 잘했다는 말이네”
“뭐, 공부도 좀 했지만... 장학금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 아~도련님은 그런 거 모르겠구나~큭큭”
“모르는 건 맞는데, 우리 집이 그렇게 부자는 아니야... 먹고 살 정도?”
“으이구~어련하시겠어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러고 보니 당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네”
“뭐, 호구조사라도 하려고?”
“그럼 안 되는 거야?”
“궁금한 게 뭔데?”
“형제는? 부모님은? 어릴 때 서지담의 모습은? 등등 궁금한 건 많지”
“별게 다 궁금하네... 형제는 남동생 하나 있고, 부모님은......”
지담은 거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뭐해?”
화제 전환을 한 강현을 보고 피식 웃고는,
“군대 갔어... 나랑 나이 차이가 좀 나거든... 아직 철부지지”
라고 지담은 철부지 남동생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언제 한 번 면회 가야겠는데? 우리 처남한테...”
“또 앞서 간다...이러니까 나한테 욕먹는 거야”
“괜찮아, 당신한테 듣는 욕은... 하하”
못 말린다는 듯 지담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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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강현은 선호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퇴근 후, 지체없이 선호에게 달려간 강현은,
“어떻게 된 일이야? 약혼이라니...”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선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호가 무턱대고 아버지께 너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나 보더라... 철없는 딸, 비위 맞추느라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너희 집에 연락하신 것 같은데,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야지... 너무 걱정 하지마”
“우리 아버지는 이 약혼 성사되길 바라셔”
강현이 머리를 세차게 쓸어 넘기며 말을 했다.
심각한 강현의 모습에 선호는,
“짜~식~, 나도 매제가 네가 되는 건 싫어, 인마”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송 회장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려야겠어”
“알았어, 일단 내가 먼저 말씀드리고 약속 정할께... 그건 그렇고, 네가 안고 간 그 여자는 누구야?”
선호는 지난번 연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강현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
“뭐?”
선호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어떤 여자야? 어떤 여자길래, 천하의 이 강현 마음을 사로잡았냐?”
“너도 알걸? 그 술집 바(bar)에서 90도 인사를 하고 그 자세로 자던 여자....”
“뭐,뭐라고!!”
선호는 아까보다 눈이 더 커졌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