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 바위 1
집채만큼 큰 두꺼비 바위는 흰색과 회색이 섞인 것으로 보아 원래는 화강암인 것 같은데,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표면이 우둘투둘해졌고 검은 색깔의 흠집이 많이 박혀있다.
높이가 거의 3m에 가까워 보이는 두꺼비 바위는 꼭 산꼭대기를 향해 기어가다 엎드린 두꺼비 형상을 하고 있는데, 등 쪽 부분은 평평하게 생겼다.
높기는 해도 몸통 중간에 구부린 다리처럼 층도 져 있고, 불룩불룩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서 맨손으로도 쉽게 두꺼비 등 위에 오를 수는 있을 것 같다.
세희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폭은 두꺼비 바위보다 좁지만 높이는 훨씬 높은 바위 세 개가 두꺼비 바위를 에워싸고 둘러서 있다.
둘러선 세 바위는 서로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밑에서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폭이 반쯤 좁아져 수직 벽을 이루며 곧장 솟아올랐다.
얼핏 보면 전통방식으로 혼례를 치를 때 신랑이 착용하는 사모관대의 배불뚝이 모자처럼 생겼다.
신랑 모자 바위는 표면에 별다른 흠도 없고 매끄러운 수직면이라서 긴 사다리를 걸치지 않고는 올라갈 수가 없는 형상이다.
그런데 이 세 개의 신랑 모자 바위들의 배치된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산마루로 기어오르는 두꺼비 앞에 가로막아선 신랑 모자 바위나, 두꺼비 뒤에 좌우로 서 있는 두 개의 신랑 모자 바위가, 두꺼비 바위를 중심으로 거의 정삼각형을 이루고 둘러서서 두꺼비 바위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이다.
두꺼비 바위에서 각각 10m 정도 떨어진 세 개의 신랑 모자 바위 높이는 5미터쯤 되어 보인다. 불룩한 아랫부분이 3m 정도이고 절반의 폭으로 가늘어져 올라간 윗부분은 2m쯤 되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자연적으로 위치를 잡은 것 같지 않고 누군가가 원래 여기 있던 두꺼비 바위 옆에 신랑 모자 바위 세 개를 끌어와서 배치한 것처럼 보인다.
“어머, 저 길쭉한 바위 세 개는 두꺼비 바위하고 재질이 다른가 봐요. 표면에 흠집도 별로 없이 매끈해 보이네요?”
정훈의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세희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죽이며 정훈에게 말했다.
“그렇죠? 나도 처음 여기에 와봤을 때 이 장소가 혹시 고대인들의 부족장 무덤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정훈이 애정 어린 눈으로 세희의 맑은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무덤이요? 어디에 파묻었다는 말씀인가요?”
세희가 무덤 같은 흙무더기가 없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의아해했다.
“고인돌이라고 들어봤죠? 지석묘라고도 하는.”
“예. 선사시대의 무덤이잖아요. 돌 두 개를 괴인 돌로 해서 그 위에 큰 돌을 얹고 그 밑에 생긴 공간에 시신을 안치하는 거 맞지요?”
“맞아요. 잘 알고 있네요. 우리 한반도에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있답니다. 한마디로 고인돌 왕국이지요.”
“어머, 정말이에요? 그럼 우리 한반도에 옛날에는 제법 큰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어쩌면 상당한 힘을 가진 고대 부족국가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고인돌이 여기 어디에 있다는 말씀이에요?”
다시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게 생긴 돌무덤은 보이지 않는다.
“이 두꺼비 바위가 위에 얹은 큰 돌이고, 이 땅속 깊숙한 곳에 굄돌 두 개가 있을지도 몰라요. 수천 년, 아니면 수만 년 전에 만들었다면 오랜 시간 동안 아랫부분은 흙 속에 파묻혔겠죠?.”
“아, 예. 그렇겠네요. 그럼 저 모자처럼 생긴 바위 세 개는 뭘까요?”
“이 두꺼비 바위 밑에 묻힌 분이 부족장 정도가 아니고, 여러 부족을 통솔하던 통일된 국가의 왕일 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특별히 저 입석 세 개를 더 만들어서 왕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는지도 모르죠.”
“아, 예. 이집트 파라오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와 비슷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저 모자 바위 세 개가 약간 두꺼비 바위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요? 땅속 깊이 있는 바위 밑둥치에서 생각하면 바위 세 개가 삼각뿔, 그러니까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정사면체를 이루고 있다고 봐도 될 거예요. 그 피라미드의 중심에 있는 두꺼비 바위 밑에 왕의 관이 놓여있을지도 모르지요.”
“예. 듣고 보니까 그럴 것도 같은데요. 그러면 이 두꺼비 바위가 아주 신성한 바위가 되는 셈이군요. 그래서 저한테 보여주려고 데려온 거군요.”
세희가 이제야 왜 자기를 이곳까지 데려왔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주 엄청난 걸 보여주려고 온 겁니다.”
정훈이 일부러 무서운 얼굴을 만들며 분위기를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예? 이것보다 더 엄청난 게 있다고요? 그게 뭔데요?”
세희의 예쁜 눈매가 놀란 토끼 눈으로 변했다.
“너무 엄청난 비밀이라 그냥 맨입에는 보여줄 수 없는데 어떡하죠?”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정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작업 거는 카사노바 표정으로 변신했다.
“아힝~ 놀리지 마시고 보여주세요. 잉~”
세희의 목소리가 갑자기 아양 떠는 코맹맹이로 변했다.
이제 드디어 멋진 키스 신을 보여주려나?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럴까요? 우리 세희 씨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으니까 그럼 특별히 공짜로 보여줄게요. 자, 옆으로 돌아서 보세요.”
“옆으로요? 왜요?”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정훈을 올려다본다.
앞으로 키스해주면 저번처럼 눈감고 가만히 있을게요. 옆으로 키스하면 더 짜릿한 건가요?
시키는 대로 옆으로 돌아서자, 정훈이 갑자기 왼팔로 세희의 목을 감싸 안으며 몸을 밀착했다.
“어머, 어머. 정훈 씨.. 음···”
세희는 드디어 키스하시는구나 싶어 살며시 눈을 감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자 정훈이 왼팔로 세희의 몸을 당기는가 싶더니, 오른팔을 세희의 엉덩이 아래로 밀어 넣고 양쪽 허벅지를 감싸 안으며 번쩍 들어 올렸다.
‘어머나! 들어 올려서 공중부양으로 키스하는 방법도 있는가 보네? 애음.. 어떤 기분일까?’
눈을 감은 채 정훈의 품으로 파고들며 한 번 더 입속에 고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정훈의 볼이 이마에 닿는가 싶더니 그 순간,
세희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허공으로 솟구치며 구름처럼 붕 떠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아.. 이 상태로 키스 받으면 나는 한 마리 짝짓는 새가 되겠네? 으음.. 정훈 씨···’
세희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몽롱해진다.
그런데, 정훈의 입술은 아직 세희의 입술 위에 포개지지 않은 채 발바닥을 누르는 체중이 다시 정상으로 느껴졌다.
살며시 눈을 뜬 세희는 휑한 주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이게 어찌 된 거죠?”
정훈과 자기가 높은 두꺼비 바위 위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놀랐어요? 내가 엄청난 걸 보여준다고 했잖아요. 하하.”
정훈이 놀리듯이 웃었다.
“아니, 아니.. 지금 정훈 씨가 저를 안고 이 바위 위로 뛰어 올라온 거예요? 세상에나~”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세희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어떻게 자기를 안고 3m나 되는 높이를 뛰어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세희 씨, 놀라지 말고 내 말 잘 들어요. 나한테 신비한 능력이 있어요.”
놀란 세희를 안정시키며 정훈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어머, 정말요? 정훈 씨한테 그런 엄청난 능력이 있어요?”
지금 눈으로 봤으니 더 확인할 게 뭐 있나. 믿을 수밖에.
"이 스마트팔찌가 보통 손목시계가 아니에요. 이걸 차고 있으면 내 다리의 근력이 다섯 배 이상 강해져서 이 정도 높이는 쉽게 뛰어오를 수 있어요.”
정훈이 진지한 얼굴로 천천히 설명했다.
“어머나! 진짜로 이 스마트팔찌가 그런 기능을 가졌어요? 이런 걸 어디서 구하셨대요?”
“구한 게 아니라, 선물로 받은 겁니다.”
“선물로요? 누구한테서 받으셨는데요?”
“예. 얘기하자면 긴데, 일단 진정하고 들어봐요. 여기서 보니까 저 모자 바위들이 어떻게 보여요?”
“모자 바위요? 음.. 3면에 설치한 돌로 만든 칠판처럼 보이는데요?”
“그렇게 보이죠? 제대로 봤네요. 저~기, 두꺼비 머리 앞쪽에 있는 바위 중간을 잘 살펴봐요. 다른 두 개 바위하고 다른 게 있죠?”
두꺼비 앞에 선 모자 바위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아래위가 구분되는 턱이 진 중간 부분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다람쥐가 물어온 솔방울이 바위틈에 싹을 틔웠는지, 작은 낙락장송처럼 제법 곁가지도 늘어뜨린 모습이 분재 화분에 옮겨다 심으면 관상용으로 볼만하게 생겼다.
“예쁘게 생긴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요?”
“그렇죠? 저 소나무 뒤의 바위 표면을 잘 살펴봐요. 뭔가 이상한 게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솔잎에 가린 모자 바위 표면이 다른 부위와 다르게 매끄럽게 생겼다.
마치 손바닥만 한 비석용 오석(흑요암)을 갈아서 자연스럽게 덧붙여 놓은 것처럼 암회색을 띠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화강암이 생성되면서 모래 성분인 규소가 녹아서 오팔 보석이 되려다 만 것처럼 보인다. 제대로 형성됐더라면 입사하는 햇빛의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반사하는 프리즘 쇼를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꼭 무슨 오팔 보석 되려다 만 것 같은 돌이 박혀있는데요? 거울처럼 반질반질해서 마치 유리 반사경 같아요.”
여자라서 보석에 대해서는 잘 아는 모양이다.
“맞아요. 저게 진짜 반사경입니다.”
“진짜로 반사경이라고요? 누가 일부러 저렇게 만들어서 박아뒀다는 말씀인가요?”
“그래요. 저게 홀로그램을 만드는 반사경이에요. 홀로그램은 알죠?”
“예. 입체 영상 맞지요? 그런데, 저 반사경만 있으면 홀로그램이 만들어지나요?”
“아니에요. 홀로그램을 만들려면 세 가지 장치가 필요해요. 첫째가 레이저광선을 만드는 제너레이터인데, 저기, 뒤쪽 우측에 있는 모자 바위 속에 있어요. 둘째는 발사된 레이저를 절반은 투과시키고 절반은 반사하는 빔 스플리터인데, 뒤쪽 좌측의 모자 바위 속에 있어요. 셋째가 앞에 보이는 반사경입니다.”
“아, 그러면 저 모자 바위 세 개 속에 숨겨진 장치로 홀로그램을 만든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면 홀로그램은 어디에 나타나는데요?”
“예. 어딘가에서 보내온 홀로그램은 바로 여기 우리가 서 있는 두꺼비 바위 위에 재생돼서 나타납니다. 거꾸로 우리를 찍은 영상은 그 어딘가로 동시에 보낼 수도 있고요.”
“그래요? 정말 신기하네요. 그런데, 그 어딘가가 어디예요?”
“예. 그곳이 어디냐 하면, 저 멀리 우리 태양계 밖에 있는 외계의 행성입니다.”
“예? 외계의 행성이라고요? 그럼.. 외계인?”
“맞아요. 우리 지구에서 14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울프-1061c 라는 행성입니다. 약 4년쯤 전인 2015년 12월에 관측되었어요.”
“어머, 그럼 정훈 씨가 차고 있는 이 스마트팔찌를 그 울프라는 외계 행성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선물로 받으셨다는 말씀인가요?”
“그래요. 바로 여기에서 3년 전에 울프-1061c에 사신다는 어떤 분을 만나서 받았어요.”
“어머나! 그럼 정훈 씨가 그 울프에 사는 외계인과 만나셨다는 거예요? 어떻게 생겼던가요? 괴물처럼 생기지는 않았어요?”
“아니요! 전혀, 우리하고 꼭 같이 생겼어요. 머리는 하얀 머리칼을 올려 묶어 상투를 튼 백발도인 같은 스타일인데, 얼굴은 수염도 없고 40대 초반으로 보였어요. 주름도 없는 피부는 약간 붉은 기운이 돌았어요.”
“그랬어요? 그럼 옷은 뭐 어떤 걸 입었던가요?”
“옷차림은 우리 개량 한복이나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오는 도복처럼 생긴 연한 갈색 옷을 입었던데요.”
“어머, 그럼 진짜로 외계인이 존재하고 있군요! 아 참. 그런데, 그분이 실물이 아니고 홀로그램이라면서요?”
“예. 만났을 그때 그분은 울프 행성에 있으면서 형상만 여기에 나타나서 나하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한 겁니다. 내 모습도 그분이 있는 곳에 나타났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실물인 스마트팔찌를 받았다는 거예요?”
“아, 이거는 그분이 나를 만나기 오래전에 가져와서 저 낙락장송 소나무 밑에 숨겨뒀대요. 그래서 그날 내가 실물 스마트팔찌를 받은 겁니다. 하하.”
“아, 그랬군요. 그럼 그날은 팔찌 차기 전이니까, 저기에 사다리 걸쳐놓고 올라가셨겠네요?”
“아니에요. 내가 뭔가에 끌려서 올 줄 알고, 어떤 녀석을 시켜 미리 파내서 내가 그분과 얘기하는 사이에 나 모르게 슬쩍 뒤에 갖다 놨던 거에요.”
“예? 어떤 다른 외계인이 여기에 와 있다고요?”
“그래요. 사람은 아닌데, 지능도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동물이에요.”
“어머나~! 그럼 14광년이나 멀리 있는 행성의 외계 생명체가 지구까지 올 수 있다는 말씀이에요?”
“그럼요. 그 행성은 기술 문명이 지구보다 200년쯤 앞서 있어서 여기까지 비행체를 타고 오는데 60일 정도밖에 안 걸린대요.”
“어머나~ 정말 놀랍네요. 그럼 우리가 그 울프 나라 사람과 언젠가는 직접 만나볼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그 스마트팔찌를 몰래 갖다 놓은 지적인 생명체는 여기 어딘가에 지금 살고 있다는 말씀 아닌가요?”
“그래요. 지금 한번 만나 볼래요?”
“예? 지금 만나볼 수 있다고요?”
“그래요. 부를 테니까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작은 도마뱀이거든요. 아주 귀엽게 생겼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