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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진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작가 : 화산호
작품등록일 : 2020.9.11

“나랑 사귀자!”
진심 1도 없는 고백이란 걸 알지만
커플이 되어 살아남아 우승해야만 끝이 나는 유튜브 인기 방송,
<리얼 청춘 낭만 서바이벌 쇼: 하이틴 스캔들>에 출연하게 된 12명의 고등학생들.
서로의 정체를 살피며 아슬아슬한 연애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한다.

뭔가 유치한 프로그램에 쭈뼛쭈뼛 참가하게 된 권재하!
최대한 존재감 없이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첫 번째 탈락자가 되는 것이 원래 목표였다.
그런데!
왜 나보고 웃어 자꾸!
왜 삼겹살 그거 내 밥에 올려주고 난리야!
분명히 날 좋아하는 게 아니란 걸 아는데
이러면 탈락하기 싫어지잖아.
점점 살아남고 싶어진다고!
다음 라운드에서도 너를 계속 보려면
다른 애한테 고백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진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 애에게 그러면 나는 완전 양아치잖아.

 
11. 이런 몰골로 초라한 탈락자가 될 수는 없다.
작성일 : 20-09-20 00:14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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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7시 10분.

 미션 마감까지 4시간도 안 남았다.

 재하는 일단 우서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에 힘을 꽉 주고 마치 싸울 듯 노려보았다.

 “알겠지?”

 우서진도 만만찮은 눈빛으로 재하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션을 완성하려면 꼭 그 말을 해야 해!”

 재하의 말에 우서진이 썩은 우유를 마신 표정을 지었다.

 사귀자! 혹은 사귈래? 사귈까?

 우서진의 표정을 보며 재하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하냐? 다른 말 안 돼? 의미만 통하면 되지!”

 재하 역시 우서진의 생각과 같아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아. 많고 많은 말 중에 꼭 그걸 시키고 싶냐고!”

 하이틴 스캔들의 시그널인 고백의 말은 정해져 있었다.

 좋아한다, 니가 좋다, 사랑한다, 너만 보면 마음이 떨린다, 등등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결국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하지 않으면 공식적인 고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귀자.

 “그럼 너희는 고백할 때 뭐라고 하고 싶은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승호가 물었다.

 “글쎄.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뚱하게 대답하는 재하와는 달리 우서진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내가 항상 웃게 해줄게!”

 “오오!”

 이승호의 격한 호응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우서진이 계속 말했다.

 “너한테만 그네도 밀어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별도 보여줄게!”

 한껏 우쭐해져서 이 정도는 돼야 고백이라는 듯 우서진이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대박! 웬 그네?”

 재하가 낯간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우서진이 설명했다.

 “그네 그거 아무나 밀어주는 거 아니라고! 딴 애들처럼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묵묵히 내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숭고한 마음이야.”

 이승호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 그래. 나중에 너만의 그녀에게 꼭 그렇게 해주고! 일단 미션에 집중해!”

 재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근데 재하 너는 이거 서바이벌인거 몰라? 니 미션도 아니고 왜 우서진 미션을 돕고 있어?”

 이승호의 물음에 재하는 멈칫했다.

 책임감이 들었다.

 고백을 하지도 않을 거고, 받아주지도 않을 거라고 했던 우서진을 재하가 부추겼으니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프로그램 룰도 잘 모르고 미션도 아직 못 한 것이 나랑 비슷해서?”

 재하의 말에 이승호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래 서로 도우면 좋지 뭐. 일단 나는 강당 샤워실 간다! 우서진 갈래?”

 이승호가 묻자 우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재하를 향해 말했다.

 “근데 너 아직 대답 안했다!”

 ‘마음 바뀌었어? 최종 라운드까지 갈 거야?’

 재하는 우서진의 물음에 먹기 싫은 음식을 앞에 둔 것처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재하를 본 우서진은 휙 돌아섰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됐다! 마음 바뀌었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건가?

 재하가 탈락을 하든, 계속 도전을 하든 우서진이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우서진이 재하의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뒤돌아서서 가버리자 재촉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허전한 마음이 컸다.

 아! 도대체 어쩌라고? 뭘 바라는 거야, 너는?

 아무리 내 자신이지만 정말 짜증난다, 정말! 답답이!

 재하는 두 팔로 감싸 안은 무릎에 이마를 쿵쿵 박으며 스스로에게 화풀이를 했다.

 

 오전 8시.

 미션 마감까지 3시간 남았다.

 재하는 다른 여자애들이 몰리기 전에 강당 2층에 있는 여자 샤워실로 갔다. 씻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송PD에게 제데로 협박 받았기 때문이다.

 우서진과 이승호가 씻으러 가자마자 송PD가 나타났다.

 “재하 학생?”

 재하는 송PD의 목소리만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네?”

 하지만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일찍 일어났네? 다행이에요! 여기 이거! 받아요!”

 재하의 교복이었다. 송PD는 말끔히 세탁된 교복을 재하에게 들이밀었다.

 어제 오후, 김산을 만나기 위해 장미정원으로 가기 전 매점을 지나다가 어떤 애랑 부딪혔었다. 그 애가 들고 있던 컵라면이 재하 교복에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교복은 사망했었다.

 다행히 다 먹고 국물만 남은 것이라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송PD가 끔찍해 하는 체육복을 입고 촬영에 왔어야 했다.

 송PD가 어제 저녁 더러워진 교복을 달라고 했던 것이 세탁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재하는 얼떨떨했다.

 “감사합니다!”

 교복을 받아들며 재하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송PD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너무 안 꾸미는 것이 오히려 튀는 거 알죠? 대충은 따라가 줬으면 좋겠어요.”

 재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재하가 영 못미더웠던지 송PD는 힘을 주어 한 마디 더 보탰다.

 “추가 촬영하고 싶은 것 아니면 오늘은 제대로 하고 나와요!”

 그 말은 재하를 샤워실로 보내기에 충분했다.

 재하는 처음 와보는 샤워실을 둘러본 후, 락커룸에 있는 사물함 하나를 열어 교복을 걸었다. 말끔한 교복에서 세탁소 냄새가 났다. 깨끗한 냄새였다.

 송PD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재하는 서둘러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로 머리까지 감고 나왔는데도 찌뿌둥한 몸은 그대로였다.

 머리를 말리려고 거울 앞에 선 재하는 거울 속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재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다.

 이런 얼굴을 들고 여태껏 돌아다녔단 말이야?

 팍 삭아있었다.

 충혈 된 눈과 다크써클은 그나마 괜찮은 부분이었다. 이마 한쪽에는 벌겋게 성이 난 여드름이 악마의 뿔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얼굴색은 불그죽죽했고, 입술엔 각질이 일어나 터실터실했다.

 샤워가 아니라 병원에 갔어야 했다.

 마지막 촬영이라서 예쁘게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는 보이고 싶었는데 다 망했다.

 그 애는 이런 얼굴로 나를 기억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니 코끝이 시큰했다.

 앗! 울면 안 돼!

 여기서 눈까지 붓고, 코까지 빨개지면 못난이 탈바가지처럼 보일 것이다.

 거울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재하는 힘이 하나도 없는 드라이기로 대충 머리만 말리고 락커룸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락커룸에 들어온 순간 재하는 눈앞이 하얘졌다.

 어? 교복이 왜?

 분명 사물함에 잘 걸어뒀던 교복이 락커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가 집어던지고 밟은 듯 구겨지고 더러워져 있었다.

 온 몸의 피가 이마로 몰리면서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누가 이 딴 짓을!

 재하는 자기가 샤워하는 틈에 누가 몰래 들어왔었다는 것도 소름끼쳤고, 악의적인 괴롭힘도 무서웠다.

 몸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더 꽉 여몄다. 그리고 숨죽여 주변을 경계했다.

 락커룸은 좁았다. 열 명 정도 들어오면 꽉 찰 정도의 크기였다. 양쪽 벽에는 철제 사물함이 고정되어 있었고 누가 숨을 만한 사각지대나 틈은 없었다.

 재하는 사물함을 열어 다른 소지품을 살폈다. 벗어둔 체육복과 안경, 스마트워치, 지갑은 그대로였다. 교복만 건드린 것 같았다.

 그 때 샤워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시끌시끌해졌다. 여자애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출입문 손잡이에 학생증을 갖다 댔는지 삑 소리와 함께 샤워실 바깥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하! 우리 왔어.”

 강나연의 목소리였다.

 재하는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교복을 챙겨 사물함에 넣었다. 그리고 반쯤 젖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려 얼굴을 조금만 드러냈다.

 “왔어? 근데 여기 드라이기 극악이야. 머리가 마르질 않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며 재하는 락커룸으로 들어오는 여자애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러네? 나가서 바깥바람에 좀 말려야겠다.”

 차해인이 쇄골 아래로 내려오는 재하의 긴 머리를 보고 말했다.

 “물은 잘 나와?”

 김희윤이 체육복을 벗으며 말했다.

 어젯밤 다들 체육복을 입고 잤었나 보다.

 “응 잘 나와, 따뜻하고.”

 재하의 말에 이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섬주섬 벗은 옷을 사물함에 넣었다.

 “그건 다행이네.”

 재하는 사물함을 살짝 열어 체육복을 꺼내서 입었다.

 “너 교복은?”

 재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금 말한 사람을 확인했다.

 너야?

 다른 애들은 이미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은주 혼자 옷도 벗지 않고 재하를 살피며 교복에 대해 묻고 있었다.

 “무슨 교복?”

 재하는 태연한 척 다시 물었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어? 아니야, 암 것도.”

 이은주가 어색하게 말꼬리를 잘랐다.

 “너는 샤워 안 해?”

 재하가 거칠어지는 숨을 간신히 참으며 물었다.

 “아! 해야지!”

 “그래. 그럼 천천히 씻고 와.”

 “먼저 가게?”

 이은주가 반갑게 말하자 재하는 서서히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응! 빨리 가서 할 일이 있어서.”

 재하는 말을 하면서 이은주를 반대쪽 벽 사물함으로 몰았다. 이은주는 갑작스런 재하의 행동에 저항도 못하고 뒤로 밀렸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이은주의 키가 생각보다 작았다. 재하는 이은주를 내려다 봤다.

 이은주도 이제 재하가 눈치 챘다는 것을 알았는지 마주 올려다 보지 못 했다.

 “빨리 가서 교복 하나를 조져 놓으려고!”

 재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이은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재하는 조용히 자기 물건이 들어있는 사물함으로 돌아가서 안경을 끼고, 지갑과 스마트워치를 챙겼다. 그리고 구겨지고 엉망이 된 교복을 꺼내 반듯하게 갰다.

 “내가 그런 거 아냐! 정말이야!”

 이은주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도 아니겠다.

 재하가 자기 말에 쳐다보지도 않자 이은주는 다급하게 말했다.

 “나 교복 하나 더 챙겨왔어! 새 거야! 그거 너 줄게!”

 초승달 같던 눈도, 뚜렷하던 보조개도 재하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은주의 얼굴에서 더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재하는 기가 차서 이은주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을 마지막 촬영으로 하긴 그른 것 같았다. 이런 몰골로 그 애 앞에서 초라한 탈락자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재하는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오전 8시 35분.

 앞으로 2시간 25분.

 얼른 우서진부터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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