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지명, 인명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3화. 3대 몇?
‘이게 뭐...... 뭐야?’
거울 속에 비친 이범의 모습은 키가 커지고 덩치가 더 부풀어 있었다. 원래 키는 180cm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난 밤사이 10cm 이상 큰 듯 했다. 세면대 위의 거울 끝자락에 자신의 머리가 닿았다.
더군다나 몸이 커졌다. 이전까지는 마른 편이었는데, 하룻밤 새 근육이 불어났는지 팔, 다리 이곳저곳이 두꺼워 졌다.
무엇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어제 보았던 신기한 돌이 자신의 몸에 박혀있는 것이었다. 밑 양쪽 쇄골뼈 중앙에 박혀 있는 동전모양의 돌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젯밤 보았던 그 색깔 그대로였다. 무슨 색인지 말할 수 없었다. 투명한 실들이 얽혀져 있었고 중간에는 순수한 빨간색의 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범은 자신의 몸이 낯설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어색함과 두려움으로 쇄골에 담긴 이상한 보석을 매만졌다.
보석을 만져도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어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보석을 만지면 펑하고 터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부와 보석의 감촉은 마치 원래부터 내 몸이었던 것처럼 적응을 한 듯 했다. 다만 자신이 그 박혀 있는 돌이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몸을 씻었다. 처음에 일어나서 느꼈던 이질감은 아마도, 갑자기 커져버린 자신의 몸에 대한 어색함 때문이었으리라.
새 몸을 구석구석 뽀드득 소리 나게 씻으며 빨리 커져버린 몸에 적응하려 애썼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 옷을 갈아입었다. 몸이 커지면서 평상시 입던 옷들이 죄었다.
‘옷 부터 새로 사야겠네...’
갑자기 변해 버린 몸으로 새로 사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 이것저것 생각이 복잡해지자 목구멍이 갑갑해지며 갈증이 일었다.
물을 마시려 무심결에 머그컵에 생수를 따랐다. 머그컵을 손으로 집어서 드는 순간 갑자기 머그컵이 깨져버렸다.
‘이게....뭐야? 내 손 힘으로 그냥 깨져버린 거야?’
이범은 깨진 머그컵 조각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빗자루를 들고 와 유리조각들을 치웠다.
‘에이...설마...’
다른 물건들도 한 번 시험 삼아 볼 겸 몇 개를 들어 보았다. 조심히 잡아 들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지 않고 편하게 잡으니 밥그릇이나 국그릇이 깨어져 나갔다.
‘하룻밤 만에 무슨 일이 벌어 진거야?’
이범은 여러 가지 물건을 조심스럽게 드는 연습을 했다. 생각 없이 잡았다가는 집안의 물건들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힘의 한계가 어디 까지 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가장 잘 테스트 할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그곳이라면 지금 넘치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써도 될 듯 했다.
집안을 정리 한 뒤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그곳으로 향했다.
***
“흡......하......흐으읍......하....”
“스으읍 후.. 스으읍...후”
넓은 헬스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쇠질’을 하고 있었다.
렉에서는 근육질의 사람들이 바벨에 원판을 많이 끼우고 스쿼트, 데드리프트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런닝 머신에서 뛰고 있었다.
벤치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바벨을 밀고 있었다. 주변에 보충제를 담은 물통, 탄마가루, 벨트 등 장비를 갖춘 것으로 보아 적어도 헬스를 몇 년 동안 한 사람임을 짐작케 했다.
남자는 어림잡아도 120kg를 훌쩍 넘긴 무게를 가슴근육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의 벌개 진 얼굴에 관자놀이의 핏줄이 튀어 나왔다. 이범의 팔 보다 두 배는 두꺼울 법한 구릿빛 팔이 용을 쓰고 있었다.
이범은 이전에 헬스장에 몇 번 와보곤 했었다. 하지만 벤치프레스 60kg도 채 밀지 못하고, 이것저것 기구를 깔짝거리다가 돌아 왔었다.
‘그래도 아까 머그컵도 부시고 힘이 세진 것 같은데.. 60kg는 밀겠지?’
조그마한 기대를 가지며 벤치프레스 주변에서 중년 남성이 운동을 끝마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틈틈이 스트레칭을 했다.
벤치프레스에서 120kg를 밀고 있던 중년 남성은 ‘헬린이(헬스+어린이)’의 눈빛을 느꼈다.
남자는 헬스를 처음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무게까지 올릴 수 있었다. 헬스를 처음 시작할 때 코치를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헬스에 흥미를 붙일 수 있냐 없냐가 갈렸다.
‘아마 헬스 초보 인 것 같은데.. 자리 비켜주고 하는 거 보다가 힘들어하면 내가 도와줘야겠다.’
중년 남성은 조용히 그 헬린이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언제든지 도와줄 용의를 가지고 주변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이범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빈 봉에다가 10kg 원판 두 개만 달았다. 총 무게는 40kg.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응????’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다. 40kg는 이범에게 연필을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10번 반복을 해도 힘들지 않았다.
‘뭐야? 왜 이렇게 가벼워?’
이범은 서서히 무게를 올려 나갔다. 60kg, 80kg,.....120kg 까지 올려 나가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 정도 무게를 밀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딱 봐도 헬스 초보 인 것 같은데 저 무게를 민다고?, 자세가 저렇게 엉망인데?’
헬린이를 바라보며 도움을 주려고 했던 중년 남성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자세는 누가 보아도 엉망이었다.
복압이 풀려 배는 흐물흐물 했고, 등은 조여지지 않았다. 일반인이 저런 자세로 고중량을 들면 양 어깨는 쿠크다스처럼 부서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볼펜을 들 때 누가 자세를 신경 쓰면서 들까?
헬린이 아니.. 힘을 장사처럼 쓰는 그 청년은 150kg를 넘는 그 바벨을 일반인이 볼펜을 들 듯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이 중년 남성뿐만 아니라, 헬스장의 고인물들도 이범의 운동을 보면서 눈을 흘깃하며 구경하는 듯 싶었다.
자세가 엉망인 초보가 저렇게나 고중량의 무게를 칠 수 있다는 게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범은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벤치프레스를 하던 중년 남성 혼자 보더니 이제는 몇 명이 지나가는 척하면서 자신을 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범은 그 시선들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괜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싫어, 벤치프레스를 150kg에서 그만 두고 런닝머신으로 향했다.
이전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받았던 시선들을 떠올렸다. 그 시선들은 두 개 중 하나였다. 무시 아니면 경멸.
김정혁의 무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바닥에 웅크린 자신을 슬리퍼로 짓밟으며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직접적인 폭행에 가담하지 않는 방관자들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이범의 시선을 피했다.
이범은 지난날의 쓰라린 추억들이 떠올라 발에 힘주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범의 발바닥을 누르는 힘에 런닝머신은 쿵쿵 소리가 났다.
이전에 뜀걸음을 하면 채 10분이 못되어 숨을 헐떡대곤 하던 이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꽤 빠른 속도로 30분 이상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뛰기를 할 때마다 나오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기분 좋게 해주었다. 온 몸에 드나드는 심장의 펌프질이 다리에 더 힘을 붙게 해주었다.
1시간 남짓을 뛰자 어느새 헬스장에는 사람들이 한산해졌다. 나머지 운동을 하기 위해 빈 렉으로 들어갔다.
3대 운동 중 두 가지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두 개가 남아 있었다. 헬스장에 들어왔을 때, 어깨너머로 본 고인물들의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자세를 떠올렸다. 먼저 스쿼트부터 시작을 했다. 바벨에 원판을 달고 어깨에 봉을 걸쳤다. 그리고 허벅지부터 천천히 구부렸다.
등에 걸친 바벨은 빈 가방을 드는 것처럼 가벼웠다. 바벨에 끼워진 원판은 탑을 쌓듯 점점 옆으로 뚱뚱해졌다. 100kg를 넘어 200kg를 넘어 갔고, 이내 250kg 까지 달성하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운동을 할 때 마다 펌핑감을 넘어선 근육의 팽창감이 느껴졌다. 높은 무게를 들 때 마다 몸이 레벨 업을 하는 것처럼 근육이 늘어났다. 높은 무게를 들면 들수록 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이범 또한 거울을 통해서 보는 자신의 모습이 점점 더 근육질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몸이 회복하며 근육이 같이 성장하는 것인가?’
더 무게를 올릴 수 있으나 원판이 부족해 280kg에서 더 올리지는 못했다.
이범은 그 바벨을 바로 내려서 데드리프트를 시행했다. 이범은 280kg의 바벨을 무 뽑아 올리듯 쑥쑥 뽑아 댔다.
- 스쿼트 : 280kg
- 데드리프트 : 280kg
- 벤치프레스 : 150kg
3대 운동은 흔히 남자들의 강함을 객관적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지표였다
3대 500kg이 되면 일반인 수준에서 정점이고 600kg이면 이미 선수 급으로 생각 되었는다. 그런데 이범의 측정수치는 700을 넘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시선이나 원판 때문에 무게를 더 올리지도 않은 터였는데도 이 정도 수치를 나타냈다.
3대 710. 이 객관적 숫자를 보며, 자신의 몸에 흘러들어온 보석의 힘을 체감하고 있었다.
이범은 달라진 자신을 느끼며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했다.
몇 시간의 운동만으로도 아침에 보았던 것 보다 몸이 더 좋아져 있었다. 희미하게 왕(王)자가 보였고, 팔 다리의 근육은 커지면서 결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이범은 자신의 몸을 보면서 입으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
***
헬스인 중년 남자는 처음에 원판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누가 봐도 자세가 엉망이면서 헬린이 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무게를 너무 쉽게 들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남자는 이범이 자리를 피하자 이범의 무게 그대로 다시 밀어보려 했다. 150kg의 무게. 하지만 바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놀라운 점이 있었다...
청년이 든 바벨에서 손 모양대로 희미한 자국이 나 있었다.
‘손아귀 힘만으로 철을 구부린 거야? 이게 대체?.....’
남자는 청년을 찾으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장사가 꼭 필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년을 찾으러 샤워실, 탈의실,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헬스장 밖을 나간 듯 싶었다.
남자는 못내 아쉬워했다.
***
이범은 헬스장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범의 집으로 향하는 길엔 낮임에도 불구하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축축한 골목들이 많았다.
그 골목들이 싫었다. 집으로 향하는 몇 개의 골목들은 김정혁에게 당한 공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골목은 주로 삥 뜯긴 곳, 저 골목은 주로 다구리를 맞았던 곳....., 슬리퍼로 뺨을 맞은 곳... 그 악몽들을 떠올리기 싫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한 골목 안에서 그에게 아주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어금니 꽉 깨 물어라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