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지명, 인명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2화. 한(恨) 많은 세상
20년 전, 2020년 대한민국
서울 어두컴컴한 반지하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어둠 사이로 비친 달빛만이 한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20살의 젊은 이범은 소주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주변에는 다 먹은 컵라면 용기가 뒹굴고 있었고, 옷가지, 양말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 한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던 이범은 고개를 들어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발끝엔 삐걱거리는 의자가 있었고, 천장엔 흰 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렁거리는 눈을 감으며 짧은 인생을 되감아 보았다.
어릴 때 아버지를 사고로 여의었다. 홀어머니였던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여러 알바를 하시면서 겨우겨우 두 가족 입에 풀칠하며 지냈다.
아끼고 모아서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 어머니는 조그마한 포장마차를 얻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어머니와 이범은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범은 끔찍한 괴롭힘을 당했다. 김정혁과 그 무리는 이범에게 폭행은 물론이고 삥 뜯기를 일상으로 했다.
원인은 길거리 ‘강아지’ 때문이었다. 김정혁과 그 무리가 길거리의 강아지를 괴롭히려고 할 때 이범이 막아선 것이 화근이었다.
김정혁은 이범을 ‘개 패티쉬가 있는 드루이드 새끼’로 불렀다. 쉬는 시간 마다 드루이드 사냥이라며 자신의 패거리를 모아 김정혁을 괴롭히고 폭행했다.
김정혁의 무리에 동조하는 학생들은 이범을 괴롭혔고, 나머지 학생들은 방조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김정혁의 이범에 대한 일을 ‘장난’으로 여겼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김정혁의 아버지는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이범은 깡으로 버텼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김정혁과 멀어지면 다시 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새해가 되자 무참히 깨져 박살이 났다.
새해 1월 1일 스무살들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될 수 있는 날.
김정혁은 만취한 채 자신의 포르쉐를 몰았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여성을 차로 치었다.
여성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김정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차를 몰고 바로 도주를 했다.
그 중년 여성은 이범의 어머니였다.
이범은 그렇게 어머니를 잃게 되었다.
한적한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으나, 목격자와 CCTV가 존재 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CCTV의 식별이 불가능 하다는 말을 했고, 목격자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이범의 눈에 보이는 진실이 그들에겐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은 수사를 뭉갰고, 미제 사건으로 종결을 할 수 박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김정혁의 아버지는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이범은 이 상황을 타개해보려 CCTV 복사본을 들고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지역구 국회의원 방정필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CCTV를 확보한 방정필은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장 김동철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이후 방정필의 불법정치자금수수혐의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불기소 처리 되었다.
CCTV 복사본은 증발 했고, 이범이 방정필을 만났던 것은 ‘없던 일’ 이 되었다.
진실을 밝힐 증거들이 있어도 돈, 권력 앞에 모두가 장님이 되었다. 심지어 증거는 사라지기까지 했다. 법은 권력자와 재벌들에게는 장님이 되었따.
결정적 증거가 없어져 버린 이범은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을 잡지도 못하게 된 이 상황에 울분이 터졌다.
뻔히 범인이 누군지 아는 데 그 사람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더 억울했다. 어머니께 죄송했다.
모든 희망을 잃은 이범이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 뿐 이었다.
***
짧지만 한(恨) 많은 세상이었다.
후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 이었지만 더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더 살고 싶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살아가는 데에 의미는 없다고 한다.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범의 인생에서 의미는 어머니였다.
그 의미를 하루아침에 모두 잃어버렸다.
더욱이 자기에게 지옥을 선사한 장본인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 것이었다.
아마 ‘사람 죽여 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라며 웃으며 다니겠지.
그런 더러운 지옥 같은 세상엔 더욱 살기 싫었다.
“엄마.....”
이범은 어머니의 사진을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한 동안 어머니의 사진을 가슴에 묻고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절규로 바뀔 때 까지 그치지 않았다.
한동안 절규와 같은 울음으로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게 되자, 이범은 안고 있던 사진을 내려놓았다.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향해 두 번 절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의자 위로 옮겼다. 발을 올리자 낡은 의자가 삐걱댔다.
의자 위에는 침묵하고 있는 흰 줄이 있었다. 달빛에 비친 흰 줄의 질감이 서늘했다.
이범은 줄을 잡고 그 구멍에 목을 넣었다. 그리고 의자를 발로 찼다.
흰 줄이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자신의 성대와 목을 꽉 쥐어 잡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범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발끝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허공에 발길질 할 뿐이었다.
이범 스스로 선택한 자살이었으나, 죽는 과정은 무척이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웠다.
죽음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되려 살고 싶은 마음이 이범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되돌리고 싶어!, 살고 싶어!... 죽기 싫어...’
그때였다.
반지하 유리창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날라 왔다.
날라 온 무언가는 천장을 지나가며 이범이 매달려 있는 줄을 끊고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흐으으으으익, 흐으이이이이익 칵..칵.. ”
바닥에 널브러진 이범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몇 초간 숨을 못 쉬었을 뿐인데 그 공기가 너무 소중했다.
한참동안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목에 걸려 있던 흰 줄을 목에서 빼냈다.
‘어떻게 된 거지?’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리고 난 뒤에 주변을 살폈다.
반지하의 창문이 깨져서 방바닥에 유리조각이 가득 했다. 달빛에 비친 유리조각들이 반짝였다.
그때 반짝이는 유리조각이 아닌 색다르게 어둠을 비추는 빛이 눈에 들어왔다.
깨진 조각들 사이에 동전크기의 돌 하나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범은 보석을 집어 들고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20년간 살아온 인생에서 이와 같은 색의 보석을 본 적이 없었다.
보석의 중간은 투명해서 비치고 있었고 주변부는 주황색, 파란색, 빨간색 등으로 섞여 형형색색 빛나고 있었다.
손으로 들고 만질 때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색으로 반짝였다.
이범은 호기심이 생겨 그 작은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뭐지?’
그리고 천천히 투명한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보석 안은 가느다랗게 수많은 실들이 보이기도 했다.
가장 특이한 점은 가장 중심부에는 새빨간 점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순수한 빨간색이었다.
그 순수한 빨간색에 두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범이 빨간 점을 본 순간 돌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 스파크는 맨 처음 이범의 눈을 통해서 들어갔다. 이어서 돌 안의 실들이 퍼져서 나오더니 자신의 팔, 다리, 심장 등 장기로 연결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 으....”
그 연결이 이질적이어서 이범은 돌을 떼어 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신비한 돌의 기운은 이범의 눈으로, 온몸을 통해서 연결이 되어서 들어왔다.
혈관이 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돌아다니는 듯 껄끄러웠으며, 심장 박동을 할 때마다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팔, 다리의 근육들이 쥐가 난 듯 자기 멋대로 펄떡였다. 근육들이 저릿했다.
위장, 대장 등은 상한 우유를 먹은 듯 출렁이고 울렁거렸다.
뼈마디는 점점 더 무거워 져서 쇠붙이 같았고 피부가 까끌까끌 해진 듯 했다. 무엇보다 체온이 올라간 듯 몸이 후끈 했다.
머릿속의 뇌는 무언가가 계속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터질 듯 했다.
뒤이어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울려 나왔다.
‘너는 뭐야? 내가 왜 이런 곳.. 이런 몸에?...’
‘흠 생기(生氣)를 모두 잃은 사람 같군... 그런데 또 살아갈 의지는 강력하게 보이고 있구나. 정말 특이하군.’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겠구나, 내가 너를 만나게 된 것도 필시 그 이유가 있을 터...’
‘좋다. 네 뜻을 한 번 펼쳐보아라!’
계속 머릿속 안이 차오르는 느낌에 머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동시에 벼락 치는 듯한 두통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몰려왔다.
그 두통에 이범은 정신을 잃었다.
***
다음날 아침 이범은 정신을 차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가 일어난 듯 온 몸이 개운 했다.
자신의 반지하 방안에는 한 낮이 되었음을 알리는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꿈....이었던가?’
자신의 옆에 떨어진, 흰 줄, 널브러진 의자, 그리고 깨어진 유리 조각들이 꿈이 아니고 현실임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범은 지난밤에 보석을 만졌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상한 점은 20년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던 몸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보이는 시야도 넓어진 듯 했다.
서늘했던 흰 줄을 다시 들어서 보았다. 지난 밤 목에 걸려서 고통에 몸부림을 치던 자신의 모습과, 그 불쾌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이범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몇 초간 이었지만 줄의 자국이 선명하게 자신의 목에 남아있었다.
‘다시는 못할 짓이야...’
흰 줄과, 유리조각들을 정리 했다. 바닥에 놓여 있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로 했다.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시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도저히 어머니를 볼 낯이 없었고, 죄송했다.
문득 이범은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보석을 만졌으며 그 보석을 통해 자신과 그 돌이 연결되는 그 순간의 느낌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어젯밤 보았던 반짝이는 돌을 찾으려 방안을 구석구석 뒤져보았으나, 돌은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치고 본 환상이었나?,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었던 거지?
깨진 유리창을 보고 난 뒤에 바깥에 나가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별 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 돌의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알 수 없는 내 몸의 이상감각은?’
궁금증들이 쌓여만 갔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겸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놀라서 숨을 멈추었다.
‘이게 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