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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10화) 당신을 만나다
작성일 : 20-09-19 18:03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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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윤완의 등장에 한 번, 그가 이 모임의 주최자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윤완은 나를 보고도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공적인 자리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곤란해 할까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 됐던 나는 마음이 놓였다.

  “어디까지 했었죠? 아. 주아린 님 얘기 듣다가 말았죠? 계속하세요.”

  윤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자가 어깨를 움츠렸다. 왕사탕만한 눈을 불안하게 굴리는 그녀는 얼굴의 솜털이 아직도 보송보송했다. 왠지 이번이 첫 이별이었을 것만 같았다.

  “가장 괴로운 건 선배를 계속 봐야한다는 거예요.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에서도 멀어질 텐데. 툭하면 내 앞에서 다른 여자들하고 시시덕대는데 꼴 보기 싫어 죽겠어요.”

  가녀린 어깨를 떨며 울분을 토하는 아린에게 누구도 조언이나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이미 주변인들에게 많은 간섭을 받았고,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 감정에 대한 공감이지 또 다른 관여가 아니었다. 그럼으로 여기에서만큼은 서로에게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이건 모임의 첫 번째 규칙이었다.

  “그렇지만……그런데도……여전히……사랑해요.”

  결국 아린은 눈물을 흘렸다. 여전히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쩜 저리도 내 마음과 같은지. 아아.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뜨거워서, 아직도 생생해서 여기에 나와 있는 거겠지. 잊어보려고. 현실을 인지하려고.

  금세 눈이 눈물로 젖어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몇몇은 휴지를 들고 훌쩍이고 있었다. 여기에서라면 이대로 울어도 전혀 흠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그 끝엔 윤완이 있었다. 윤완은 나를 빤히 봤다. 흡사 내 눈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안 돼. 참아야 해.’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선 울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우는 나를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창피한 건 둘째 치고 나를 더 불쌍하게 여길 것만 같아서 보이기 싫었다. 그러나 온몸으로 흐느끼는 아린을 보고 있으려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잠시 의식을 다른 쪽으로 흘려보냈다. 인도식 카레, 브로콜리 샐러드, 참치 뱃살, 육개장, 고추장 불고기, 당근 케이크, 달콤한 사탕. 먹으면 행복해지는 것들.

  상상을 하니 입맛이 돌았다. 이별 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지금은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맛있는 걸 잔뜩 사야겠다.

  “다음으론 유노리 님 해보실래요?”

  아린이 감정을 추스르자 윤완은 다른 이를 대화의 중심에 끌어들였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것과 달리 화사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거기다 화장까지 곱게 해서인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빛났다. 마치 흑백영화 속으로 잘못 뛰어 들어온 컬러 앨리스 같았다.

  “유노리 님?”

  윤완이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 태도 그대로 넓적한 찻잔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쥔 채 차만 마셨다. 윤완은 잠시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노리 님. 말씀하기 힘드시면 이따 하시겠어요?”

  “아뇨. 전 하고 싶은 말 없어요. 그냥 패스할게요.”

  그녀는 당당하게 딱 잘라 말했다. 우물쭈물 거리는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자신들과 동떨어진 모습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녀를 경계했다. 내 옆에 앉은 참견쟁이 여자는 목소리를 낮춰 그녀의 흉을 봤다.

  “저럴 거면 모임엔 왜 나왔데. 그냥 방구석에서 굴러다니지.”

  얘기를 강요하지 않는 게 모임의 두 번째 규칙이었지만 대체적으로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반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곳에 나왔으면 뭐라도 털어놓아야 했다. 헤어진 이유나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별 후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는 말해줘야 서로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일부만 그랬다. 그 일부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 슬픔만으로도 버거워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못했다.

  윤완은 처음엔 다들 말하길 꺼려한다면서 유노리를 다독이곤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유노리 역시 나처럼 모임에 처음 나온 사람이란 말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녀의 반응을 의식했다.

  유노리는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보였다. 손에 쥔 찻잔만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할 뿐 주변으론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꼭 차를 마시는 일이 그녀에게 주어진 주된 용무인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남의 얘기는 듣고 있긴 하는 걸까. 문득 그녀의 목적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오래 붙들고 있을 순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으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고단비예요. 이별한지는 얼마 안 됐어요.”

  내 인사에 잠시 흩어져 있던 까만 눈들이 내게로 꽂혔다. 우울과 상실, 자기 연민과 혐오 등이 깊이만 다를 뿐이지 모두에게 나타났다. 거울 속 내 눈과 똑같은 눈들. 그들은 또 다른 나였고, 나는 그들과 하나였다.

  어둡고 시린 감정이 목구멍을 향해 스멀스멀 올라왔다.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숨이 막혔다. 남몰래 심호흡을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두 번은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여기 모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단비 님. 얘기하기 힘드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온기 실린 목소리가 나를 부드럽게 자극했다. 일부러 윤완 쪽은 보지 않았던 난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봤다.

  윤완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나에 대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숨 쉬는 게 조금은 수월해졌고, 목구멍이 틔었다.

  “저는.”

  그러나 속마음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는…….”

  “괜찮아요. 힘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처음엔 다 그래요.”

  옆자리의 여자가 유노리에게 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를 대했다. 노력하는 내 모습을 높게 산 모양이었다. 다행히 다른 이들도 그렇게 받아들였고 자연스레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부담감이 덜어지자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모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매우 꽉 끼는 속옷을 입은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곳을 찾은 이유가 점점 나를 옥좼다.

  도움을 받고 싶어서, 편해지고 싶어서, 황규성처럼 웃음을 되찾고 싶어서 왔으면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다니. 실망이야 고단비.

  하지만 속마음은 이유와 상충됐다. 과연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까. 이곳이 내게 진짜 도움이 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나는 곰신이었던 애인의 배신으로 힘들어하는 남자의 얘기를 얌전히 듣고 있다가 그가 말을 끝내자 손을 번쩍 들었다. 윤완이 나를 불러 이유를 묻자 나는 그토록 고민했던 말을 툭 내뱉었다.

  “차였어요.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이 한 마디 예고도 없이 절 차버렸어요. 늘 옆에 있었던 사람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려서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어이없어요. 슬픈 건 당연하고요.”

  나는 여기까지만 말했다. 시시콜콜, 주절주절 다 하지 않은 건 아직은 마음이 딱 이만큼이기 때문이었다. 막상 털어놓으니 미세하지만 시원해졌다. 현수와의 이별을 상기해서 아프긴 했지만 잘한 선택 같았다.

  “누가 뭐래도 여러분은 사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마지막 사람의 얘기가 끝나자 윤완이 마무리를 지었다. 얼음 호수처럼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멘트였다.

  모임이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져서 내부를 정리했다. 둥그렇게 둘러놓았던 의자와 벽에 밀어둔 탁자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바닥을 청소했다. 나도 그들에게 섞여 작은 힘을 보탰다.

  그러나 유노리는 가만히 서 있다가 인사도 없이 먼저 가버렸다. 뒷말이 나올 행동이라 눈치가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를 주축으로 몇몇이 모여 유노리 흉을 봤다. 나는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멀리 떨어진 곳을 치우고 닦았다.

  “제가 할 테니 단비 씨는 쉬세요.”

  찻잔을 닦으려는데 윤완이 다가왔다. 그에게만 맡기기 미안했던 나는 망설이다가 같이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가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윤완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가 뭐라도 물어볼 줄 알았다. 이곳엔 어떻게 오게 됐는지, 참여로 기분이 나아졌는지, 예상하지 못한 자신과의 만남은 어땠는지 등.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이곳을 어떻게 처음 운영하게 됐는지, 운영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곳을 통해 다시 일어난 사람들이 많은지 등등. 그러나 그도 나도 끝까지 찻잔에만 집중했다.

  가방을 둔 자리로 돌아와 보니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가방 옆에 일회용 김치 통을 하나씩 두고 있었다. 못 보던 거라 뭔가 싶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고단비 씨도 이거 가져가요.”

  겉옷을 입고 있는데 커트머리 여자가 일회용 김치 통을 건넸다. 아까 옆자리의 여자와 티격태격하던 그녀였다. 나는 얼떨결에 김치 통을 받았다. 안에는 고춧가루를 듬뿍 안은 무생채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찬밥에 넣고 참기름 쳐서 야무지게 비벼먹으면 기가 막혀요. 집에 가서 꼭 그렇게 해 먹어 봐요.”

  맛있어 보이기는 했다. 근데 무슨 무생채를 이렇게나 많이. 김치장사를 하나 의심이 들었을 때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가 끼어들었다.

  “버릇이에요. 얘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렇게 무를 썰어대거든. 서걱서걱 갈리는 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대요. 이상하죠?”

  “이상하긴 뭐가요. 언니처럼 술을 한 말 마시는 것보단 훨씬 건전하거든요?”

  둘은 또다시 붙었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의 다툼은 일상인 듯 했다.

  “자자. 그만들 하시고 안녕히 돌아들 가세요.”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보이지 않던 이준서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녀는 능숙하게 두 사람을 말렸고, 나머지 사람들을 내보냈다. 내가 인사를 하고 곁을 지나치자 그녀가 붙잡았다.

  “단비 씨. 어디까지 가세요? 혹시 방향이 같으면 윤완 씨에게 태워달라고 하게요.”

  차마 같은 건물에서 산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던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향일 거라고 둘러댄 뒤 서둘러 나왔다.

  혹시나 윤완이 쫓아올까봐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내 뒤를 따라오는 건 얼굴이 둥근 예쁜 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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