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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9인승
작가 : 도은송
작품등록일 : 2020.9.19

각기 다른 과거를 숨긴 여덟 명의 인물들이 한 장소에 모인다.
다만 흔적을 묻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이들의 모임에 새로운 회원이 가입을 하게 되며 밝혀지는 각자의 사연들.
그들이 바란 것은 진정 '구원'이었을까.

 
#5 좋아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작성일 : 20-09-19 01:54     조회 : 162     추천 : 0     분량 : 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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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다지도 질렸던 적이 있었나.

 컴퓨터로 파일을 옮기며 동시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호주머니 안쪽 천이 마찰을 일으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전한다.

 동아리에 가입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주머니를 움켜쥐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야 잡음이 줄었다.

 2배속 설정을 해 놓고 아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낡은 책상에 그보다 더 낡은 슬리퍼가

 끼워진 발을 얹은 채로.

 본래는 정문의 것 이였을 우스꽝스러운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술은 몇 병이나 남았죠?’

 ‘오늘은 정신이 없는 날이네요.’

 ‘문제는 본인이 아닌 외부에 있습니다.’

 애시 당초 문제랄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꼭 군대와도 같았다. 그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터무니없는 몇 개의 규칙에만 적응이 된다면

 그냥저냥 견딜 만 한 좁은 우물과도 같은 곳.

 처음 배정을 받았을 때엔 썩은 동아줄이라도

 당기며 구조를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업의식 운운 해가며 모두가 손절한

 잠입 취재의 특명이 떨어지던 날

 상연은 갓 취업한 새내기 피디였다.

 작은 방송국이어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침내 사회인이 되었다는 맑은 기쁨, 그리고

 ‘하다 보면’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그 순수함에 있었다.

 

 동기들이 바라 온대로 드라마와 예능 부문을

 (비록 새끼일지언정) 섭렵하며 피로에 찌든

 한탄 문자가 쌓여 갈 시점,

 애초에 길 자체를 잘못 들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다큐멘터리라니, 그것도 시사 고발의 행태를 한.

 

 그래도, 피디님이었다.

 

 문턱도 넘어 보지 못한 동문들이 수두룩 빽빽 이었다.

 이번 건만 어찌 마무리가 된다면,

 잘 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기한까지

 알맹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 상연의 예측대로.

 

 여느 평범한 일상에 잠식하고 만

 모임이 번쩍 하고 빛을 낸 것은

 얼마 전 경진의 취중 진담 덕이었다.

 

 상연의 처음 몇 달도 남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 이유가 있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 있겠는가,

 그것도 대상과 그 취해진 콘셉트가 이다지도

 치기 어린 공간에서.

 

 그러나 무리는 얼마 전 영민에게 그러했듯

 당시의 신입인 상연에게도 별 반 다를 바

 없는 모습만을 비추었다.

 

 사기가 꺾여 어떤 날은

 녹음기를 챙기는 일마저 잊고 말았다.

 하필 그 날에 그랬다.

 경진의 자기 성찰. 본인도 모르는 새

 눅진히도 눌러 붙은 양심이 고백을 하던 날.

 

 빈 병들이 테이블을 굴러

 정문과는 다른 이유로 경진이 낯을 붉혔다.

 위로와 겁박을 오가는 정문의 언변에

 평소와는 다른 흔들림이 존재했다.

 멤버들의 눈치 게임이 한창인데

 상연은 빈 주머니만을 만지작거렸다.

 

 문영과 눈을 마주쳐 녹음기 생각을 멈췄다.

 문영이라면, 보다 생동감 있게 현장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가 같은 편에 서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그를 불러낸 원초의 목적이,

 단지 추억을 팔아 농담이나 따먹어 가며

 멤버들 흉이나 볼 심산으로,

 간이나 보다 되겠다 싶을 때 고백이나 한 번

 해볼까에 있었던 탓일 테다.

 

 호기롭게 얘기를 꺼냈다.

 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걸 알았다.

 구태여 집을 바래다주던 날이었다.

 

 “처음 모임에 불렀을 때,

 무슨 생각으로 나오겠다 한 거였어?”

 

 “갑자기?”

 

 이제 막 꿈에서 헤어 나온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제 막 발현되는 줄로 믿는 표정인 것도 같았다.

 침을 삼키며 마음을 재차 확인한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막 친한 것도 아녔고.

 흔쾌히 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나 흔쾌히 응한 적 없는데...”

 

 혼잣말이었을까.

 문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가로채간다.

 

 “뭐라고?”

 

 “나 고민 엄청 하다가 들어온 거야, 선배.

 내 성격 알면서 그런다.”

 

 고개를 빼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문영은 대화가 불편한 것이다.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지금 하면 안 돼?”

 

 바라던 형태의 대화는 아니었다.

 우선은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정문 관련 얘기야.”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틀어진 몸을 온전히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데 맥박소리가 전해질 듯

 문영은 열로 달떠있었다.

 

 정문을 관찰하던 시선.

 둘이 있을 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해

 니트의 올이라도 세는 듯

 어깨 끝에서 배꼽으로 이어지던

 수줍은 눈동자.

 

 모르는 건 아니었다.

 문영에 대한 감정은 오래 전 이야기였다.

 다만 아끼던 컵이 깨졌을 때와 같은

 허탈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선배가 김정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다고?”

 

 그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성을 붙여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

 다분히 의식된 행동이다.

 

 다른 문이 열린 것이라 여기면 그만이다,

 상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다음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정문이 가운데에 끼여 비호라도 내리는 듯 보였다.

 미리 봐뒀던 카페 대신 역 근처

 별 볼 일없는 프랜차이즈 가게 문을 당긴다.

 치사한 처사는 아녔다, 커피는 자신이 샀으므로.

 무엇보다 문영에게 여유랄 것이 없어보였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관자놀이가 이미 땀으로 축축했다.

 필요 이상으로 당황한 그가 내심 귀여웠다.

 

 “잘 마실게.”

 

 한 입에 반을 털어 넣더니

 이를 보이며 얼음을 잘게 부쉈다.

 입술 선을 따라 물이 주룩 흐른다.

 

 “뭔데, 얘기해 봐.”

 

 상연은 일순간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은 아녔지만

 일정한 공간 속에서 문영을

 대면하자 마음에 품었던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그래도 환심을 사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랬다.

 

 멋은 없을지언정 가치가 없는 관계란 없다,

 이용해먹을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봐라.

 

 한숨을 푹푹 쉬며 지원서를 쓰는데

 방송국 선배가 한 말이다.

 마지막 남은 젤리를 슬쩍 집어

 질겅질겅 씹으며,

 대단한 위로나 해주는 양.

 

 “얘기해야지 해야지 하던 게

 이렇게까지 밀려버렸어.

 알다시피 기회가 없었잖아,

 일정 끝나면 무작정 집으로 가버리고,

 문영이 네가 워낙 에프엠 이다보니까.”

 

 그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린다.

 

 “모임의 룰이, 허술하리만치

 까탈스럽다는 생각, 해 본적 없니?”

 

 잔 표면의 물방울을 손끝으로 그리며 문영이 대꾸했다.

 

 “글쎄 나는, 지금 이 대화가 더 허술하다고 생각하는데.

 선배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서두를 늘어트려.”

 

 상연이 웃음을 터트린다.

 저다지도 작위적이었던가,

 옆에 있어도 늘 눈에 보이질 않던 그는

 그래도 묵묵한 선배로서의 몫은 해냈던 것 같은데.

 결코 그 이상의 호감을 품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도 같았다.

 

 “꼭 대학시절 때 모습을 본 것 같아서.

 다른 뜻은 없었어.”

 

 이 이상 시간을 끌시 자리를 뜨고도 남을 것이다.

 문영은 불같은 성정의 후배였다.

 몇몇은 그런 그를 대놓고 배척했고

 나머지는 남몰래 흠모하였다.

 어쨌든 상연이 기억하는 한

 문영에게 연인이 없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취재 중이야, 실은.

 너 불러냈을 이전 시점부터.

 사실 가입 애초의 동기가

 프로그램이었어.

 들어 알겠지만 지금 있는

 방송국 피디 중에 막내고,

 선택의 여지랄 게 없었어,

 그러니까 원해서 온 건 아니란 얘기지.”

 

 듣는 둥 마는 둥 검어진 핸드폰 화면만을

 만지작댔다. 닿아있는 모든 지문을

 지워내려는 듯, 같은 구석을 반복해서

 문지른다.

 

 “절망적이었어. 아니, 그건 좀

 과격한 표현이네, 흥미랄 게 없었달 까.

 이런 조그만 소모임에 벌어질

 일이래 봤자.

 그래서 문영이 너를 부른 거야.

 아는 얼굴 하나 쯤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두 쌍의 귀가 각기 다른 이유로 붉어진다.

 

 “처음에는 그랬어, 처음엔.”

 

 “얘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참 궁금하네.”

 

 이번엔 커피 잔을 빙빙 돌리며

 손톱으로 긁어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상연은 끼익 하는 걸 들은 것도 같다.

 

 “구태여 널 부른 것도, 실은 호감 때문이었어.

 우리 마지막으로 연락 한 게 언젠데.”

 

 “선배, 미안한데...”

 

 “오해는 하지말구. 처음에, 그랬다는 뜻이야.

 여하튼 모임은 네가 있든 없든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더라. 데드라인만 손꼽아 기다렸지.

 그런데 문경진이 입을 열대.”

 

 큰일이나 해결하였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후루룩 커피를 마신다.

 듣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이 모임엔, 구린 구석이 있어. 반드시.”

 

 “그리고 그걸 잡아내는 게 선배의 몫이다,

 기자 출신인 네가 협조를 좀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야?”

 

 예상보다 차분한 반응이었다.

 

 “그게, 애초 모임의 취지야.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공중에 따옴표까지 그려가며

 문영이 말을 잇는다.

 

 “법적으론 문제없을지언정

 뭔가 다 켕기는 게 있으니 말마따나

 취미도, 취향도 겹치는 거 하나 없는

 인간들끼리 둘러앉아있는 거 아냐.

 그것도 주 일 회씩. 누구는 오는데 두 시간 걸린다더라.

 

 누군들 시간이 남아돌아 저러고 있겠어?

 나는 결코, 이 모임이 선배가 암시하듯

 범죄자 소굴씩이나 되는 곳이라곤 생각 안 해.

 

 모르는 사람들끼리, 설령 얘기가 들어간다 해도

 최소한의 대접은 보장이 되 있는,

 일종의 테라피 집단 정도로 여겨지는데.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공지한대로 잘만 굴러가고 있고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문제는 문영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다는 것이다.

 건수랍시고 잡아낸 모임의 음습함은,

 누구도 숨기려 들지 않았을 뿐더러

 단지 상연의 눈에 늦게 포착되었을 뿐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문은.

 

 “김정문도, 같은 생각일까.”

 

 그는 이제 내어놓고 짜증을 부린다.

 문영의 찌푸려진 미간.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

 모든 것이 그럴싸한 조화를 이뤄낸다.

 

 “그냥 트집으로밖에 안 보인다.

 다 알고 들어와서는 잠입취재라는 말 써가며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거, 흥미 없어.”

 

 “너 그거, 일종의 세뇌야.”

 

 “당하려고 들어온 걸지도 모르지.

 선배는 날 그렇게 몰라?”

 

 얻은 것이 없었는데

 허탈함을 넘어선 무언가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그림 같았다는 생각을 한다.

 문영은 땀에 젖었을 때 가장

 문영다웠다, 솔직히 조금은 섹시했다.

 

 지-잉. 지-잉.

 

 ‘한 잔 할까.’

 

 핸드폰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두 번 확인을 한 발신자엔

 문영의 이름이 선명했다.

 이내 바지 지퍼를 올리며

 답장을 미리 쳐 놓았다.

 

 조금만 이따 회신을 해야지.

 손을 씻으려 엉거주춤 화장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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